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년 2월에 결혼을 앞둔 30대 여자입니다너무 답답하고 어디다가 조언 구할때도 없어서 글을 남겨 봅니다 ㅠ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 지병으로 일찍이 돌아가시고외동에 홀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고있습니다 제 위로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오빠 나이 5살에 사고로 목숨을 달리하였고그후 엄마와 아버지는 이혼 후 아버지 밑에서 돌아가시기전까지 같이 살았었습니다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아빠는 재혼 후 새어머니와 함께 셋이 살았었고새어머니는 계모였습니다 늘 별거 아닌일로 저를 체벌하고 저를 미워했었죠어느날은 홀딱 벗겨서 집 앞에 나가 서있으라고 할때도 있었습니다앞 집 아주머니가 저를 거두어 주기도 했고 아지도 생생히 기억이 나네요..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그 사실을 안 엄마가 저를 데리러왔습니다9살때부터 엄마와 같이 살계된것이였죠 엄마 집으로 오고 난 후에 역시나 엄마도 다른 아저씨와 함께 생활을 하고있었습니다제가 중학교에 들어가기전까지 엄마는 참 많은 남자들을 만났었고 집에 많이 데려왔었죠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저는 중학교때 잘 적응하지 못하고사춘기 시절 참 많이 방황하며 보냈습니다시험점수가 바닥을 쳐도, 학교에 가지않아도, 딱히 관심 가져주고 잡아 줄 수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가출과 결석을 일삼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담배도 배우고 방탕하게 생활을 했었습니다그때부터 삶의 무기력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학교에 가는것도 의미가 없으며 공부하는것도 의미가 없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살았었습니다 학교에 가지않았고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자퇴처리가 어려워 유예처리가 됫던것 같습니다.중학교때는 엄마는 재혼도 한번했었지만 얼마못가 다시 이혼을 하게되었습니다 중2,3이 되던 시기에는 나름 정신차리고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물론 그 돈은 다 엄마에게 그대로 갔지만요.
고등학교 졸업장은 꼭 있어야한다는 엄마의 설득으로검정고시 후 여느 학생들과같이 고등학교는 진학을 하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부터 엄마는 집으로 주변 사람들을 모아 고스톱을 쳤었습니다재미삼아라고 하기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을 불러모아어느때는 돈때문에 뒤집어 엎고 싸우기도 하고 3-4일 밤낮을 꼬박 새며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제가 24살이 되던 때까지 계속 됬었었죠 집에서 술담배는 기본이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저의 출결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였지만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용돈벌이를 했었고 차비나 나름 식비 제외하고는모두 엄마에게 줫었습니다 그 돈이 엄마의 놀음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전 잘 알고 있었지만요..일찍이 방황을 시작했던 탓인지 저는 별 사고 없이 무탈하게 졸업을 하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직업군인을 준비하며 대학에 진학했었습니다온전한 엄마의 뜻이였죠아버지가 직업군인 이셨기 때문에 엄마 또한 그 길을 원하셨던것같습니다제 의지와 상관없는 대학생활이 였기때문에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자퇴를 하게되었죠그후로는 여기저기 알바로 전전하며24살이 되던 해에 저는 독립을 목표로 호주로 워홀을 갔었습니다1년간 워홀생활후에 딱히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고 타지생활에 나름 만족하고있었기에그후로 4년간 호주에서 대학진학을 하고 힘든 주방일을 하루 10시간씩 하며 학교며 과제며참 바쁘게 4년을 보냈던것 같습니다물론 엄마의 지원없이 온전히 제가 돈 벌어서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충당했었습니다몸은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나도 나름 열심히 바쁘게 생활하며 제 스스로도성취와 자존감을 차곡차곡 쌓으며 생활했던것 같습니다너무나도 심성곱고 착한 남자친구도 만나게 되었죠 그러던중에 20년 코로나가 터지게 되면서 호주전역이 셧다운 됫었습니다일자리를 잃고 마트나 주유소를 제외한 모든 영업장이 문을 닫았었습니다수입이 없었기때문에 남자친구와 둘이 학교며 집이며 청소일을 하면서 버텼었습니다굳은 일 힘든 일 서로 가리지 않고 참 열심히 했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남아있는 비자 2년을 이렇게는 버티기가 어려울 것같아남자친구와 결혼을 목표로 한국에 같이 들어오게되었습니다 저는 요리에서 타 직업으로 전향하기 위해서 1년간 공부를 했었고남자친구는 전공을 살려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죠둘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했기때문에 한국에서 사회생활이 참 힘들고 낯설었지만타지에서 둘다 고생을 많이 해봐서인지서로 으쌰으쌰 잘 버텼던 것 같습니다이 과정에서 남자친구는 묵묵히 수입이 없던 저를 대신해 열심히 일해주고든든하게 지원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3년간 연애생활끝에 내년 초에 운좋에 저렴하게 아파트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저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없이 온전히 저의 힘으로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거라결혼식을 생략하기로 했습니다나중에 조금 여유가 되면 그때 하자하구요.. 