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파란 하늘을 보면서 빨래를 개다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 컴퓨터를 켰어요. 어려서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으셨어요 아빠는 잦은 폭력과 폭언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고 엄마는 가난한 살림에도 하나뿐인 자식인 저를 잘 키워보려고 안간힘을 쓰셨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이혼하실 것을 권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엄마는 늘 이혼 앞에 작아졌어요 부업을 하고 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봐도 자식을 데리고 살기는 버거울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전 늘 저를 버리지 않는 엄마가 고마웠어요 그래서 이악물고 공부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고3 겨울방학 죽을힘을 다해 돈을 벌었고 간신히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어요 그 때부터 대학 졸업때까지 매일 일을 했어요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등록금을 내면 다음 월급 때까지는 천원짜리 김밥으로 하루를 살아야했어요 아빠한테는 아쉬운 소리 하기 싫었고 엄마는 마음 아플까봐 걱정되어서 배고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어요 정말 씩씩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결국 좋은 직장에 취직까지 했어요 아끼고 아꼈던 돈으로 엄마에게 좋은 옷, 비싼 악세사리 선물도 했고 미웠지만 그래도 돈 버느라 고생했던 아빠에게도 비싼 옷을 사드렸어요 늘 착하고 모범적인 딸이었기에 이젠 내가 실질적인 가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행히 아빠는 더이상 엄마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폭언은 계속되었고 엄마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했어요 좋은 시댁, 좋은 남편 덕에 저는 행복해졌고 엄마의 불행이 점점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다 둘째를 낳고 육아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남편을 설득했고 다행히 남편은 제 뜻을 따라줬어요 엄마는 아빠 집에서 나와 우리 집에 살게 되었고 애 둘을 키워주셨죠 저는 휴직없이 직장에서 20년 넘게 근속할 수 있었고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업무도 기꺼이 해냈어요 남편에게 너무 고마워서 집에서는 정말 손하나도 까딱하지 않도록 물조차도 떠다 줄 정도로 잘 해주었고 남편은 집안일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웠지만, 그래도 애들에게는 좋은 아빠, 저에게는 좋은 남편으로 있어주었어요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엄마는 연세가 들어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저는 직장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감당하면서도 이 정도 삶이 제게 허락된 것을 늘 감사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몇 년전 엄마에게 치매가 왔어요 그 동안의 삶이 고통스러웠는지 엄마의 치매는 아이들에 대한 폭언의 형태로 나타났어요 아이들은 할머니를 무서워하게 되었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혼까지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남편은 함께 극복하자고 했지만 여태 참아준 남편에게 이런 짐을 조금이라도 더 지게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어요 자살도 생각해봤지만 내가 없어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군요 엄마의 치매가 심해질수록 저는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더 힘들어졌고 정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을 때 다행히 보호센터에 다니실 수 있게 되었고 아빠도 예전 일을 후회하시고 엄마에게 잘 해주시게 되어 조금이나마 삶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어요 그런데저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제 짐을 같이 나눠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네요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상담 치료는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어요 하루하루 힘내보려 하는데도 아무도 없이 혼자 울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조차 여의치가 않네요 오늘 아침에도갑자기 울컥해서 미칠 것 같은데 일한다는 핑계로 컴퓨터를 하면서 이렇게 글로 하소연해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이야기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지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면우울한 얘기 읽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익명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4
처음 글을 써보네요
어려서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으셨어요
아빠는 잦은 폭력과 폭언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고
엄마는 가난한 살림에도 하나뿐인 자식인 저를 잘 키워보려고 안간힘을 쓰셨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이혼하실 것을 권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엄마는 늘 이혼 앞에 작아졌어요
부업을 하고 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봐도
자식을 데리고 살기는 버거울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전 늘 저를 버리지 않는 엄마가 고마웠어요
그래서 이악물고 공부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고3 겨울방학 죽을힘을 다해 돈을 벌었고
간신히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어요
그 때부터 대학 졸업때까지 매일 일을 했어요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등록금을 내면
다음 월급 때까지는 천원짜리 김밥으로 하루를 살아야했어요
아빠한테는 아쉬운 소리 하기 싫었고
엄마는 마음 아플까봐 걱정되어서 배고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어요
정말 씩씩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결국 좋은 직장에 취직까지 했어요
아끼고 아꼈던 돈으로 엄마에게 좋은 옷, 비싼 악세사리 선물도 했고
미웠지만 그래도 돈 버느라 고생했던 아빠에게도 비싼 옷을 사드렸어요
늘 착하고 모범적인 딸이었기에 이젠 내가 실질적인 가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행히 아빠는 더이상 엄마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폭언은 계속되었고
엄마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했어요
좋은 시댁, 좋은 남편 덕에 저는 행복해졌고
엄마의 불행이 점점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다 둘째를 낳고 육아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남편을 설득했고
다행히 남편은 제 뜻을 따라줬어요
엄마는 아빠 집에서 나와 우리 집에 살게 되었고 애 둘을 키워주셨죠
저는 휴직없이 직장에서 20년 넘게 근속할 수 있었고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업무도 기꺼이 해냈어요
남편에게 너무 고마워서 집에서는 정말 손하나도 까딱하지 않도록
물조차도 떠다 줄 정도로 잘 해주었고
남편은 집안일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웠지만, 그래도 애들에게는 좋은 아빠, 저에게는 좋은 남편으로 있어주었어요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엄마는 연세가 들어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저는 직장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감당하면서도
이 정도 삶이 제게 허락된 것을 늘 감사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몇 년전 엄마에게 치매가 왔어요
그 동안의 삶이 고통스러웠는지
엄마의 치매는 아이들에 대한 폭언의 형태로 나타났어요
아이들은 할머니를 무서워하게 되었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혼까지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남편은 함께 극복하자고 했지만
여태 참아준 남편에게 이런 짐을 조금이라도 더 지게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어요
자살도 생각해봤지만
내가 없어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군요
엄마의 치매가 심해질수록
저는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더 힘들어졌고
정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을 때
다행히 보호센터에 다니실 수 있게 되었고
아빠도 예전 일을 후회하시고 엄마에게 잘 해주시게 되어
조금이나마 삶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어요
그런데저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제 짐을 같이 나눠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네요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상담 치료는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어요
하루하루 힘내보려 하는데도
아무도 없이 혼자 울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조차 여의치가 않네요
오늘 아침에도갑자기 울컥해서 미칠 것 같은데
일한다는 핑계로 컴퓨터를 하면서
이렇게 글로 하소연해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이야기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지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면우울한 얘기 읽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익명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