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 소개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경북 모 지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준화 지역 고등학교로 간뒤 현재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학창시절을 돌이켜 본 결과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갈림길이자 저의 인생의 큰 변환점을 맞게된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고등학교 진학 문제였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이 동네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으로 인문계 고교 4학교, 실업계 고교 3학교가 따닥따닥 서열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는 동네입니다. 이 동네에서 1순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면 뭐.. 그 동네 학생취급 못받는다고 봐야겠죠?중학교 때 공부를 더럽게 못했으니 그 학교에 간거 아니냐며 눈치를 겁나게 줍니다. 명절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친가, 외가 사촌이 1순위 고등학교를 간 형, 동생과 비교당하는 것 만큼 기분 더러운건 이 세상에 없죠. 근데 더 충격적인건 이 고교 비평준화 제도 자체가 대단히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제가 학교 다닐 당시만 해도 직속선배라인까지는 전부 중학교 3년 내신성적으로만 고교 진학을 가렸습니다. 즉 전교석차로만 따져서 상위 몇 프로 이내만 1순위 고등학교, 그 이후... 하위학교 픽..이런 식이었다보니 선배라인 까지만 해도 인문계건 실업계건 고등학교 진학자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학했을 당시 저희 학교 고입정책이 정말 괴리하게 바뀌어버리고 말았는데 바로 고입선발고사 제도가 부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이말인 즉 내신으로만 고교진학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고입선발고사를 따로 치뤄서 내신20%+고입시험 80% 성적을 합산해서 학생 성적을 가리는데 더욱 골 때리는건 이 고입선발고사는 과거 학력고사 시절때와 같이 선지원 후시험 제도라는 것입니다. 즉 고입시험도 보기 전에 먼저 원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에 시험성적을 가지고 고등학교 진학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희 동네는 원서를 1인당 1학교만 지원이 가능하고 복수지원과 추가지원은 불가능합니다. 이게 인문계, 실업계 가릴것 없이 시행되었다면 나중에 추가모집을 통해서라도 회생의 기회는 있습니다. 물론 운이 따라야겠지만요. 근데 실업계는 이 시험에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3학년 2학기 시작 무렵에 원서 접수와 마감이 이루어지고 일찌감찌 공부 포기하고 실업계 갈 학생들이나, 도저히 나는 저 도박같은 시험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싶지 않는 몇몇 중위권 학생들이 결국 이 길을 택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실업계 고등학교 원서접수가 마감되면 그 때부터 상위권, 하위권 학생들의 분반이 이루어지는데 상위권 학생들은 이 때부터 고입 선발고사 준비에 들어가면서 대폭적으로 학업과 내신에 열을 붙이고 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보단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2학기 중간, 기말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아예 수업 안하고 영화보거나 자습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즉 말그대로 여긴 수시합격자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고등학교에 비유하자면 수능 이전에 대학 수시합격한자와 정시준비하는 자들간의 한지붕 두 가족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참고로 저희 중학교는 3학년 때부터 교과교실제를 운영했기 때문에 이 때부턴 시간표가 2반 묶음으로 인문계반, 실업계반 공통 시간표로 운영했고 1교시 수업이 시작하면 청소시간 때 까지 반에 돌아오질 않습니다. 당연히 같은 반 학생들간의 왕래도 없고 쉬는시간 수업시간 전부 여러 반이 한 군데 모인 오합지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12월 선발고사가 찾아왔습니다. 일찌감찌 자신의 내신 수준을 보고 안정권 내지는 하향지원을 한 학생, 혹은 애매한 중,상위권 학생들은 큰 맘먹고 1순위 고등학교 원서를 지르는 학생등등 다양한 결심끝에 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당연히 이 시험은 저희 라인이 첫 스타트였기에 기출문제고 예상문제고 없었습니다. 수능이야 워낙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무궁무진하게 많고 기출문제나 모의고사 같이 대비할 수 있는 자료가 방대하다 못해 넘치지만 이 시험은 그런게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감으로 시험에 나올 것만 같은 중요한 요점들만 공부하고 복습시키는 쪽으로 교육방향을 잡았습니다.여기까지는 당시 저희 중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부터 비평준화 동네의 본격적인 판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다른 동네는 모르겠으나 저희 동네는 오래전부터 보수적이고 학구열 하나는 강남 못지않을정도로 빡세기로 유명합니다.고로 학원가 역시 즐비하며 인강학원 수준의 거대한 빌딩을 소유하며 운영중인 학원들이 여럿 있습니다.(물론 몇 평 안되는 중소형 학원들 역시 셀 수 없을정도로 많습니다.)이런 식의 사교육열 또한 대단히 높으며 학원비 역시 만만치 않을정도로 상당합니다. 즉 돈이 없어서 가난한 학생들은 이런 학원에 발도 붙일수가 없습니다.(참고로 저희 학교에는 유독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상당수 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학원들은 오래 전 부터 동네 각 중학교 교사들의 기출시험들을 모조리 가지고 각 중학교 교사들의 시험유형들을 분석하는 전력분석팀이 존재하며 일찍부터 내신관리에 들어가기 위해 1학년 때 입학 때 부터 어떤 교사가 배정되었는지 부터 알아보고 그 교사별 맞춤형 예상문제, 기출문제들을 가지고 복습하고 또 복습하며 진행됩니다. 다만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건 제가 중학교 재학시절 교육과정이 한 차례 바뀌면서 교과서와 교육과정이 대폭 개편되어서 전력분석에 있어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시중에 나온 각 교과서별 자습서와 학생들이 정리한 노트를 가지고 분석하면서 중간, 기말고사 대비문제를 만들고 어떻게든 자기네들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올리는데에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학원의 유형역시 천차만별입니다.