여기까지가 제가 살아온 이야기고 이제부터는 엄마와 왜 절연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 저희 엄마는 기본적으로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폭언과 인신공격 폭행을 일삼았었죠 제가 방황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참 많이 맞았습니다머리카락을 잘리기도 하고 칼을들고 위협을 당하기도하고그냥 자살하라며 머리채를 잡혀 옥상으로 끌려가기도 했었습니다주먹이며 발로며 많이 치이고 밟히고 물론 제가 어린시절 술,담배에 손을대고가출을 일삼았던 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기전까지 많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지각하거나 무단으로 결석한다는 이유로 많이 맞았었습니다그땐 제가 많이 어렸고 그런 엄마의 성격이 많이 무서웠었습니다이제와 생각해보니 제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했던것도 엄마를 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늘 제게 저의 잘못이나 선택에 옳바른 체벌보다는폭력과 폭언으로 체벌을 했었습니다 어린시절, 보호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는 늘 남자친구가 여럿 있었고저의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는 딱히 관심이 없으셨어요 그탓인지저는 엄마와 유대관계나 친밀함이 형성이 되어있지 않은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저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이 없습니다. 물론 이제 제가 머리가 컷다고 폭행을 하진 않지만 엄마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폭언과 인신공격을 합니다늘 대화의 패턴이 저를 깎아내리고 제 잘못인것마냥 죄책감을 유발시키고 세뇌시키고자기 뜻대로 욺직이게 하는게 엄마 행동 패턴입니다너는 못된년이고 멍청하고 배은망덕한 년이고 애미도 버리고 가는 년이고세상에 너같이 못된년은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달고삽니다 내년 결혼을 하게 되는것도남자에 미쳐서 자기를 버리고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 후에도 매달 자기에게 생활비를 줄것을 요구하기도 하고직업이 탄탄하지도, 집안이 좋지도 않는 남자에게 시집간다며 남자친구를 욕하는 일도 빈번했죠 저는 중학교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었고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용돈을 받지않고경제활동을 했기에 엄마에게 큰 지원을 받은적이 없었습니다외국에 나가 타지생활을 하면서도 엄마에게 십원한장 받은 적도 없고요..한부모 가정이기때문에 학창시절에서는 정부나 학교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저를 스스로 키웠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엄마는 저에게 투자한것이 많다고 생각을 하나봐요제가 결혼을 하는것이 새가정을 꾸려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함이아니고애미를 버리고 도망가는 년으로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엄마도 물론 제가 엄메에게 애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십니다제가 왜 그렇게 됬는지보다제가 인정머리도 없고 못된년이라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고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게 문제지만요
제가 걱정하는것은 단 한가지입니다저는 평생을 이러고 살아와서 이제는 참는것이 익숙합니다대화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늘 본인이 옳고 저는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라서저는 늘 듣고 참는게 익숙했던 사람입니다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미개함의 밑바닥을 아주 끝까지 다 봐왔으니까요 근데 남자친구에게 까지 이럴까봐 너무 걱정이됩니다저의 이런 일생과 엄마의 성격을 알고도남자친구는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해드리자고 말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엄마 뜻때로 안되면 저한테 했듯이 남자친구에게도 똑같이 폭언과 인신공격을 할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있습니다 엄마는 노후준비?