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 산자락에 더 높이 자란 우람한 아카시아나무에 까치 부부가 정답게 살고 있었지만 작년 여름 태풍 매미 때문에 졸지에 집을 잃고 수재민이 되었던 까치가 바로 그 나무 그 가지에 지난 1월 상순부터 집을 짓기 시작하드니 암수 한 쌍이 번갈아가며 잔디를 뜯어가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집짓기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모양이다.
진정한 수재민이었던 까치가 옛집자리를 잊지 않고 다시금 시작한 새집 짓기가 이제 공사를 끝내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달포가량 까치부부는 합심하여 열심히 나뭇가지를 물어다 날랐다. 집 짓는 솜씨를 살펴보니 천재적으로 타고났다. 나는 그들의 집짓기를 틈만 나면 즐겁게 관찰했다. 처음 나무 가지 몇 개로 얼기설기 어슬프게 엮어며 시작하드니 날이 갈수록 집의 완연한 형태가 들어났다. 까치집이 완성되고 집들이 초청장이라도 보내면 이웃에 사는 나는 당연히 성냥이라도 한 통 사들고 집들이 인사라도 가야지 하고 즐거운 고민을 한다.
보편적으로 까치는 이월에서 삼월사이에 집 짖기를 시작하지만 금년은 이상기온으로 겨울다운 매서움도 없었고 계절적으로는 겨울이지만 봄 같은 날씨가 계속되다보니 까치도 계절감각을 잃었나보다. 마당의 명자나무도 예전보다 빠르게 꽃망울을 올렸고 매화도 활짝 피진 않았지만 몇 송이는 보란 듯 피었다. 개나리는 겨우내 몇 번인가 피고 졌다.
까치는 예전부터 우리에게 친숙하고 상서로운 길조로 알려져 있기에 누구에게나 친근감이 가는 우리 텃새로 사랑받고 있는 새다. 까치가 관련된 기록 중에서 살펴 볼만한 것은 <삼국사기>의 석탈해 탄생담은 잘 알려진 기록 중의 하나다.
석탈해는 본시 다파나국에서 출생했는데, 그 나라는 왜국 동북 천리에 있다. 다파나국의 왕은 여국의 왕녀를 부인으로 삼았는데 임신한지 칠 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알을 버리라고 했다. 부인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과 보물을 싸서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궤가 처음에는 금관국 해변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괴이 여겨 취하지 않았다. 다시 진한의 아진포에 이르렀는데 그때가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 지 삼십구 년째가 되던 해였다.
해변에 사는 노파가 궤를 발견하고 해변으로 옮겨 열어보았다. 궤 속에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노파는 그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아이가 성장하니 키가 구 척이나 되고 풍신이 빼어났으며 지식이 남보다도 뛰어났다. 누가 말하기를 궤가 떠내려왔을 때 까치 한 마리가 울며 따라왔으니 까치 작자를 약해서 옛 석을 성으로 삼고, 궤를 풀고 나왔으니 이름을 탈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석탈해가 다파나국에서 진한 땅으로 흘러왔을 때 궤를 진한으로 인도한 새가 까치라고 한다. 또 삼국사기에는 흰 까치를 왕에게 바쳤다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이렇듯 까치는 좋은 일을 알려주는 길조의 새로 인식되어, 까치가 울면 그날 재수가 좋다라든가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소식이나 손님이 온다고 여겼다.
