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원목사 - 기독교세력의 반사회주의적 성격은 이미 1,920년대부터 형성되었다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이 항일민족운동의 표면에 대두되면서 민족운동은 새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하고 농촌봉사와 계몽운동으로 변화되었다 결국 1,938년에서 1,940년 사이에 대부분의 기독교교단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일본기독교교단에 통합되어 “조선기독교 연합회”를 창설하므로써 일본제국주의에 완전히 굴복했다
3-1 북한지역의 기독교 수용과 발전 - 주로 중국이나 만주로부터 전래된 북한지역의 기독교는 남한지역에 비해 상당히 앞서 수용되었다 외국인선교사가 1,884년 공식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북한지역에서는 만주지역애서 활동하던 선교사들과 한국인 개종파들의 활동으로 한국어성경이 번역되어 유입되었으며 1,880년대에는 한국인들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기까지 이르렀다 북한지역의 기독교수용은 중국, 만주와 접경을 형성했던 지리적여건이 컸다 역사적으로 중앙으로부터 소외와 차별받는 지역으로 따라서 북한지역의 기독교전파는 결코 선교사에 의한 일방적 전달과정은 아니였다
다만 북한지역에 형성되어있던 기운은 북한지역이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근거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수용기에 북한지역이 가졌던 변혁에서 기독교는 북한지역에서 발전된 과정은 반봉건의 선도자로 때로는 항일민족운동의 견인역할로 담당했다 북한지역기독교의 민족운동은 남한지역기독교의 운동에 비해 적극적이고 행동적이었다 1,92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통치방식변화와 함께 북한지역기독교는 전치운동보다 경제운동 및 사회운동에 치중했다 기독교의 한일투쟁은 간접적 개량적 방법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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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방 후 북한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립 - 특히 계급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북한의 공산주의자들과 치열하게 대결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월남기독교인들이 해방직후부터 남한교회로 쇄도함에 따라 남한기독교의 반공주의는 더욱 “절박한 현실성”을 가졌다 대부분 북한에서 반공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월남 신자들은 반공우익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다 주로 중국이나 만주로부터 전래된 북한지역의 기독교는 남한지역에 비해 상당히 앞서서 수용되었다 따라서 북한지역의 기독교전파는 선교사에 의한 일반적 전달과정은 아니었다 기독교 수용기에 북한지역이 가졌던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 강력한 봉건의식으로 나타난다 기독교가 북한지역의 발전과정에서 때로는 반봉건의 선도자로 때로는 항일민족운동의 견인자로 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북한지역기독교의 민족운동은 남한지역기독교의 운동에 비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행동적이었다
그러나 1,92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통치방식변화와 함께 북한지역기독교는 직접적인 정치운동보다는 경제운동 및 사회운동에 치중하게 된다 개신교는 북한에서 공산주의세력이 정치적 영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립된 세력중의 하나였다 특별히 개신교는 북한에서 지식층이 집결된 곳이다 따라서 당시의 개신교는 단순한 수치이상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잠재력을 가진 집단이다 이로 인해 북한공산주의세력에 있어서 정치에 대한 비중이 컸다 해방 후 북한에서 기독교세력이 공산주의정권과 갈등구조를 형성했던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기독교세력이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목의식이다 공산주의세력에 대하여 기독교는 원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②1,946년 토지개혁을 필두로 하여 시행된 개혁조치들이 반감이다 조선 민주당과 2개의 기독교정당이 모두 서북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들로 대표되는 기독교정치운동이 “소 부로주아 적” 성격을 보였다
3-3 북한 기독교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지입장에 있었다
해방 후 북한기독교는 남한에 대한 지지입장을 공고히 견지하였다 7
3-4 공산주의정권에 의한 종교적 박해 -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종교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자유의 침해는 기독교인들의 대응과 맞물려 폭력적으로 정개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북한 기독교세력의 역할을 더욱 촉진했던 중요한 요인으로 월남한 기독교인들이다
1,946년과 47년을 거치면서 지도급인사들을 포함한 수많은 기독교신자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빠져나왔다 이들의 월남은 공산주의 정권과그들의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월남기독교인들의 중심에 한경직 목사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월남기독교인들이 남한의 보수우익정치노선에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기독교와 공산주의