그런거 전혀없습니다 도박하던 시절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습니다그 빚을 갚아야한다며 제게 생활비를 요구하는 것이지요..빚을 갚는데서 몇백만원씩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자기는 늙고 병들었으니 제가 부양 해야하는것을 압니다자식 된 도리로 그래야 하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제가 그래야 할 사랑과 애정이 없어요..그래서 죄책감이 듭니다..폐륜이라는것도 잘 알고 인간으로써 도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잘압니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남자친구를 만나고 처음 깨닳았습니다 이렇게 따듯하고 몽글몽글 한것이라는 것도,아무조건 없이 내편이 되어주고 나를 이해하려하고나의 잘못도 나의 실수도 다 포용한다는 것을요.. 저에게 가족은 빌붙고, 뜯어먹고, 빨아먹고, 괴롭히고, 만만하고,자기의 감정을 쓰레기통처럼 언제든지 던져 버릴 수 있는 대상이고그래서 나는 절대 결혼을 하지않을거고혹시라도 이런 모습을 보고 배운내가 내 자식에게 되물림 될까봐결혼같은건 하지 않겠다던저의 마음의 벽을 무녀뜨릴 만큼제게 처음 가족이 생긴것이지요.. 중학교 시절부터 자살 시도도 많이 했었습니다괴로워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요..사랑을 받아야 할 이유도, 사랑을 줘야 할 이유도 없고내 인생이 모두 무채색이라 컴컴하고 어둡고 밝혀야 할 이유가 없었었어요무언갈 하고 싶지도, 무언가가 되고싶지도,인생이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고 무기력하고 그래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살았어요
호주에서 부터 혼자 지내면서 참 자존감도 많이 생겼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삶의 생기를 얻고 지난 나의 비참했던 과거 다 털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살 수 있었고그렇게 건강하게 지내다 보니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됬고 그래서 이제는 저는 이 가족과 가정을 지키고 싶고 그래야 할 이유가 생겼는데엄마때문에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들어요.. 저와 친한친구들은 저의 엄마를 실제로도 봣고 제가 살아온 환경을 너무 나도 잘 알기에결혼하면 그냥 인연끊고 두번 다시 보지말라고 합니다.. 근데 제 마음은 그게 맞다고 말하는데 이게 맞나 싶어서요..그래서 두서도 없이 주절주절 글을 남겨봅니다..
쓰고 읽어보니 참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네요두서없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짧게라도 조언 부탁드려요..
엄마와 절연하고 사는게 맞는걸까요
저는 내년 2월에 결혼을 앞둔 30대 여자입니다너무 답답하고 어디다가 조언 구할때도 없어서 글을 남겨 봅니다 ㅠ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 지병으로 일찍이 돌아가시고외동에 홀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고있습니다
제 위로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오빠 나이 5살에 사고로 목숨을 달리하였고그후 엄마와 아버지는 이혼 후 아버지 밑에서 돌아가시기전까지 같이 살았었습니다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아빠는 재혼 후 새어머니와 함께 셋이 살았었고새어머니는 계모였습니다 늘 별거 아닌일로 저를 체벌하고 저를 미워했었죠어느날은 홀딱 벗겨서 집 앞에 나가 서있으라고 할때도 있었습니다앞 집 아주머니가 저를 거두어 주기도 했고 아지도 생생히 기억이 나네요..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그 사실을 안 엄마가 저를 데리러왔습니다9살때부터 엄마와 같이 살계된것이였죠
엄마 집으로 오고 난 후에 역시나 엄마도 다른 아저씨와 함께 생활을 하고있었습니다제가 중학교에 들어가기전까지 엄마는 참 많은 남자들을 만났었고 집에 많이 데려왔었죠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저는 중학교때 잘 적응하지 못하고사춘기 시절 참 많이 방황하며 보냈습니다시험점수가 바닥을 쳐도, 학교에 가지않아도, 딱히 관심 가져주고 잡아 줄 수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가출과 결석을 일삼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담배도 배우고 방탕하게 생활을 했었습니다그때부터 삶의 무기력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학교에 가는것도 의미가 없으며 공부하는것도 의미가 없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살았었습니다
학교에 가지않았고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자퇴처리가 어려워 유예처리가 됫던것 같습니다.중학교때는 엄마는 재혼도 한번했었지만 얼마못가 다시 이혼을 하게되었습니다
중2,3이 되던 시기에는 나름 정신차리고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물론 그 돈은 다 엄마에게 그대로 갔지만요.