어떤 학원은 학생들에게 시험성적과 결과에 대한 목표의식을 가지고자 시험 때 학원 선생님과 협의해서 결정한 목표점수나 등수에 도달한 학생들에겐 특별한 상품을 제공해주는 학원도 있는 반면, 학원 내에서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못하거나 성적이 나오지 못할경우 엄청난 폭행과 얼차려를 주는 학원도 있습니다. 체벌이 아니라 폭행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제가 그걸 겪었기 때문인데 매를 맞는것이 아니라 수업 도중에 집중 안하고 조금이라도 멍하니 있는 순간 쪼인트와 손찌검을 수차례 맞았기 때문입니다.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잘못되었다는걸 인지하지 못했고 저희 부모님 역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에는 선생님에게 맞은 피멍이 가득했고 저는 이것을 거짓말을 하면서 참아내야 했습니다.또 시험기간이 되면 당연히 집에 늦게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까지 학원에 갇혀있어야 했고 학교에 가려면 적어도 7시에는 기상을 해야하니 수면부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수업시간에 졸면 어떻게 되는지는 안봐도 비디오 입니다. 참고로 저희학교는 사립학교에 두발규정과 엄청난 체벌이 횡행했을정도로 입학할 때 부터 군기로 다잡은 학교였습니다. 이런식으로 무려 3년의 공부 끝에 고입선발고사를 치룬 학생들의 결과는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어서 다행인 친구들, 시험을 못쳐서 떨어진 친구들까지.. 이들의 운명은 기구하기 그지 없을 정도로 극과 극이었습니다. 붙은 학생들은 다행이겠지만 떨어진 학생들은 어떻게 되냐고요? 그냥 낙동강 오리알 신세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일찌감찌 원서가 마감되었고 인문계 역시 시험전에 다 마감되었으니 하위권 학교에서 추가모집을 하지 않는이상 이들은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 이외에는 그 어떤 학교도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못가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그 학교들은 모두 산간벽지에 있는 외딴 학교로 가야하고 집에서 그 학교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무려 1시간가까이 걸립니다. 대중교통편도 빈약합니다. 자차가 없으면 이 학교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기숙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버스도 자주다니는 편이 아니라서 여길 가게 되면 방학 때 까진 영원히 거기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학교 수준은 너무나도 낮아서 아예 실업계조차도 받아주지 못할정도의 꼴통학생들이 모인집단이라서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기란 너무나 혹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공부할바예 스스로 지옥에 가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단순히 공부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학교폭력으로까지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 공부를 떠나 학교생활 부터가 막막할 지경입니다.그래서 고입시험에 떨어진 친구들은 겨우얻은 추가모집으로 어렵게 들어가거나 그 마저도 떨어진 친구들은 정말로 고입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보게 됩니다. 이게 농담이 아니라 제가 1학년 때 부터 선생님들과 제 친구들사이에 오고갔던 말들입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검정고시 준비해야겠다는 한숨섞인 고민들을 나누었고 고입재수역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이 정말로 재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우리는 극도의 긴장속에 3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내신점수를 더 받기 위해 0.5점의 가산점을 받고자 매년 8시간 봉사활동을 채워서 다녔고 체육시간 때 깜빡하고 체육복을 못챙겨오면 매질은 기본이고 감점1점이라는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로 자신의 고입 앞길부터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사소한 그 하나 때문에 내신이 감점되면 이것은 곧 자신의 고등학교 진학 당락부터 갈리게 되는 일이니 우리는 이 내신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중학교 3년을 보낸 저희들은 어떻게 되었냐구요?몇몇 학생들은 각자 등급에 맞춰서 인문계 고등학교 잘 들어간 반면 일찌감찌 이 정신나간 제도에 굴복하기가 싫어서 마이스터고등학교로 들어간 친구도 몇몇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 역시 내신은 준수하거나 높은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저처럼 이도저도 아닌 중위권 학생들은 어찌어찌 자기 인생을 담보로 고입에 도전해서 1순위학교는 아니더라도 2,3 순위라는 그저그런 성적으로 고등학교 잘 들어간 친구들이 있는 반면 도저히 이 시험을 잘 볼 용기가 나질않아 일찌감찌 공고와 상고로 들어간 학생들도 상당수였습니다. 이들은 저와 학원에서 정말 자살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혹독하게 굴리면서 매질당하고 온갖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면서 함께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보다 내신과 석차도 좋았고 학원에선 늘 이 친구들에게 비교만 당하며 지냈는데 결국 이들은 공고, 상고를 갔고 끝내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인만큼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죠.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고 대학간 저보다 더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저런 운명을 맞이할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험도 망치고 입시도 떨어진 몇몇 친구는 정말로 외진학교라도 갔으나 적응을 하지못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았습니다.자신은 남들보다 평범하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한이었답니다. 1순위 학교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중위권 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웠다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패기로 그런 원서를 썼는지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너무나도 화가나고 서글퍼서 잠도 오지 못했다고, 어떻게 그깟 시험하나 때문에 내 인생이 이리 망가졌냐면서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홀로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한 친구가 저에게 수화기너머로 그런말을 하더군요.너무나도 안타깝고 서글펐습니다. 