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1년 9월 21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윤진한202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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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풍요로운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1년 9월 21일은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중추절)입니다. 중추절((仲秋節)) 밤이 되면 십수억명의 전통적인 동아시아 유교도[중국,한국,베트남,몽고(그 중에서도 중국령인 내몽고), 그리고 2차대전후의 싱가포르.차이니스 타이페이 및 전세계 화교등 유교도들]들은 수천년 동안 달님(月神)을 향해 소원을 비는 기도를 행해왔습니다.

 

[1]. 고대 중국의 왕들이 음력 8월 15일에 달에게 제사지내던 내용은 두산백과의 중추절 설명에 잘 나타납니다.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추석(秋夕)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세계적으로는 중추절[仲秋節,中秋節]로 표기하면 쉽게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고, 중추절(中秋節)이라고도 한자로 표기하는데, 국어사전 식으로는 중추절(仲秋節)이고, 유교 경전에서도 중추(仲秋)를 사용하므로, 중추절(仲秋節)로 쓰면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中秋節)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는 조상에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면서(조상제사), 보름달에 소원도 비는(관습적으로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유교명절 추석의 전통적인 제천의식의 하나)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2]. 추석(중추절)에 대한 한국 백과사전이나 서적류의 설명.

 

 

1].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추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2].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팔월에 행하는 행사’라 해서 팔월절(八月節) 혹은 팔월회(八月會)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을 따 단원절(團圓節)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1). 달맞이는 유교에만 있는 고유 의식이므로, 그 성격에 충실하여 뒷동산등이나 보름달이 잘 보이는 장소에 올라 달맞이 하면 될것입니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를 필요는 없으며 불교가 결합된 일본 양력 추석(오봉)의 영향을 잘못 받은 사람도 있을것인데, 절등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는 창조주보다 부처가 더 높게 대우받는 존재이며, 無君無父의 금수라 배척받아와서 유교의 조상제사나 유교의 달맞이등을 불교시설이나 불교인등과 결부시켜서 행하면 않됩니다.   

 

3]. 삼국사기는 8월 15일(음력)의 추석과 관련하여 회소곡과 결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三國史記 卷 第一

新羅本紀 第一(儒理尼師今)

九年(西紀 三十二)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는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정구복 외 4인, 역주 삼국사기, 한국학중앙연구원

 

4].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종교학대사전의 설명.

 

추석(중추절)에 대해 종교학 대사전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추석은 『예기(禮記)』의 <춘조월 추석월(春朝月 秋夕月)>이란 기록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가배란 신라시대 경주지방의 방언이다. 망국(亡國)의 비애를 안고 사라진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삼한(三韓)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의 추석에 관해서는 그 기록의 멸실ㆍ미흡으로 상고(祥考)할 길이 없으나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고 햅쌀로 술ㆍ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마련하여 가묘(家廟)에 모신 조상 앞에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한다. 산소에 우거진 잡초는 추석 전날 베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성묘 때 베는 것도 무방한데 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또한 이 날은 술ㆍ송편ㆍ과일 등을 나누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논다.  * 출처:추석[秋夕]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 필자 주 2). 위의 서술에 동감합니다. ...추석이 중국ㆍ신라 등지에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고조선ㆍ부여ㆍ삼한ㆍ가야ㆍ고구려ㆍ백제ㆍ발해 등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지금은 신라의 가배일이야기만이 『사기(史記)』에 한 마디 전할 뿐이다.

 

 

5]. 추석(仲秋節,秋夕)에 대한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설명.


중추절

[ 仲秋節 ]

 

정의

중추(仲秋)는 가을 석 달 중에 중간 달을 의미하고 절(節)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를 이르는 말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일년 열두 달을 사계절로 나누어 1~3월을 춘(春), 4~6월을 하(夏), 7~9월을 추(秋), 10~12월을 동(冬)이라 하고, 각 계절에 속한 석 달을 나누어 첫 달을 초(初) 혹은 맹(孟), 두 번째 달을 중(仲), 마지막 달을 모(暮) 또는 만(晩), 계(季)라고 한다.