중국의 기록에는 ‘세 선녀가 있었는데 장백산(백두산)의 동녘 산상의 연못(천지)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 때 까치가 지저귀며 날아오더니 빨간 열매 하나를 한 선녀의 옷에 올려놓았다. 선녀는 빨간 열매를 먹고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자라서 청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내용의 신화가 실려 있다. 이렇듯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고귀한 신분의 왕과 연관된 신화에 까치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가 않은 새가 바로 까치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을 칠석이라고 한다.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 상봉의 기쁨에 눈물을 흘려 비가 온다는 풍속이 있다. 처녀 총각이 일 년에 한 번 만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러나 만나자 말자 이별을 해야 하니 얼마나 슬프기에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으니 칠석날이면 비가 오는가 한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다리를 놓아주는 새가 바로 까치다.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새들의 머리를 밟고 건너갔기 때문에 칠석 다음날 까치의 머리가 벗겨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민담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강서 덕흥리 고구려 무덤의 벽화를 보면 견우와 직녀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견우의 그림을 보면 한문으로 ‘끌 견’ 자 ‘소 우’ 자로 견우좌상이란 글이 보이고 직녀의 그림에는 직녀란 말은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버리고 좌상이란 글만 보이지만 어렵지 않게 직녀란 말을 우리는 추리해 낼 수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서 중국민담에서 차용된 이야기가 아니라 고구려에서 전래된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소박한 생각도 해 보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박물지>에 보면, ‘까치는 출입구를 태세(太歲)를 등지고 집을 짓는다’라고 했다. <회남자>에 보면, ‘까치는 내년에 바람이 많이 불 것을 알고 아래 가지에 집을 짓는다’라고 했다. 또, 연작(때까치)은 검붉은 빛으로서, 출작(出鵲)이라고도 하는데, 방언에는 이것을 당작(唐鵲)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명에도 까치이름이 흔하게 보인다. 언젠가 청양지방을 여행할 때 칠갑산과 장곡사를 거쳐 은산, 부여로 나오는 길에 까치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까치내는 유력한 잡지에 한국의 명수 백 곳에 소개된 깨끗하고 청담한 강줄기인지라 새로운 감회로 눈요기 하며 달려온 수려한 곳이었다. 언양의 작천정도 마찬가지로 까치 이름이 붙은 명승지이다.
까치를 길조로 여겼기 때문에 까치가 집에 둥지를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신까지 만들어졌다. 그 내용이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에 직접 경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읽어보면, ‘길흉이란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속칭 까치는 영화를 주고 흉금(해로운 새)은 재액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청파에 살 때 까치가 남쪽에 집을 짓고 난 후 처형의 사위가 급제 했다. 다시 집을 지었을 때 나는 사마시에 급제한 후 문과에 급제했다. 내가 홍양에 살 때 까치가 남쪽에 집을 지어 내가 가선에 올랐다. 명례방 남쪽 버드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었는데 일가가 무과에 합격했고, 이듬해에 가치가 집을 지었을 때는 계집종의 남편인 포수가 무과에 급제했다.
이러한 사례들 외에도 까치가 은혜를 갚는 보은의 이야기라든가, 무수히도 많은 까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래 하지만 모두가 익조로서 전래되는 상서로운 이야기들이다. 우리 집 이웃의 까치가 집짓기가 끝나가고 또한 우리 집 앞에 집을 지으니 내게도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덩달아 기분 좋은 나날이다. 오늘 아침에도 까치부부가 감나무 가지로 뽕나무로 이리 저리 날아다니며 분잡을 떨어대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한 곡의 아리아로 들려온다.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네발로 뛰는 동물이나 두발로 주행하는 사람이나 집을 짓고 새끼를 낳거나 알을 낳아서 키우고 기르며 살아가는 방법은 하늘 아래서는 모두가 똑 같다. 어찌 그들을 미물이라고 하찮게 여기랴.
낙엽을 걷어내니 상사화 푸른 촉수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고 쑥과 달래며 냉이도 다시금 마당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 밀고 있다. 명자나무꽃망울도 소록소록 붉은빛을 키워가고 매화 붉은 꽃망울도, 목련도 기세 좋게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하는 봄날의 풍경이다. 봄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디서 근사한 작호도(鵲虎圖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민화) 한 점이라도 구해 머리맡에 걸어두고 흥겹게 감상해야 하겠다.