중학교 때 고입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상담해준 친구였는데 그래도 안정권으로 원서를 내야하지 않겠냐고 조언했지만 자신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1위학교를 지망했고 결과는 참담했더랬죠. 너 말을 듣지 않았던게 너무나도 후회된다고 말했습니다.3년만에 전해들은 친구의 소식은 당일 보았던 수능조차 까마득하게 잊을정도로 그 충격이 컸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라서 학교, 학원선생님에게 죽도록 맞은적이 많았고 그래도 내신을 살리고자 지구대, 소방서, 양로원, 복지기관,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봉사활동을 뛰어다녔고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저희 부모님은 저를 위해 비싼돈 들여가며 학원이라도 내보냈지만 결과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밖에 남질 않았습니다.학원 선생님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너무커서 처음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자살충동이라는걸 처음 느끼고 나니 정말 무서울게 없었습니다.학교 끝나고 조그마한 교차로 모퉁이에서 학원차를 기다리는데 차들이 휑휑 지나다니는 도로를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니면서 대놓고 제발 나 좀 쳐가라 하는 식의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들이 빵빵거리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땐 왜 나를 치고가지 않았냐며 속으로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고 결국 학원차를 올라타면 제발 교통사고가 나길 빌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원에 도착하면 긴 한숨을 푹푹 쉬어야 했고 학원 선생님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과 폭행이 이루어지면 저는 그 날 마음속으로 오늘 당장 우리 집 옥상위에 뛰어내려야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하지만 다음 날 있을 할아버지 생신이 있어서 저는 뛰어내리질 못했습니다.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만큼은 꼭 챙겨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저는 살 수 있었고 마침 그 기간이 시험기간 중에 끼어있어서 그 날 하루만 학원을 빠지고 대구로 갔었는데 그 대구에 있었던 하루가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입니다.오랜만에 사촌누나를 보면서, 또 큰 아버지와 저를 아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서 저는 다음 날 학원에서 전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날의 하루가 떠올라서 도저히 뛰어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 날이 없었더라면 저는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그 만큼 저는 이 순간 정말로 죽고싶었던 심정이 강했습니다. 저녁시간도 1시간 밖에 주어지질 않는데 근처에 분식집까지 왔다갔다 하는데만 10분이나 걸리고 저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은 늘상 수제핫도그 하나로 끼니를 떼우거나 분식집까지 달려가서 라면 한 그릇을 급하게 먹거나 김밥을 포장해와서 학원에 가져다가 먹는게 다반사였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가지고 그걸 먹으면서 정말 처량하고 힘든 이 일이 언제 끝날까 하는 고민만 가득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났고 저는 일찌감찌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학교 공부가 이렇게 힘든데 이보다 더한 고등학교와 수능까지 준비하다가는 자살을 결심하기도 전에 스트레스와 화병으로 죽을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부모님도 저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결정하였고 저는 실업계 준비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마침 저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학교가 개교된다는 신문기사를 아버지가 우연히 읽으시고는 이 쪽으로 고등학교를 가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는 집과 너무나도 멀고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저에겐 탐탁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만 해도 합숙생활은 커녕 외박조차도 싫은 성격이었고 하루도 아니고 3년을 연고도 없는 그 먼 곳에서 살아야 하는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한 고집을 꺾을수만은 없었고 결국은 이 학교를 가게 되면서 그 길로 저는 제 인생이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평소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는 소심한 학생이었던 제가 말이 많아지고 시끄러운 이미지가 되었고 평소 집, 학교, 학원, 집 밖에 되질 않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 새로운 바깥세상을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가는 소중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터미널에 앉아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 관심없고 알지못했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경험과 자산 덕분에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모습이 180도 바뀌게 되면서 저는 처음으로 삶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 계기는 3월 모의고사였습니다. 더는 공부와 적을 두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3월 모의고사를 본 후 처음으로 시험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하나하나 아는 문제를 풀어가고 답을 맞춰보는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쉬는시간, 점심시간 내내 그 하루가 행복했었고 다시한번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야자시간 때도 친구들과 영어단어를 외우고, 그 날 수업했던 내용들을 복습하고 노트에 정리하는 저를 발견했고 함께 모든것을 동고동락하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덕분에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속에서 3년을 보내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이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저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바로 제 고등학교 동기들은 그 어느누구도 저처럼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중학교 내신 0,5점을 얻겠다고 봉사활동을 뛰지도 않았고, 비싼돈 들여가며 학원다니면서 중간, 기말고사에 목을 매지도 않았으며 그 누구도 중학교 시절 내내 구타를 당하면서 까지 시험점수 올리는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겁니다.