내용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추기(仲秋紀)」에 “중추의 달에 해는 각수(角宿)에 있으며, 저녁에는 견우[牽牛, 牛宿]가 남중하고 새벽에는 자휴[觜觿, 觜宿]가 남중한다.…… 거센 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오며 제비는 돌아가고 새들은 좋은 먹이를 갈무리한다(仲秋之月 日在角 昏牽牛中 旦觜觿中…… 盲風至 鴻雁來 玄鳥歸 群鳥養羞……).”라고 하였다.

 

.출처:중추절 [仲秋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3]. 유교 경전인 禮記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일신(日神) 및 추석의 月神 숭배등 제사를 살펴보고 역사적 과정을 알아봄.

 


1]. 유교 경전인 예기에 나오는 달에 제사하는 내용이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정월대보름과 중추절등에 달맞이등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天神, 地神,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등에 제사지내는 예기 제법(祭法)의 설명.

 

다음은 유교경전인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다 음 -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用騂犢  埋少牢於泰昭祭時也
祖迎於坎壇祭寒暑也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幽宗祭星也
雩宗祭水旱也  四坎壇祭四方也
山林川谷丘陵能出雲爲風雨見怪物皆曰神
...

 

나무를 단위에 쌓고 그 위에 옥(玉)과 생(牲)을 놓고서 함께 태워 그 기(氣)로 하여금 하늘에 이름게 함은, 천신(天神)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또 비단과 생을 단상에 파묻는것은 지신(地神)을 제사지내는 법인데, 이 때 그 생은 다 같이 성독(騂犢)을 쓴다. 소뢰를 태소에 파묻는것은 사철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감단에 송영(送迎)하는 것은 한서(寒暑)의 신을 제사지내는 법이다. 왕궁(王宮)에서는 해의 신을 제사지내고 야명(夜明)에서는 달의 신을 제사지내고 유영에서는 별의 신을 제사지내고 우영에서는 가뭄을 제사지내고

사감단에서는 사방의 신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산림.천곡.구릉으로서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바람을 이루며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이라고 한다...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위에서 유념해 둘 것은 유교의 전통적 다신교(多神敎) 측면입니다. 최고신인 天(太極과 연계된 天)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지신, 사철의 신, 한서(寒暑)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  가뭄의 신, 사방의 신, 조상신등을 숭배해 온 유교 제의가 수천년 전통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행할수 없던 여러가지 괴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두 신(사방의 신)으로 보았던 전통적 다신교적 유교의 신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유교입니다.   

 


. 필자 주 3). 위에서 日月神에 제사하던 祭法은 殷나라때 생겨서 후대에 天子제도로 확고한 정착이 되기 이전에 생긴 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써 놓은 한문 문장(禮記 祭法)으로 보면 그  당시는 殷나라 天子가 아닌 殷仁으로, 周人으로 제사하던 祭天儀式, 日月神 숭배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변형 유지되어 중국 일부지방이나 殷나라 왕족 箕子의 후손으로 언급되는 箕準王의 선조 및 부여(殷正月의 曆法으로 祭天儀式인 영고를 지냄), 삼한(상달제.시월제), 고구려(동맹), 예(무천), 백제의 교천, 신라의 日月神 제사, 고려의 제천의식등으로 이어졌겠지요. 天子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 고대 한국인들이 함부로 사당등을 지어 제사하는걸로 보여졌다면(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풍속에는 함부로 만든 사당이 많은바 라고 기록), 天子제도의 확고한 형성으로 天子의 제사와 諸侯의 제사, 士大夫 제사, 庶人의 제사를 구분하기 이전에 형성된 중국일부지방.한국일부지방의 풍속들이 그렇게 전승되니까 그 후에 생긴 天子부터 庶人까지의 제사법 구분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사당을 짓는다고 기록했겠지만 그 당시는 중국이 고대 한국을 제지하고 그러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원나라를 거치면서 국자감 개칭등 그런 天子國 주장이 강해졌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을 天子國으로 확실히 대우해 주면서 조선 초기에 제천의식이 폐지되고 고종때 부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 부조리할수도 있는(후세 사람이 보기에) 관습이 허용되어도 중국 天子와 海東天子(한국의 天子)는 급이 다릅니다.    


