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꿀꿀이 바구미 10장 (05-06)

마쉬맬로우200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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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도대체 어떤 이유로 저렇게 무서운 존재로 변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숨겨진 사연이 보통은 아닌 듯 싶었다.


얼마나 아픈 사연이 있길래 순하기만 하던 분이 저렇게 변하게 된 건지.


가슴이 너무나 답답했다.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혜림이...]



흥분상태에서 빠져나와 나를 지금 본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할아버지 원래 이런 분 아니잖아요.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나는 아예 엎드려 빌고 있었다.


이토록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아이를 살려주세요.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에요. 할아버지, 제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방안 사람 모두 숨죽인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원한이 민가 전체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는 그들은 아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이란 단어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침묵 속에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방안의 또 한명의 여자도 흐느끼고 있었다.


두 여자의 흐느낌만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고 있었다.


일초 일초가 너무도 길었다.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는 아이의 몸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올라갔다.


허공에 떠 있는 채로 나를 찬찬히 내려다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 네 마음 고생이... 심하구나...]



“이제 복수는 그만하세요. 어린 아이를 죽이면 할아버지가 편해지는 건가요?”



[앞으로는 막지 말거라.... 네 얼굴봐서 봐주는 것은... 이번 한번 뿐...]



그냥 돌아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당장 수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에 큰 안도감이 왔다.



[다음엔 막는 것이 너라해도.... 날 막을 수는 없어....]



할아버지의 음성은 슬프게 들렸다.


마지막이라도 나를 보아 참아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보려 했지만 눈에서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복수를 마음먹은 이상 이젠 나와도 같이 갈 수는 없는 것을 뜻하니까.


할아버지를 먼 곳으로 보내는 것만 같아 너무 슬퍼졌다.



‘내가 지켜줬어야 하는데. 왜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구. 답답해. 마음이 너무 답답해.’



“그만 가세요. 월청 도사가 온다면 할아버지 많이 다칠 거에요.”



다시 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소용 없는 말일테니까.



[많이... 아픈 게냐... 안색이 좋지 않구나......]



‘가는 마당에 나를 이리 염려해 주다니.


이렇게 좋은 할아버지가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



떨어진 눈물은 바닥에 고일 정도가 되었다.



“할아버지....”



가지 말라고 복수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나랑 있어주면 안되냐고 말하고 싶었다.



[설사가 많이 심한 게냐......]



‘역시 못 말리는 할아버지라니까.’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나는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수로가 편하게 잠든 것을 본 후에야 모두들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월산은 거듭 고맙다며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마워. 혜림아!”



눈에 눈물이 아직까지 그렁그렁 맺혀있는 수레는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두꺼비 같은 손에 힘도 장난이 아니었다.



“아까는 미안했어. 배 많이 고프지? 내가 특별 야식 준비해서 곧 가져갈께.”


“괜찮아. 동생 때문에 많이 놀랬지? 좀 쉬어.”



‘아쉽지만 지금 먹는 건 무리라구. 내일 아침은 거하게 차리도록 하여라.’



큰 선행 후엔 오히려 겸손해야 더 크게 빛이 나는 법.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한없이 인자한 듯한 웃음을 보여주었으나 할아버지의 마지막 멘트를 만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빨리 신비롭게 사라져 줘야지.’



왠지 모를 씁쓸함을 가지고 방으로 올라갔다.


철컥.


문은 다시 밖에서 잠겼다.



‘누가 도망가기라도 한데냐. 은혜도 모르는 괘씸한 것들아. 이미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다구.’



그런 힘든 발걸음으로 화장실 가기를 두어번.



‘심한 탈수 증세를 보이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설마 여기서 응가하다 죽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생의 의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예 방안을 기어다니기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보통 노크 소리의 두배나 큰 소리로 보아 덩치인 듯 싶었다.



“잠깐 나와봐.”


“왜요?”



모기 소리만 나온다.



“월청 도사님이 뵙자고 하셔.”


“싫어요.”



‘월청이고 뭐고 다 귀찮아. 잠이나 자고 싶다고.’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컴컴하다.


눈을 떠보니 덩치가 눈앞에 와 있었다.



“너 왜 그래?”



‘몰라서 묻는 게냐?’



“일으켜 주세요. 내려가게.”



집은 또 좀 넓은가?


일어나기도 전에 언제 갈지 한걱정이 앞섰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덩치는 날 일으키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가뿐히 들쳐 메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덩치 값 하는데.’



솔직히 날 들고 있는 것이 덩치라는 것이 기분은 좋지 않지만 그런대로 편해서 그냥 냅두기로 하였다.




재미난, 재미난 쌀자루 놀이

니들은 해봤니 쌀자루 놀이.

덩치없인 못한단다 쌀자루 놀이. 쌀쌀 쌀쌀쌀.




잠시 흥얼거리자 월청 도사가 있다는 방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월청도사를 본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정신이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왜 이 노인네 앞에만 오면 나도 모르게 분위기 잡게 되나 몰라.’



“아까 수고가 많았다고 들었다. 수로를 살린 셈이라고 하더구나. 고맙다.”



