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좋은 말들이 참 많습니다. 생각은 네가 아니다. 흘러가도록 둬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봐라...근데 힘드네요. 기력이 소진된 느낌이랄까.. 안에서 차오르는 분노, 모멸감...이제 그만하고 싶다..이제 그만 살고 싶다...쉬고 싶다... 넌 아무것도 안될거야, 너같은 애는 딱 학교 다닐 때까지만이야,너같은 애는 사회 나가봤자 실패자야!내가 받아오는 성적표와 상장, 내가 하는 집안일들, 선생님들의 칭찬에 대해자랑질을 멈추지 못했던 어머니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저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병으로 갑자스레 시력을 잃자사람들에게 관심받을 생각에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카톡으로 온갖 지인들에게 내 딸이 앞을 못보게 생겼다고 보내고답장이 오자 신나서 어쩔 줄 모르던 어머니...봐! 보라고! 내가 얼마나 인기있는지 보라고!보이지 않는 내 눈 앞에 어머니는 핸드폰을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안 보인다고 하자, 안보여? 그럼 읽어줄테니 들어봐! 병원에 입원한 나에게 찾아와, 교회를 안다니니 이런 병이 생긴 거라고이제 너도 좀 회개하고 살겠구나~ 입을 삐죽이며 비아냥대던 어머니는 내게 속삭였다.태교가 중요하긴 한가봐~너 가졌을 때 얼마나 낳기 싫던지 단 하루도 기분좋은 날이 없더니 결국 이런 게 나왔네~ 어머니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언니는 언니대로 잔인했다.나도 가끔 생각해보면 너한테 너무했다 싶을 때 있어 ㅋㅋㅋ근데 너 그거 아니? 너 사회 나가도 똑같이 대접받을거야. 왜냐면 너는 병신이니까~나는 네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 안다~너 자살해. 그거 말고 뭐가 네 인생에 있겠어?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언니가 내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랑했다.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들고가족들 모두 나를 공주대접하기 때문에 내가 철이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나는 이미 초등학교 다닐 때 주부습진으로 열손가락이 다 찢어져 피가 흐르고연필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보고 비웃었다.그러게 내가 고무장갑 끼고 일하라고 했지!초등학생 손에 맞는 고무장갑은 없었다. 눈이 다시 낫자 아버지는 낄낄거리며 전화를 했다. 컴퓨터가 안되니 고쳐달란다.수리기사를 부르라니 그러면 돈 내야 하니까 안된단다. 사달라는 얘기다.내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너는 미친 애야, 너는 이상한 애야, 라고 소리를 지른다. 전화번호를 바꿨다.아버지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걔는 어렸을 때부터 속이 좁았다고...원래 막내는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본인도 형한테 맞았다고...원래 그런건데 걔는 참 꽁하다고... 그럼에도 넘치는 사랑으로 키웠다고..... 대한항공 할머니가 운전기사한테 소리지르는 장면을 보고아나운서가 미친 것 같다고 했던가...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하여간 대한항공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들을 때 나는 좀 슬펐다.나는 저런 말을 매일 듣고 살았는데... 요즘에 금쪽이에 나온 시모와 남편이 화제던데금쪽이 엄마 한 명 왕따시키고 자기네들끼리 낄낄대는 모습을 보니아, 저거 내 일상이었는데... 근데 저 사람들은 피라도 안 섞였지... 나는 그들이 내 유일한 가족이였지... 간혹 어쩌다 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나같이 자란 사람들은 중독자가 되거나 자살할텐데 대단하다고...아니. 나는 불안에 중독되었고 6살 때 이미 어설픈 자살시도를 했었다.아버지는 깔깔대며 웃었고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붙들고 그 얘기를 했다.얘 유서 썼잖아 ㅎㅎㅎ 얘는 안 태어나도 되는데 태어났어~라고 뭐가 그리 웃긴지 배꼽을 잡았다.나는 땅만 보고 있어서 그 누구의 표정도 보지 못했지만다시 생각해보니 당시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던 것 같다.아버지가 참 웃을 일이 없었나보다, 힘들었나보다 싶었다. 나는 괜찮다. 근데 괜찮지가 않다. 아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나는 나를 다독였다.딱 1년만 참자. 1년 뒤에 꼭 죽게 해줄게. (지금 어떤 일로 내가 고소를 했는데 1년 안에는 끝날 것이다. 나만 관련된 건 아니라서...)미안해. 이제까지 속여왔지. 뭔가 좋아질 거라고, 괜찮아질거라고 나를 속여왔지.아니. 나는 이미 불안에 깊이 중독되었고 나를 이제까지 지켜주던학업이나 직장같은 것이 사라지자 애써 피해왔던 것을 마주볼 수 밖에 없게 된거지. 원가족들을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더니악몽도 더 이상 꾸지 않고 자해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근데 힘든 일이 닥치자 다시 망령이 되살아난다. 야! 네 언니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대!점쟁이가 그랬어!!! 네 언니는 대단한 사람이 될거라고!!!!!!!!!!!!!9살인 나를 앉혀두고 어머니는 흥분하며 말했다.나는 물었다.엄마, 나는?내 질문에 그분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네깟년이 되긴 뭐가 돼? 