 

有虞氏禘黃帝而郊嚳  祖顓頊而宗堯

夏后氏亦禘黃帝而郊鯀  祖顓頊而宗禹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

 

燔柴於泰壇祭天也   瘞埋於泰折祭地也

...........

王宮祭日也   夜明祭月也

............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 필자 주 4). 위의 祭法관련 작자인 전금과 후세 학자의 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느 것이 결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이론이 많다고 예기 譯解者(권오돈/발행처 홍신문화사/2003.10.30 발행)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필자 주 5). 전금에 대한 설명. 중국 역대 인명사전(2010.1.20/이회문화사)에 의함.

 

展禽.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대부(大夫)를 지냈다. 성은 전(展)씨고, 이름은 획(獲)이며, 자는 금(禽)이다. 유하(柳下)는 식읍(食邑)의 이름이고, 혜(惠)는 시호다.

 

. 필자 주 6). 殷周때 생긴 천자제도로 사람들을 강제하기전 일반 백성이 日月星辰을 우러르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日月星辰 숭배 풍속이 天子제도 확립후 생긴 새로운 숭배풍속이라 하면 그 신분에 따라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하는게 옳겠습니다. 그러나 天子제도의 강제전에 확립된 관습으로 月神을 바라보며 단지 소원을 비는것에 대해서는 祭法에 어긋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달맞이 풍속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단지 달맞이라는 소원비는 의례로 달맞이 하는것은 그대로 전승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유교국 한국인들은 중단하지 말고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달맞이를 행해도 됩니다. 제천의식은 황사손이 별도로 하고 계시는데, 일반인들은 대보름과 추석때 달님에 소원비는 행사를 하는게 가장 옳고 일반적입니다.        

 

    

일월성신을 民(백성)이 우러러보는 禮記 제법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 출처: 신역(新譯) 예기(禮記), 譯解者(권오돈), 발행처:홍신문화사, 2003.10.30 발행

 

[4].  유교권 공통名節인 中秋節.仲秋節(秋夕)날은 가까운 뒷동산이나 언덕등에 올라 月神(달님)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며 달맞이를 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의 달맞이는 대보름 달맞이와 추석 달맞이가 대표적 의례행위입니다.

 

달맞이(추석)

 

정의 

 

 

추석날 저녁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내용

 

추석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름달을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뒷산이나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마당에서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며 달의 모양을 봐서 풍흉을 점친다. 중국 남송(南宋)시대 맹원로(孟元老)의 저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중추날 밤에는 대문을 장식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달맞이를 하는데 풍악소리가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3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 “8월 보름에 왕이 월성(月城) 산 위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시종관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겼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20년(1489) 8월조에 “옛 사람들이 추석에 달구경한 것이 어찌 황음(荒淫)하여 그러하였겠는가? 오늘 저녁에 경연 당상(經筵堂上)과 출직(出直)한 승지(承旨)·주서(注書)와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게 주악(酒樂)을 내려 청량(淸凉)한 곳을 가려서 태평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조재삼(趙在三)의 저서 『송남잡지(松南雜識)』 「세시류(歲時類)」 시월잉태조(視月孕胎條)에는 “쇄쇄록(瑣碎錄)에 이르기를, 날이 흐리거나 구름이 있어 추석 달이 보이지 않으면 토끼가 새끼를 배지 못하고 개구리가 알을 낳지 못하며 또 메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지역사례

 

추석날 달맞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달을 보고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게 되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아들이 없는 집의 사람이 먼저 달을 보도록 양보하기도 한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날 달이 잘 보여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여기며, 횃불과 짚을 준비하여 달이 떠오르면 짚에 불을 붙여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해안 지역에서는 달이 밝고 둥글면 가을 어장이 좋다고 여긴다. 부산 지역에서는 추석날 보름달이 희고 밝으면 이듬해 물이 흔해 풍년이 들고, 달이 붉으면 가물어서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달의 서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서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들고, 동쪽이 이지러져 있으면 동쪽에 있는 마을에 흉년이 든다고 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하며, 메밀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속신이 있다. 또 이날 높은 산에 올라가 달에 절을 하고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첫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의의

