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적 엄마 아빠는 이혼하셨어요. 그 뒤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어요. 할머니 밑에서 제가 독립하기까지 15년 정도를 살았네요.
되게 엄하셨어요. 하지만 저랑 오빠를 위해 원래 집을 팔고, 적금을 깨시고... 그러니까 편안한 노후생활까지 포기하신 걸 알기에
죄송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살았어요. 풍족하진 않았지만 저랑 오빠의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함 없게 최선을 다하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모두가..초등학생 때 4년을 소심하다는 이유로 왕따 당하고 성격 고치고 중핟생되니 친구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따당하는 애랑 친구하니 다시 왕따가 되었습니다. 2학년 올라갈 때까지요.
중학생 때 공부가 안되어 방황하다 고등학교로 올라가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1학기까지는 알바를 하며 공부는 사실상 놓고 살았어요.
그러다 2학년 방학 때 지금의 예랑과 사귀게 되었죠. 예랑과의 일을 얘기하자면 저희는 2살 차이고 교회에서 알게 되었어요. 당시 전 고1, 오빠는 고3이었어요. 저랑 친했던 언니가 데려왔었고 그 언니가 교회를 잘 안 나왔길래 저에게 부탁했고, 그 뒤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남자로 안 보이다 반하게 된 계기는 제가 남자복이 없었어요. 5번 사귀고 5번 다 남자가 양다리였거나 다른 여자랑 잤거나, 조선시 댄 줄 착각하거나ㅋㅋㅋㅋㅋ 참....
오빠는 평소엔 장난도 많이 치고 그러다가 제가 힘들 때는 항상 제 옆에서 위로해 줬어요. 오빠 앞에서 많이 울었는데..ㅋㅋㅋ...
그렇게 점점 오빠한테 관심이 생기고 어느새 푹 빠졌어요. 그렇게 제가 먼저 고백했는데 사실 오빠도 절 좋아했다네요.
고2 중간에 사귀게 되었고 사귄지 한달 쯤에 깊이 이야기 하게 됐어요.
알바를 왜 하냐고
전 원래 토요일만 5시간 일하는 알바를 해왔는데 남친이 생겼기에 알바 늘리려 했거든요. 이걸 알게 됐어요. 제가 면접 때문에 문자하는 걸 보고..
전 솔직하게 난 할머니랑 살고 아버지는 따로 일하셔서 오빠랑 나 교육비만 대신다. 용돈 도저히 받을 수 없어서 용돈 조금만 받았고 알바한거로는 옷 같은 걸 사는데 오빠랑 놀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하니까
전 공부를 해야 한다고 돈은 자신이 다 내겠으니 알바 더 늘리지 말라고 이런 식으로 1시간을 이야기하다가 제가 졌어요. 결국 알바를 더 안 늘리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고
안쉬웠어요. 중학교부터 시작해야 했고...다행히 전 아버지, 어머니 머리를 닮았어요. (두 분 다 문과계열에서 전교권이셨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었어요.)
또한 다행인 점은 전 잠을 4시간만 자도 안 피곤해요. 여러 장점을 살려서 고2 2학기부터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
학교 끝나고 학원 가서 끝나면 집에 와서 새벽 3시까지 공부하다 자고 토요일의 알바, 남친만나는날 빼고 공부에 매진했어요.
제가 고3때는 남친이 공부에 방해 되지 않겠다고...그때쯤 군대갔어요.
전 계속 공부해서 결국 좋은 수능 점수를 얻었고 인 서울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었어요.
제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언제나 어른이셨던 할머니가 우는 걸 보고 저도 울고 가족이 다 울었어요. 그리고 그날 외식했고 전 할머니가 계산하려는거 막고 제가 계산했어요. 그날 자고 일어나니 그때 계산한 비용만큼의 돈이 책상에 놓여있었고 할머니께 가니까 할머니는 절 안으면서
절 키우면서 중학생 때 할머니가 말 잘못해서 상처 많이 받았을 텐데 이겨내고 고등학생 때 힘들게 공부해서 이렇게 좋은 성적 받았는데..이 돈은 고생한 제가 쓰라고..아직 할머니는 저이게 받을 입장이 아니라면서 토닥여 주시더라고요. 그때 할머니에게 안겨서 펑펑 울면서 다짐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만큼은 제가 평생 안고 가겠다고...
친오빠도 제가 수능 무사히 끝난걸 보고 나서야 군대 가더라고요. 왜 아직 안 갔었냐 하니 고3 될 때까지 제가 방황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이끌어 주려 했다고...
남친에게도 편지했어요. 수능 잘 봤다고.
휴가 나온 날 남친에게 너무 고마워서 밥 비싼 거 먹이려고 소고기집 데려와서 밥먹이구 계산하려는데 이미 계산했나네요. 알고 보니 남친이 중간에 화장실 갔다 온다 하고 나가서 계산했더라고요.
