47. 꿀꿀이 바구미 10장 (01-2)

마쉬맬로우200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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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벌이는 하루 중 각자의 자유시간이 가장 좋아졌다. 예전에는 밤이를 볼 수 없다는 것에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규칙을 어기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벌이는 규칙을 어겨 밤이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웠다.



“어디로 가나요?”



체념한 듯 물었다.


이번 납치의 목적이 내가 아닌 것을 알기에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미 멀리 도망간 후였다.



‘의리 없는 할아버지 같으니라구. 다행히도 짝다리는 나한테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이니까 별일은 없을 것 같고. 하긴 발육부진을 누가 관심이나 갖겠어.’



사실 무서워하지 않은 건 누군가가 날 찾아 올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들어서였다.


수암이든 멀대든 누군가는 오겠지 싶었다.



‘멀대일까, 수암일까? 멀대는 액션 분위기가 나고 수암은 멜로 분위기가 나니까 멀대가 좀 더 낫겠군.’



멀대가 멋지게 나를 구해줄 상상을 하며 다소 느긋하게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야, 야!”



누군가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편해도 너무 편했던 걸까? 그만 잠을 자고 만 것이다.



“서울 다 왔어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휴게소야. 뭐 좀 먹을래?”



산만한 사내의 음성은 보기와 달리 무척이나 따뜻했다.



“네. 배가 고파요.”


“너 납치 몇 번 당했었냐?”


“왜요?”


“많이 당해본 솜씨라. 어쩜 얘가 겁이 없니.”


“하하.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또 웃으며 넘기기.


납치 처음 당한 게 뭐 부끄러운 얘기라고 나는 처음 당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화장실은 못가. 그냥 여기 있어. 먹을 것은 사다줄게.”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아저씨! 저 감자하고 포도 주스 사다주세요.”



휴게소로 향하는 덩치의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차에는 짝다리와 나뿐.


짝다리는 피곤했는지 의자를 뒤로 빼서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아저씨 민씨죠?”


“어떻게 아냐? 역시 너도 점쟁이구나.”



‘역시 민가 일당이 보낸 사람들이군. 생긴 건 하급 졸따구인데 능력은 대단한가봐.’



“그럼 월산 도사라고 알아요? 그 사람 어때요? 듣기로 아주 나쁜 사람 같던데.”


“내가 월산이야.”


‘아니 월산이 직접 왔단 말이야. 민가 일당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인가봐.’


“아저씨도 흑술 써요?”


“야, 시끄러 입다물어. 그리고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자꾸 아저씨래. 나 좀 자야하니까 좀 조용히 해.”



승질머리 하고는.


역시 듣던 대로 나쁜 사람이야.


짝다리 월산은 정말 피곤했는지 날 감시할 생각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이 도망갈 절호의 기회인데. 하지만 지금 도망가면 멀대를 보호할 기회조차 놓치는 것 아닐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듣는 게 할아버지를 달래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두가지 기로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일단 도망가면 사람들 걱정이야 덜 하겠지만 이 일을 해결할 단서들을 수집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 좋은 기회가 될 지도 몰라.’



일단은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기로 하고 마음을 먹고 월산을 따라 눈을 감았다.




목적지는 예상대로 서울이었다.


서울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는 톨게이트를 지나자 녹색의 풍경들만 펼쳐진 것과 달리 색색깔의 낯익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얼마 후 월산의 집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타고 있던 차는 큰 대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내려.”



이미 호랑이 굴로 들어온 것 이제야 반항할 수도 없는 것이라 순순히 내려줬다.


수암의 집도 꽤 크다고 느꼈었는데 이 집은 수암의 집 꼭 두배는 되어 보였다.


대문도 두배 정원도 두배.



‘나 같은 길치는 도망가다가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만을 빙빙 돌고도 남겠는걸. 너무 순순히 따라왔나봐.’



조금 후회가 들었다.


남자들은 도망 못 갈 것을 알았는지 지들끼리 먼저 들어가 버린다.


알아서 따라오겠거니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예상은 맞았다.


행여 뒤쳐질까 나는 꼭 붙어서 따라 들어갔다.



“오셨어요?”



가정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인사를 건냈다.


짠돌이 수암집에는 그 넓은 집에도 가정부가 없었는데 있는 집에는 다 두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월산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월청도사를 말하는 것인가보군. 드디어 만나는 것인가.’