 

추석에 달맞이를 하는 행위는 달을 소생의 상징물 또는 생명력의 상징물로 여기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일년 중 가장 밝고 둥근 달이 뜨는 추석에 달맞이를 함으로써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내년 농사의 풍작과 못다 이룬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 출처: 달맞이(추석)(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추석 달맞이는 마당.누각에서 해도 月神(달님)은 소원을 빌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본인좋으라고 하는것이니까 온국민 모두 달맞이를 하면 좋겠습니다.

 

[5]. 추석(中秋節.仲秋節,秋夕)에 대한 베이징관광국의 설명.

 

중추제(中秋节,zhōng qiū jié,중추절) 소개

추석(中秋节중추절)은 음력으로 8월15일로, 한해의 중간쯤에 있어 중추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다.  추석은 중국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음력설 다음으로 중요한 명절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면 중국 사람들은 집에 모여앉아 월병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먹으면서 달구경을 한다. 월병은 소를 넣은 원형의 다과로서 모임을 상징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월병을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 중국의 추석, 중추절의 유래 

추석의 유래는 일반적으로 상아분월(嫦娥奔月)의 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아래는 그중 일반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서 대지를 아주 뜨겁게 불태우고 바닷물을 고갈시켜 백성들은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 이 일은 후예(后羿)라는 영웅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곤륜산(昆侖山) 정상에 올라가 신궁(神弓)으로 나머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제했다. 얼마 후 후예는 상아(嫦娥)라는 미인을 아내로 얻었다. 하루는 후예가 친구를 찾으러 곤륜산에 갔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서왕모(西王母)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후예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얻었다. 이 약은 복용하면 즉시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약이었다. 후예는 아내를 홀로 남겨둔채 승천할 수 없었기에 그 약을 아내 상아에게 잘 보관해두라고 주었다.

이 일을 뜻밖에도 후예의 식객이었던 봉몽(蓬蒙)이 알게 되었다. 봉몽은 후예가 외출한 틈을 타서 상아에게 그 불사약을 내어놓아라고 협박하였다. 상아는 봉몽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만 그 불사약을 입에 삼켜 버렸다. 상아는 그 약을 삼킨 후에 곧바로 몸이 땅에서 멀어지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상아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였든지 더 이상 날아 올라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떨어져 선녀가 되었다.

후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시녀들이 모든 사실을 울면서 말해줬다.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후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날밤은 달이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상아와 똑같이 생긴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후예는 급히 제상을 내어와 상아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과 과일을 그 위에 차려놓고 월궁(月宮)에 있는 상아에게 제사를 지냈다. 백성들도 상아가 신선이 되어 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 아래 제상을 차려서 상아에게 행복을 빌었다. 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중추절에 달에게 절하는 풍습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 추석의 전통 풍습

중국의 주요 추석행사로는 달구경, 월병먹기, 조수보기, 등불구경 등이 있다. 음력 8월 15일의 달은 여느 때보다도 맑고 둥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일명 월석, 팔월절이라고 한다. 이날 쟁반같이 둥근달을 보는 것은 추석의  빼놓을 수 풍습이다.  또 멀리 타향에서 고향 부모님과 친척에 대한 그리움을 달구경을 하면서 달래기도 한다.

 

중국의 고대기재에 따르면 추석때에는 석월(夕月)이라는 제월제도 있었는데 바로 달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주나라때에 와서는 추석밤이면 제월제를 지냈는데 제사상에는 월병수박, 사과, 붉은 대추, 배, 포도 등이 제물로 올랐다고 한다. 이중에서 특히 월병과 수박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제물이었다고 한다. 수박은 또 꼭 연꽃모양으로 쪼개놓아야 했다는 설도 있다.