그렇습니다. 제 고등학교 동기들은 모두 평준화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저는 그 날 처음으로 고교 평준화, 비평준화 제도가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성적이 높든, 낮든 어차피 뺑뺑이라 어느 고등학교를 가든 그게 운명이니 하며 다녔고 고등학교 서열도 없어서 낮은 서열의 고등학교 다닌다고 눈치보거나 손가락질 당할 일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평준화는 서열자체가 없는거니까요. 고입 시험을 망쳐서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봐야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일도 없고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학교 선생님들의 기출시험 유형을 분석하는 전력분석팀까지 꾸려가면서 내신 올리기에 급급한 사교육열도 없다는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졸도할뻔 했습니다. 지난 중학교 3년은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이 다 똑같이 고통받는거라고 해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텨냈는데 정말 잘 나가는 대도시 친구들은 새벽1시가 넘어서까지 학원에 갇히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학원생활을 했단 그런 거 한번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서 하나같이 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이는 대학교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오죽했으면 대학교 룸메이트가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소설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겠다며 정말 신기하게 들은 모양이었습니다.저는 이런 현실에 정말 화도나고 분에차서 며칠을 잠 못 이루었습니다. 정말 내가 피눈물을 흘려가며 공부한 지난 3년의 인생이 너무나 덧없게만 느껴졌고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면서 까지 내신에 목숨을 걸고 다리와 엉덩이에 피멍이 든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지워질 수없는 마음의 상처를 달고 공부해야만 했던 중학교 시절이 너무 화가나고 분에 찼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결국 실업계 고등학교를 택했던 제 친구들에게 차마 얼굴 한번 볼 낯이 없었습니다.너무 미안했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이 충격은 잠시 잊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그렇게 저는 남들처럼 똑같이 대학 입시준비하면서 수능까지 보았고 좋은 대학은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저의 하나뿐인 20대초반을 정말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은 더욱 빛이 났었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의 고통스럽고 비정상적인 중학교 3년을 잊을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제 친구들은 꿈과 희망을 잃었고 극심한 좌절속에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력이 끼칠 수 밖에 없는 10대 인생이 심각하게 꼬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이 현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어린나이가 아닐까요? 20대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수능? 까짓거 재수보면 그만입니다. 재수한다고 삼수한다고 4수한다고 이상하게 볼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이 망가지는것도, 꼬여지는것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힘들고 더 어려운 도전을 해낸만큼 박수치고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일이지요. 하지만 10대는 아닙니다. 17살은 정말 형편이 어려워 당장이라도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할 처지가 아니라면 대부분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대학을 안 가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는 있어도 고등학교를 안가고 자신의 길을, 그것도 17살이라는 나이에 그 혹독한 현실을 맞딱뜨리고 싸워나가기엔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그리고 그 제도는 지금 비평준화 제도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순 있겠으나 적어도 제가 살았던 이 동네는 그랬습니다. 심지어 저 바로 밑 중학교 후배들은 1순위 고등학교 지원해서 떨어진 학생만 30명이나 되었습니다.이들은 이런 가혹한 운명을 17살이라는 나이에 맞아야만 했고 고등학교 입학부터 앞길이 막혀버렸습니다.원하는 명문고에 가야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로인한 박탈감과 심리적 충격은 말할것도 없겠죠?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뻔한 위로와 별 같잖은 응원조차 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런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이 현실이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현실은 1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현재진행형 입니다. 1순위 명문고 동문들의 강력한 반발때문이라나 뭐라나요.. 워낙이 보수적인 동네인 만큼 이런 경직된 교육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지금 현재도 고입시험에 떨어져 그 어떤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는걸 여럿 들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중학교 3년내내 피눈물을 쏟아부으면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가 그 어떤 인문계 고등학교 조차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고도 정말 고등학교 비평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고등학교 의무교육과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말 이 제도를 계속해서 시행하는것이 옳은 것인지를 묻고싶습니다.
