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후배가 기분 풀자며 갔었죠. 여친과 이별의 이유는 종교의 강요였고, 제가 이별을 통보했었죠. 여친의 어머니까지 강요한 그연애는 둘만의 싫음이 아닌, 교회문제로 결혼직전에 헤어졌기에 서로간의 좋았던 마음은 남았던 터라.. 이별의 후유증은 꽤 컷던것 같습니다.
나이트에서 만난 지금의 와이프. 첫만남때는 직업도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음날 번호만 남고 , 재밌게 이야기 했던 기억에 연락을 했었고 , 그때부터 결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2년간의 연애를 하는중에도, 전 여친과는 다른 밝은 성격과, 종교가 없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매우 좋았던것 같습니다. 덧붙여 강요하지 않은 집안의 분위기도 한 몫 했던거 같습니다. 결혼전까지는 말이죠...(반전은 뒷글에..)
지금생각해보니 전 여친과 반대면 다 좋았던것 같습니다. 직업도 아내는 당시 대기업생산직이었고, 장인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지만 화물차를 모시더군요.(최근에 알았네요..반전은뒷글에)
전여친은 공무원이었고 아버지가 지방5급공무원이셨는데 자부심이 있더라구요..그 어머니께서...
아내는 성격이 밝고, 근심 걱정없으며, 사회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는 순박한 여자였었죠. 연애도 많이 해보지 못했고, 실업계를 졸업하자 마자 공장에서 일을 했으니, 어쩌면 단순하게 살았다고 표현하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저의 말을 항상 경청했고, 저희집의 분위기를 매우 좋아했던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헌신적이었구요.. 그리고 저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결혼1년전까지 개인사업을 위해 서울에서 일을 배울때도 저에대한 믿음과 확신이었는지 본인의 차를 빌려줄정도로 믿어주던 여자였습니다.
저는 결혼과 사업을 거의 동시에 시작했고 (결혼전엔 중견회사다님) 사업자금과, 결혼비용은 집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지방의4년제를 졸업한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릴적부터 대학교수로 지낸 아버지와 예체능 학원장을 지낸 어머니 덕분에 부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자는 아닌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누님도 2분 계시는데 매형들이 모두 넉넉히 잘 벌어 사십니다.
하지만 아내와는 지금까지 총2번. 법원에 이혼신청을 했었고, 숙련기간 동안 다시 재결합을 했었습니다. 그 2번은 저의 딸이 태어나기 전인 , 결혼1~2년 차에 있었던 일입니다. 2번쨰 법원간뒤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후에는 법원에 간적은 없네요.
당시의 이유는 저와 장인,장모간의 갈등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가정환경이 다르고, 경제적인 상황이 부족한지도 알았음에도 , 개의치 않았습니다. 결혼도 사실은 우여곡절이 많은데,아내가 연애만 할꺼면 헤어지자는 통보를 했었고, 천성이 참 착하고 , 나를 믿어주는 여자라 생각하여 결혼을 했습니다. 물론 몇번 저는 결혼생각이 없었기에 헤어지자고도 했었구요.. 또한 결혼후에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서 2년간 아이도 없이 지냈었구요.. 결론적으론 저는 결혼에대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결혼을 안할것이 걱정되었던지 조금은 밀어붙이신 것도 있구요.
근데 지금생각해도 의문점이 많았던 결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아내의 부모님과 여러 환경에대해 물어보셨는데... 그중 하나가 장인의 직업이었습니다. 화물차를 30년간 운전했다고 최근에야 말씀하셨지 당시에는 운수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라며 명함도 주셨거든요.. 아내에게 물어봐도 두리뭉실 운수업에 관련된 일을 다하신다고 하고,, 결혼 중간에도 물어봐도 장인은 운수업에 관련된 일을 다하신다고 할뿐 정확히 무슨일을 하신다고 말씀을 안하시더라구요..
