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시절의 어느 한적한 휴일, 형이 집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어서 사용할 컴퓨터가 없었던 저는 결국 도서관을 향해 갔습니다. 그 시기는 성에 대한 관심이 왕성해질 시기인데 이상하게도 저는 여장에 관한 욕구가 불타올라서 여장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접수했고 뭐부터 볼까 하다가 '스타킹'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게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이 나타나 말을 걸었고 저는 황급히 창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다음날 학교에 가니 이미 일진녀석이 학교 곳곳을 돌며 소문을 내려고 했으니까요. 그날이후로 저는 학교에서 변태로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후 그 일진녀석하고는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하필이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진의 절친과 같은반이 되면서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중학교 동창들과의 이별 후 전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코너로 몰려가고 있었으니 죽을 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간 편할날 없이 유야무야 보내다가 고등학교 졸업식날 교도소 석방과도 같은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후로 짓궂은 친구들의 장난은 다시는 없었으니까요.
그후 저를 못살게 굴었던 일진들도 철이 들어갈 쯤 저는 여장한단 고백은 못하겠고 어정쩡하게 호기심에 한 일이라고 털어놓았지만 다행히도 더이상 꼬투리를 잡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또 꼬투리를 잡는다면 저는 그때도 끝없는 터널을 달려야 할 테니까요.
그러다가 제가 저의 성적취향인 여장계열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커뮤니티활동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이전시대부터 동행인의 연락처 없이 지방출타를 못하도록 한 외할머니를 원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입장으로는 외할머니한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던 터라 결국 오프라인 모임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으니까요. 결국 저는 밴드에서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감을 극도로 드러낸 나머지 석 달 사이에 밴드를 7개나 강퇴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설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한 저는 당시 카카오톡에 멀티프로필 기능이 출시된 점을 이용해서 가족, 친척, 직장동료 등의 사람들에게는 멀티프로필을 적용하여 일반인인척 위장하고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기본프로필로 여장한 사진을 보게 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그 철부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의 정체를 주변에 소문내 주길 바랐지만 제 주변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도리어 싱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맹장수술을 받고 그러한 상황에서 오락을 위해 사귄 친구는 가족만큼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감을 정리하고 여장계열의 오프라인 모임에는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남자이지만 남자의 치마 패션이 대중에게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중학교 3학년시절 흑역사는 지금의 저를 알리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어느 한적한 휴일, 형이 집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어서 사용할 컴퓨터가 없었던 저는 결국 도서관을 향해 갔습니다. 그 시기는 성에 대한 관심이 왕성해질 시기인데 이상하게도 저는 여장에 관한 욕구가 불타올라서 여장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접수했고 뭐부터 볼까 하다가 '스타킹'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게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이 나타나 말을 걸었고 저는 황급히 창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다음날 학교에 가니 이미 일진녀석이 학교 곳곳을 돌며 소문을 내려고 했으니까요. 그날이후로 저는 학교에서 변태로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후 그 일진녀석하고는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하필이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진의 절친과 같은반이 되면서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중학교 동창들과의 이별 후 전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코너로 몰려가고 있었으니 죽을 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간 편할날 없이 유야무야 보내다가 고등학교 졸업식날 교도소 석방과도 같은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후로 짓궂은 친구들의 장난은 다시는 없었으니까요.
그후 저를 못살게 굴었던 일진들도 철이 들어갈 쯤 저는 여장한단 고백은 못하겠고 어정쩡하게 호기심에 한 일이라고 털어놓았지만 다행히도 더이상 꼬투리를 잡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또 꼬투리를 잡는다면 저는 그때도 끝없는 터널을 달려야 할 테니까요.
그러다가 제가 저의 성적취향인 여장계열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커뮤니티활동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이전시대부터 동행인의 연락처 없이 지방출타를 못하도록 한 외할머니를 원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입장으로는 외할머니한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던 터라 결국 오프라인 모임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으니까요. 결국 저는 밴드에서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감을 극도로 드러낸 나머지 석 달 사이에 밴드를 7개나 강퇴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설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한 저는 당시 카카오톡에 멀티프로필 기능이 출시된 점을 이용해서 가족, 친척, 직장동료 등의 사람들에게는 멀티프로필을 적용하여 일반인인척 위장하고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기본프로필로 여장한 사진을 보게 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그 철부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의 정체를 주변에 소문내 주길 바랐지만 제 주변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도리어 싱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맹장수술을 받고 그러한 상황에서 오락을 위해 사귄 친구는 가족만큼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감을 정리하고 여장계열의 오프라인 모임에는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남자이지만 남자의 치마 패션이 대중에게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