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향한 짝사랑을 그만두려고해요.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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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올해 서른이 된 누군가의 딸입니다.
방탈 죄송합니다.
아주 긴 글이 될 것 같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으로 속이 너무 갑갑해서, 공감이나 먼저 제 길을 걸어간 분들의 경험담을 듣고 싶어 여기 이렇게 털어놓아 보아요.

저는 장녀로 태어나 아래로 두 살 차이나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은 아직 취준생이고 저는 몇 년 전부터 프리랜서로 일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저는 얼마 전 독립을 했습니다. 독립하려 한 건 아니고, 어머니와 싸워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참 웃깁니다.
프리랜서가 되어 일을 하기 시작하며 살이 20킬로가 넘게 쪘습니다. 

한 평생 마른 몸으로 살다가 살이 쪄서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일에 전념하느라 몸에 신경 쓰지 못 했고, 사실 십 여 킬로가 쪘을 때까진 살이 좀 쪄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평생 빈혈이 심하고 약한 체력에 고생했는데 그런 점이 사라져 좋았거든요.

뒤늦게 살이 지나치게 찐 걸 알았을 때에도 일이 바빠 신경을 쓰지 못 했어요. 

나름대로 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을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느라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습니다. 사실 일에 전념하느라 몸에 신경 쓸 정신이 전혀 없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모님께선 제게 자극을 주겠다며 모진 말을 하셨죠. 

‘난 뚱뚱한 딸 싫다, 덩치 봐라, 떡대다, 어우 그 살 어쩔거야, 그만 좀 먹어라,’ 

‘이게 다 너 위해서 너 살빼라고 자극주려고 하는 말이지, 있는 그대로 말한 것도 잘못이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게 상처면 살을 빼.’ ‘부모가 돼서 이런 말도 못 하냐, 그럼 부모가 자식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냐.’

제발 이런 상처가 되는 말을 그만하라고 울기도 하고 진지하게 얘기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살이 찌던 초반 난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을 했던 걸 이유로 신경 안 쓴다면서 왜 이제와 그러냐는 핀잔만 들었네요. 

이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 눈치를 보며 먹게 되거나 방 안에 음식을 숨겨두고 먹고, 몇 번은 먹고 토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스스로 통제해서 벗어났는데 꽤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제 나름 큰 계약을 따내서 두 달 동안 1회 5만원 씩 120만원 치 pt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돈을 많이 벌지도 못 하고, 벌면 얼마나 번다고 네 형편이 말이 되냐. 차라리 산을 타고 아파트 헬스장을 가라, 자리도 못 잡은 신인에 나이에 비해 모은 돈도 없는데 받는 족족 다 쓰려하냐.’

제가 십대 후반부터 20대 중후반을 우울증으로 허비한 탓에 모은 돈이 적긴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저녁 닭가슴살을 데우는 제 옆에서 저녁 준비를 하겠노라고 야채를 꺼내다가 그러셨습니다.

‘돈을 쳐발라서 살을 빼려한다. 야채나 먹고 산이나 타면 될 걸.’‘자극이랑 공격의 차이가 뭔데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하나. 부모가 아니면 누가 그런 말 해준대.진득하기 뭘 한 적이 있냐. 식이를 해야지 돈을 둘러 박아서 살뺴려하냐. 헬스 한 달도 못 다니면서 니가 무슨 피티냐.’

정작 동생은 살을 빼겠다고 닭가슴살을 먹을 때 그 돈을 지원해준 건 어머니셨습니다. 저는 제 돈으로 닭가슴살을 샀고요. 

(그리고 자취하는 동생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제가 산 닭가슴살을 동생에게 넘겨준 것도 어머니입니다. 제게 돈 몇 푼을 주고 건네주던데, 돈을 떠나 그 태도에 참 서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헬스를 한 달도 못 다니니 pt를 받고자 한 건데... 너무 화가 나고 그 날 정신없이 싸워서 더 무슨 말을 들었고 제가 무슨 말을 했는 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돈이 든다고 pt를 받지 말라 할 거면 모멸감이나 주지 말든가. 그런 와중에도 가정 내에서 숱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인지 저 자신이 헛돈을 쓰나 싶어 한심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pt를 받으려 한 거였는데, 내 건강은 조금 미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아무튼 그 날 화를 내다가 무언가 안에서 펑 터져서 바로 짐을 싸고 집을 나왔습니다. 어머니께선 뒤늦게 저를 말리며 300에 월 15짜리 방이라도 구해줄테니 그 때 나가라하셨는데 (여기가 지방이라 그런 방을 가끔 구할 수 있긴 합니다만...) 집에 있는 상상을 하면 내가 뜨거운 물 속에서 익어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병들어 죽어가는게 상상되고 그 갑갑한 상황에 힘들어하는게 뻔히 보여 무작정 나와 친구 집으로 왔습니다.