‘고마우면 집에나 보내 달라구요.’



“별 말씀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왔을 뿐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그래. 너도 눈으로 보았겠지만 다케다가 사람까지 해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가만히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로서는 매우 급한 일이라. 아직도 생각을 더 해야 하겠는가? 도와주게.”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으나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도울 수 없습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나라고 어찌 영혼을 해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산 사람이 우선 인 법. 혜림양의 식구들이 이 같은 일을 당한다해도 안된다고 할텐가?”



말 잘 하는 노인네였다.


솔직히 틀린 말은 없었다.


우리 이모가 위태로왔다면 얘기가 틀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원한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은 더 큰 화를 갖고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기 힘든 것은 이해하네. 하지만 나도 항상 손자, 손녀들과 같이 있을 수는 없는 일. 시간이 많지 않네. 만약 혜림양이 돕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생각이네. 혜림양이 돕지 않아 내 주변 사람이 다친다면 혜림양 주변 사람들도 무사하지는 못 할 거야.”



진심인 것 같았다.



“협박하시는 건가요?”



10-6


“협박 그 이상이지.”



‘자신의 가족 살리자고 남 가족을 위협하다니. 역시 처음 인상대로 착한 사람들은 아니야.’



나는 침묵으로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을 전했다.


월청도사도 침묵으로 물러날 수 없다는 뜻을 전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음에도 방으로 보내줄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많이 피곤해요. 올라가 볼께요.”



먼저 일어나기로 했다.



“혜림양을 우리가 지금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네. 알고 있어요.”



몸을 일으켜 나가려고 했으나 휘청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최악이군.


그 때였다.


밖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혜림아! 혜림아! 야! 우리 혜림이 어디 있어?”



이건 멀대의 목소리?



‘드디어 왔구나.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나 여기 있어.’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다리엔 일어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 후 덩치가 들어왔다.



“수암 도사가 뵙기를 청합니다.”


“수암이?”



‘아자! 수암까지 와 주었구나.’



“그런데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건가?”


“그게 이 아가씨를 내 놓으라고 성화를 부리는 놈과 같이 왔습니다.”


“그래? 자네, 수암을 아는가?”



‘알다마다 내 남자 친구라구.’



“예. 압니다. 저는 수암도사 밑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생입니다.”


“그걸 모르고 데리고 온 건가?”



월청은 덩치에게 꾸짖듯 물었다.



“속초에 가니 마침 혼자 있어 그냥 데리고 온 것인데···”



덩치는 말끝을 흐렸다.



“어허. 어찌 그 사실을 몰랐는가?”



‘아하. 내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못보고 온 모양이군. 그나저나 수암이 대단하긴 한가봐. 이름만 듣고도 이리 떨다니.’


“아니 그렇다고 해도 수암은 여기 있는지 어찌 알고 온 게야?”



월청 도사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은 거지?’



“혜림이 내 놓으라고. 이 자식들아. 다 알고 왔어.”



멀대의 목소리는 더욱 가깝게 들렸다.



“어떻게 할까요?”



덩치의 물음에도 월청도사는 아직도 망설이는 모양인지 쉽게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월산이 들어왔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오히려 월산에게 묻는 할아버지.



“수암이 이미 다 알고 온 이상 모르는 척 하기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혜림양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장관님께도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수암이 매우 다급했군. 그런 말을 할 자가 아닌데. 할 수 없지. 일단 내어주는 수 밖에. 운이 좋은 아가씨군. 하지만 혜림양 이건 잊지 말게. 다케다는 너무 위험해.”



알고 있었다.



“보내주신다면 수암도사와 함께 좋은 곳으로 보내는 제를 올릴 것입니다. 보내주십시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어린아이를 해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이상 나도 다케다 할아버지가 활보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약속해 주겠는가?”


“네.”


“그럼 나가지.”



이미 멀대와 수암은 문 앞까지 와있었다.



“먼저 나가겠네. 혜림양은 조금 있다가 나오도록 하게.”



‘그래요. 지금 나갈 힘도 없다구요.’



잠시 후 덩치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로 나갔다.



“혜림아!”



멀대 목소리는 우렁찼다.


수암의 목소리는 멀대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아마도 왜 아프게 되었는지 묻는 것 같았다.


대답할 기력도 없지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멀대의 품에 안겨 버렸다.


멀대의 큰 키 덕분에 내 머리는 어깨는커녕 가슴에도 겨우 닿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욱 든든했다.



‘와줄 줄 알았어. 내가 어디있든 넌 찾아 낼 거란 생각이 들었다구. 고마워, 멀대.’



“아니 어찌 연약한 여자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소? 당신들이 사람이요?”



나의 모습을 보고 수암은 화가 있는 데로 냈다.



‘그게 아닌데.’



난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인을 보내려고 최대한 해맑게 웃었다.



“민국이형! 혜림이한테 약까지 먹였나봐. 이 나쁜 자식들. 눈은 쾡해가지고 웃고 있는 거 좀 봐.”



‘그게 아니라 널 반기는 미소라고,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