진짜 남친 퍽퍽 때리면서 왜 계산했냐구..엄청 뭐라 하니까 남친이 제 손 막으면서 이돈으로는 자기 말고 고생한 저랑 저희 가족이랑 뭐라도 먹으라고....진짜 제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요...
대학 등록금도..교회 저랑 친했던 애 어머니기도하시며 제 할머니와 친하셨던 분은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시던 분의 아내분이셨고 그분들이 내주셨습니다. 그 정도 돈을 주시면서도 친구나 그 부모님이나 갑질 한 번을 안 하시더군요. 할머니와 제가 안 받으려던 거 그 어머니께서 저와 할머니를 몇 시간이고 설득하여 졸업하면 그 회사에 취직하기로 하는 조건하에 받기로 했어요.
그 뒤로 대학 생활하다 보니 남친도 전역했어요. 그 뒤 1년 정도 뒤에 아버지랑 남친이랑 밥 먹고 곧이어 할머니, 할아버지, 오빠에게도 소개했습니다. 좋아하시더군요. 저 역시도 남친네 부모님과 인사를 했어요.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그 후 몇 달 더 연애하다 동거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변함없었습니다. 남친에게 전 처음이었고 첫 키스도 첫 관계도 서로였습니다. 사람이 연애를 하면서 솔직히 살짝 식었지만 더 식지도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신뢰도 주고 사랑도 했죠. 제 남친은 제가 이유 없이 삐져도 화 한번 안 내더라고요.. 대학도 졸업하고 그 친구랑도 여전히 친하게 지내면서 회사로 들어갔어요. 사실상 낙하산이었기에 별다른 다툼 없이 지냈어요. 제 사정을 아시는 사장님 사모님이셨기에 승진도 잘 시켜주시고..안정적이게 될 무렵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였고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한참 울었고 장례를 치르며 오빠는 미친 듯 울다가 기절하고.. 할아버지는 넋을 놓아버리고 아빠도 울부짖더라고요. 그렇게 힘들던 저와 제 가족을 위로하며 같이 울던 남친과 친한 친구를 잃으신 사모님도 저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추스르고 제 나이 26살 끝나갈 무렵 남친이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전 사실 피했어요. 제 남친은 집이 잘살아요. 남친네 아버지 연봉이 1억 넘어요. 집도 강남이고...며칠을 피하다가 남친이 계속 물어봐서 결국 말했죠. 저희 집안과 남친 집안 차이를..
남친은 제게 너무 장하다고 삐뚤게 안 자라고 이렇게 잘 커서 좋은 대학 나오고 전망 좋은 회사도 다니면서 돈도 벌고..애기로 느껴졌던 제가 크는 걸 지켜보며 항상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다고.. 이미 부모님께 허락받고 오는 길이라고..부모님도 절 좋아하신다며 자신의 신부는 저 뿐이라고 하더군요. 오빠와 할아버지, 아빠도 축하해 주셨고 친구와 사장님 사모님 부부도 축하해 주시더군요.
모든 준비를 마쳐갈 무렵 할아버지께서 절 부르시더라고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와 오빠에게 용돈 받으며 사실 때 일부를 조금씩 모아오셨다고 저랑 오빠 결혼할 때를 위해..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으로는 할아버지께서 모으셨다며 통장을 건네주시더라고요. 600만 원 들어있었습니다. 못 받겠다 울면서 말해도 할머니께서 항상 말해오셨다고...저 결혼할 때 주라며...제 손에 쥐어주시는 할아버지..할아버지 손이 주름이 많으시더라고요. 그 손으로 제 손을 잡고 그렇게 곱던 제 손이 거칠어졌다고. 더 귀하게 키우고 싶었지만 형편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곱게 커줘서 고맙다고..항상 무뚝뚝하시던 분이...전..저희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이렇게 손 주름지게 해서 죄송하다고 같은 나이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행 다니실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하게 하고 저희를 키우게 해서 죄송하다고..한참 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남친에게 통장을 건네며 있던 일을 얘기하니 남친도 울더군요...할머니 생각났나 봅니다.
저희 1월에 결혼합니다. 못났던 절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보고 싶네요. 결혼식에서 젤 기뻐하실 분은 할머니신데..너무 보고 싶어요. 댓글로 소설 쓴다 하셔도 할 말 없을 것 같네요. 너무 스펙터클해서ᄒᄒ 제가 젤 힘들었던 중학생 시절 힘을 내줬던 과거의 제게도 감사하고 싶네요.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테니..
여러분도 아무리 힘드셔도 포기하지 마세요. 언젠가 잘 풀리셔서 행복할 일이 있을 거예요! 제가 결혼해서도 행복할 수 있게 축복해 주세요. 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저 1월에 결혼합니다. 축복해 주세요.
