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안 내는 여친 글의 여자친구입니다

ㅇㅇ2021.11.12
조회30,417
어제 남자친구와 오래 얘기를 나눴어요 남자친구가 이곳에 글을 올렸다는 걸 들었고 오늘 아침에서야 천천히 댓글을 다 보았네요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봤을 줄 몰랐어요 물론 글을 쓴 거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저도 모르는 게 있으면 지식인에 물어볼 때도 있고 그때까지 혼자 끙끙대는 것보단 나았겠지 생각하니까요
덕분에 남자친구가 제게 말을 꺼낼 계기가 됐고 저도 이제까지 남자친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됐어요
다만 제 성격이나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댓글을 보고 몇가지 더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 남자친구가 아닌 제가 글을 남겨요 글이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긴 에피소드 하나 본다 생각하시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우선 저와 제 남자친구는 1살 차이예요 고등학교 때 제가 2학년, 남자친구가 1학년일 때 동아리 부장과 신입으로 만났어요 후배들 보면 마냥 귀엽잖아요 남자친구가 그중에서도 밥 사주고 싶게 싹싹하게 구는 후배였어요 제가 졸업할 때 남자친구가 제게 꽃다발 주면서 사진 한 장 찍고 간 뒤로 생일이 뜨면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식으로 간간히 연락만 이어졌어요 남자친구가 졸업하고서야 제게 만나자 연락을 해왔고요 그 뒤로 1년 정도 더 지나고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껏 사귀고 있어요

남자친구가 이번에 말을 꺼내고서야 제가 화를 참고 카운트 하던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려줄 수 있었네요 저는 남자친구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짐작도 못했어요.. 화를 참은 게 아니라 애초에 화가 난 적이 없었거든요 애정표현도 안숨기고 많이 한다고 생각해서 남자친구가 제가 자기를 안사랑하나 고민까지 했다는 거에 많이 놀랐어요

남자친구가 몇가지 글에 빼놓은 내용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자친구 태도예요 글에서는 불만이 있으면 따박따박 말하는 것처럼 썼지만 남자친구는 제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에요 글에서처럼 몇 안 되는 불만을 말할 경우에도
"ㅇㅇ아, 나는 너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같은 때에서는 너가 ~~해줬음 좋겠어"
이렇게 말해줘요 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저 몇마디 하는 거에도 자기가 되려 미안해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해요 저는 바로 제 행동 곱씹고 아차 싶은 거죠 이 과정에서 제가 눈을 굴린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남자친구가 이미 제 잘못을 말해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고까지 말해주니 저는 응 미안해, 내 잘못 맞아 대답하고 다시 안하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한 번은 둘이서 낮에 파전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어요 생수가 아니라 주전자에 찻물이 나오는 곳이었고 뜨거워서 컵에 따라놓고 식혔어요 그러다 어린애가 지나가다가 남자친구 컵을 쳤고 아이는 손에 물이 닿고 남자친구는 옷이 다 젖은 상황이었어요 저는 아이 먼저 보여서 손 괜찮냐 묻고 아이 엄마까지 와서 시끄러워지니 괜찮다고 보냈고요 그러고 나서야 남자친구 상태는 괜찮은지 살폈어요
남자친구는 자기도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다만 제가 남자친구 대신 상황을 끝낸 건 아닌 것 같다 얘기를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었어요 그렇구나, 미안하다 사과를 했어요
이제서야 남자친구와 얘기를 해보니 남자친구는 그날 저녁에 조금 후회를 했다고 해요 뜨거운 물이었고 아이였으니 제가 아이 먼저 챙길 수도 있지, 하고요 그러면서 제가 정말 한 번도 반박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까, 고민까지 하게 된 것 같아요

글에서는 제가 화를 안내서 고민이라고 쓴 탓에 남자친구가 화가 많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남자친구는 제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화를 안내는 편이에요 호구나 물렁한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는 되게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여요 저만큼이나 무뚝뚝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아닌 것은 아니다 딱 자르고요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가 부장을 물려받고 신입생들이 남자친구가 친절한 줄 알고 들어왔다가 일 많고 봐주는 거 없으니 나갔다고 할 정도예요 그 성격에 저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겨우 말할 때조차 쩔쩔매는 걸 보니 저도 바로 사과하는 거였어요 오죽하면 말했을까 싶었거든요

댓글에서 제가 회피형이라는 내용이 많았는데 저도 회피형이 무엇인지 알고 저는 상황이 다르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저는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반박 하는 편이에요 가족이나 친한 친구, 남자친구한테나 실없이 장난치고 놀지 밖에서는 칼같다, 철벽이라는 소리까지 들어봤네요

