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삼순이 #3

독백2004.03.04
조회538

벙어리 삼순이 # 3

 


"야 이거 입어"

 

방으로 들어가 삼순이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아봤다. 차라리 승민이 녀석의 집이었더라면 여자옷
이 많았을 것이다. 녀석의 집에서 놀다간 여자들이 벗어 놓고 간 옷들. 분명 구석구석 쳐박혀
한달하고도 사흘 밤 낮을 찾아도 어디선가 스물스물 또 기어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내 방. 아니 내 집 어디에도 여자가 입을 만한 옷은 없었다. 게다가 난 일반인들이 여름이면 입
는 그 흔한 흰색 반팔 면티따위도 입지 않았기에 더더욱 삼순이에게 줄만한 옷이 없었다. 무슨
옷을 줘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중 그나마 가장 작은 사이즈의 와이셔츠를 찾았고, 그걸 삼순이에게 던져 주
었다.

 

"입어-"

 

삼순이는 멀뚱히 나를 보았고, 난 괜시리 애꿎은 소파를 한대 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방에서 나왔고, 삼순이는 그때까지도 옷을 갈아 입지 않았다.

 

"밤이니까 자야 할거 아냐. 갈아 입고 자야지. 그냥 그 옷 입고 잘꺼야? 횡단보도에서 뒹굴던
옷을?"

 

미안한 말이지만 완벽한 황보신우. 나에게도 몹쓸병 몇가지가 있었다. 여성기피증 뿐 아니라
결벽증도.

 

"난 내 옷, 내 물건들이 더럽혀 지는건 못보거든? 그러니까 그거 입어. 알았어?"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 들은건지 삼순이는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 뇌리
를 스치는 생각에 코웃음이 났다.

 

"아, 씻어야지. 저기가 욕실이야- 저기서 씻고 갈아 입어. 됐지?"

 

그러자 그제야 모든 문제가 해결 됐다는 듯 삼순이는 내가 준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물줄기 소리와 함께 욕실안이 시끌했다.

 

저녁 아홉시가 넘은 시간. 난 그때까지도 삼순이 때문에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먹지
못한건 삼순이도 마찬가지 였다.

 

"뭘 먹어야 하나."

 

일단은 삼순이가 씻어러 갔으니 잠깐 나갔다 와도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먹을 걸 샀다. 마트에서 이것 저것 보이는 데로 쓸어 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처음와보는 마트. 내가 없는 낮동안 큰아버지가 사시는 본가에서 일하는 집사아저씨가 청소를
했고, 먹을 음식을 사다 냉장고를 채워 놓았다. 때문에 난 마트나 백화점에 있는 식품코너에도
갈일이 없었다.

 

"이십 오만원입니다."

 

캐셔의 말에 지갑에 있던 골드카드 중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예. 맞습니다. 확인하시고 싸인해주세요-"

 

싸인을 하고 카드를 넣자 계산대 위에 쌓인 다섯묶음 정도의 봉지꾸러미가 보였다. 이렇게 많
이 산건가? 대충 쇼핑카트에 넣어 차가 있는 곳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
베이터에 오를때까지도 난 고생을 해야했다. 다섯묶음...

봉지를 문앞에 내려 놓고 다른 한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일단 두개를 안에 들여 놓고 나머
지 세개를 들고 들어왔다.

 

"후우-"

 

봉지를 펼치자 이런건 왜 샀을까 싶은 통조림에 평소 먹지 않던 음식 재료들까지 넘치게 들어
있었다. 황보신우 니가 장을 다보고. 한승민이나 김선호가 알면 엄청 웃어대겠군.

 

대충 냉장고 여기저기에 처박에 놓고는 삼순이를 찾았다. 거실 어디에도 그렇다고 방에도 없는
삼순이. 아직도 욕실에 있는 건가?

욕실로 걸어가 욕실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당연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삼순이.

 

"야- 너 거기있어? 있으면 물소리라도 내봐-"

 

안은 조용했다. 분명 문도 잠겨 있었고, 나간 흔적도 없었다. 뭐야?
설마 욕실에서 쓰러진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때문에 문 열쇠 꾸러미를 찾아 욕실문을 열었
다.

 

"너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해-?"

 

삼순이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근데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거야?