달빛아래서 온 가족이 함께 촛불을 밝히고 일일이 달신에게 제를 지낸 후 가족의 주부는 월병을 썰었다고 하는데, 집에 있든지 타향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온 가족 성원의 숫자를 세어서 그 숫자대로 꼭 같게 월병을 썰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풍속이 이미 사라지고,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서 월병을 먹는 것으로 즐거운 명절의 한때를 보낸다.

 

또한 등불구경은 중국의 강남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습이다. 이곳에서는 추석을 십여일 앞두고 참대로 등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등불에 과일, 새나 짐승, 물고기나 벌레 등을 새기거나 중추절 축하메세지 같은 것을 새겨 넣는다. 등불의 색깔 또한 가지각색인데 추석밤이면 긴 참대에 등불을 걸어 집의 처마나 베란다에 걸어둔다. 때로는 작은 등불 여러개로 글자를 새기거나 각종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의 등불놀이에 이어 중추절의 등불놀이 또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출처: 베이징관광국 한글 공식사이트.2013-09-11

 

[6]. 유교 경전이 아닌 시중의 풍속으로 인식해보는 중추절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

 

중추절의 기원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태양이 열 개가 떠 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1년내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해 땅이 갈라지고, 모든 작물이 메말라 죽는 등 인간들이 고통에 허덕였다. 고통 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 하늘의 제왕이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어 활을 잘 쏘기로 정평이 난 호우이[後羿]를 불러 9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겨두라고 하였다. 호우이는 명령대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인간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된다. 그 후 호우이는 창어[嫦娥]라는 예쁜 부인도 얻고 인간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활을 잘 쏘는 호우이는 사냥을 매우 즐겼는데 하루는 사냥을 하러 쿤룬산[崑崙山]에 갔다가 우연히 서왕모(西王母, 신화 속의 여신으로 곤륜산에 살며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를 키웠다고 전해짐)를 만나게 된다. 호우이는 서왕모로부터 먹으면 하늘로 승천해 신선이 될 수 있는 신비의 묘약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인 창어를 두고 혼자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던 호우이는 신비의 약을 창어에게 맡겨두었다. 이 때 호우이의 부하 중 한명인 펑멍(蓬蒙)이 이 사실을 알고 약을 훔칠 기회만를 노리고 있었다. 하루는 호우이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사냥을 나가는 날이었다. 펑멍은 이 기회를 틈타 약을 훔치기 위해 창어의 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창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다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펑멍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그 자리에서 신비의 묘약을 꺼내 삼켜버렸다. 그러자 창어의 몸이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창어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에 남아 남편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 한편 사냥에서 돌아온 호우이는 시녀로부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하며 통곡하였다. 그 날 이후 호우이는 달에서 창어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가 좋아하던 뒷정원에 제사상을 차려 향초를 꽂고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출처: 중추절[zhong qiu jie, 中秋节] (두산백과)

 

. 필자 주 7). 두산백과에 나오는 중추절의 유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다 음 -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도 8월 15일 불쌍한 창어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중추절 명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리하면 중국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중 하나가 호우이[後羿]의 아내 창어[嫦娥]가, 달에서 무사 평안하게 지내길 기도하는 제사를 치르기 시작해서 중추절의 유래가 되었다는 또다른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중에서 전하는 속설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유교 경전으로 볼 때는 천(天, 하늘), 태양(日), 달(月)을 숭배하여 제사지내던 전통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고대 중국의 왕들이 음력 8월 15일에 달에게 제사지내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산백과의 중추절 설명에 잘 나타납니다.

 

- 다 음 -

 

‘중추’라는 말은 《주례(周禮)》에 가장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고대 왕들은 음력 8월 15일 달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1년 4계절(3개월)을 1개월씩(孟 혹은 初,仲,季) 나누었는데,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중간인 '중추(仲秋)'라 하였다. 이것에 착안해 8월 15일 달에 제사 지내는 날을 중추절(仲秋節 혹은 中秋節)이라고도 불렀다...  