근데 이게 문제가 된건 아니구요. 부족하면 도움드리며 살면 되지 라고 말았고, 아내의 마음만 봤기에 큰 생각없이 넘겼습니다.
단지. 위와같은 장인 장모의 성격(?)상 매사에 진실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본인들 하고 싶은대로 매사에 일을 처리하시더군요. 매너와 예의 그리고 배려가 없으신 분들이셨죠.
이또한 결혼 후에 180도 바뀌어 버리니.. 조금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없을때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어른 앞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하셔서 대략 난감했는데,, 본인들은 o서방이라고 부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름을 부르는데 ... 갈피를 못잡겠더라구요. 그리고 아내는 제게 오빠라해도 괜찮구요.. 호칭에 민감하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할텐데 본인들은 괜찮고 상대방은 안되고.. 한 열가지 일중에 일부만 적습니다. 이런 스타일이세요..
저녁식사 약속을 잡아서 예약한곳에 가려하면 당일 친구들과 낮술드시고 집에서 자버리시고 장인이요...... 그리고 분명 아내와 저 장인장모 넷이서 보기로 해서 가보면, 사전에 말씀없는 인원들이 와서 함께 먹고....
그래도 아내의 부모이기에, 6년전에 노후준비가 안되었다기에 매월 작게나마 10년짜리 개인연금도 지금도 넣어드리고 있습니다. 사위로써 제 도리는 다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양해를 구하지 않는 배려없는 행동은 적응이 안됩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부모님 아래에 살아서인지, 배려 없는 사람에 대한 적응이 잘안되었습니다. 이때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고, 어찌됬든 아내는 본인의 부모인데 자꾸 다투게되었습니다. 그러다 잦은 다툼이 되었고 법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자신이 유연하지 못한 성격인것도 맞습니다. 맞춰보려 노력해봤지만 잘 안되더군요.
그리고 사랑스런 딸이 태어나며 모든게 잠잠해진것 같을때쯤 저의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저의 딸이 말이죠 ㅠㅠ 세상이 무너진것 같은,,,아니 신을 원망했고, 제 자신에게도 자책했습니다. 아내에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장애 판정 받기전에 일로 잠시 돌아가면... 결혼과 동시에 한 사업은 매우 잘되었고.. 딸이 태어나고 육아휴직 1년뒤에 아내는 전업주부로 지냈습니다. 전업주부요청은 제가 하였는데.. 공장에서 교대근무를 뛰며 돈은 많이 벌지만, 건강이 심히 우려되었고, 장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컷던것 같습니다. 육아 휴직 후 5개월간 일하고 그만둔 기간엔 제가 아이를 혼자 돌볼정도로요... 이때 저도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번 돈으로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늦은나이에 공기업합격)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약 1년간 방황했습니다. 무책임했고 무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지더군요.. 부모님의 도움과 누나들의 격려. 그리고 아내의 아이를 위한 헌신적인 모습에 다시 일어서게 되었지만 다시 사업을 하기엔 금전적 손실이 컷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써 집안의 선장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쿠팡의 프리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송,배달,물류센터 일을 돌아가며 했습니다.
공기업의 월급으론 생활이 어려워서요... 늦은나이에 공기업을 갔고 월300만원으론 외벌이 충당이 안되더군요.. 딸의 치료센터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렇게 약2년간 월 평균400~500만원의 순수입으로 지금까지 꾸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매월 부모님께 100만원을 지원받습니다. 손녀의 치료비용으로요..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근데 올해 3월부터 장인과 장모와 연을 끊었습니다. 도저히 스트레스 받아서 함께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일단 이해를 했구요. 그렇다고 저희집과 인연을 같이 끊은건 아닙니다. 이때부터 아내의 성격이 변했다고 할까요? 아님 장모님의 성격과 오버랩이 됩니다. 비슷해지는 느낌?
