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남편이란 어떤 남편인가요

jdhwkandh2021.11.14
조회1,929
저희 남편은 사고 안치고 허튼 돈 안쓰고
술담배 안하고 친구도 1년에 한두번 만날까 말까 하는 남자입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해서 가정적인 스타일도 아니에요.

저는 장보기와 요리가 취미고 별명이 맥가이버인 친정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입니다. 전업인 엄마보다 직장인이던 아버지가 손끝이
야무져 뭐든지 뚝딱 해치우고 부지런하셨어요.
아버지들은 다 그런줄 알고 자랐지만 살아보니 주변 아버지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아가며 컸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저는 정 반대의 가정환경에서 자란 남편을 맞아버렸습니다. 시아버님은 주방 너머로 들어가는 적이 없고
가스불 한 번 안켜시고 냉장고 문도 안 여세요...
뭐든시 시어머니가 대령해드려야 하는 스타일이세요.
시어머니도 어렵게 얻은 아들 손에 물 하나 안묻게 키우셨더라구요. 시누 왈 남편이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누나들 있는데 니가 왜하냐며 못하게 하셨대요. 덕분에(?)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이 자라났어요. (어리석게도 이정도의 집안환경인줄을 모르고 결혼했습니다)

연애할 때는 그냥 좀 뭐든지 어설프고 해도 애교로 넘어갔어요.
그런데 맞벌이로 아이까지 키우다 보니 애교로는 도저히 안 넘어가더라구요. 안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못하는게 너무 많아 결국은 제가 모든 걸 합니다. 남편은 뭘 해도 시원찮거든요...

남편은 운전도 안합니다. 시댁식구 통틀어 저 혼자 운전해요.
우리 가족끼리는 물론 시댁식구와 어딜가도 제가 기사노릇합니다.
다같이 고깃집에 가면 제가 고기를 굽습니다(남편이 너무 못구워서 그 고긴 먹기가 싫어요) 집안의 모든일은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 스스로 나서서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말을 해야 하다보니 그냥 귀찮아서 제가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쌓이다보니 너무 힘듭니다. 1인분도 못하는 남편을 만나 1.5인분을 하며 살아가다보니 과부하가 걸려서인지 지치고 혼자있고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혼자 집에서 술마시는 일이 잦아집니다. 술생각 많이 납니다.... (저는 직장생활도 하는 워킹맘입니다...)
결혼 후 남편은 꾸준히 체중이 우상향이고 저는 우하향입니다.
애 키우고 일까지 하는 저는 살이 찔 틈이 없어요.
남편이 살찌는 것마저도 게으르고 한심해보입니다.

딸은 점점 말라가는데 점점 기름져가는 사위를 보고
친정아버지가 농담반 진담반
"자네만 먹지 말고 자네 마누라도 좀 먹이소"
하던 말에서 저는 친정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너무 속상하고 죄송했습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는 것도 늘 불안합니다. 며칠 전에는 차가 달려오고 있는 차로로 아이가 뛰어들 뻔 했는데 남편은 가방에 물건을 넣느라 애한테는 눈길도 떼고 주의도 안 주고 손도 안 잡고있어 큰일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주차 중에 목격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가 좀 쉬고싶어도 아이와 단 둘이 두기가 무서워 못그러고 육아도 90프로는 제 몫입니다. (아이가 남편보다 똑똑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모든 남편이 완벽하진 않을거야
사고 안 치는게 어디야
다 비슷하게 살거야 라고 자꾸 스스로를 위로한답시고 세뇌시켜보는데 그런 마음은 오래 안 가고 자꾸 분통 터지는 일들이 잦아집니다. 남편을 저렇게 키운 시부모님도 미워지고
저런 남자를 고른 제가 너무 싫어 자책도 많이 합니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이혼은 전혀 선택지에 없습니다.
사실 남편이 없어도 제 생활에는 변화가 거의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애한텐 아빠는 있어야 하니깐요.

제 기준이 너무 높은 걸까요?
말 안해도 알아서 제 할일 묵묵히 해주는 걸 바라는 건 정말
욕심인가요? 제가 유니콘을 바라는 걸까요...?
정신건강을 위해 상담도 수없이 고민했는데
정말 상담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맞는 걸까요?

이게 쓰다보니 정말 길어지네요....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