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노는 건가요?

ㅇㅇ2021.12.16
조회195,370

현재 22주차 임산부입니다.
백신은 임신 전에는 해당자가 아니어서 못맞았고
임신 후에는 태아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의사도 장담 못한다 하고
실제 진료보는 병원의 원장님도 안전하다 말하기 힘들다 하셔서
못? 안? 맞았습니다.

회사는 외국계인데 임산부 및 기저질환자 보호 명목으로
이미 작년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임신을 알고부터 위드코로나 때 11월 한달간만
잠시 출퇴근 했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계속 재택근무중입니다.

임신초기였던 어느날 시어머니가 제 출퇴근이 너무 걱정된다며
엄청 위해주시는 말투로 전화를 하셨고
재택근무 시행 중이라는 말에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셨어요.
근데 그 기뻐한 이유가 진짜 자기 일이라서 기쁜줄은 몰랐네요ㅋ

끄떡하면 전화해서 뭐 가져가라, 나랑 어디 좀 가자.
업무중이라 못간다고 하면 세상 이해 안된단 말투로
너 재택근무 중이라며?????????
그래서 재택도 근무라고 받아쳤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엔 노트북 들고 와서 일하면 되지 않냐더군요.
VPN 아시나요 다들.. 특정 IP대역에서만 회사 인트라넷 시스템에
접속이 가능하도록 만든 보안체계에요.
당연히 코로나 때문에 안전하려고 시행하는 재택이니까
재택근무자 1인당 등록 가능한 IP는 한가지이고
그렇다 보니 집 말고 다른 곳에서는 인트라넷 접근이 안됩니다.
그래서 차근차근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본인은 그렇게 어려운 얘기 못알아먹겠고,
오기 싫다는 거 잘 알았고(네 뭐 알아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참 핑계도 좋다. 재택이면 집에서 노는거지 일은 무슨..
이라네요.

물론 재택이 편하긴 하죠. 출퇴근길 스트레스 없는걸로도
임산부 입장에서 정말 황금같은 배려라고 생각해요.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세탁기 돌려놓고 업무 마치면 갠다던가
신랑 올 시간 맞춰 식사 준비 가능하고
나 듣고 싶은 음악 틀어놓고 일하고...
근데요... 노는거 절대 아니구요,
재택하면서 노는걸로 보이면 회사에서 재택 철회할까봐
이 코시국에 출근이 두려워서 오히려 일 더 열심히 해요.
매일 근무일지 쓰고, 가시성과 신경 더 많이 쓰구요.
야근도 출퇴근 시간 빠지는데 이정도 쯤이야 하면서
더 기꺼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눕거나, 티비보는 거 상상도 못해요.
농땡이 부리면 바로 업무에 티나는데 무슨 수로요..

그래서 저 말 듣고 나서 정말 전화 안받았어요.
그리고 퇴근하고 바빠서 전화 못받았다 무슨 일이시냐 했더니
또 재택이 뭐가 바쁘냐, 노는것과 다름없다 하시길래
안놀아요 어머니. 월급 값은 해야죠. 아니 못놀아요. 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코웃음을 치면서
야, 너 내가 지금 사회생활 안한다고 내가 우습니?
누굴 세상 물정 모르는 뒷방 노인네 취급하니?
... 그냥 용건 있으시면 앞으로 신랑한테 전화하시라 했어요.
그랬더니 일하느라 바쁜애한테 어떻게 전화를 하녜요.
그래서 네!! 저도 일하느라 바빠요 어머니!! 하고 끊어버렸네요..

신랑한테 그날 저녁 그동안 참고 제 선에서 미련하게 해결했던
부분들 다 쏟아내고 펑펑 울었어요.
사실 울 생각까진 없었는데.. 임신 호르몬이란게 뭔지 진짜..
그 날 이후로 전 시어머니 전화 안받고 신랑이 다 처리했어요.
정작 신랑한텐 뭐 시키시는것도 없대요.

근데 오늘은 진짜 받을 때까지 해보자는 건지
연속으로 전화를 내리 다섯번을 하시더라구요.
제가 그래도 일말의 측은지심으로 차단은 안했는데...
혹시 비상상황일까봐 싶어 전화 받았더니 받자마자...

너 회사 그만둬!!!!!!!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유세야 유세가!!!!!
내가 너 진급하고 애 가지는거 미루는것도 봐주고(?)
남들 다 며느리 옆에 끼고 살림 가르치는 것도 포기(?) 했는데
어디서 고마운 줄 모르고 재택근무하면서도 유세야!!!!!!!
당장 그만 둬!!!!!!

저 웃음밖에 안나오대요.
그냥 끊어버렸고 통화 녹음된 거 신랑한테 바로 보냈어요.
시끄러우니까 이어폰을 끼던지 혼자 있을때 들으랬구요.
제가 얼마를 벌던, 제가 대학나와 제 커리어 지키겠다는데
자라면서 아무것도 보탠거 없는 시어머니한테
왜 이런 소릴 들어야 하는지 곱씹을수록 납득이 안된다 했고
어머님이 선을 넘으셨으니 난 아예 관계를 끊겠다 말했어요.
신랑은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하고 아직 소식이 없네요.
아마 시어머니한테 전화해서 화내고 있겠죠...

뱃속 아가 지키느라 재택하는 며느리한테 도대체 왜 저러는거죠?
정말... 점심 먹어야 하는데 입맛도 뚝 떨어졌어요.
이렇게들 시어머니와 손절하는 거군요. 참...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