제가 어릴적 엄마 아빠는 이혼하셨어요. 그 뒤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어요. 할머니 밑에서 제가 독립하기까지 15년 정도를 살았네요.
되게 엄하셨어요. 하지만 저랑 오빠를 위해 원래 집을 팔고, 적금을 깨시고... 그러니까 편안한 노후생활까지 포기하신 걸 알기에
죄송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살았어요. 풍족하진 않았지만 저랑 오빠의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함 없게 최선을 다하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모두가..초등학생 때 4년을 소심하다는 이유로 왕따 당하고 성격 고치고 중핟생되니 친구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따당하는 애랑 친구하니 다시 왕따가 되었습니다. 2학년 올라갈 때까지요.
중학생 때 공부가 안되어 방황하다 고등학교로 올라가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1학기까지는 알바를 하며 공부는 사실상 놓고 살았어요.
그러다 2학년 방학 때 지금의 예랑과 사귀게 되었죠. 예랑과의 일을 얘기하자면 저희는 2살 차이고 교회에서 알게 되었어요. 당시 전 고1, 오빠는 고3이었어요. 저랑 친했던 언니가 데려왔었고 그 언니가 교회를 잘 안 나왔길래 저에게 부탁했고, 그 뒤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남자로 안 보이다 반하게 된 계기는 제가 남자복이 없었어요. 5번 사귀고 5번 다 남자가 양다리였거나 다른 여자랑 잤거나, 조선시 댄 줄 착각하거나ㅋㅋㅋㅋㅋ 참....
오빠는 평소엔 장난도 많이 치고 그러다가 제가 힘들 때는 항상 제 옆에서 위로해 줬어요. 오빠 앞에서 많이 울었는데..ㅋㅋㅋ...
그렇게 점점 오빠한테 관심이 생기고 어느새 푹 빠졌어요. 그렇게 제가 먼저 고백했는데 사실 오빠도 절 좋아했다네요.
고2 중간에 사귀게 되었고 사귄지 한달 쯤에 깊이 이야기 하게 됐어요.
알바를 왜 하냐고
전 원래 토요일만 5시간 일하는 알바를 해왔는데 남친이 생겼기에 알바 늘리려 했거든요. 이걸 알게 됐어요. 제가 면접 때문에 문자하는 걸 보고..
전 솔직하게 난 할머니랑 살고 아버지는 따로 일하셔서 오빠랑 나 교육비만 대신다. 용돈 도저히 받을 수 없어서 용돈 조금만 받았고 알바한거로는 옷 같은 걸 사는데 오빠랑 놀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하니까
전 공부를 해야 한다고 돈은 자신이 다 내겠으니 알바 더 늘리지 말라고 이런 식으로 1시간을 이야기하다가 제가 졌어요. 결국 알바를 더 안 늘리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고
안쉬웠어요. 중학교부터 시작해야 했고...다행히 전 아버지, 어머니 머리를 닮았어요. (두 분 다 문과계열에서 전교권이셨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었어요.)
또한 다행인 점은 전 잠을 4시간만 자도 안 피곤해요. 여러 장점을 살려서 고2 2학기부터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
학교 끝나고 학원 가서 끝나면 집에 와서 새벽 3시까지 공부하다 자고 토요일의 알바, 남친만나는날 빼고 공부에 매진했어요.
제가 고3때는 남친이 공부에 방해 되지 않겠다고...그때쯤 군대갔어요.
전 계속 공부해서 결국 좋은 수능 점수를 얻었고 인 서울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었어요.
제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언제나 어른이셨던 할머니가 우는 걸 보고 저도 울고 가족이 다 울었어요. 그리고 그날 외식했고 전 할머니가 계산하려는거 막고 제가 계산했어요. 그날 자고 일어나니 그때 계산한 비용만큼의 돈이 책상에 놓여있었고 할머니께 가니까 할머니는 절 안으면서
절 키우면서 중학생 때 할머니가 말 잘못해서 상처 많이 받았을 텐데 이겨내고 고등학생 때 힘들게 공부해서 이렇게 좋은 성적 받았는데..이 돈은 고생한 제가 쓰라고..아직 할머니는 저이게 받을 입장이 아니라면서 토닥여 주시더라고요. 그때 할머니에게 안겨서 펑펑 울면서 다짐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만큼은 제가 평생 안고 가겠다고...
친오빠도 제가 수능 무사히 끝난걸 보고 나서야 군대 가더라고요. 왜 아직 안 갔었냐 하니 고3 될 때까지 제가 방황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이끌어 주려 했다고...
남친에게도 편지했어요. 수능 잘 봤다고.
휴가 나온 날 남친에게 너무 고마워서 밥 비싼 거 먹이려고 소고기집 데려와서 밥먹이구 계산하려는데 이미 계산했나네요. 알고 보니 남친이 중간에 화장실 갔다 온다 하고 나가서 계산했더라고요.