 

 

[7]. 한국에 종교주권 없는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들의 임의적인 해석에 의해 조상제사나 차례를 기피하는 시도가 발생하여 왔었는데, 불교,기독교는 원래부터 조상제사와는 관계없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세계종교중에서는 황하문명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종교중 하나지만, 서양의 로마 가톨릭은 그 교세가 현대에는 가장 큰 종교인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측면에서는 상호 통하는 종교임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無神論的 경향으로 부처가 창조부보다 높게 책정되는 점이 창조주 중심.神중심의  유교.기독교.이슬람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도 조상제사와 관계없는 無君無父라는게 유교측 전통 입장입니다.  그러다가 유교권의 조상제사를 민속적 차원에서 인정해주는 조치가 생겨 이전처럼 강한 마찰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도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므로, 한국은 유교국입니다.    

 

* 한편, 조선성명 복구령등에 의해 한국은 전 국민이 한문성씨와 本貫을 사용하는 유교도의 나라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일본 총독부령 83호에 의해 강제 포교된 강점기 포교종교인 일본 신도(일본 불교계열), 불교, 기독교(개신교가 대부분, 가톨릭 성당)는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8]. 필자의 당부사항.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유교의 침체기에 수천년 유교를 제도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사의 황하문명.유교, 한나라 태학.국자감(원.명.청의 국자감은 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계승됨)을 원용하였는데, 이는 관습법상 인정되는 역사적 제도입니다. 서유럽의 교황제도나 볼로냐.파리대학등도 관습법으로는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며 전통입니다. 필자는 유교와 중국의 대학제도, 찬란한 역사, 동아시아 유교국들의 유교를 이어가기 위하여 세계사를 반영하여 왔습니다. 교황윤허 서강대(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교황윤허 대학중 하나)도 성균관대와 함께 한국의 Royal대며, 최근 십년 넘게 정신적인(법으로는 아직 아님) 궁 성균관대 임금(성황폐하), 가칭 御어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두 임금의 자격은 새로 생길 황후나 왕비에 비해 초월적 군주의 위치며 여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나 통치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수렴청정도 반대함). 그리고 두 대학의 임금은 남자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성황이나 어서강대 임금은 공석이 되어도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제도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고 법으로 군주정이 실현되면 궁 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의 지침을 반영하여 별도의 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의 제도로 실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법으로 성황제도.어서강대 임금제도를 실현시키기 전에는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의 Royal대 자격은 국내법과 국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 교과서의 강행법 자격으로 보호받고, 서강대의 Royal대 자격은 세계사의 교황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습법 측면에서만 머물러야 합니다.

 

대학과 유교교육의 구심점은 성균관대, 한국 종교의 구심점은 황사손(이 원).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됨.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Royal 성균관대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임.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균관대 다음 Royal대 예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http://blog.daum.net/macmaca/2575

 

. 필자의견: 차후 황사손(이 원)의 자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방계 후손중, 황사손의 지정에 따라, 황사손의 자격을 얻게되는 후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황사손의 자손이나 방계 후손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4년 공부하여 졸업한 뒤, 황사손으로 지정되면, 그 후손을 성황(폐하)로 추대하시기 바랍니다. 성황폐하가 법으로 확정되면, 황사손의 자손들이 의무적으로 성균관대를 입학하여 4년동안 다닌후, 졸업하게 제도를 만들고, 황사손으로 지정된 후계자는 환구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의 제사장 권한과 아울러, 성황폐하의 자격으로 성균관의 석전대제(선성이시며, 성인임금이신 공자님에 대한 제사인 석전대제의 초헌관)를 주재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연등도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입헌군주국 형태의 군주정을 펼치려면, 위 내용을 근거로 Royal대로 국내와 세계에 알려온 궁(宮) 성균관대 임금을 성황 폐하로 하고, 어(御) 서강대 임금(서왕 전하)을 자치왕국의 수장(통치영역은 서강대 학내의 명예직으로 함)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황사손에게는 아직까지 자칭.타칭 임금자격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대 입학.졸업자만 성황이 되어야 합니다. 성황폐하가 국가의 임금으로 옹립되면, 유교를 국교로 복구하고(어서강대의 학내 종교주권은 인정하고 주권없는 일제강점기 잔재종교는 종교의 자유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 및 국가원수로서, 최고제사장의 권한 및, 軍 통수권과 외교권, 총리 및 각료임명권등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유교 경전상의 중국 天子의 지위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한국만의 황상폐하로 하면서, 외국의 Great King(King of Kings)으로 번역되는 수준으로 한정하겠습니다. 현대세계는 황제칭호를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전통 역사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못해 황제칭호를 가지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한국내의 황상폐하 칭호로 한정하겠습니다.

