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권의 길, 제11화

윤맨200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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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頂)과 주()


지금까지 묵묵히 선배들의 수련담을 듣고 있던 기백은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재키의 이야기가 끝난 듯하자 본격적으로 자기의 주특기인 “끈덕지게물고늘어지며질문하여상대를뻗게만들기” 신공(神功)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풍 노사님, 저는 그때 추수대회하던 날, 어떻게 저를 그렇게 쉽게 제압하셨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뭐가 궁금하단 거지?”


“뭐가 뭔지 몰라서 뭘 여쭤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알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하하.” 일행은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풍 노사님께 당하면 무슨 수로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지.”


“기백, 자네도 추수를 많이 연습해보지 않았던가?”


“네. 많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른 무술과 어떻게 본질적으로 다른지 아직 감이 안 옵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왜 힘을 빼라고 하는지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사람들이 가장 오해를 많이 하고 체득을 못하는 부분이 바로 태극권의 송(?)이야. 자네가 내게 유도기술을 걸기 위해 접근했을 때 자네 중심이 안정되어 있었다고 보나? 아니, 지금 이 순간 혼자 일어서있는다고 해도 자네 중심이 안정될 거라고 생각하나?”


“유도기술을 걸기 위해 움직일 때는 워낙 빨리 움직여서 중심의 안정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중심이 안정돼 있지 않으면 몸은 쓰러지고 말겠지.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빨라도 고도로 예민하게 발달한 태극권사의 청경(聽勁; 상대 힘을 읽음)에는 반드시 그 허점이 탐지가 돼. 태극권 수련을 통해 기침단전(氣沈丹田)과 입신중정(立身中正??)을 이루면 마치 대지에 뿌리가 박힌 것처럼 안정감이 생기지. 여기에 자네 같은 사람이 기술을 걸려고 덤벼도 마치 거대한 고목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바로 튕겨나갈 수밖에 없어. 추수에서 피해야 할 두 가지 오류가 뭔지는 들어봤나?”


“정(頂)과 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정과 주는 추수의 가장 흔한 잘못이지. 정은 졸력을 써서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고, 주는 상대방과 접촉해있던 신체부위 - 주로 손이 되지 - 가 떨어지는 것이지.”


“정과 주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勁)을 써야 돼. 지금은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까지 경을 사용하지 않고 력(力; 선천적 힘)을 사용하고 있어. 경을 얻지 못했을 때는 힘을 쓰려고 하면 정이 생기고, 힘을 빼고자 하면 주가 생겨. 이율배반의 상황에 처하는 거지.”


“예컨대 자네가 맹렬한 기세로 내게 접근해왔지만 이미 자네는 거대한 ‘력’을 발동시킨 것이라서 ‘경’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소용이 없던 거야. 대나무를 부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겠지. 더 큰 굵기와 강도의 대나무를 가져와서 후려치는 것, 아니면 자그마하고 예리한 칼로 결을 따라 쪼개는 것. 경과 력이 만나면 마치 예리한 검을 만난 대나무가 결을 따라 쪼개져 나가듯 파죽지세로 허물어져버리지. 대나무가 아무리 굵고 튼튼하다고 해도 일단 결이 쪼개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대강 이해가 가는가?”


기백은 입이 벌어져서 거의 침이 흐르려 하고 있었다. 그간 들어보지 못했던 말, 그간 찾아 헤매던 말이었다. 무술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해가 가느냐구.”


“네? 아... 네.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