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communism2021.10.06
조회1,645

제 엄마는 저를 참으로 사랑해 주셨고 이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후에 재혼해서 낳은 아들을 더 이뻐하시게 되더군요. 엄마는 당시 고3이었던 저와 아버지를 떠나 결혼 전 본인이 좋아했던 동네 오빠라는 사람과 재혼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와 인연을 끊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한숨과 눈물을 못 본 체하며 엄마와 살려고 엄마를 선택했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제대 후에 방황하고 있었던 저에게 친아버지께서는 가지고 계신 아파트를 유산으로 넘겨주셨습니다. 익산에 있던 낡은 아파트였지만 당시 수천만 원 정도는 나가던 아파트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으로 기차 역사가 새로 신설된다는 소문이 돌아서 가만히 두면 적어도 천만 원 정도는 더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친아버지로부터 아파트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그 아파트를 팔아서 자신이 재혼해서 현재 살고있는 군산의 낡은 아파트를 사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엄마가 살던 군산 아파트는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식 아파트였습니다. 당연히 5층 낡은 아파트인지라 부동산에 내놓았지만 산다는 사람이 없어서 몇 개월째 임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시 21살이었던 저는 사회 경험이 전무 하였던지라 엄마의 말대로 물려받은 익산 아파트를 급하게 처분하였고 그 돈으로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저에게 남는 돈은 일절 없었습니다. 군산 아파트를 월세를 주어 매달 17만 원 정도의 이익을 보았지만 그건 익산 아파트에 월세를 주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저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후 약 1년 정도를 재혼한 엄마와 한집에 함께 살았는데 처음에는 어서 오라고 환영하시던 엄마가 점점 저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지셨습니다. 어느 날 김무침 반찬을 많이 먹는다고, ‘김무침 반찬을 하려면 얼마나 김이 많이 들어가는지 아느냐고’ 밥을 먹고 있는 저한테 크게 소리를 치셨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엄마가 먹는 거로 그렇게 저에게 야단을 친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먹먹하고 힘이 빠져서 아무런 대꾸도 못 하였고 김무침 반찬에 가 있던 젓가락을 놓았습니다. 또 한번은 어린 이부동생이 장난으로 제 성기를 손으로 치길래 순간 수치심을 느껴서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나무젓가락으로 살짝 손찌검했는데 그런 저를 보시고 엄마가 저에게 굉장히 화를 내셨습니다. 저에게 엄마나 아저씨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동생에게 손대지 말라고 차갑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아, 이분은 이제 내 엄마, 나만의 엄마가 아니구나…. 라는 상실감을 느꼈었죠. 어떻게 보면 엄마도 당연한 수순으로 행동했던 건데 당시 저만 여전히 예전 저를 사랑해 주셨던 엄마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엄마와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와 아저씨는 동생을 데리고 저만 혼자 남겨두고 전주로 이사 가셨습니다. 명목상 동생이 바닷가 시골보다는 그래도 도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저 혼자 바닷가 빈집에서 몇 개월 살다가 그 집도 산업지구로 편입되어 재개발을 한다고 하여 헐리게 되었고 저는 엄마와 함께 사는 아저씨께서 당시 다니던 회사의 관사에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7, 8개월 정도 살다가 후에 아저씨께서 더 이상 관사에 살 수 없게 되었다고 관사를 빨리 비워달라 하셔서 그렇게 엄마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할 아내를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첫 식사 자리에서 엄마와 아저씨는 자신들이 지방의원 선거에 나갔는데 돈이 부족하니 얼마라도 보태달라도 말씀하셨습니다. 적잖이 당황한 저와 아내는 결혼할 돈도 부족하기에 보태드릴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식후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오면서 저와 제 아내는 어떻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가 있느냐며 서로 황당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제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운했다고 전화드리니 엄마와 아저씨가 갑자기 자신들이 언제 돈 이야기를 했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제 마음은 엄마에게 더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제가 잘못 들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 아내도 분명 본인도 엄마와 아저씨가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함께 돈 이야기를 잘못 들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어찌했던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 결혼한다고 하니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냉장고를 사라며 2백만 원을 주셨습니다. 이점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비록 얼마 가진 못했지만요….

 

제가 신혼생활 중에 엄마가 저에게 전화하셔서 본인이 전주에 아파트를 사려고 하는데 세금 문제가 발생할 거 같으니 그 전주 아파트를 잠시 제 명의로 해놓으면 안 되겠냐는 부탁의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나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엄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전주 아파트를 제 명의로 돌려놓으면서 엄마는 저에게 제가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전주 아파트를 나중에 팔게 되면 얼마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죠.......

