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편 엠제이 드마코 이야기27. 나는 졸업 후 몇 년간, 내 인생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이사업 저 사업을 전전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매달 새로운 사업은 실패와 함께 빚도 늘어가기만 했다.시간은 점점 흘렀고 돈을 벌기 위해 구시대적인 잡일을 하면서 내 자존심은 구겨져 갔다. 중국 음식점 종업원, 막노동, 피자 배달, 꽃 배달, 리무진 운전 안 한 일이 없을 정도였다.쥐꼬리만 한 돈과 거지 같은 일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나는 막노동꾼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26세에 우울증이 찾아왔다.다시 말해 나는 성공한 일이 거의 없었다.나는 이제 그만 침대를 벗어나려고 애썼다.그리고 매일 지나온 과거를 곱씹었다.28. 시카고의 어느 어둡고 추운 밤하루 종일 리무진을 운전하고 피곤에 지쳐 돌아 오는 길이었다.신발은 눈에 파묻혀 온통 축축했다.눈 내리는 소리뿐인 지독한 정적 속에서나는 내가 얼마나 겨울을 싫어하는지 새삼 느꼈다.'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내 인생은 결국 이런 거였어?'거부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이런 식으로는 하루도 더 살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29. 나는 바뀌기로 결심했다.변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주변 환경을 변화 시키기로 결심했다.그 즉시 나는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변하겠다는 결심은 나의 한심한 인생을 희망과 약간의 행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내 결심이란내 인생은 내 스스로가 통제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근데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은 어디지?'나는 내가 중요시하는 요소들을 고려하여 지도에서 5개의 도시를 골라 표시했다.바로 그다음 달에 나는 이사했다. 아니, 도피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29. 나는 직업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즉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수중에는 약 900달러만이 있었고 나는 바로 피닉스에 도착했다.나는 직업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비록 가난했고 경비시설도 없었지만 나는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내 인생을 통제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30. 내가 리무진 운전을 할 때 기회가 찾아왔다.리무진 손님 가운데 한 명이 뉴욕에 있는리무진 회사 중 괜찮은 회사를 알고 있는지 내게 물은 적이 있다.손님을 공항에 내려 주고 나서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만약 내가 시카고에 사는 사람인데 뉴욕에 있는 리무진이 필요하다면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었다30. 이 사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돈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 나는 돈도 직업도 믿는 구석도 없이 낯선 도시에 와 있었다.이 사업에 매달려야만 했다.31. 나는 공격적으로 웹사이트를 홍보했다.이메일을 보내고 고객 확보 전화를 돌리고 편지를 보냈다.검색 엔진 최적화 기술을 배웠다.책을 살 돈이 없어 매일같이 피닉스 도서관에 들러 인터넷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다.웹사이트를 개선하고 그래픽과 저작권에 대해 공부했다.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라면 무엇이든지 습득했다.그러던 어느 날.캔자스에 위치한 한 회사가 내 웹사이트를 극찬하며 자기네 회사의 웹사이트 디자인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해왔다.사례금 400달러나는 흥분했다. 24시간 만에 월세의 대부분을 마련한 것이었다.그리고 24시간 후에 뉴욕의 한 회사로부터 웹사이트를 제작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고이번에는 600달러를 받았고 이틀 만에 완성해 보였다.다음 달 월세도 번 것이다.빈털터리에서 시작하여 사흘 만에 1000달러를 벌고 나니 5000만 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된 듯했다.하지만 웹사이트 제작일은 일을 멈추면 수입 역시 없을 터였다.나는 돈을 받고 내 시간을 팔고 있었다.32. 겨울에 시카고 친구가 찾아왔다.그 친구는 내 서비스 이용자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전 세계에서 리무진 가격을 묻는 사람들이 매 분마다 나의 웹사이트로 몰려왔기 때문이다.받은 메일만 450개 편지함을 비우고 10분 뒤에 30개가 채워졌다.친구는 "야! 이 이메일을 다 돈으로 좀 바꿔봐"라고 말했다.어떻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바로 광고를 게시할 공간 대신 클릭하면 해당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리드 광고를 파는 것이었다.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실행에 옮겼다. 단기적으로 내 수입을 갉아먹으리라는 예상은 적중했다.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첫 달에 473달러를 벌었다.둘째 달에는 694달러를 벌었다.셋째 달에는 970, 1832 ,2314 ,3733성공이었다..33. 방문자 수가 늘수록...클레임도 늘었고 해결할 과제도 늘어났다.시스템은 고객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개선했다.며칠 만에, 혹은 몇 시간 만에 고객의 아이디어를 시스템으로 구현해 냈다.또 나는 몇 분 안에 늦어도 한 시간 안에 고객의 이메일에 응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나는 고객들로부터 믿음을 얻는 법을 배웠고,사업은 번창해갔다.새로 사귄 친구들이 술도 마시고 파티도 즐기며 노는 동안 나는 작은 아파트에 쭈그리고 앉아 코드를 짜고 있었다.일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힘겨워졌다. 40시간을 일한 주는 오히려 휴가에 가까웠다. 주당 60시간씩 일했다.나는 오늘이 목요일인지 토요일인지도 몰랐고, 그래도 상관없었다.진짜로 일에 푹 빠져들면 일이 아니라 놀이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나는 일이 아니라 열정에 쏟았다.36. 어느 순간 하루에 10시간이 아니라...1시간만 일하고 있었다.하루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번은 나흘간 앓아누웠지만, 그래도 돈은 들어왔다.바로 그때 나는 내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바로 추월차선이었다. 나는 스스로 살아 있는 돈이 열리는 나무가 된 것이다.