“서재에 계세요.”



아주머니의 대답에 월산은 싸가지 없게 대꾸도 없이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관을 들어가서도 한참을 가서야 겨우 입구가 작은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안으로는 나와 월산만 들어갔다.


방안은 서재라는 곳답게 책으로 가득했으나 창문도 없는 작은 방은 매우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서재라는 용도보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쓰고 있는 것인지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그 방안을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입을 열었다.



“이 여자애더냐?”



어찌 그리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지 좀 부담스러웠다.



“네.”



싸가지 월산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예의를 잔뜩 갖췄다.


하긴 나도 저절로 예의 바른 소녀의 모습이 되었다.


월청도사의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사람을 누르는 듯한 묘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이 도인의 연륜이란 것일까? 꽤나 깊은 눈이네. 깊이를 가늠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수암의 말대로 흑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악한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것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온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서운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나한테 물어보는 건가?’



“저요?”



‘너무 긴장했나봐. 그럼 당연히 나한테 물어보는 것이겠지.’



“그래. 자네 나를 아는가?”



‘괜히 안다고 했다가 집밖으로 영영 못나가는 것 아니야. 저 노인네 페이스에 말려서는 안돼.’



“모르는데요.”



한 아는 척 하는 내가 비굴하게 거짓말을 하다니 자존심 좀 상했다.



“반갑네. 나는 월청이라고 하네. 이름은 민영효라 하지.”



순간 귀를 막고 싶었다.



‘왜 이름까지 가르쳐 주는 거냐고.’


못 들었다고, 내게 말해주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 못 들었다고 말할까?




그러기엔 할아버지의 음성은 너무도 뚜렷이 들렸다.


이대로 저 못생긴 월청이랑 이집에서 사는 것은 아니길 빌뿐이었다.



“월청 도사님이라면 국내 유일의 퇴마사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전부터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작전 변경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작전명 아부아부.


아부작전이 먹히는지 월청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자네 이름은 뭔가?”


“강혜림이라고 합니다.”


“많이 긴장했군. 혜림양, 긴장을 풀게. 자네를 어찌할 생각은 없다네.”



‘작전이 간파당했군. 보통 노인네가 아닌데.’



“저를 어찌하여 데리고 오신 것입니까?”



뭐든 솔직한 것이 좋은 법이다.


이미 잡혀온 이상 피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날 좀 도와주게. 아니 다케다를 도와주는 일이 되겠지.”


“제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 거죠?”


“다케다를 좋은 곳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나?”


“다케다 할아버지에게 흑술을 쓰실 건가요?”



좋은 곳으로 보내야한다면 나도 굳이 돕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암의 말대로 흑술을 써서 할아버지 영혼 자체를 소멸 시킨다면 동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많이 알고 있군. 다케다가 키노모토의 사람인 이상 나도 어쩔 수가 없네. 그런 운명을 타고난 자신을 탓해야겠지.”



진짜로 흑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수암의 말은 들었지만 백프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놀랐다.



“그렇다면 도울 수가 없군요.”


“그런가? 생각할 시간을 더 주겠네. 천천히 생각해보게.”



곱게 보내 줄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돕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는 말이겠지.



“왜 키노모토 가문에 그리 원한을 가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가 정한 바가 아니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된 일이니까. 미안하지만 자세한 것을 말 해 줄 수가 없군. 피곤할테니 일단 쉬게나. 내일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10-2


나는 산만한 덩치에게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화장실이 딸린 조그만 방이었다.


손님방으로 쓰는 방인지 사람이 묵고 있는 방같지는 않았다.


여기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이틀, 삼일, 아니면 일주일?


텔레비전부터 켜 보았다.


다행히 잘 나왔다.


리모콘 작동도 이상없고.


침대에 몸을 뉘웠다.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구해줄 사람들은 언제 올까?’



마치 오기로 약속한 사람이 시간에 늦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암보다 멀대가 와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너무 늦지는 않게 와주렴. 늦게 오면 너도 내 얼굴처럼 만들어 줄 거야. 늦지 않게 와. 너무 늦지 않게.’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방안에는 시계가 없었지만 배고픔의 정도로 보아 3시 25분쯤일 것 같았다.