 

성황(성황폐하, 宮성균관대 임금)인 필자와 어서강대 임금(서왕전하)의 사후에도 정신적인 성황과 어서강대 임금의 자격은 누군가에게 계승시켜, 차후의 황정복구에 대비해야 합니다.

 

서강대 임금은 서강대에 맡겨놓으면 적절합니다.   

 

유교의 최고 제사장으로는, 황사손(이 원)이 가장 준비가 충분하므로, 독신에 후사가 없는 필자(성황)는 당대에 성황(법률상은 아니지만, 자천하여 등극한 상징적 성왕 폐하)으로 살아갈것입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가지는 입헌군주국으로 하면서, 탄핵대상이 아니라는 점도(다만, 정당방위 아닌 살인을 저지를 경우, 의무적으로 스스로 하야하여야 합니다) 법률로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성혁명은 원칙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법률위반의 정도가 심해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이의제기를 하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를 거쳐, 반드시 직무정지를 시키고, 새로운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결의하면, 의회에서 승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중차대한 범법자가 발생하는 경우, 새로운 황상폐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하도록 하고, 의회는 거부권 없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습니다. 성황폐하와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남자에 한정합니다. 황제가 없는 현대에, 한국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한皇國(대한제국 아님) 황상(皇上)폐하로 하고 황제칭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왕들을 皇上폐하로 추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또한 성균관대 입학후 4년 공부후 졸업자만 成皇폐하로 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추대로 성균관대 이외의 졸업자를 황상폐하로 추대하면, 무효로 하고, 그 즉시 대한황국 성황폐하로 제도를 변경하여야 합니다. 황상폐하 추대위와 성황폐하(성균관대 졸업자로 구성된 여러 성씨의 복합단체) 추대위는 다른 기구로 존재하여야 합니다. 대한황국 황상폐하가 國皇으로 존재해도, 군통수권은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통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법제도를 정비하여야 합니다.국방상과 합참의장.참모총장,경찰총수는 成皇폐하의 자격으로만 임명하고, 성황폐하 추대위 출신의 추천을 받은 성균관대 출신만 임명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황상폐하를 성균관대 출신이 아닌 타대출신으로 옹립하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결정으로, 그 즉시 역성혁명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대한황국 황상폐하는 가급적 추대하지 않되, 위의 사례처럼 성황폐하의 지위를 무력화시키면, 성황폐하 추대위의 합의로, 타성출신 황상폐하를 옹립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미래의 황정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한국 최고(最古, 最高)대학 성균관대나 한국 유교전통의 해방후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행태등(수천년 유교문화 전통이라, 국가나 집권정부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이어지는게 전통문화들임)에 대해 자료인용을 하면서 강제.불법의 일본 강점기 잔재세력들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한국의 전통주권이나 세계사의 학문적 정설(定)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자료로 활용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2. 해방이후 성균관대.유교 기득권은 학교교육(국사 성균관,세계사 유교, 윤리의 유교교육, 국어.한문의 삼강오륜등)에서 나옵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입니다. 한국의 Royal대는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을 승계한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국제관습법으로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 http://blog.daum.net/macmaca/2560

 

3.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

http://blog.daum.net/macmaca/2967

 

4. 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 일본항복으로 이들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은 없는상태임. 일제강점기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의 일원인 한국유교를 인정않았음.

http://blog.daum.net/macmaca/2632

5. 한국은 수천년 동아시아세계종교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나라.최고제사장은 고종후손 황사손(이원).5,000만이 조선성명 유교한문성씨.본관 의무등록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주권없음.일제강점기 유교를 종교로 불인정.해방후 교육은 유교가 주류.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승만)연설문.우리나라 종교 유교 강조,유교 교훈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설파.아세아 동방 모든나라가 다 유교의 덕화 입었다고 하시며,유교의 교훈 지켜 예의지국 백성이 되자고 훈시.삼강오륜 중시연설.