신귀거래사 49 까치와 함께하는 봄노래
신귀거래사
49
까치와 함께하는 봄노래
우리 집 앞 산자락에 더 높이 자란 우람한 아카시아나무에 까치 부부가 정답게 살고 있었지만 작년 여름 태풍 매미 때문에 졸지에 집을 잃고 수재민이 되었던 까치가 바로 그 나무 그 가지에 지난 1월 상순부터 집을 짓기 시작하드니 암수 한 쌍이 번갈아가며 잔디를 뜯어가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집짓기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모양이다.
진정한 수재민이었던 까치가 옛집자리를 잊지 않고 다시금 시작한 새집 짓기가 이제 공사를 끝내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달포가량 까치부부는 합심하여 열심히 나뭇가지를 물어다 날랐다. 집 짓는 솜씨를 살펴보니 천재적으로 타고났다. 나는 그들의 집짓기를 틈만 나면 즐겁게 관찰했다. 처음 나무 가지 몇 개로 얼기설기 어슬프게 엮어며 시작하드니 날이 갈수록 집의 완연한 형태가 들어났다. 까치집이 완성되고 집들이 초청장이라도 보내면 이웃에 사는 나는 당연히 성냥이라도 한 통 사들고 집들이 인사라도 가야지 하고 즐거운 고민을 한다.
보편적으로 까치는 이월에서 삼월사이에 집 짖기를 시작하지만 금년은 이상기온으로 겨울다운 매서움도 없었고 계절적으로는 겨울이지만 봄 같은 날씨가 계속되다보니 까치도 계절감각을 잃었나보다. 마당의 명자나무도 예전보다 빠르게 꽃망울을 올렸고 매화도 활짝 피진 않았지만 몇 송이는 보란 듯 피었다. 개나리는 겨우내 몇 번인가 피고 졌다.
까치는 예전부터 우리에게 친숙하고 상서로운 길조로 알려져 있기에 누구에게나 친근감이 가는 우리 텃새로 사랑받고 있는 새다. 까치가 관련된 기록 중에서 살펴 볼만한 것은 <삼국사기>의 석탈해 탄생담은 잘 알려진 기록 중의 하나다.
석탈해는 본시 다파나국에서 출생했는데, 그 나라는 왜국 동북 천리에 있다. 다파나국의 왕은 여국의 왕녀를 부인으로 삼았는데 임신한지 칠 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알을 버리라고 했다. 부인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과 보물을 싸서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궤가 처음에는 금관국 해변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괴이 여겨 취하지 않았다. 다시 진한의 아진포에 이르렀는데 그때가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 지 삼십구 년째가 되던 해였다.
해변에 사는 노파가 궤를 발견하고 해변으로 옮겨 열어보았다. 궤 속에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노파는 그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아이가 성장하니 키가 구 척이나 되고 풍신이 빼어났으며 지식이 남보다도 뛰어났다. 누가 말하기를 궤가 떠내려왔을 때 까치 한 마리가 울며 따라왔으니 까치 작자를 약해서 옛 석을 성으로 삼고, 궤를 풀고 나왔으니 이름을 탈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석탈해가 다파나국에서 진한 땅으로 흘러왔을 때 궤를 진한으로 인도한 새가 까치라고 한다. 또 삼국사기에는 흰 까치를 왕에게 바쳤다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이렇듯 까치는 좋은 일을 알려주는 길조의 새로 인식되어, 까치가 울면 그날 재수가 좋다라든가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소식이나 손님이 온다고 여겼다.
