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李祘(이산 1752~1800)은 타고난 학자다. 그는 조선의 군왕 중 가장 뛰어난 학자였으며, 신하들의 스승이었고, 백성들의 현명한 군주였다. 그는 조선이 원하던 진정한 士였다. 오늘날 정조에 대한 평가, 그 밖의 것은 여러 권의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진실이든 혹은 거짓이든... 그러나 학자로써의 면모는 그와 관련된 비장한 궁중사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는 학자 정조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특히 그의 공부 방법에 대해. 치열했던 정조의 공부 방법을 따라잡아 우리도 "진정한 學人" 이 되어 보자.... 1. “하루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 ①공부하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다. 정조는 지나치게 학문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과중한 업무에 더한 지나친 공부. 사실 말년의 정조는 이러한 격무와 공부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안경없이는 책을 볼 수 없었으며, 담배도 많이 피웠다 한다.) 6월에 사망한 정조는 이미 1월에 중요한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서 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이 없는 정조를 보고 신하들은 지나치게 학문에 정력을 쏟지 말 것을 간언한다. 그러나 정조는 “나 역시 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다”.(<홍재전서> 중에서)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을 가져본다. 과연 공부를 하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는가... ②학문의 생활화 “학문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날마다 쓰는 것으로 이 학문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옷 입을 때, 밥 먹을 때, 이 모두가 하나하나 학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학문이라 하면 어려운 일로 알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홍재전서> 중에서) 참으로 이상하게.... 공부는 어렵다. 그러나 정조에게 공부는 어려운 것이 아닌 일상과 같은 것이었다. 옷 입는 것, 밥 먹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움. 이는 학문을 좋아하는 경지를 넘어선 학문과의 혼연일체를 의미한다. ③부단한 노력 진부한 말이지만, 학문에 대한 그의 노력은 아낌이 없었다. "매양 눈 오는 밤이면, 달빛에 비추고 언 붓을 입김으로 녹이며 공부하는 가난한 선비를 생각하고는 스스로를 일깨웠다." (<日得錄> 중에서) "내가 일찍이 독서를 하다가 새벽이 되어 신기가 흐트러지고 졸음이 오려 하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에 졸음은 사라지고 청명이 되살아나 본 마음을 되찾았다." (<日得錄> 중에서) 정조는 대입시 공부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쉼 없이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2. 정조의 노하우 ①책을 읽은 후에는 기록을 해두자. 정조에게는 훌륭한 독서 습관이 있었다. <讀書記>라는 비망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독후감 공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줄거리를 간단히 적은 독후감은 물론 아니다. 그는 이 <독서기>에 어려서부터 읽었던 모든 책을 經史子集으로 분류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다. 분류대로 각 책의 제목과 지은이를 적고,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상세히 주를 달고, 끝으로는 읽은 해와 비평을 적어 넣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정조가 아니다. 한가할 때면 이것을 펼쳐 보아 반성의 기회로 삼았다하니,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②방법이 중요하다. 항상 듣는 이야기이다. 24시간을 책상에 앉아있으면 무얼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이에 정조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精察明瓣(정찰명판). 정밀하게 살피고 명석하게 판단하라. *體貼心身(체첩심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공부를 하라. (<日得錄> 중에서) 3. 오늘날 적용하기(<日得錄> 중에서) ①“옛것을 배움으로써 성인이 이룩하여 놓은 정미한 학문의 세계를 엿본다.” 기성의 학문은 우리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의 축적없이 새로운 배움이 이어질까. 이 문장은 한마디로 온고지신에 대한 글이다. 옛 학문을 깊이 궁구하여 그 정수를 터득하라. ②“널리 인용하고 명쾌하게 분변하면 천하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다.” 이는 정조의 정치 스타일이기도 했다. 매사에 신중하여 어떤 일이든 사태를 꼼꼼히 분석하고 난 후, 계획을 세워 행동에 옮기는... 정조는 모든 일에 조용히 대처하였고, 반드시 학문적으로 뒷받침을 받아 일을 처리하였다. 그가 추구한 "右文정치" 즉, 학문정치야말로,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또 종합할 수 있었던 이와 같은 창조적인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③“호방한 글을 짓고 뛰어난 재주를 드러내어 文苑에 참여한다.” 학문을 마쳤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라. 학문적으로 뒷받침이 된다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써(士로써) 자신의 구실을 다하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정조의 학문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조는 신하들의 스승이었다. 그 자신이 그렇게 자부하였다. 군왕을 위한 경연 자리는 정조라는 군주 앞에 신하들을 위한 강연 자리로 바뀌었고, 그들은 숙제를 해오느라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물론 제대로 해오지 못할 경우 불호령이 내려졌다. 대충해 올 수도 없는 것이 정조는 이미 그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만백성 위의 君師로 자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조의 학문관을 다음의 짧은 명언으로 요약하겠다. "독서란 많이 쌓이고 나서 조금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홍재전서> 중에서) 단언컨대, 이는 학문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내용출처 : [직접 서술] 직접 서술참고-조선후기지성사, 정옥자
조선의 왕이자, 학자였던 정조의 공부 방법
그는 조선의 군왕 중 가장 뛰어난 학자였으며,
신하들의 스승이었고, 백성들의 현명한 군주였다.