 

제 명의 아래 있던 전주 아파트를 나중에 처분하시면서 부동산에서 제가 도장을 찍고 나오자 엄마는 저번에 아파트 팔면 주겠다던 돈은 사정이 생겨서 주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은 필요 없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건 적어도 약속을 지키려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그 순간 옆에 있던 제 아내에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건 당시 엄마의 아파트가 제 명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집이 없어 월세를 전전했던 저희에게 차례가 돌아온 주공아파트 청약권이 날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명의 아래 아파트가 있기에 저희 부부는 주공아파트 청약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아 저희는 낡은 월셋집에 살아야 했습니다. 제 아내는 낡은 벽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에 폐렴에 걸려 1달 이상을 병원에 입원해야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후에도 엄마와 전화 통화는 간간이 하였는데 언젠가부터 제 전화를 일절 받지 않으셨습니다. 걱정되어서 일주일간 하루에 여러 번 전화했지만 결국 엄마와 결혼한 아저씨가 엄마 대신 제 전화를 받아서 엄마 괜찮고 잘 있으니까 오해하지 말고 더는 자주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엄마 목소리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다고 부탁하였고 옆에 계시던 엄마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제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언젠가 엄마에게 말실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고 저의 종교 생활보다 엄마가 더 좋다고 말한 거였는데 엄마는 제 말을 오해하여 상처를 받았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종교도 제가 어릴 때 엄마가 먼저 시작하였고 엄격하게 저를 그 종교에 참여시켰던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아저씨와 재혼하면서 그 종교를 그만두셨습니다.

 

그 일 이후 점점 더 멀어지다가 지금은 완전히 의절하여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 차갑게 변하였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날 때면 그런 엄마에게 사랑을 받으려 했던 어리석은 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부질없는 짓이니까요....

 

엄마, 엄마가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대충 엄마 이야기인지 아실 겁니다.

엄마는 저를 두 번 버리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휴일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엄마 집 나간다. 잘 살아라.”라고 말씀하시고 저와 아버지를 떠나 결혼 전 좋아했다던 아저씨와 함께 살았을 때입니다. 그 일 때문에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중 하나인 수능 시험을 망쳤습니다. 수능 3달 전 즈음에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상심이 크셨던 아버지께서 손수 수능 시험 날 도시락을 싸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도시락을 주셨습니다. 그 도시락을 보면서 제가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두 번째는 엄마가 제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던 때입니다.

엄마가 저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전에 좋아했던 동네 오빠와 살림을 합친 후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없어져 버린 집에 남겨졌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며칠 후 엄마가 빨아놓으신 양말이 다 떨어져 급하게 신을 양말이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맨발로 학교에 갔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 번도 제 양말을 빨아본 적이 없는 유약한 아이였으니까요....그런데 제가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을 본 영어 선생님이 괘씸하다면서 제 뺨을 주먹으로 내리치셨습니다. 저는 맞은 뺨을 손으로 감싸며 더 맞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제가 엄마 없는 아이로서 세상에 내 던져졌다는 걸 처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풍족하게 싸주시던 도시락이 회사가기 바쁜 아버지가 생배추에 된장 뿌려서 밥하고 비빈 도시락으로 바뀌자 아이들은 제가 거지가 되었다고 놀려대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배신감에 상심이 크신 아버지는 매일 일을 마치고 오시면 방에서 혼자 우셨습니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저는 그래도 엄마가 좋았습니다. 엄마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엄마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 아내를 만나기 전 제가 결혼까지 생각했었던 여자친구의 부모님에게 저는 저와 아버지를 버리고 좋아하는 남자와 살려고 집을 나간 엄마의 핏줄이기 때문에 그 핏줄이 나중에 자기 딸을 버리고 바람날까 무섭다는 말을 들어야 하였습니다. 결국 그것이 발단되어 여러 가지 일이 보태져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도요…. 하지만 엄마는 저를 두 번 버리셨습니다. 저는 늘 엄마를 걱정하여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버리고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엄마가.... 무슨 권리로 나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제 전화를 일절 받지 않으셨습니까..............그건 저를 두 번 버린 겁니다.

 

결혼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기게 되었습니다. 산전수전까지는 겪었습니다. 돈이 없어 몇 달간을 콩, 두부, 우유만으로 버틸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 손으로 산 집도 있고 자가용도 있습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지만 제가 운영하는 학원도 있습니다. 이제는 예전의 어리석은 저에게서 조금은 성장한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엄마....왜 저에게 그런 상처를 두 번씩이나 주셨습니까....엄마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요...........

 

제 아내 때문에 저는 삐뚤어지지 않고 잘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저에게 아내이자, 연인이자, 어머니입니다. 제 아내가 있기에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어루만지면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엄마가 저에게 그랬죠... 세상에 이혼한 가정이 많이 있다. 자식 놔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엄마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 넌 절대 엄마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엄마, 엄마 말씀대로 세상에는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엄마가 저와 제 아버지께 주었던 상처에 대해 당당해질 권리는 없습니다. 엄마는 어떻게 말해도 저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전에 좋아했던 아저씨를 선택한 거니까요.....

 

전 절대로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월이 더 흐르면 엄마와 대화를 할 때가 올 수 있겠죠...그렇더라도 전 엄마를 이해할 수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 부질없는 짓이니까요...그렇다고 한들 지나간 시간이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혹시 제가 엄마에게 먼저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엄마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나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거나 다시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서로 정직하게 그리고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것이 싫다면 저도 굳이 엄마와 다시 연결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제는 엄마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엄마가 그립지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지는 일도 없으니까요...

 

제 마음은 이제 저만의 것이니까요.....

 

 

댓글 1

ㅇㅇ오래 전

친모가 남겨준 가장 큰 유산은 사람이 아닌 사람은 손절이 답이라는걸 가르쳐주었다는겁니다. 비슷한 경험자로서 행복하시라는 말은 못하겠네요. 우리같이 상처있는 사람들은 찾아온 행복을 온전한행복으로 받아들이기 쉽지않다는것을 잘안까요. 대신 편안하십시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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