진짜 남친 퍽퍽 때리면서 왜 계산했냐구..엄청 뭐라 하니까 남친이 제 손 막으면서 이돈으로는 자기 말고 고생한 저랑 저희 가족이랑 뭐라도 먹으라고....진짜 제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요...
대학 등록금도..교회 저랑 친했던 애 어머니기도하시며 제 할머니와 친하셨던 분은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시던 분의 아내분이셨고 그분들이 내주셨습니다. 그 정도 돈을 주시면서도 친구나 그 부모님이나 갑질 한 번을 안 하시더군요. 할머니와 제가 안 받으려던 거 그 어머니께서 저와 할머니를 몇 시간이고 설득하여 졸업하면 그 회사에 취직하기로 하는 조건하에 받기로 했어요.
그 뒤로 대학 생활하다 보니 남친도 전역했어요. 그 뒤 1년 정도 뒤에 아버지랑 남친이랑 밥 먹고 곧이어 할머니, 할아버지, 오빠에게도 소개했습니다. 좋아하시더군요. 저 역시도 남친네 부모님과 인사를 했어요.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그 후 몇 달 더 연애하다 동거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변함없었습니다. 남친에게 전 처음이었고 첫 키스도 첫 관계도 서로였습니다. 사람이 연애를 하면서 솔직히 살짝 식었지만 더 식지도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신뢰도 주고 사랑도 했죠. 제 남친은 제가 이유 없이 삐져도 화 한번 안 내더라고요.. 대학도 졸업하고 그 친구랑도 여전히 친하게 지내면서 회사로 들어갔어요. 사실상 낙하산이었기에 별다른 다툼 없이 지냈어요. 제 사정을 아시는 사장님 사모님이셨기에 승진도 잘 시켜주시고..안정적이게 될 무렵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였고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한참 울었고 장례를 치르며 오빠는 미친 듯 울다가 기절하고.. 할아버지는 넋을 놓아버리고 아빠도 울부짖더라고요. 그렇게 힘들던 저와 제 가족을 위로하며 같이 울던 남친과 친한 친구를 잃으신 사모님도 저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추스르고 제 나이 26살 끝나갈 무렵 남친이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전 사실 피했어요. 제 남친은 집이 잘살아요. 남친네 아버지 연봉이 1억 넘어요. 집도 강남이고...며칠을 피하다가 남친이 계속 물어봐서 결국 말했죠. 저희 집안과 남친 집안 차이를..
남친은 제게 너무 장하다고 삐뚤게 안 자라고 이렇게 잘 커서 좋은 대학 나오고 전망 좋은 회사도 다니면서 돈도 벌고..애기로 느껴졌던 제가 크는 걸 지켜보며 항상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다고.. 이미 부모님께 허락받고 오는 길이라고..부모님도 절 좋아하신다며 자신의 신부는 저 뿐이라고 하더군요. 오빠와 할아버지, 아빠도 축하해 주셨고 친구와 사장님 사모님 부부도 축하해 주시더군요.
모든 준비를 마쳐갈 무렵 할아버지께서 절 부르시더라고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와 오빠에게 용돈 받으며 사실 때 일부를 조금씩 모아오셨다고 저랑 오빠 결혼할 때를 위해..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으로는 할아버지께서 모으셨다며 통장을 건네주시더라고요. 600만 원 들어있었습니다. 못 받겠다 울면서 말해도 할머니께서 항상 말해오셨다고...저 결혼할 때 주라며...제 손에 쥐어주시는 할아버지..할아버지 손이 주름이 많으시더라고요. 그 손으로 제 손을 잡고 그렇게 곱던 제 손이 거칠어졌다고. 더 귀하게 키우고 싶었지만 형편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곱게 커줘서 고맙다고..항상 무뚝뚝하시던 분이...전..저희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이렇게 손 주름지게 해서 죄송하다고 같은 나이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행 다니실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하게 하고 저희를 키우게 해서 죄송하다고..한참 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남친에게 통장을 건네며 있던 일을 얘기하니 남친도 울더군요...할머니 생각났나 봅니다.
저희 1월에 결혼합니다. 못났던 절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보고 싶네요. 결혼식에서 젤 기뻐하실 분은 할머니신데..너무 보고 싶어요. 댓글로 소설 쓴다 하셔도 할 말 없을 것 같네요. 너무 스펙터클해서ᄒᄒ 제가 젤 힘들었던 중학생 시절 힘을 내줬던 과거의 제게도 감사하고 싶네요.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테니..
여러분도 아무리 힘드셔도 포기하지 마세요. 언젠가 잘 풀리셔서 행복할 일이 있을 거예요! 제가 결혼해서도 행복할 수 있게 축복해 주세요. 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