한경원목사 - 기독교세력의 반사회주의적 성격은 이미 1,920년대부터 형성되었다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이 항일민족운동의 표면에 대두되면서 민족운동은 새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하고 농촌봉사와 계몽운동으로 변화되었다 결국 1,938년에서 1,940년 사이에 대부분의 기독교교단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일본기독교교단에 통합되어 “조선기독교 연합회”를 창설하므로써 일본제국주의에 완전히 굴복했다
3-1 북한지역의 기독교 수용과 발전 - 주로 중국이나 만주로부터 전래된 북한지역의 기독교는 남한지역에 비해 상당히 앞서 수용되었다 외국인선교사가 1,884년 공식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북한지역에서는 만주지역애서 활동하던 선교사들과 한국인 개종파들의 활동으로 한국어성경이 번역되어 유입되었으며 1,880년대에는 한국인들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기까지 이르렀다 북한지역의 기독교수용은 중국, 만주와 접경을 형성했던 지리적여건이 컸다 역사적으로 중앙으로부터 소외와 차별받는 지역으로 따라서 북한지역의 기독교전파는 결코 선교사에 의한 일방적 전달과정은 아니였다
다만 북한지역에 형성되어있던 기운은 북한지역이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근거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수용기에 북한지역이 가졌던 변혁에서 기독교는 북한지역에서 발전된 과정은 반봉건의 선도자로 때로는 항일민족운동의 견인역할로 담당했다 북한지역기독교의 민족운동은 남한지역기독교의 운동에 비해 적극적이고 행동적이었다 1,92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통치방식변화와 함께 북한지역기독교는 전치운동보다 경제운동 및 사회운동에 치중했다 기독교의 한일투쟁은 간접적 개량적 방법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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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방 후 북한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립 - 특히 계급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북한의 공산주의자들과 치열하게 대결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월남기독교인들이 해방직후부터 남한교회로 쇄도함에 따라 남한기독교의 반공주의는 더욱 “절박한 현실성”을 가졌다 대부분 북한에서 반공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월남 신자들은 반공우익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다 주로 중국이나 만주로부터 전래된 북한지역의 기독교는 남한지역에 비해 상당히 앞서서 수용되었다 따라서 북한지역의 기독교전파는 선교사에 의한 일반적 전달과정은 아니었다 기독교 수용기에 북한지역이 가졌던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 강력한 봉건의식으로 나타난다 기독교가 북한지역의 발전과정에서 때로는 반봉건의 선도자로 때로는 항일민족운동의 견인자로 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북한지역기독교의 민족운동은 남한지역기독교의 운동에 비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행동적이었다
그러나 1,92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통치방식변화와 함께 북한지역기독교는 직접적인 정치운동보다는 경제운동 및 사회운동에 치중하게 된다 개신교는 북한에서 공산주의세력이 정치적 영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립된 세력중의 하나였다 특별히 개신교는 북한에서 지식층이 집결된 곳이다 따라서 당시의 개신교는 단순한 수치이상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잠재력을 가진 집단이다 이로 인해 북한공산주의세력에 있어서 정치에 대한 비중이 컸다 해방 후 북한에서 기독교세력이 공산주의정권과 갈등구조를 형성했던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기독교세력이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목의식이다 공산주의세력에 대하여 기독교는 원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②1,946년 토지개혁을 필두로 하여 시행된 개혁조치들이 반감이다 조선 민주당과 2개의 기독교정당이 모두 서북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들로 대표되는 기독교정치운동이 “소 부로주아 적” 성격을 보였다
3-3 북한 기독교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지입장에 있었다
해방 후 북한기독교는 남한에 대한 지지입장을 공고히 견지하였다 7
3-4 공산주의정권에 의한 종교적 박해 -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종교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자유의 침해는 기독교인들의 대응과 맞물려 폭력적으로 정개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북한 기독교세력의 역할을 더욱 촉진했던 중요한 요인으로 월남한 기독교인들이다
1,946년과 47년을 거치면서 지도급인사들을 포함한 수많은 기독교신자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빠져나왔다 이들의 월남은 공산주의 정권과그들의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월남기독교인들의 중심에 한경직 목사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월남기독교인들이 남한의 보수우익정치노선에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출처] 기독교와 공산주의|작성자 오직 감사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