정말 3월부터 매월 1회씩 싸웠습니다. 싸움의 이유는 사소한 것인데... 항상 제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본인이 잘못할땐 사과도 잘하던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당당하게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주장하니까 잘못됬다는게 아니라 , 본인이 잘못한것도 일단 목소리 높이고, 제가 하는말은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본인이 모르는게 많아서 넘어간것이지.,
본인도 이제 책도읽고(육아관련책) , 사람들(특수유치원엄마들) , 나이도 먹고(저와5살차이)
하다보니 이제 자기 할말은 하겠답니다. 근데 특수아동을 키우시는 부모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이키우기가 엄청 힘이듭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저도 살았습니다. 아내에게요..
또한 금전적으로 저축은 못하지만 부족해서 못쓸정도는 안하고 살았습니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저는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저는 사람을 안만납니다. 이쪽에 사는 친구도 없을뿐더러 일 자체가 혼자 일하는 것이라서요. 집과 일만 왔다갔다하고 쉬는날과 남은시간은 무조건 아이와 보냅니다. 그리고 반찬은 사먹고(요리할 시간없음) , 질리면 가족외식하고, 식비와 치료비 가 주된지출이죠.
또한 아내는 유일하게 아이가 유치원갔을때 사람도 잠깐 보고 , 커피숍에서 책도읽고,집안일도하고
유치원이 끝나면 아이치료센터 픽업하고... 또 집에와선 애 돌보구요.. 고생많죠.
근데 최근 몇개월전부터는 제가 아플때 음식 시켜먹은것을 가지고 잔소리를 합니다.
감기몸살이 왔을때 입맛 없지 않나요? 17000원 어치 배달음식을 먹었는데, 아내가 제게 본인은 돈 아껴쓰라고 하면서(제가 택배박스가 하루에 6개가 온날..돈 생각하면서 쓰지?라고 말함)
음식 시켜먹은다고...
이번엔 백신 맞아서 팔이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하루 쉬면서 햄버거를 배달시켰는데 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제가 몸을 쓰는 일을 하다보니까 몸이 아프면 일하기가 어렵거든요..
처음 배달음식 가지고 싸울때, 아내가 제게 말하길 돈을 아껴쓰라고 하면서 저는 술도하고 담배도 다하지 않으냐면서,, 타박하더군요.. 근데 술도저는 집에서만 먹어요.. 물론 아내도 맥주를 즐겨해서 마트에서 산 맥주 같이 먹습니다. 담배는 유일한 저의 친구네요. 의지박약한건 알지만 담배까지 끊으면 무슨재미로 사나 싶어요. 근데 배달음식..그것도 아플때 시켜먹은걸로 잔소리를 하는데 무슨 사는의미가 있나 싶네요...
제가 돈을 벌지만.. 카드는 아내꺼로 씁니다. 개인회생중이라 제 명의 카드발급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카드를 쓰면 아내에게 문자로 갑니다. 아내는 사람들만나서 밥먹고 커피먹어도 저는 모를뿐더러 돈관리도 아내가 하기 때문에... 굳이 저도 구구절절 얼마썼냐고 물어보지도 않아요.. 이유는 아이키우느라 고생하는걸 알기에... 왠만한건 분쟁을 안만들려합니다.
음식은 이렇게 사소하게 싸우는 사례중 하나인데요... 얼마전부터 이런생각이 들어요.. 집이편해야 일도 잘되는것인데.. 매번 이런 걸로 다투고... 그러면 3명밖에 없는 집에 냉기가 흐르고..
제가잘못했다면 서럽진 않겠죠. 반성해야 할테구요.. 제나이 40인데 지금도 밥한끼 먹었네요..ㅜ
일할땐 아침에 먹고가서 밤에 집에 올때까지 군것질도 안합니다. 돈 아까워서요..
근데 집에서 맥주먹고 담배피고 할거 다하면서 . 돈 생각하면서 쓰지? 라고 공손하게도 말했네요 당시에... ... 그래도 본인 기분나쁘면 할말 다하고..