고등학교 비평준화는 정말 정신나간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아직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이 동네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으로 인문계 고교 4학교, 실업계 고교 3학교가 따닥따닥 서열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는 동네입니다. 이 동네에서 1순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면 뭐.. 그 동네 학생취급 못받는다고 봐야겠죠?중학교 때 공부를 더럽게 못했으니 그 학교에 간거 아니냐며 눈치를 겁나게 줍니다. 명절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친가, 외가 사촌이 1순위 고등학교를 간 형, 동생과 비교당하는 것 만큼 기분 더러운건 이 세상에 없죠.
근데 더 충격적인건 이 고교 비평준화 제도 자체가 대단히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제가 학교 다닐 당시만 해도 직속선배라인까지는 전부 중학교 3년 내신성적으로만 고교 진학을 가렸습니다. 즉 전교석차로만 따져서 상위 몇 프로 이내만 1순위 고등학교, 그 이후... 하위학교 픽..이런 식이었다보니 선배라인 까지만 해도 인문계건 실업계건 고등학교 진학자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학했을 당시 저희 학교 고입정책이 정말 괴리하게 바뀌어버리고 말았는데 바로 고입선발고사 제도가 부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이말인 즉 내신으로만 고교진학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고입선발고사를 따로 치뤄서 내신20%+고입시험 80% 성적을 합산해서 학생 성적을 가리는데 더욱 골 때리는건 이 고입선발고사는 과거 학력고사 시절때와 같이 선지원 후시험 제도라는 것입니다.
즉 고입시험도 보기 전에 먼저 원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에 시험성적을 가지고 고등학교 진학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희 동네는 원서를 1인당 1학교만 지원이 가능하고 복수지원과 추가지원은 불가능합니다.
이게 인문계, 실업계 가릴것 없이 시행되었다면 나중에 추가모집을 통해서라도 회생의 기회는 있습니다. 물론 운이 따라야겠지만요.
근데 실업계는 이 시험에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3학년 2학기 시작 무렵에 원서 접수와 마감이 이루어지고 일찌감찌 공부 포기하고 실업계 갈 학생들이나, 도저히 나는 저 도박같은 시험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싶지 않는 몇몇 중위권 학생들이 결국 이 길을 택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실업계 고등학교 원서접수가 마감되면 그 때부터 상위권, 하위권 학생들의 분반이 이루어지는데 상위권 학생들은 이 때부터 고입 선발고사 준비에 들어가면서 대폭적으로 학업과 내신에 열을 붙이고 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보단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2학기 중간, 기말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아예 수업 안하고 영화보거나 자습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즉 말그대로 여긴 수시합격자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고등학교에 비유하자면 수능 이전에 대학 수시합격한자와 정시준비하는 자들간의 한지붕 두 가족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참고로 저희 중학교는 3학년 때부터 교과교실제를 운영했기 때문에 이 때부턴 시간표가 2반 묶음으로 인문계반, 실업계반 공통 시간표로 운영했고 1교시 수업이 시작하면 청소시간 때 까지 반에 돌아오질 않습니다. 당연히 같은 반 학생들간의 왕래도 없고 쉬는시간 수업시간 전부 여러 반이 한 군데 모인 오합지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12월 선발고사가 찾아왔습니다. 일찌감찌 자신의 내신 수준을 보고 안정권 내지는 하향지원을 한 학생, 혹은 애매한 중,상위권 학생들은 큰 맘먹고 1순위 고등학교 원서를 지르는 학생등등 다양한 결심끝에 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당연히 이 시험은 저희 라인이 첫 스타트였기에 기출문제고 예상문제고 없었습니다.
수능이야 워낙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무궁무진하게 많고 기출문제나 모의고사 같이 대비할 수 있는 자료가 방대하다 못해 넘치지만 이 시험은 그런게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감으로 시험에 나올 것만 같은 중요한 요점들만 공부하고 복습시키는 쪽으로 교육방향을 잡았습니다.여기까지는 당시 저희 중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부터 비평준화 동네의 본격적인 판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다른 동네는 모르겠으나 저희 동네는 오래전부터 보수적이고 학구열 하나는 강남 못지않을정도로 빡세기로 유명합니다.고로 학원가 역시 즐비하며 인강학원 수준의 거대한 빌딩을 소유하며 운영중인 학원들이 여럿 있습니다.(물론 몇 평 안되는 중소형 학원들 역시 셀 수 없을정도로 많습니다.)이런 식의 사교육열 또한 대단히 높으며 학원비 역시 만만치 않을정도로 상당합니다.