‘밥도 주지 않고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안준다면 열심히 생각 안해야지.’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내심 불안했다.



‘아까 보니 월청이 날 마지막으로 보는 눈빛이 고생 좀 해봐라하는 것 같았는데. 그 성격으로 보아 날 가엽게 여길 사람 같지도 않구.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아니야. 도망갔다가는 넓은 정원에서 출입문을 찾지 못하고 길 잃지 십상이겠던걸.’



배도 고픈데다 길을 잃고 헤매다 흙투성이가 된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다 날 찾으려온 납치범들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다.


“안녕하시렵니까?”


그건 아니지 싶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것은 탁자에 놓여있는 빨간 전화기였다.



‘오호 이런 것이. 정말 나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나봐. 이제야 눈에 띄다니.’



일단 전화를 들었다.


버튼을 몇 개 눌러봐도 밖으로 연결이 되는 전화는 아니었다.


역시나 내선만 연결되는 전화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0번을 누르자 신호가 몇 번 가더니 사람이 받았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내 또래의 여자애 같았다.



‘여기서 일하는 앤가봐. 아까 얼핏 본 것 같은데.’



“저기여 저 밥은 안 주시나요? 밥 때가 지났잖아요.”


“누구신데요?”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저기여 낮에 잡혀온 여자 얘 있잖아요. 그게 전데요. 아까 못 보셨어요?”


“글쎄. 누군지.”


“키 작고 아래는 청바지 입고 위에는 파란 잠바 입은, 기억 안 나세요? 한 쪽 눈에 멍들고요.”



밥 먹어 보겠다고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아하.”



상대방은 그제야 나를 아는 척했다.



“지금 밥상 차리는 중이에요. 조금만 기다려요. 곧 가지고 올라갈 거니까.”


“그리구요, 여기 수건이 없어요. 세수를 할 수가 없잖아요.”


“네. 그것도 가져다 드릴께요.”


“그리고 칫솔도 없어요.”


“방에 있을텐데.”


“있긴 한데요. 누가 썼던 것 같아요. 새 것으로 가져다주세요.”


“이봐요. 여기가 호텔인줄 알아요?”



전화기 저편의 여자는 버럭 버럭했다.



‘열 받았나봐. 소리까지 지를 것까지야. 하지만 꼬리 내릴 내가 아니라구.’



“저기 잘 모르시나 본데요. 제가 굉장히 중요한 손님이에요. 오자마자 월청 도사님 뵌 것 보면 몰라요? 나중에 혼나지 마시고 꼭 갖다 주세요.”


“알았어요.”



상대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칫솔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 화까지 내다니. 월청의 신경질에 시달리다가 성격까지 버린 모양이네. 그럼 나는 텔레비전이나 보며 밥을 기다릴까나.’



불행히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렇게 리모콘으로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며 30분이 지나갔다.


밥은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멋지게 차리려고 이리 시간이 걸린단 말인가? 화가 나서 고의로 늦게 가지고 오는 것 아니야. 아까의 싸가지로는 불가능한 일 같지 않은데.’



배고픔으로 텔레비전에는 더 이상 집중 곤란하였다.


다시 전화를 들었다.



“저기요 아까 밥 달라고 한 사람인데요. 밥 언제와요?”


“금방 가요.”


“아까도 곧 가지고 올라온다고 했잖아요. 금방이라면서 30분이나 지났다구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야! 잡혀온 주제에 주는 대로 먹어. 여기가 중국집이냐? 재촉 전화하게.”



세게 나왔다.



“진짜 금방 오는 거죠?”


“알았다구.”



‘아니 건방지게 전화를 끊어. 이따가 두고 보자.’



그렇게 또 5분이 흘렀다.


배고픔에 생각나는 것은 숏다리와 이모가 차려주던 밥상이었다.



[숏숏숏 숏다리 아작아작 숏숏숏

숏다리는 딱딱해 내다리도 딱딱해]



숏다리 송으로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이모가 차려준 밥도 한톨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모 음식 솜씨가 안 좋다고 구박한 것 때문에 벌 받나봐.’



이모가 보고 싶었다.



‘지금쯤 내가 없어진 것을 수암에게 듣고 걱정하고 있겠지.’