제가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가요? 어디서 부터 잘못된건가요? 아내는 사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 살구요.. 인정합니다. 인정하는데 ...너무 아이 키우는게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생각도 해봤는데... 이런 부분까지 잔소리를 하고 목소리를 높여대니 미래가 보이질 않아 힘이듭니다.
집이 편해야 일이 잘되더군요. .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저는집이 유일한 편안한 공간이니까요.
또한 매번 저축하지 못하며 오늘만 보는 삶이 싫어서 내년부턴 일과병행해서 공부를 하려고 해요... 염치없지만 가족들의 도움도 좀받으면서요..
이유는 단하나! 저의 딸과 아내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다행인게 영어와 암기에는 어릴적부터 자신이 있어서.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려는데 이런 조그마한 일들로 매번 다투는게 싫네요.
부부간에 싸울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반복되는 다툼도 그러려니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제가 아내에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이해를 못하고 다투는걸까요?
결혼6년차 가장의 이야기....
댓글 부탁드려봅니다. 제 자신도 헷갈리는 이 꿈만 같은 이야기를 읽어보시구요..
나이트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당시 2년간 사귄 여친과 헤어지고 방황하던 1달사이에요.
회사 후배가 기분 풀자며 갔었죠. 여친과 이별의 이유는 종교의 강요였고, 제가 이별을 통보했었죠. 여친의 어머니까지 강요한 그연애는 둘만의 싫음이 아닌, 교회문제로 결혼직전에 헤어졌기에 서로간의 좋았던 마음은 남았던 터라.. 이별의 후유증은 꽤 컷던것 같습니다.
나이트에서 만난 지금의 와이프. 첫만남때는 직업도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음날 번호만 남고 , 재밌게 이야기 했던 기억에 연락을 했었고 , 그때부터 결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2년간의 연애를 하는중에도, 전 여친과는 다른 밝은 성격과, 종교가 없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매우 좋았던것 같습니다. 덧붙여 강요하지 않은 집안의 분위기도 한 몫 했던거 같습니다. 결혼전까지는 말이죠...(반전은 뒷글에..)
지금생각해보니 전 여친과 반대면 다 좋았던것 같습니다. 직업도 아내는 당시 대기업생산직이었고, 장인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지만 화물차를 모시더군요.(최근에 알았네요..반전은뒷글에)
전여친은 공무원이었고 아버지가 지방5급공무원이셨는데 자부심이 있더라구요..그 어머니께서...
아내는 성격이 밝고, 근심 걱정없으며, 사회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는 순박한 여자였었죠. 연애도 많이 해보지 못했고, 실업계를 졸업하자 마자 공장에서 일을 했으니, 어쩌면 단순하게 살았다고 표현하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저의 말을 항상 경청했고, 저희집의 분위기를 매우 좋아했던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헌신적이었구요.. 그리고 저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결혼1년전까지 개인사업을 위해 서울에서 일을 배울때도 저에대한 믿음과 확신이었는지 본인의 차를 빌려줄정도로 믿어주던 여자였습니다.
저는 결혼과 사업을 거의 동시에 시작했고 (결혼전엔 중견회사다님) 사업자금과, 결혼비용은 집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지방의4년제를 졸업한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릴적부터 대학교수로 지낸 아버지와 예체능 학원장을 지낸 어머니 덕분에 부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자는 아닌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누님도 2분 계시는데 매형들이 모두 넉넉히 잘 벌어 사십니다.
하지만 아내와는 지금까지 총2번. 법원에 이혼신청을 했었고, 숙련기간 동안 다시 재결합을 했었습니다. 그 2번은 저의 딸이 태어나기 전인 , 결혼1~2년 차에 있었던 일입니다. 2번쨰 법원간뒤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후에는 법원에 간적은 없네요.