고등학교 졸업장은 꼭 있어야한다는 엄마의 설득으로검정고시 후 여느 학생들과같이 고등학교는 진학을 하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부터 엄마는 집으로 주변 사람들을 모아 고스톱을 쳤었습니다재미삼아라고 하기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을 불러모아어느때는 돈때문에 뒤집어 엎고 싸우기도 하고 3-4일 밤낮을 꼬박 새며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제가 24살이 되던 때까지 계속 됬었었죠 집에서 술담배는 기본이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저의 출결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였지만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용돈벌이를 했었고 차비나 나름 식비 제외하고는모두 엄마에게 줫었습니다 그 돈이 엄마의 놀음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전 잘 알고 있었지만요..일찍이 방황을 시작했던 탓인지 저는 별 사고 없이 무탈하게 졸업을 하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직업군인을 준비하며 대학에 진학했었습니다온전한 엄마의 뜻이였죠아버지가 직업군인 이셨기 때문에 엄마 또한 그 길을 원하셨던것같습니다제 의지와 상관없는 대학생활이 였기때문에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자퇴를 하게되었죠그후로는 여기저기 알바로 전전하며24살이 되던 해에 저는 독립을 목표로 호주로 워홀을 갔었습니다1년간 워홀생활후에 딱히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고 타지생활에 나름 만족하고있었기에그후로 4년간 호주에서 대학진학을 하고 힘든 주방일을 하루 10시간씩 하며 학교며 과제며참 바쁘게 4년을 보냈던것 같습니다물론 엄마의 지원없이 온전히 제가 돈 벌어서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충당했었습니다몸은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나도 나름 열심히 바쁘게 생활하며 제 스스로도성취와 자존감을 차곡차곡 쌓으며 생활했던것 같습니다너무나도 심성곱고 착한 남자친구도 만나게 되었죠
그러던중에 20년 코로나가 터지게 되면서 호주전역이 셧다운 됫었습니다일자리를 잃고 마트나 주유소를 제외한 모든 영업장이 문을 닫았었습니다수입이 없었기때문에 남자친구와 둘이 학교며 집이며 청소일을 하면서 버텼었습니다굳은 일 힘든 일 서로 가리지 않고 참 열심히 했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남아있는 비자 2년을 이렇게는 버티기가 어려울 것같아남자친구와 결혼을 목표로 한국에 같이 들어오게되었습니다
저는 요리에서 타 직업으로 전향하기 위해서 1년간 공부를 했었고남자친구는 전공을 살려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죠둘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했기때문에 한국에서 사회생활이 참 힘들고 낯설었지만타지에서 둘다 고생을 많이 해봐서인지서로 으쌰으쌰 잘 버텼던 것 같습니다이 과정에서 남자친구는 묵묵히 수입이 없던 저를 대신해 열심히 일해주고든든하게 지원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3년간 연애생활끝에 내년 초에 운좋에 저렴하게 아파트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저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없이 온전히 저의 힘으로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거라결혼식을 생략하기로 했습니다나중에 조금 여유가 되면 그때 하자하구요..
여기까지가 제가 살아온 이야기고 이제부터는 엄마와 왜 절연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
저희 엄마는 기본적으로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폭언과 인신공격 폭행을 일삼았었죠
제가 방황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참 많이 맞았습니다머리카락을 잘리기도 하고 칼을들고 위협을 당하기도하고그냥 자살하라며 머리채를 잡혀 옥상으로 끌려가기도 했었습니다주먹이며 발로며 많이 치이고 밟히고 물론 제가 어린시절 술,담배에 손을대고가출을 일삼았던 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기전까지 많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지각하거나 무단으로 결석한다는 이유로 많이 맞았었습니다그땐 제가 많이 어렸고 그런 엄마의 성격이 많이 무서웠었습니다이제와 생각해보니 제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했던것도 엄마를 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늘 제게 저의 잘못이나 선택에 옳바른 체벌보다는폭력과 폭언으로 체벌을 했었습니다 어린시절, 보호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는 늘 남자친구가 여럿 있었고저의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는 딱히 관심이 없으셨어요
그탓인지저는 엄마와 유대관계나 친밀함이 형성이 되어있지 않은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저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이 없습니다.