아무 것도 안되지. 지깟게 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대화가 나에게는 일상이었다. 나는 가끔은 울었지만 대부분은 삼켰고세상 모든 아이가 그렇듯 어머니를 사무치도록 사랑했다.아버지를 사랑했다. 언니를 사랑했다.이유없이, 태어나보니 그들이 내 가족이라서, 모든 어린 아이가 그렇듯나 또한 그들에게 충성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짓밟혔다.언니는 말했다.나도 가끔은 너한테 미안해. 근데 누가 당하래? 네가 당했잖아! 당한 게 병신이지! 모르겠다. 내가 왜 숨이 붙어있는지 모르겠고 왜 이렇게까지 힘든지 모르겠다.사람들은 내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병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나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무료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남들은 과로로 잘도 죽던데 나는 죽지도 않고 병에만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상담원이 내게 물었다. 돈을 벌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에 얼마까지 자신에게 허용된다고 생각하냐고....나는 0원이라고 답했다. 지금 나는 돈은 못벌지만 청소, 빨래같은 집안일 정도는 하니까 밥 먹는 것 정도는 허용되는데 그것조차 못하면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든 일이 생길 때 기댈 곳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원가족으로 받았던 모멸감이 올라와 고통스러워.분명 내 삶은 좀 나아졌지만 나는 그만하고 싶어.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 그 사람이 죽었을까.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 살아야 하는 이유들은 다 정신승리같고 여우의 신포도같고 핑계처럼 들려. 근데 이 글을 마치기 전에혹시나 누군가 어딘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나한테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을 해줄게. "우리같은 사람들은 평소에는 그럭저럭 살지. 근데 삶에 힘든 일이 나타나면 바로 죽고 싶어져. 삶에 애착을 느낄만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는 망했어. 99% 망한 삶이야. 근데 남은 1% 그것도 커. 그 1%를 잘해보자."지금 내 상황에서는 이 말도 효과가 없는데 혹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일지도 몰라서 써놓는다. 나한테는 이게 제일 현실적으로 와닿는 말이었어. 지금은 그 1%고 뭐고 다 놔버리고 싶지만...
깊이 뿌리내린 모멸감과 불안
세상에는 좋은 말들이 참 많습니다. 생각은 네가 아니다. 흘러가도록 둬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봐라...근데 힘드네요. 기력이 소진된 느낌이랄까.. 안에서 차오르는 분노, 모멸감...이제 그만하고 싶다..이제 그만 살고 싶다...쉬고 싶다...
넌 아무것도 안될거야, 너같은 애는 딱 학교 다닐 때까지만이야,너같은 애는 사회 나가봤자 실패자야!내가 받아오는 성적표와 상장, 내가 하는 집안일들, 선생님들의 칭찬에 대해자랑질을 멈추지 못했던 어머니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저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병으로 갑자스레 시력을 잃자사람들에게 관심받을 생각에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카톡으로 온갖 지인들에게 내 딸이 앞을 못보게 생겼다고 보내고답장이 오자 신나서 어쩔 줄 모르던 어머니...봐! 보라고! 내가 얼마나 인기있는지 보라고!보이지 않는 내 눈 앞에 어머니는 핸드폰을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안 보인다고 하자, 안보여? 그럼 읽어줄테니 들어봐!
병원에 입원한 나에게 찾아와, 교회를 안다니니 이런 병이 생긴 거라고이제 너도 좀 회개하고 살겠구나~ 입을 삐죽이며 비아냥대던 어머니는 내게 속삭였다.태교가 중요하긴 한가봐~너 가졌을 때 얼마나 낳기 싫던지 단 하루도 기분좋은 날이 없더니 결국 이런 게 나왔네~
어머니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언니는 언니대로 잔인했다.나도 가끔 생각해보면 너한테 너무했다 싶을 때 있어 ㅋㅋㅋ근데 너 그거 아니? 너 사회 나가도 똑같이 대접받을거야. 왜냐면 너는 병신이니까~나는 네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 안다~너 자살해. 그거 말고 뭐가 네 인생에 있겠어?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언니가 내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랑했다.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들고가족들 모두 나를 공주대접하기 때문에 내가 철이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나는 이미 초등학교 다닐 때 주부습진으로 열손가락이 다 찢어져 피가 흐르고연필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보고 비웃었다.그러게 내가 고무장갑 끼고 일하라고 했지!초등학생 손에 맞는 고무장갑은 없었다.
눈이 다시 낫자 아버지는 낄낄거리며 전화를 했다. 컴퓨터가 안되니 고쳐달란다.수리기사를 부르라니 그러면 돈 내야 하니까 안된단다. 사달라는 얘기다.내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너는 미친 애야, 너는 이상한 애야, 라고 소리를 지른다.