사실 집을 나온 이틀간은 죄책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대못을 박으며 나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이렇게까지 해서 나와야하나, 좀 더 참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은 그렇게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저 사이의 정서적 유착이 심해서 이런 식으로 강제로 뜯어내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집을 나왔으면 어머니의 그늘 아래 살았을 것 같거든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어머니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집에 들어올거냐, 엄마 이제 벙어리로 살게. 너한테 아무 말도 안 할게.’ 모진 말을 한 건 어머니인데 제가 예민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교묘하게 죄책감을 심어줘서 화가 났지만 참고 연락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 엊그제 일이 터졌습니다.

투 룸에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돈을 내고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집이 무척 더운데 비해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저는 동생과 달리 보증금을 받지도, 집에서 정말 1원도 받지 않고 나와서 넌지시 에어컨을 사줄 수 있겠냐했고(가구를 사고 이래저래 돈을 쓰느라 지갑이 텅 빈 것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겠노라 하셨는데, 집 주인이 벽을 뚫으면 나갈 때 복구해놓고 가라고 해서 무산되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없이 살아. 근데 집 나가면 고생이고 하니까 너 안도와주는게 맞는데 자식에 대한 마음으로 에어컨 구해주려 한 거다. 이참에 고생도 해보고 경험 쌓아.”

이 말에 제 안에서 마지노선에 있던 무언가가 툭하고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자취 중인 동생은 처음 3달만 자취방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했는데 3달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방세와 식료품 비를 지원해주시고 있습니다. 물론 취준생이란 차이가 있지만, 자잘한 생필품 하나까지 다 사주면서, 올 폭염에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을 하는 제겐 저런 말을 하는게... 상처를 넘어서서 그냥 제 안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 같았거든요.

나간 것 자체가 너가 나간 탓이라며 책임전가를 하는 뉘앙스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심장이 안 좋으셔서 화를 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전화가 끊겼는데... 왜 나는 딸이란 이유로 은연중에 차별받는 갈까 싶어서 정말 너무 서럽고 억울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을 함부로 하시는 분이긴 합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며 자리를 잡으려 아등바등 하는 제게 ‘네가 뭘 할 줄아냐, 벌면 얼마나 버냐.’는 등의 말을 하시기도 했고, 평소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어머니 말 수위가 쎄고 자식차별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이곳이 경상도라 그럴까요, 아니면 부모님의 가치관 때문일까요.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듯 들은 말이 있습니다. ‘너가 누나고 여자니까.’

고3 때 학업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어서 원래 안 좋은 위장이 고장이 나, 거의 일 년 가까이 밥도 못 먹고 지냈습니다. 물론 제가 아무것도 못 먹으니 샐러드를 해주시긴 했지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제발 약 한 첩만 해달라, 영양제라도 사 달라 몇 번이고 부탁했습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된 그 부탁은 동생이 고3이 되자마자 홍삼 액기스를 가족끼리 하나씩 사서 먹는 모습으로 완전히 무시당했죠.

돈이 없다 노래를 부르셔서 인강만 듣다가 고3때 한계와 위기감을 느껴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돈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고1이던 동생은 월 50 전후의 저희 형편에선 큰 돈이 나가는 과외를 받고 있었죠. 

저는 제가 성적이 나빠서, 동생은 공부를 잘 해서 부모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대학생 때 내내 알바해서 돈 벌어오란 말을 들었습니다. 귀에 딱지가 앉고 어머니가 제 방 문을 열기만 하면 또 그 소리 하겠다 싶더 속이 철렁할 정도로요. 

백화점에서 갖은 건강식품을 팔고, 마트에선 옷을, 빵집, 화장품 가게, 사촌동생 과외 등 별의 별 일을 다 했습니다. 저는 그 비용을 대학교 학기 중 제 용돈과 생활비로 썼고요. 

대학생 때 돈 없으니 절대 자취는 못 시켜준다 못을 박으셔서 4년 내내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음식은 알아서 사먹어야하는 곳이라 돈이 부족할 땐 내내 컵라면만 먹으면서 지냈네요.

반면 동생은 저보다 더 가까운 지거국으로 갔는데도, 기숙사에 떨어지자 얼마간 하숙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동생은 딱 한 번 한 달 즈음 백화점에서 일한게 전부네요.