그는 조선이 원하던 진정한 士였다.
오늘날 정조에 대한 평가, 그 밖의 것은 여러 권의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진실이든 혹은 거짓이든...
그러나 학자로써의 면모는
그와 관련된 비장한 궁중사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는 학자 정조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특히 그의 공부 방법에 대해.
치열했던 정조의 공부 방법을 따라잡아
우리도 "진정한 學人" 이 되어 보자....
1. “하루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
①공부하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다.
정조는 지나치게 학문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과중한 업무에 더한 지나친 공부.
사실 말년의 정조는 이러한 격무와 공부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안경없이는 책을 볼 수 없었으며, 담배도 많이 피웠다 한다.)
6월에 사망한 정조는 이미 1월에 중요한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서 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이 없는 정조를 보고 신하들은 지나치게 학문에 정력을 쏟지 말 것을 간언한다. 그러나 정조는 “나 역시 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다”.(<홍재전서> 중에서)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을 가져본다.
과연 공부를 하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는가...
②학문의 생활화
“학문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날마다 쓰는 것으로 이 학문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옷 입을 때, 밥 먹을 때, 이 모두가 하나하나 학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학문이라 하면 어려운 일로 알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홍재전서> 중에서)
참으로 이상하게.... 공부는 어렵다.
그러나 정조에게 공부는 어려운 것이 아닌 일상과 같은 것이었다.
옷 입는 것, 밥 먹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움.
이는 학문을 좋아하는 경지를 넘어선 학문과의 혼연일체를 의미한다.
③부단한 노력
진부한 말이지만, 학문에 대한 그의 노력은 아낌이 없었다.
"매양 눈 오는 밤이면, 달빛에 비추고 언 붓을 입김으로 녹이며 공부하는 가난한 선비를 생각하고는 스스로를 일깨웠다." (<日得錄> 중에서)
"내가 일찍이 독서를 하다가 새벽이 되어 신기가 흐트러지고 졸음이 오려 하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에 졸음은 사라지고 청명이 되살아나 본 마음을 되찾았다." (<日得錄> 중에서)
정조는 대입시 공부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쉼 없이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2. 정조의 노하우
①책을 읽은 후에는 기록을 해두자.
정조에게는 훌륭한 독서 습관이 있었다.
<讀書記>라는 비망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독후감 공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줄거리를 간단히 적은 독후감은 물론 아니다.
그는 이 <독서기>에 어려서부터 읽었던 모든 책을
經史子集으로 분류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다.
분류대로 각 책의 제목과 지은이를 적고,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상세히 주를 달고,
끝으로는 읽은 해와 비평을 적어 넣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정조가 아니다.
한가할 때면 이것을 펼쳐 보아 반성의 기회로 삼았다하니,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②방법이 중요하다.
항상 듣는 이야기이다.
24시간을 책상에 앉아있으면 무얼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이에 정조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精察明瓣(정찰명판). 정밀하게 살피고 명석하게 판단하라.
*體貼心身(체첩심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공부를 하라. (<日得錄> 중에서)
3. 오늘날 적용하기(<日得錄> 중에서)
①“옛것을 배움으로써 성인이 이룩하여 놓은 정미한 학문의 세계를 엿본다.”
기성의 학문은 우리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의 축적없이 새로운 배움이 이어질까.
이 문장은 한마디로 온고지신에 대한 글이다.
옛 학문을 깊이 궁구하여 그 정수를 터득하라.
②“널리 인용하고 명쾌하게 분변하면 천하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다.”
이는 정조의 정치 스타일이기도 했다.
매사에 신중하여 어떤 일이든 사태를 꼼꼼히 분석하고 난 후,
계획을 세워 행동에 옮기는...
정조는 모든 일에 조용히 대처하였고,
반드시 학문적으로 뒷받침을 받아 일을 처리하였다.
그가 추구한 "右文정치" 즉, 학문정치야말로,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또 종합할 수 있었던
이와 같은 창조적인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③“호방한 글을 짓고 뛰어난 재주를 드러내어 文苑에 참여한다.”
학문을 마쳤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라.
학문적으로 뒷받침이 된다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써(士로써)
자신의 구실을 다하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정조의 학문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조는 신하들의 스승이었다.
그 자신이 그렇게 자부하였다.
군왕을 위한 경연 자리는 정조라는 군주 앞에 신하들을 위한 강연 자리로 바뀌었고,
그들은 숙제를 해오느라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물론 제대로 해오지 못할 경우 불호령이 내려졌다.
대충해 올 수도 없는 것이 정조는 이미 그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만백성 위의 君師로 자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조의 학문관을 다음의 짧은 명언으로 요약하겠다.
"독서란 많이 쌓이고 나서 조금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홍재전서> 중에서)
단언컨대, 이는 학문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내용출처 : [직접 서술] 직접 서술참고-조선후기지성사, 정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