즉 돈이 없어서 가난한 학생들은 이런 학원에 발도 붙일수가 없습니다.(참고로 저희 학교에는 유독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상당수 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학원들은 오래 전 부터 동네 각 중학교 교사들의 기출시험들을 모조리 가지고 각 중학교 교사들의 시험유형들을 분석하는 전력분석팀이 존재하며 일찍부터 내신관리에 들어가기 위해 1학년 때 입학 때 부터 어떤 교사가 배정되었는지 부터 알아보고 그 교사별 맞춤형 예상문제, 기출문제들을 가지고 복습하고 또 복습하며 진행됩니다.
다만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건 제가 중학교 재학시절 교육과정이 한 차례 바뀌면서 교과서와 교육과정이 대폭 개편되어서 전력분석에 있어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시중에 나온 각 교과서별 자습서와 학생들이 정리한 노트를 가지고 분석하면서 중간, 기말고사 대비문제를 만들고 어떻게든 자기네들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올리는데에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학원의 유형역시 천차만별입니다.어떤 학원은 학생들에게 시험성적과 결과에 대한 목표의식을 가지고자 시험 때 학원 선생님과 협의해서 결정한 목표점수나 등수에 도달한 학생들에겐 특별한 상품을 제공해주는 학원도 있는 반면, 학원 내에서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못하거나 성적이 나오지 못할경우 엄청난 폭행과 얼차려를 주는 학원도 있습니다.
체벌이 아니라 폭행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제가 그걸 겪었기 때문인데 매를 맞는것이 아니라 수업 도중에 집중 안하고 조금이라도 멍하니 있는 순간 쪼인트와 손찌검을 수차례 맞았기 때문입니다.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잘못되었다는걸 인지하지 못했고 저희 부모님 역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에는 선생님에게 맞은 피멍이 가득했고 저는 이것을 거짓말을 하면서 참아내야 했습니다.또 시험기간이 되면 당연히 집에 늦게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까지 학원에 갇혀있어야 했고 학교에 가려면 적어도 7시에는 기상을 해야하니 수면부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수업시간에 졸면 어떻게 되는지는 안봐도 비디오 입니다.
참고로 저희학교는 사립학교에 두발규정과 엄청난 체벌이 횡행했을정도로 입학할 때 부터 군기로 다잡은 학교였습니다.
이런식으로 무려 3년의 공부 끝에 고입선발고사를 치룬 학생들의 결과는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어서 다행인 친구들, 시험을 못쳐서 떨어진 친구들까지.. 이들의 운명은 기구하기 그지 없을 정도로 극과 극이었습니다.
붙은 학생들은 다행이겠지만 떨어진 학생들은 어떻게 되냐고요?
그냥 낙동강 오리알 신세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일찌감찌 원서가 마감되었고 인문계 역시 시험전에 다 마감되었으니 하위권 학교에서 추가모집을 하지 않는이상 이들은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 이외에는 그 어떤 학교도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못가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그 학교들은 모두 산간벽지에 있는 외딴 학교로 가야하고 집에서 그 학교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무려 1시간가까이 걸립니다.
대중교통편도 빈약합니다. 자차가 없으면 이 학교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기숙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버스도 자주다니는 편이 아니라서 여길 가게 되면 방학 때 까진 영원히 거기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학교 수준은 너무나도 낮아서 아예 실업계조차도 받아주지 못할정도의 꼴통학생들이 모인집단이라서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기란 너무나 혹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공부할바예 스스로 지옥에 가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단순히 공부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학교폭력으로까지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 공부를 떠나 학교생활 부터가 막막할 지경입니다.그래서 고입시험에 떨어진 친구들은 겨우얻은 추가모집으로 어렵게 들어가거나 그 마저도 떨어진 친구들은 정말로 고입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보게 됩니다.
이게 농담이 아니라 제가 1학년 때 부터 선생님들과 제 친구들사이에 오고갔던 말들입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검정고시 준비해야겠다는 한숨섞인 고민들을 나누었고 고입재수역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이 정말로 재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 우리는 극도의 긴장속에 3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내신점수를 더 받기 위해 0.5점의 가산점을 받고자 매년 8시간 봉사활동을 채워서 다녔고 체육시간 때 깜빡하고 체육복을 못챙겨오면 매질은 기본이고 감점1점이라는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로 자신의 고입 앞길부터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사소한 그 하나 때문에 내신이 감점되면 이것은 곧 자신의 고등학교 진학 당락부터 갈리게 되는 일이니 우리는 이 내신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중학교 3년을 보낸 저희들은 어떻게 되었냐구요?몇몇 학생들은 각자 등급에 맞춰서 인문계 고등학교 잘 들어간 반면 일찌감찌 이 정신나간 제도에 굴복하기가 싫어서 마이스터고등학교로 들어간 친구도 몇몇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 역시 내신은 준수하거나 높은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저처럼 이도저도 아닌 중위권 학생들은 어찌어찌 자기 인생을 담보로 고입에 도전해서 1순위학교는 아니더라도 2,3 순위라는 그저그런 성적으로 고등학교 잘 들어간 친구들이 있는 반면 도저히 이 시험을 잘 볼 용기가 나질않아 일찌감찌 공고와 상고로 들어간 학생들도 상당수였습니다. 이들은 저와 학원에서 정말 자살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혹독하게 굴리면서 매질당하고 온갖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면서 함께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보다 내신과 석차도 좋았고 학원에선 늘 이 친구들에게 비교만 당하며 지냈는데 결국 이들은 공고, 상고를 갔고 끝내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인만큼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죠.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고 대학간 저보다 더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저런 운명을 맞이할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험도 망치고 입시도 떨어진 몇몇 친구는 정말로 외진학교라도 갔으나 적응을 하지못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았습니다.자신은 남들보다 평범하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한이었답니다. 1순위 학교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중위권 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웠다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패기로 그런 원서를 썼는지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너무나도 화가나고 서글퍼서 잠도 오지 못했다고, 어떻게 그깟 시험하나 때문에 내 인생이 이리 망가졌냐면서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홀로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한 친구가 저에게 수화기너머로 그런말을 하더군요.너무나도 안타깝고 서글펐습니다.