http://blog.daum.net/macmaca/2803

 

6. 하느님에 대드는 불교일본의 성씨없는 점쇠賤民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고 예수보다 높다고 자기들이 들여온 기독교의 신부억압과, 목사 고문.구타.

http://blog.daum.net/macmaca/3044

 

7. 한국인은 행정법.관습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179

 

8.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9. 한국은 수천년 세계종교 유교나라.불교는 한국 전통 조계종 천민 승려와 주권없는 일본 불교로 나뉘어짐.1915년 조선총독부 포교규칙은 후발 국지적 신앙인 일본신도(새로 만든 일본 불교의 하나).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였는데,일본항복으로 강점기 포교종교는 종교주권 없음.부처는 브라만교에 대항해 창조주를 밑에 두는 무신론적 Monkey임.일본은 막부시대 불교국이되어 새로생긴 성씨없는 마당쇠 천민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불교 Monkey나라.일본 신도는 천황이 하느님보다높다고 주장하는 신생 불교 Monkey임.한국은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보장되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임.생경하고 급격하게 새로 생긴 마당쇠 천민 천황이 세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에 남겨진 패전국 일제 잔재며, 마당쇠 천민 학교며, 부처 Monkey.일본 Monkey를 벗어날 수 없는 불교.일본Monkey 천민학교로,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되는 대상임. 한국 영토에 주권이나 학벌같은건 없이 대중언론에서 덤비며 항거하는 일제 잔재에 불과함.한국은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에 유교의 본관과 성씨를 등록하는 행정법상 유교국가이고, 설날.추석등 유교 명절 쇠는 유교국가임.http://blog.daum.net/macmaca/2632

10. 일본 신도는 일본 막부시절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한후 일본의 종교체질이 왜곡된후 이를 기반으로 19세기에 독특하게 형성된 불교적.無神論的(後發局地的) Monkey사상으로 판단됨. 부처의 불교는 원래 창조주인 범천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론적 Monkey사상인데, 고대에 여러 나라들에 왕성한 포교를해서 널리 퍼졌지만, 중국이나 한국같은 전통 유교국에서는 핍박을받아왔고, 승려들은 공식적인 교육기관도 없이 체계적인 교육도 받지 못해왔으며, 사회적 지위도 별로 높지 않았고, 유교에 빌붙어서 유교의 하부 사상으로 유교적 풍토에 적응해 온 외래 포교종교임.  
미국은 적어도 창조주나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창조주보다 높다는 부처원숭이 불교국가가 된 일본. 막부시대 이후 전 주민을 절에 등록하여 기독교에 대항한 이후, 불교 원숭이 국가가 된 일본. 불교에 기반한 일본 신도는 원숭이 일본 천황이 하느님보다 높다고 예수보다 높다고, 한국 강점기때 기독교를 탄압함. 그리고 국지적 일본 신도와 일본 불교로 세계종교 유교(중국.한국.베트남.몽고 및 전세계 화교)의 일원이던 조선.대한제국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 정도로 오도하다가 패전국이 됨.    http://blog.daum.net/macmaca/2596

 

11. 한국에서는 Royal대인 성균관대가 최고(最古,最高) 대학 학벌. 세계사를 반영시 관습법적으로 교황 윤허 Royal 서강대도 성대 다음 Royal대로 두 대학이 가장 학벌이 높고 좋음. 서울대는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같은 건 없음. 단지 마음대로 등록하던 여러 신문에 남아있던, 친일부왜배들이 성균관대에 도전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을사조약.한일병합이 무효인 나라에서 일본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주권없고 학벌없는 대학임은 변치 않음. http://blog.daum.net/macmaca/2260 

12. 유교의 내세관(來世觀)과 기복신앙(祈福信仰) 측면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800

 

13. 유교국가의 전통적 특징중 하나는 호적(戶籍)제도였음. 한국과 중국의 호적제도에 관하여! http://blog.daum.net/macmaca/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