그제서야 내가 잡혀왔다는 것, 내 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잘 해주었던 친구들과 수련생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조금 나오려고 폼을 잡았다.


감정이 북받쳐올라 침대에 몸을 던져 울어 보려고 했다.


그래도 명색이 납치인데 눈물은 조금 흘려줘야 나중에 할 말도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눈물은 내맘대로 나와 주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었다.


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곧 문이 열렸다.


월산이었다.



“울고 있었니?”



‘아싸. 우는 것처럼 보이나봐. 나중에 소문 좀 내달라구.’



사실 운 것도 아닌데 월청은 굉장히 측은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여전히 짝다리를 짚은 채.



“밥 먹어야지. 그냥 방에서 먹어도 되지?”



꼴에 한 나긋나긋 하네.



“네.”



그렇다면 나도 다소곳하게 대답 한번 해주어야지.



“가지고 들어오세요.”



월산의 말에 내 몸만한 상을 가정부로 보였던 아주머니와 내 전화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애 한명이 들고 들어왔다.



‘와, 대단한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이었다.



‘진짜 한상 차렸군.’



마치 한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집이 넓던데 한식당을 부업으로 하는 건가?



“저리 비키세요.”



싸가지 여자는 시비를 걸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오직 밥상에 차려진 음식뿐이었다.


수암의 집에선 반찬 가지 수는 많아도 온통 풀밭이었는데 육식과 채식이 골고루 섞인 상차림에 나는 수저를 들기 전부터 침을 꼴깍 삼켰다.


장조림, 숙주나물, 파래무침, 들기름에 재어 놓은 듯한 김, 나막김치, 배추김치, 열무김치, 호박전과 생선전, 보기 좋은 빨간 빛깔의 오징어무침, 산적에 오징어 젓갈, 명란젓, 굴비 비슷하게 생선, 감자 조림, 풋고추 멸치 조림, 마늘쫑, 연근 조림, 콩자반, 오징어 채 볶음, 양념된 깻잎, 도라지와 오이 무침, 마지막으로 국은 미역국, 탕은 꽃게탕이었다.



‘매일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인가. 그런데 월산은 왜 발육부진일까?’



나의 발육부진은 이모의 음식 솜씨를 보면 다들 이해를 하는 편이었다.



“너한테 잘못도 없는데 미안하구나. 많이 먹으렴.”



‘진짜 미안한 모양이네. 저렇게 정색하며 사과까지 할 줄은 몰랐는걸.’



“네. 들어가세요.”



나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였다.


나에게 화가 난 듯한 여자와 아줌마는 이미 나간 후였고 월산도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슬로우 모션 동작으로 방밖으로 나갔다.


어쩜 배고픔에 월산의 행동이 느리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나가고서야 겨우 숟가락을 들었다.


맛도 감격 그 자체.



‘어머나나야. 무지하게 맛나구나. 날 걱정하는 사람들을 두고 혼자 맛있게 밥 먹는 것이 좀 미안한걸. 아니야. 밥까지 부실하게 먹었다고 하면 아마 더욱 속상해 할거야.’



더욱 속력을 내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보니 잠이 또 쏟아졌다.



‘이거 베개가 너무 높잖아. 저 밥상도 치워야 할 것 같구.’



전화기를 들어 0번을 눌렀다.



“저 다 밥 다 먹었는데요.”


“그런데?”



말이 짧아졌다.



“치워주세야죠. 방안에 음식 냄새가 가득해요.”


“알았어. 금방 올라갈게.”



“아까 말한 칫솔이랑 수건은 왜 안주셨어요? 그리고 여기는 낮은 베개 없나요? 베개가 너무 높아서 잠자기가 힘들 것 같아요. 음식 치워주실 때 좀 갖다 주세요. 그리고 커피는 있겠죠? 기왕이면 냉커피로...”



뚝.



‘끊어 버렸네. 한 성깔 하나본데.’



곧 밥상이 나가고 여자애는 베개, 칫솔, 수건을 가지고 다시 들어왔다.



“야, 여기.”



싸가지는 침대 맡에 가지고 온 물건들을 던져 놓았다.




 

죄송해요. 또 조금 아팠답니다.

그전에는 독자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수다를 새벽 4시까지 떨었습니다.

봄인줄 알고 나갔는데 아직 겨울이더군요.

에휴~ 많이 추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