중학교 때 고입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상담해준 친구였는데 그래도 안정권으로 원서를 내야하지 않겠냐고 조언했지만 자신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1위학교를 지망했고 결과는 참담했더랬죠. 너 말을 듣지 않았던게 너무나도 후회된다고 말했습니다.3년만에 전해들은 친구의 소식은 당일 보았던 수능조차 까마득하게 잊을정도로 그 충격이 컸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라서 학교, 학원선생님에게 죽도록 맞은적이 많았고 그래도 내신을 살리고자 지구대, 소방서, 양로원, 복지기관,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봉사활동을 뛰어다녔고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저희 부모님은 저를 위해 비싼돈 들여가며 학원이라도 내보냈지만 결과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밖에 남질 않았습니다.학원 선생님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너무커서 처음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자살충동이라는걸 처음 느끼고 나니 정말 무서울게 없었습니다.학교 끝나고 조그마한 교차로 모퉁이에서 학원차를 기다리는데 차들이 휑휑 지나다니는 도로를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니면서 대놓고 제발 나 좀 쳐가라 하는 식의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들이 빵빵거리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땐 왜 나를 치고가지 않았냐며 속으로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고 결국 학원차를 올라타면 제발 교통사고가 나길 빌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원에 도착하면 긴 한숨을 푹푹 쉬어야 했고 학원 선생님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과 폭행이 이루어지면 저는 그 날 마음속으로 오늘 당장 우리 집 옥상위에 뛰어내려야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하지만 다음 날 있을 할아버지 생신이 있어서 저는 뛰어내리질 못했습니다.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만큼은 꼭 챙겨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저는 살 수 있었고 마침 그 기간이 시험기간 중에 끼어있어서 그 날 하루만 학원을 빠지고 대구로 갔었는데 그 대구에 있었던 하루가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입니다.오랜만에 사촌누나를 보면서, 또 큰 아버지와 저를 아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서 저는 다음 날 학원에서 전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날의 하루가 떠올라서 도저히 뛰어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 날이 없었더라면 저는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그 만큼 저는 이 순간 정말로 죽고싶었던 심정이 강했습니다.
저녁시간도 1시간 밖에 주어지질 않는데 근처에 분식집까지 왔다갔다 하는데만 10분이나 걸리고 저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은 늘상 수제핫도그 하나로 끼니를 떼우거나 분식집까지 달려가서 라면 한 그릇을 급하게 먹거나 김밥을 포장해와서 학원에 가져다가 먹는게 다반사였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가지고 그걸 먹으면서 정말 처량하고 힘든 이 일이 언제 끝날까 하는 고민만 가득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났고 저는 일찌감찌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학교 공부가 이렇게 힘든데 이보다 더한 고등학교와 수능까지 준비하다가는 자살을 결심하기도 전에 스트레스와 화병으로 죽을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부모님도 저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결정하였고 저는 실업계 준비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마침 저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학교가 개교된다는 신문기사를 아버지가 우연히 읽으시고는 이 쪽으로 고등학교를 가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는 집과 너무나도 멀고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저에겐 탐탁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만 해도 합숙생활은 커녕 외박조차도 싫은 성격이었고 하루도 아니고 3년을 연고도 없는 그 먼 곳에서 살아야 하는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한 고집을 꺾을수만은 없었고 결국은 이 학교를 가게 되면서 그 길로 저는 제 인생이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평소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는 소심한 학생이었던 제가 말이 많아지고 시끄러운 이미지가 되었고 평소 집, 학교, 학원, 집 밖에 되질 않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 새로운 바깥세상을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가는 소중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터미널에 앉아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 관심없고 알지못했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경험과 자산 덕분에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모습이 180도 바뀌게 되면서 저는 처음으로 삶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 계기는 3월 모의고사였습니다.