"누가 너한테 이딴거 청소하고 있으래? 다 씻었으면 나와야 할거 아냐-!"

 

물론 결벽증이 있는 내겐 삼순이의 행동이 충분히 당연한 거였지만 지금으로선 이깟 청소는 중
요한게 아니었다. 난 혹시나 욕실에서 쓰러진건 아닌지 매우 걱정을 했기 때문에!
내가 소리를 질렀음에도 삼순이는 마저 하던 욕실 청소를 다 끝내고야 욕실에서 나왔다.

 

"앉아-"

 

어느새 완성 되어 있는 식탁위의 음식들. 후훗. 난 못하는게 없는 천하의 황보신우라구!
그리고 난 그제서야 삼순이를 보았다. 정말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의 삼순이. 가장 작은 사이즈의
내 와이셔츠가 삼순이에게는 마치 짧은 원피스 같았다.

 

"저녁 먹자."

 

간단히 할 수 있던 걸 찾던 중 스파게티가 떠올랐다. 매우 간단한 음식.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삼순이는 내 옆에 앉아 한참동안 힐끔 거리며 내가 스파게티를 먹는 걸 보고 서야 포크를 천천
히 돌려 면을 감는 걸 시도했다.

 

"그냥 편한대로 먹어-"

 

한참을 돌려도 쉽게 포크에 감기지 않는 삼순이의 면. 바보야 그것도 기술이야. 아무나 하는 건
줄 알아?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편하게 먹으면 되지."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접시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빠른 속
도로 면을 퍼 먹기 시작했다. 입술 주위에 빨간 토마토 소스를 죄다 뭍혀가며...

 

"천천히 먹어. 누가 뺏어 먹어?!"

 

삼순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웃으며 혀를 쏘옥 내밀어 입술 주위를 빨아 먹었다.

 

"맛있어?"

 

삼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거 아니야? 내가 만든건데? 그리고 핸드폰이 울려왔다.


누구지?

"누구야-"
"나 승민이랑 같이 왔는데 올라 가두 돼?"
"김선호. 뭐 그런걸로 전화를 다 하냐? 올라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소파에 던지고 식탁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삼순이가 눈에 들어왔다.
큰일이었다. 삼순이가 우리집에 있는 거 승민이도, 선호도 모르는 일이었다.

 

"야. 너 다 먹었어? 아니 그만 먹어. 빨리 일어나."

 

삼순이는 다시금 그 눈으로 멀뚱거리며 날 보고 있었다.

 

"바보야 일어나라구. 빨리-!"

 

난 여성기피증이고 뭐고 그딴건 이미 잊고 있었다.삼순이의 손목을 잡고 허둥지둥 방안에 넣었
다가 다시금 욕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현관에 있는 삼순이의 신발이 보였다. 때문에 신발을 대
충 욕실안에 집어 던지고 문을 쾅 닫았다.

 

"야. 너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오면 안돼? 너 내가 나오랠때까지 나오지 마. 알았어?"

 

대답을 할리 없었다. 어쨌든 들을 수는 있으니 내 말대로 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얼른 식탁
으로 달려와 포크와 접시들을 대충 챙겨 식기세척기에 쳐 넣었다.

 

-딩동-

 

"열려 있어 들어와-"

 

그리고 아주 여유있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 척을 했다.

 

"뭐해? 티비보고 있었어?"
"어- 야. 그냥 들어오면 되지 뭐 전화를 다하고 오냐?"
"혹시나 집에 없을까 해서 그랬지."
"그래? 앉아-"

 

승민이 녀석의 얼굴이 밝지 못했다.

 

"야. 한승민. 너 아까 그일때문에 삐졌냐?"
"몰라 임마."
"아 자식- 그깟일로 진짜-"
"그깟일? 그딴 벙어리 기지배 하나때문에 내가 그 사람 많은데서 개망신을 당했는데-?"
"개망신까지야- 아 자식- 알았어. 내가 오버했어. 됐지?"
"몰라 임마-"
"삐지긴 자식-"

 

그제야 화가 풀린듯 소파에 앉았다. 근데 이자식들이 갑자기 여긴 왜 온거야? 그것도 함께.

