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등대

은하철도 200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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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굶기며 거리로 내 모는 현실을 우리가 우러러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시는지요?  큰 마음 먹고 술도 한 잔 했습니다.  경제는 무엇인가요?  못 살아도 같이 못살자는 말이 아닌가요?  잘 살아도 같이 잘 살자는 말이 아닌가요?  국민사이에 높은 담벼락은 쳐 올라갑니다.  국민은 무한의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포기하여 눕고 싶을 적도 많습니다.  어제는 또 절망적인 뉴스를 보았습니다.  어느 가정주부가 굶어 죽을까봐 도둑질했습니다.  전에는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 배고파서 먹을 것을 훔쳤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갈 길이 어딘가요?  님들은 무엇하는 사람인가요?)

 

 

새와 등대



1.


철따라 떠나지 못한 새는 상처 난 날개만 펄럭거렸다.

굶주린 강변,

강물은 빙하의 모습으로 흘러

쨍쨍 바다로 향했다.


뜬 눈으로 눈 감은 새,

혹독한 겨울이 그 위에 내리고

겨울 뒤에 또 겨울이 찾아와

철따라 떠나지 못한 새는 날개를 편 채 얼어붙었다.


현란한 도시의 불빛 그림자,

때 묻은 실장갑 낀 손으로

새의 다리를 쥐고 둔덕을 오르는

청소부의 발길은 쩌벅쩌벅 얼음조각 위를 걸었다.


강변의 봄,

벚꽃 날리는 틈새로 연인의 웃음소리 들릴 때

새는 아직도 눈이 내린다고 말했다.

연인의 웃음소리는 굶주림의 울음이라고 했다.



2.


무인도에 서 있는 등대는

밤마다 깜빡이며

손짓하여 외로움을 호소했지만

배는 무심한 눈길로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선장은 등대를 찾았지만

그 곳으로 가는 법은 없었다.

철따라 오던 새도 보이지 않았다.

등대는 절대절명(絶代絶命)의 가혹함에 가슴을 쓸어안았다.


새의 발자취 끊긴 텅 빈 바위틈에

깊은 바람 스치는 소리,

깜짝 놀라 돌아본 등대는

동토에 갇힌 새의 운명을 직감했다.


적도의 태풍이 몰아치던 날,

등대는 눈 감았다.

선장은 서성거리며 불빛을 찾았지만

높은 파도에 몸을 던진 등대는 깜빡이는 빛에 지쳐버렸다.



3.


조간신문 귀퉁이에 중년남자가 자살한 기사가 났다.

나이는 45세로 추정, 이름은 모름,

지문을 조회하여 경찰이 그의 집을 찾았지만

주민등록상의 주소지는 산 17번지, 집도 없는 야산이었다.


"블랙러시안을 한 잔 더 드릴까요?"

새벽 두 시의 도시는 화려했다.

끊임없는 음악소리에 다리를 흔들거리며

나는 스탠드빠의 카운터에 매달려 있었다.


계절은 순서대로 오지만 않는다.

빙하기에 빙하기가 이어지듯,

겹쳐 떨어지는 혹독한 동토의 계절에

새는 눈을 뜬 채로 눈 감았다.


등대가 스스로 몸을 눕혀 파도에 몸 던지듯

기다림의 야속함에 쉬고 싶을 적도 있다.

현란한 도시의 불빛이 눈시울을 스친다.

몽롱한 눈빛으로 잔을 내밀었다. "네. 한 잔 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