더는 공부와 적을 두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3월 모의고사를 본 후 처음으로 시험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하나하나 아는 문제를 풀어가고 답을 맞춰보는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쉬는시간, 점심시간 내내 그 하루가 행복했었고 다시한번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야자시간 때도 친구들과 영어단어를 외우고, 그 날 수업했던 내용들을 복습하고 노트에 정리하는 저를 발견했고 함께 모든것을 동고동락하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덕분에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속에서 3년을 보내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이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저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바로 제 고등학교 동기들은 그 어느누구도 저처럼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중학교 내신 0,5점을 얻겠다고 봉사활동을 뛰지도 않았고, 비싼돈 들여가며 학원다니면서 중간, 기말고사에 목을 매지도 않았으며 그 누구도 중학교 시절 내내 구타를 당하면서 까지 시험점수 올리는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겁니다.그렇습니다. 제 고등학교 동기들은 모두 평준화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저는 그 날 처음으로 고교 평준화, 비평준화 제도가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성적이 높든, 낮든 어차피 뺑뺑이라 어느 고등학교를 가든 그게 운명이니 하며 다녔고 고등학교 서열도 없어서 낮은 서열의 고등학교 다닌다고 눈치보거나 손가락질 당할 일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평준화는 서열자체가 없는거니까요.
고입 시험을 망쳐서 재수를 하거나 검정고시를 봐야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일도 없고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학교 선생님들의 기출시험 유형을 분석하는 전력분석팀까지 꾸려가면서 내신 올리기에 급급한 사교육열도 없다는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졸도할뻔 했습니다.
지난 중학교 3년은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이 다 똑같이 고통받는거라고 해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텨냈는데 정말 잘 나가는 대도시 친구들은 새벽1시가 넘어서까지 학원에 갇히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학원생활을 했단 그런 거 한번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서 하나같이 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이는 대학교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오죽했으면 대학교 룸메이트가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소설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겠다며 정말 신기하게 들은 모양이었습니다.저는 이런 현실에 정말 화도나고 분에차서 며칠을 잠 못 이루었습니다.
정말 내가 피눈물을 흘려가며 공부한 지난 3년의 인생이 너무나 덧없게만 느껴졌고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면서 까지 내신에 목숨을 걸고 다리와 엉덩이에 피멍이 든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지워질 수없는 마음의 상처를 달고 공부해야만 했던 중학교 시절이 너무 화가나고 분에 찼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결국 실업계 고등학교를 택했던 제 친구들에게 차마 얼굴 한번 볼 낯이 없었습니다.너무 미안했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이 충격은 잠시 잊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그렇게 저는 남들처럼 똑같이 대학 입시준비하면서 수능까지 보았고 좋은 대학은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저의 하나뿐인 20대초반을 정말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은 더욱 빛이 났었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의 고통스럽고 비정상적인 중학교 3년을 잊을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제 친구들은 꿈과 희망을 잃었고 극심한 좌절속에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력이 끼칠 수 밖에 없는 10대 인생이 심각하게 꼬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이 현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어린나이가 아닐까요? 20대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수능? 까짓거 재수보면 그만입니다. 재수한다고 삼수한다고 4수한다고 이상하게 볼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이 망가지는것도, 꼬여지는것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힘들고 더 어려운 도전을 해낸만큼 박수치고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일이지요.
하지만 10대는 아닙니다. 17살은 정말 형편이 어려워 당장이라도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할 처지가 아니라면 대부분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대학을 안 가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는 있어도 고등학교를 안가고 자신의 길을, 그것도 17살이라는 나이에 그 혹독한 현실을 맞딱뜨리고 싸워나가기엔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그리고 그 제도는 지금 비평준화 제도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순 있겠으나 적어도 제가 살았던 이 동네는 그랬습니다.
심지어 저 바로 밑 중학교 후배들은 1순위 고등학교 지원해서 떨어진 학생만 30명이나 되었습니다.이들은 이런 가혹한 운명을 17살이라는 나이에 맞아야만 했고 고등학교 입학부터 앞길이 막혀버렸습니다.원하는 명문고에 가야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로인한 박탈감과 심리적 충격은 말할것도 없겠죠?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뻔한 위로와 별 같잖은 응원조차 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런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이 현실이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현실은 1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현재진행형 입니다.
1순위 명문고 동문들의 강력한 반발때문이라나 뭐라나요.. 워낙이 보수적인 동네인 만큼 이런 경직된 교육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지금 현재도 고입시험에 떨어져 그 어떤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는걸 여럿 들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중학교 3년내내 피눈물을 쏟아부으면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가 그 어떤 인문계 고등학교 조차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고도 정말 고등학교 비평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고등학교 의무교육과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말 이 제도를 계속해서 시행하는것이 옳은 것인지를 묻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