 

"병원에서부터 계속 참았는데- 나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다."
"뭐?"
"화장실- 어디였지? 하도 오랜만에 왔더니 생각도 안나네-"
"야. 김선호-"
"어?"
"고, 고장났어. 비데가 고장이 나서 안돼. 우리집 욕실 수리중이야."
"뭐? 그럼 넌 어떡했어?"
"아. 오늘 갑자기 그래서 그래- 내일 당장 고친댔으니까 나가자-"
"됐어. 좀 참지 뭐. 뭐 화장실 하나때문에 나가-? 오랜만에 너네집에 왔는데 한잔하자-"
"집에서 한잔은 무슨- 야 나가자 나가-"

 

난 선호와 승민이의 손을 잡아 끌었다. 괜...찮겠지? 가볍게 한잔하고 들어오면 괜찮겠지 싶었
다. 게다가 밖에서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알아서 나오겠지 싶었다.

 

우린 아까 잠깐 다녀갔던 클럽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선호까지 뭉쳐 한잔을 했다.

 

"매일 바쁘신 의학박사 김선호씨 한잔해야지?"
"황보신우씨- 왜 이러실까?"
"야- 니가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랑 놀아준적 있냐? 오늘 미쳐보자-"

 

승민이가 한 술 더 떠 우린 한참동안 술을 퍼 붓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마셔댔다. 도대체
양주 몇 병을 마신거야? 조명이 있음에도 어두운 분위기의 이곳 클럽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기분에 취했다.

 

"그러니까 임마- 너네 엄마 아빠 계신 미국에서 있지. 뭐하러 이깟 나라에 와서 있냐?"
"미국은 뭐 얼마나 대단한 나란데? 그리고 우리나라가 왜 이깟 나라야?"
"이야- 김선호씨 미국생활 오래하시더니 고국이 그렇게 그리웠나?"
"그러는 너야 말로 회장님 계신 프랑스로 가지 왜 여기있는건데?"
"훗. 거기가서 노인네랑 뭐하라고? 노인네 수발이나 들으라고?"
"회장님이 왜 노인네야? 프랑스에서도 회장님은 무시 못한다구-"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 자식. 취했나보네- 그만 마시자-"
"...... 씨...발... 죽는 줄 알았어..."
"뭐?"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또 내 앞에서... 죽는 줄 알았다구..."

 

눈물이 흘렀다. 낮에 있었던 일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사고당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에...

 

"한승민- 가자! 신우 취했다-"
"어? 알았어-"

 

그때까지도 우릴 버려둔채 처음만난 여자의 허리를 안고 있던 승민이 자식이 내게 다가왔다.

 

"만지지마-"
"야? 왜 그래?"
"그 손으로 만지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임마- 이자식 술에 취한것도 아니네-"

 

여자가 내 몸을 만지는 것도 싫었지만 여자를 만지던 손으로 날 만지는 것도 싫었다. 때문에 승
민이는 나와 함께 있을 때면 그 좋다는 여자들도 보기만 할뿐 여자를 안거나 하지 않았는데 오
늘은 선호가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신이 난 듯 서너시간동안 여자를 너댓은 바꿔가며 웃고
있었다.

 

"안되겠다. 가자-"
"안가-"
"안가면 어쩌겠다는 거야?"
"그냥 둬. 그냥 내버려둬..."

 

한참을 그렇게 바에 기대어 있었다. 승민이는 함께 있던 여자와 나간건지 어디서도 그녀석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던 선호가 바텐더와 함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잠시후 내눈엔 익숙한 건물이 들어왔다. 내 오피스텔. 선호가 대리운전에게 돈을 주자 녀석은
인사를 하고 갔고, 나와 선호는 한참동안 차안에 그대로 있었다.

 

"옛날일...생각났어-?"
"...으응..."
"이제는... 잊을때도 됐는데... 박사라고... 의사라고... 너한테 도움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
"엄마잖아... 어쩌면... 니가 엄마 자신을 잊을까봐 그게 서운해지셔서 그러는건 아닐까...
더이상 악몽으로만 생각말고... 좀 더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나마 마지막까지 함
께 있었던 사람이 너였기때문에 행복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건가?"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호는 내게 친구였고, 형이었고, 엄마였고, 아빠였다.

 

"들어간다-"
"그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엘리베이터안에 있자 동이
트는지 붉고 푸른 빛이 돌기 시작했다. 날이... 밝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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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직전 얼른 글하나를 올리고...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