부의 추월차선 0편 (엠제이 드마코 이야기)
0. 편 엠제이 드마코 이야기
27. 나는 졸업 후 몇 년간, 내 인생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이사업 저 사업을 전전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매달 새로운 사업은 실패와 함께 빚도 늘어가기만 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돈을 벌기 위해 구시대적인 잡일을 하면서 내 자존심은 구겨져 갔다.
중국 음식점 종업원, 막노동, 피자 배달, 꽃 배달, 리무진 운전 안 한 일이 없을 정도였다.
쥐꼬리만 한 돈과 거지 같은 일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나는 막노동꾼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26세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다시 말해 나는 성공한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이제 그만 침대를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리고 매일 지나온 과거를 곱씹었다.
28. 시카고의 어느 어둡고 추운 밤
하루 종일 리무진을 운전하고 피곤에 지쳐 돌아 오는 길이었다.
신발은 눈에 파묻혀 온통 축축했다.
눈 내리는 소리뿐인 지독한 정적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겨울을 싫어하는지 새삼 느꼈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내 인생은 결국 이런 거였어?'
거부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이런 식으로는 하루도 더 살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29. 나는 바뀌기로 결심했다.
변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주변 환경을 변화 시키기로 결심했다.
그 즉시 나는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변하겠다는 결심은
나의 한심한 인생을 희망과 약간의 행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내 결심이란
내 인생은 내 스스로가 통제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근데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은 어디지?'
나는 내가 중요시하는 요소들을 고려하여 지도에서 5개의 도시를 골라 표시했다.
바로 그다음 달에 나는 이사했다. 아니, 도피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29. 나는 직업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즉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수중에는 약 900달러만이 있었고 나는 바로 피닉스에 도착했다.
나는 직업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비록 가난했고 경비시설도 없었지만
나는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내 인생을 통제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30. 내가 리무진 운전을 할 때 기회가 찾아왔다.
리무진 손님 가운데 한 명이 뉴욕에 있는
리무진 회사 중 괜찮은 회사를 알고 있는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손님을 공항에 내려 주고 나서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시카고에 사는 사람인데 뉴욕에 있는 리무진이 필요하다면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30. 이 사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돈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돈도 직업도 믿는 구석도 없이 낯선 도시에 와 있었다.
이 사업에 매달려야만 했다.
31. 나는 공격적으로 웹사이트를 홍보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고객 확보 전화를 돌리고 편지를 보냈다.
검색 엔진 최적화 기술을 배웠다.
책을 살 돈이 없어 매일같이 피닉스 도서관에 들러 인터넷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다.
웹사이트를 개선하고 그래픽과 저작권에 대해 공부했다.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라면 무엇이든지 습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캔자스에 위치한 한 회사가 내 웹사이트를 극찬하며
자기네 회사의 웹사이트 디자인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해왔다.
사례금 400달러
나는 흥분했다. 24시간 만에 월세의 대부분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리고 24시간 후에 뉴욕의 한 회사로부터 웹사이트를 제작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고
이번에는 600달러를 받았고 이틀 만에 완성해 보였다.
다음 달 월세도 번 것이다.
빈털터리에서 시작하여 사흘 만에 1000달러를 벌고 나니
5000만 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된 듯했다.
하지만
웹사이트 제작일은 일을 멈추면 수입 역시 없을 터였다.
나는 돈을 받고 내 시간을 팔고 있었다.
32. 겨울에 시카고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내 서비스 이용자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 세계에서 리무진 가격을 묻는 사람들이 매 분마다 나의 웹사이트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받은 메일만 450개 편지함을 비우고 10분 뒤에 30개가 채워졌다.
친구는 "야! 이 이메일을 다 돈으로 좀 바꿔봐"라고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바로 광고를 게시할 공간 대신 클릭하면 해당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리드 광고를 파는 것이었다.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실행에 옮겼다. 단기적으로 내 수입을 갉아먹으리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첫 달에 473달러를 벌었다.
둘째 달에는 694달러를 벌었다.
셋째 달에는 970, 1832 ,2314 ,3733
성공이었다..
33. 방문자 수가 늘수록...
클레임도 늘었고 해결할 과제도 늘어났다.
시스템은 고객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개선했다.
며칠 만에, 혹은 몇 시간 만에 고객의 아이디어를 시스템으로 구현해 냈다.
또 나는 몇 분 안에 늦어도 한 시간 안에 고객의 이메일에 응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는 고객들로부터 믿음을 얻는 법을 배웠고,
사업은 번창해갔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술도 마시고 파티도 즐기며 노는 동안 나는 작은 아파트에 쭈그리고 앉아 코드를 짜고 있었다.
일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힘겨워졌다. 40시간을 일한 주는 오히려 휴가에 가까웠다. 주당 60시간씩 일했다.
나는 오늘이 목요일인지 토요일인지도 몰랐고, 그래도 상관없었다.
진짜로 일에 푹 빠져들면 일이 아니라 놀이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나는 일이 아니라 열정에 쏟았다.
36. 어느 순간 하루에 10시간이 아니라...
1시간만 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번은 나흘간 앓아누웠지만, 그래도 돈은 들어왔다.
바로 그때 나는 내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바로 추월차선이었다. 나는 스스로 살아 있는 돈이 열리는 나무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