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길어도 제발 읽어주세요.

고1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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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입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제 고민을 들으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는 중학교 때 공부를 줄곧 잘 해왔었습니다. 반장같은 학급임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선생님들께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제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자만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만큼은 늘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집과 매우 떨어져있는 기숙사형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전국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모집하고, 학생들은 주로 정시를 통해 대학교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어머니의 권유였지만, 나중에는 온전히 제 의지가 반영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가족이 없는 타지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경험해보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걱정이 되고 두렵겠지만 제가 느끼는 불안한 감정 또한 저를 성장시켜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마지막 학창시절에 이러한 환경에서 친구들과 제2의 가족처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이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물론 공부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도 제가 전념하여 성실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저희 어머니로부터 가세가 기울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충격이었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때 저에게 말씀하시면서 많이 우셨는데 저도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고 정말 슬펐습니다.
동생들도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었고 저는 그 당시에 정말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풍족하게 할 수 있는 것 다 하며 잘 살았던 우리집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에 왔으니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하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이 제가 할 수 있는 첫 째 딸의 도리이자 제가 해야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니까요.
어머니는 제 인생에서 제 롤모델이자 제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여성입니다.
저를 항상 전적으로 지지해주셨고 제 삶의 일부가 어머니일 정도로 저와 동생들과의 사이가 각별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봐서라도 제가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동생이랑 다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모습은 제 스스로가 보아도 정말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총 세 번의 학교시험이 있었고 저는 번번히 공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의지박약이었습니다.
마음 한 켠에는 더 좋은 점수를 받아서 정독반에도 들어가고, 선생님들께 칭찬도 받고, 엄마께도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드리고 싶은데, 지금의 저는 정말 참담합니다.
학교 성적은 4등급이 나오고 집에만 있는다하면 잠을 자고, 폰을 하고, 티비를 봅니다.
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열심히 했던 것처럼요.

학교에서 저는 열심히 하는 학생의 모습이지만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비생산적인 사람입니다.
주말에 공부할 것을 집으로 챙겨와도 결국 주말에는 학교에서 들고 온 책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고 그대로 다시 학교로 들고 갑니다.
다들 고등학생이라 공부를 하고 수행평가 준비를 하는데 저는 공부를 하긴 하지만 자꾸 책을 안 보게 되고 내일 더 하면 되겠지.. 주말에 좀 몰아서 하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수행평가나 과제도 놀다가 나중에 한 번에 몰아서 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학급임원을 맡고 있고, 또 친구들은 저의 성적이 어느정도인지 자세히는 몰라 저를 제 본모습보다는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마치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고 점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저는 제가 완벽주의자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뭐든지 제 기준에 맞게 늘 예쁘게, 반듯하게 해야하고, 뭐든지 완벽하게, 제가 가장 잘 해내야한다고 생각한 적이 대다수였으니까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성적과 관련해서는 제가 많이 무덤덤해진 것 같습니다. 항상 A만 받아보다가 D, E를 계속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더 노력은 안 할망정 계속 현실을 도피하고 놀고 먹고만 있습니다.
저도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몰두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싶습니다. 더 크게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매번 다짐도 하고 혼자서 울며 엄마와 동생을 봐서라도 정신차리자고도 하는데 그 뒤로는 똑같은 일상만 반복됩니다.

집 상황이 이런데도 무기력하게 정신 못차리는 제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제가 이렇게 공부나 할 것을 안 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풍족하고 부족함없이 키우고 싶었다던 저와 동생들이 전부입니다.

제가 계속 이렇게 엄마 속을 썩였다가는 엄마의 딸로서 언니로서 제대로 한 게 없어서 너무 죄책감들고 슬플 것 같아요.
2년 뒤면 수능도 칠 텐데 그때도 하나도 안 고쳐져있으면 어떡하죠?
왜 저는 그 쉬운 책상에 제대로 앉는 것도 못하고 의지도 없고 폰만 할까요.
왜 마음먹어도 자꾸만 의지가 없어지는지...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스스로.

말이 길었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제발 조언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또래 분들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한 마디만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