동생은 성격이 깐깐해서 알바를 못 한다는 어머니의 변명에도 속에 올라오는 말을 침묵했습니다. 어려서 교우관계에 큰 상처를 받아 저는 사회공포증이 있었는데도 갖은 알바를 다 했는데... 딸은 세상이 무섭다는 그 미칠 듯한 공포를 감당해도 됐던 걸까요?(지금은 괜찮습니다. 몇 년 저부터 꾸준한 상담과 병원치료를 받았거든요.)

제가 23살 땐 7살 쯤 차이나는 남자와 선을 봐서 결혼하란 말을 들었습니다. 어찌나 닦달을 하는지 군대에 가 있던 동생에게 토로했더니 동생이 군대에서 전화를 해 어머니께 뭐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이고 결혼하란 권유를 했는데, 제가 친구들 엄마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소리를 한다고 화를 내니 점차 줄어들더라고요.

약 일 년 전엔, 가지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값 싼 아파트 두 채를 살 건데 동생은 아파트 물려줄거고 넌 오피스텔 가지고 있는 거 줄 테니 그렇게 알라더군요.재산이야 두 분 노후니 받을 생각도 없었는데, 말의 본질이 결국 동생은 남자이니 떡 하나 더 준다는 뉘앙스라 반발했습니다만, 그럼 너가 아파트 하든지라며 본질을 이해하지 못 하시더군요.


‘너가 누나고 여자니까.’


이 말이 저에겐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숱한 공포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나란 이유로 양보하고 희생하는게 너무 당연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여자고 맏이란 이유로 명절날 자잘한 일을 도와와서, 평생 시댁에서 산더미같은 설거지를 반복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삶을 살게 될까봐 너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집안일을 배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 볶음밥을 만들고 카레를 만들자 당연하단 듯 누나니까 동생 밥을 챙겨주라 떠넘기길래, 갖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집에선 설거지를 안 하려하고 밥 짓는 법을 배워놓고도 번번이 까먹어버렸네요.

그런데 자취를 하니까 음식을 하는 것도, 설거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엔 그 모든 게 평생 노동하는 여자가 되는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여기선 제가 저 자신을 챙기게 되는 거더군요.

남녀차별 뿐만 아니라 많은 가스라이팅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떠한 일에 상처를 받거나 마음이 상하면 공감대신 

‘너가 약해서 그래, 그 정도로 상처받아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갈래, 너는 그게 문제다,’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넌 뭘 모른다. 세상을 너무 몰라.’‘넌 너무 약하다. 사람은 좀 닳히고 힘들어봐야한다.’

라며 저를 펌훼했는데, 집을 나오고야 알았습니다. 저는 결코 약하지 않으며 오히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임을요.

집을 나온 첫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제 머리 자를 수 있겠다.

짧은 머리가 안 어울린다며 넌 긴 머리를 해야 한다, 왜 그런 머리를 하냐 등 갖은 소리를 다 하며 통제하려고 해서, 머리 자르는 한 푼이 아깝다며 더 길러라 하셔서 (정작 동생은 머리 잘만 자르고 다닙니다.) 자르지 못 한 머리를 싹둑 자르는데 너무 홀가분하고 기뻤습니다.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데도 마냥 좋더라고요. 

어머니는 늘 그래왔습니다.당신의 희생을 제게도 강요하고,당신의 통제 하에 있을 것을 요구했어요.

우울증이 너무 심한데도 종교로 치료하라며 십 년을 고생시켰고,생리불순으로 병원에 가면 간단한 것을 여자애는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며 약 한 번이면 치료될 걸 십 년을 괴롭혔습니다.그런 어머니께 반항하지 못 한 저도 바보 같네요.

이제는 어머니께 독립하고, 어머니의 말 잘 듣는 딸이 되어 사랑받고자 하는 걸 포기하려합니다.
딸은 평생 엄마를 짝사랑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덜 아픈 손가락이었고 딸인 동시에 함부로 대해도 되는 무언가였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엄마를 향한 짝사랑을 그만두려합니다.
그 짝사랑을 제게 퍼부어서, 저와 연애하고 지내려고 해요.
그래서 그간 제게 소홀했던 걸 채워나가고,
저 자신을 바로 세우고,
제 자아를 키워주려고 합니다.
그 시작이 서러움에 있다는게 안타깝지만 이젠 스스로를 돌봐주려고요.


그럼에도 부모님, 특히 엄마를 향한 무력감과 서러움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네요.
저와 같은 길을 가시는 분들이 계시면 함께 힘을 내면 좋겠어요.
긴 글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