중국의 기록에는 ‘세 선녀가 있었는데 장백산(백두산)의 동녘 산상의 연못(천지)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 때 까치가 지저귀며 날아오더니 빨간 열매 하나를 한 선녀의 옷에 올려놓았다. 선녀는 빨간 열매를 먹고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자라서 청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내용의 신화가 실려 있다. 이렇듯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고귀한 신분의 왕과 연관된 신화에 까치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가 않은 새가 바로 까치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을 칠석이라고 한다.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 상봉의 기쁨에 눈물을 흘려 비가 온다는 풍속이 있다. 처녀 총각이 일 년에 한 번 만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러나 만나자 말자 이별을 해야 하니 얼마나 슬프기에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으니 칠석날이면 비가 오는가 한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다리를 놓아주는 새가 바로 까치다.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새들의 머리를 밟고 건너갔기 때문에 칠석 다음날 까치의 머리가 벗겨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민담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강서 덕흥리 고구려 무덤의 벽화를 보면 견우와 직녀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견우의 그림을 보면 한문으로 ‘끌 견’ 자 ‘소 우’ 자로 견우좌상이란 글이 보이고 직녀의 그림에는 직녀란 말은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버리고 좌상이란 글만 보이지만 어렵지 않게 직녀란 말을 우리는 추리해 낼 수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서 중국민담에서 차용된 이야기가 아니라 고구려에서 전래된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소박한 생각도 해 보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박물지>에 보면, ‘까치는 출입구를 태세(太歲)를 등지고 집을 짓는다’라고 했다. <회남자>에 보면, ‘까치는 내년에 바람이 많이 불 것을 알고 아래 가지에 집을 짓는다’라고 했다. 또, 연작(때까치)은 검붉은 빛으로서, 출작(出鵲)이라고도 하는데, 방언에는 이것을 당작(唐鵲)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명에도 까치이름이 흔하게 보인다. 언젠가 청양지방을 여행할 때 칠갑산과 장곡사를 거쳐 은산, 부여로 나오는 길에 까치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까치내는 유력한 잡지에 한국의 명수 백 곳에 소개된 깨끗하고 청담한 강줄기인지라 새로운 감회로 눈요기 하며 달려온 수려한 곳이었다. 언양의 작천정도 마찬가지로 까치 이름이 붙은 명승지이다.
까치를 길조로 여겼기 때문에 까치가 집에 둥지를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신까지 만들어졌다. 그 내용이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에 직접 경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읽어보면, ‘길흉이란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속칭 까치는 영화를 주고 흉금(해로운 새)은 재액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청파에 살 때 까치가 남쪽에 집을 짓고 난 후 처형의 사위가 급제 했다. 다시 집을 지었을 때 나는 사마시에 급제한 후 문과에 급제했다. 내가 홍양에 살 때 까치가 남쪽에 집을 지어 내가 가선에 올랐다. 명례방 남쪽 버드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었는데 일가가 무과에 합격했고, 이듬해에 가치가 집을 지었을 때는 계집종의 남편인 포수가 무과에 급제했다.
이러한 사례들 외에도 까치가 은혜를 갚는 보은의 이야기라든가, 무수히도 많은 까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래 하지만 모두가 익조로서 전래되는 상서로운 이야기들이다. 우리 집 이웃의 까치가 집짓기가 끝나가고 또한 우리 집 앞에 집을 지으니 내게도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덩달아 기분 좋은 나날이다. 오늘 아침에도 까치부부가 감나무 가지로 뽕나무로 이리 저리 날아다니며 분잡을 떨어대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한 곡의 아리아로 들려온다.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네발로 뛰는 동물이나 두발로 주행하는 사람이나 집을 짓고 새끼를 낳거나 알을 낳아서 키우고 기르며 살아가는 방법은 하늘 아래서는 모두가 똑 같다. 어찌 그들을 미물이라고 하찮게 여기랴.
낙엽을 걷어내니 상사화 푸른 촉수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고 쑥과 달래며 냉이도 다시금 마당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 밀고 있다. 명자나무꽃망울도 소록소록 붉은빛을 키워가고 매화 붉은 꽃망울도, 목련도 기세 좋게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하는 봄날의 풍경이다. 봄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디서 근사한 작호도(鵲虎圖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민화) 한 점이라도 구해 머리맡에 걸어두고 흥겹게 감상해야 하겠다.
2004, 03, 01
김 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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