물론 이제 제가 머리가 컷다고 폭행을 하진 않지만 엄마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폭언과 인신공격을 합니다늘 대화의 패턴이 저를 깎아내리고 제 잘못인것마냥 죄책감을 유발시키고 세뇌시키고자기 뜻대로 욺직이게 하는게 엄마 행동 패턴입니다너는 못된년이고 멍청하고 배은망덕한 년이고 애미도 버리고 가는 년이고세상에 너같이 못된년은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달고삽니다
내년 결혼을 하게 되는것도남자에 미쳐서 자기를 버리고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 후에도 매달 자기에게 생활비를 줄것을 요구하기도 하고직업이 탄탄하지도, 집안이 좋지도 않는 남자에게 시집간다며 남자친구를 욕하는 일도 빈번했죠
저는 중학교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었고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용돈을 받지않고경제활동을 했기에 엄마에게 큰 지원을 받은적이 없었습니다외국에 나가 타지생활을 하면서도 엄마에게 십원한장 받은 적도 없고요..한부모 가정이기때문에 학창시절에서는 정부나 학교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저를 스스로 키웠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엄마는 저에게 투자한것이 많다고 생각을 하나봐요제가 결혼을 하는것이 새가정을 꾸려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함이아니고애미를 버리고 도망가는 년으로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엄마도 물론 제가 엄메에게 애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십니다제가 왜 그렇게 됬는지보다제가 인정머리도 없고 못된년이라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고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게 문제지만요
제가 걱정하는것은 단 한가지입니다저는 평생을 이러고 살아와서 이제는 참는것이 익숙합니다대화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늘 본인이 옳고 저는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라서저는 늘 듣고 참는게 익숙했던 사람입니다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미개함의 밑바닥을 아주 끝까지 다 봐왔으니까요
근데 남자친구에게 까지 이럴까봐 너무 걱정이됩니다저의 이런 일생과 엄마의 성격을 알고도남자친구는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해드리자고 말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엄마 뜻때로 안되면 저한테 했듯이 남자친구에게도 똑같이 폭언과 인신공격을 할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있습니다
엄마는 노후준비?그런거 전혀없습니다 도박하던 시절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습니다그 빚을 갚아야한다며 제게 생활비를 요구하는 것이지요..빚을 갚는데서 몇백만원씩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자기는 늙고 병들었으니 제가 부양 해야하는것을 압니다자식 된 도리로 그래야 하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제가 그래야 할 사랑과 애정이 없어요..그래서 죄책감이 듭니다..폐륜이라는것도 잘 알고 인간으로써 도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잘압니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남자친구를 만나고 처음 깨닳았습니다
이렇게 따듯하고 몽글몽글 한것이라는 것도,아무조건 없이 내편이 되어주고 나를 이해하려하고나의 잘못도 나의 실수도 다 포용한다는 것을요..
저에게 가족은 빌붙고, 뜯어먹고, 빨아먹고, 괴롭히고, 만만하고,자기의 감정을 쓰레기통처럼 언제든지 던져 버릴 수 있는 대상이고그래서 나는 절대 결혼을 하지않을거고혹시라도 이런 모습을 보고 배운내가 내 자식에게 되물림 될까봐결혼같은건 하지 않겠다던저의 마음의 벽을 무녀뜨릴 만큼제게 처음 가족이 생긴것이지요..
중학교 시절부터 자살 시도도 많이 했었습니다괴로워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요..사랑을 받아야 할 이유도, 사랑을 줘야 할 이유도 없고내 인생이 모두 무채색이라 컴컴하고 어둡고 밝혀야 할 이유가 없었었어요무언갈 하고 싶지도, 무언가가 되고싶지도,인생이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고 무기력하고 그래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살았어요
호주에서 부터 혼자 지내면서 참 자존감도 많이 생겼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삶의 생기를 얻고 지난 나의 비참했던 과거 다 털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살 수 있었고그렇게 건강하게 지내다 보니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됬고 그래서 이제는 저는 이 가족과 가정을 지키고 싶고 그래야 할 이유가 생겼는데엄마때문에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들어요..
저와 친한친구들은 저의 엄마를 실제로도 봣고 제가 살아온 환경을 너무 나도 잘 알기에결혼하면 그냥 인연끊고 두번 다시 보지말라고 합니다..
근데 제 마음은 그게 맞다고 말하는데 이게 맞나 싶어서요..그래서 두서도 없이 주절주절 글을 남겨봅니다..
쓰고 읽어보니 참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네요두서없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짧게라도 조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