수험생 때 제게 매일 전화해서 힘들게 하던 친구는 꽤 오랜 친구였어요 중학교 친구였고 고등학교는 다른 곳에 갔지만 계속 연락하고 만나는 애였어요 이 친구 스타일이 힘든 걸 쏟아내는 편이었고 제가 그걸 들어주는 편이었어요 그게 수험생 때까지 이어지니 저도 힘들어서 전화 할 때마다 나 요즘 힘들어서 다른 사람 힘들다는 거 신경 못쓰겠다 시험 성적 떨어졌다고 들으면 덩달아서 기운 빠진다, 얘기 했어요 그 친구는 하루 이틀 지나고서 다시 우울하다 힘들다 반복했고요
여름 방학 끝나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길게 장문으로 문자를 보냈어요 나도 너무 힘들어서 너한테 신경을 못쓰겠다, 몇번이나 얘기했는데 왜 내 말을 안 들어주냐 이런 식으로요 답장은 안왔어요 한 일주일 연락이 없었고 편하다 싶을 때쯤 눈치 보면서 다시 전화를 걸더라고요 그때 제가 차단했고요
번호 바꾼 이유에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저 친구 때문도 맞아요 차단 당한 걸 알고서는 제 번호를 아는 애 통해서 화를 내더라고요 지나가다 얘기한거라 저 일을 남자친구가 여태 기억하고 있을 줄도 몰랐네요

이번에 남자친구와 얘기하면서 오히려 저 때문에 쌓아둔 건 없냐 물었어요 다행인 게 자기는 그렇게 조심조심 얘기하면서도 아니다 싶을 때는 바로 얘기 한 거라네요 오히려 자기가 쩔쩔맸다는 거에 자각이 없어 보였어요

책 연락에 대해서도 댓글이 많던데 저희 둘 다 연락에 크게 집착하는 편이 아니에요 한 명이 카톡을 보내놓으면 읽는 대로 답장하는 식이에요 남자친구가 지금 운동가려고~ 톡을 보내놓으면 저는 확인하는 대로 잘 다녀와~ 이런식으로 답장을 해요 제가 책 읽기 전에 오늘은 어떤 책 읽어보려고~ 톡을 남기면 남자친구도 확인하는 대로 짧게 답장을 남겨놓아요 뭔가 하나에 집중할 때는 서로 저렇게 표시를 하고 그동안에는 전화를 안걸죠 전화는 정해진 시간대 없이 한 번 하면 꽤 오래 하고요
서로 맞추면서 재밌게 지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남자친구가 제게 많이 맞춰주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네요 평소에는 남자친구가 쫑알쫑알 얘기하면 저는 듣는 걸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술 한 잔 하면서 남자친구랑 오래오래 얘기했어요

댓글 보면서 제가 소시오패스다, 가정불화가 있다 하는 글이 많은 걸 보고 놀랐어요 글에는 아주 단편적으로만 적혀 있지만 어쨌든 제 성격이고 남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둘 다 아니라는 걸 말씀드려요
저희 집은 아빠가 엄마보다 5살이 많으세요 근데 엄마한테 대장님~ 하면서 노셔요 음.. 이거면 집안 분위기는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네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남자친구에게 크게 화난 적이 없어요 물론 어느 순간 응? 하고 남자친구 행동이 걸린 적은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그 행동을 다시 하지는 않더라고요 사소한 걸 굳이 지적해서 싸우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겐 그게 더 피곤하거든요 남자친구랑 얘기하면서 제게 정말 불만이 없느냐 확인하더라고요 굳이 말해야 하나 싶었던 것들 말해줬어요 한 번은 아침부터 만난 적이 있는데 바로 애버랜드로 절 데려간 적 있었어요 아는 사람에게 표 받았다면서요 미리 약속된 게 아니라서 당황했는데 어차피 그날 청바지에 단화 신었고 재밌게 놀았으니 불만은 없었어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말하자니 너무 재밌게 놀았고 넌지시 오늘 구두 신었으면 클날 뻔 했다고만 말했었네요 남자친구가 지금에서야 듣고는 헉, 놀라더라고요 자기가 왜 그랬지 하면서요

제 성격이든 저희 상황이든 댓글 다신 분들이 생각했던 것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죠 열심히 조언했는데 자기들끼리 알아서 풀었네 할 수도 있고요 글을 보고 어떤 의도로 댓글을 써주셨든 간에 좋은 쪽으로 다다랐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감사해요 그럼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러고 보니 mbti 얘기도 많았는데 저는 intp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