전화번호를 바꿨다.아버지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걔는 어렸을 때부터 속이 좁았다고...원래 막내는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본인도 형한테 맞았다고...원래 그런건데 걔는 참 꽁하다고... 그럼에도 넘치는 사랑으로 키웠다고.....
대한항공 할머니가 운전기사한테 소리지르는 장면을 보고아나운서가 미친 것 같다고 했던가...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하여간 대한항공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들을 때 나는 좀 슬펐다.나는 저런 말을 매일 듣고 살았는데...
요즘에 금쪽이에 나온 시모와 남편이 화제던데금쪽이 엄마 한 명 왕따시키고 자기네들끼리 낄낄대는 모습을 보니아, 저거 내 일상이었는데... 근데 저 사람들은 피라도 안 섞였지... 나는 그들이 내 유일한 가족이였지...
간혹 어쩌다 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나같이 자란 사람들은 중독자가 되거나 자살할텐데 대단하다고...아니. 나는 불안에 중독되었고 6살 때 이미 어설픈 자살시도를 했었다.아버지는 깔깔대며 웃었고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붙들고 그 얘기를 했다.얘 유서 썼잖아 ㅎㅎㅎ 얘는 안 태어나도 되는데 태어났어~라고 뭐가 그리 웃긴지 배꼽을 잡았다.나는 땅만 보고 있어서 그 누구의 표정도 보지 못했지만다시 생각해보니 당시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던 것 같다.아버지가 참 웃을 일이 없었나보다, 힘들었나보다 싶었다.
나는 괜찮다. 근데 괜찮지가 않다. 아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나는 나를 다독였다.딱 1년만 참자. 1년 뒤에 꼭 죽게 해줄게. (지금 어떤 일로 내가 고소를 했는데 1년 안에는 끝날 것이다. 나만 관련된 건 아니라서...)미안해. 이제까지 속여왔지. 뭔가 좋아질 거라고, 괜찮아질거라고 나를 속여왔지.아니. 나는 이미 불안에 깊이 중독되었고 나를 이제까지 지켜주던학업이나 직장같은 것이 사라지자 애써 피해왔던 것을 마주볼 수 밖에 없게 된거지.
원가족들을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더니악몽도 더 이상 꾸지 않고 자해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근데 힘든 일이 닥치자 다시 망령이 되살아난다.
야! 네 언니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대!점쟁이가 그랬어!!! 네 언니는 대단한 사람이 될거라고!!!!!!!!!!!!!9살인 나를 앉혀두고 어머니는 흥분하며 말했다.나는 물었다.엄마, 나는?내 질문에 그분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네깟년이 되긴 뭐가 돼? 아무 것도 안되지. 지깟게 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대화가 나에게는 일상이었다. 나는 가끔은 울었지만 대부분은 삼켰고세상 모든 아이가 그렇듯 어머니를 사무치도록 사랑했다.아버지를 사랑했다. 언니를 사랑했다.이유없이, 태어나보니 그들이 내 가족이라서, 모든 어린 아이가 그렇듯나 또한 그들에게 충성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짓밟혔다.언니는 말했다.나도 가끔은 너한테 미안해. 근데 누가 당하래? 네가 당했잖아! 당한 게 병신이지!
모르겠다. 내가 왜 숨이 붙어있는지 모르겠고 왜 이렇게까지 힘든지 모르겠다.사람들은 내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병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나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무료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남들은 과로로 잘도 죽던데 나는 죽지도 않고 병에만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상담원이 내게 물었다. 돈을 벌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에 얼마까지 자신에게 허용된다고 생각하냐고....나는 0원이라고 답했다. 지금 나는 돈은 못벌지만 청소, 빨래같은 집안일 정도는 하니까 밥 먹는 것 정도는 허용되는데 그것조차 못하면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든 일이 생길 때 기댈 곳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원가족으로 받았던 모멸감이 올라와 고통스러워.분명 내 삶은 좀 나아졌지만 나는 그만하고 싶어.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 그 사람이 죽었을까.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 살아야 하는 이유들은 다 정신승리같고 여우의 신포도같고 핑계처럼 들려.
근데 이 글을 마치기 전에혹시나 누군가 어딘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나한테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을 해줄게. "우리같은 사람들은 평소에는 그럭저럭 살지. 근데 삶에 힘든 일이 나타나면 바로 죽고 싶어져. 삶에 애착을 느낄만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는 망했어. 99% 망한 삶이야. 근데 남은 1% 그것도 커. 그 1%를 잘해보자."지금 내 상황에서는 이 말도 효과가 없는데 혹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일지도 몰라서 써놓는다. 나한테는 이게 제일 현실적으로 와닿는 말이었어. 지금은 그 1%고 뭐고 다 놔버리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