당시의 이유는 저와 장인,장모간의 갈등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가정환경이 다르고, 경제적인 상황이 부족한지도 알았음에도 , 개의치 않았습니다. 결혼도 사실은 우여곡절이 많은데,아내가 연애만 할꺼면 헤어지자는 통보를 했었고, 천성이 참 착하고 , 나를 믿어주는 여자라 생각하여 결혼을 했습니다. 물론 몇번 저는 결혼생각이 없었기에 헤어지자고도 했었구요.. 또한 결혼후에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서 2년간 아이도 없이 지냈었구요.. 결론적으론 저는 결혼에대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결혼을 안할것이 걱정되었던지 조금은 밀어붙이신 것도 있구요.
근데 지금생각해도 의문점이 많았던 결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아내의 부모님과 여러 환경에대해 물어보셨는데... 그중 하나가 장인의 직업이었습니다. 화물차를 30년간 운전했다고 최근에야 말씀하셨지 당시에는 운수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라며 명함도 주셨거든요.. 아내에게 물어봐도 두리뭉실 운수업에 관련된 일을 다하신다고 하고,, 결혼 중간에도 물어봐도 장인은 운수업에 관련된 일을 다하신다고 할뿐 정확히 무슨일을 하신다고 말씀을 안하시더라구요..
근데 이게 문제가 된건 아니구요. 부족하면 도움드리며 살면 되지 라고 말았고, 아내의 마음만 봤기에 큰 생각없이 넘겼습니다.
단지. 위와같은 장인 장모의 성격(?)상 매사에 진실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본인들 하고 싶은대로 매사에 일을 처리하시더군요. 매너와 예의 그리고 배려가 없으신 분들이셨죠.
이또한 결혼 후에 180도 바뀌어 버리니.. 조금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없을때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어른 앞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하셔서 대략 난감했는데,, 본인들은 o서방이라고 부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름을 부르는데 ... 갈피를 못잡겠더라구요. 그리고 아내는 제게 오빠라해도 괜찮구요.. 호칭에 민감하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할텐데 본인들은 괜찮고 상대방은 안되고.. 한 열가지 일중에 일부만 적습니다. 이런 스타일이세요..
저녁식사 약속을 잡아서 예약한곳에 가려하면 당일 친구들과 낮술드시고 집에서 자버리시고 장인이요...... 그리고 분명 아내와 저 장인장모 넷이서 보기로 해서 가보면, 사전에 말씀없는 인원들이 와서 함께 먹고....
그래도 아내의 부모이기에, 6년전에 노후준비가 안되었다기에 매월 작게나마 10년짜리 개인연금도 지금도 넣어드리고 있습니다. 사위로써 제 도리는 다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양해를 구하지 않는 배려없는 행동은 적응이 안됩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부모님 아래에 살아서인지, 배려 없는 사람에 대한 적응이 잘안되었습니다. 이때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고, 어찌됬든 아내는 본인의 부모인데 자꾸 다투게되었습니다. 그러다 잦은 다툼이 되었고 법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자신이 유연하지 못한 성격인것도 맞습니다. 맞춰보려 노력해봤지만 잘 안되더군요.
그리고 사랑스런 딸이 태어나며 모든게 잠잠해진것 같을때쯤 저의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저의 딸이 말이죠 ㅠㅠ 세상이 무너진것 같은,,,아니 신을 원망했고, 제 자신에게도 자책했습니다. 아내에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장애 판정 받기전에 일로 잠시 돌아가면... 결혼과 동시에 한 사업은 매우 잘되었고.. 딸이 태어나고 육아휴직 1년뒤에 아내는 전업주부로 지냈습니다. 전업주부요청은 제가 하였는데.. 공장에서 교대근무를 뛰며 돈은 많이 벌지만, 건강이 심히 우려되었고, 장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컷던것 같습니다. 육아 휴직 후 5개월간 일하고 그만둔 기간엔 제가 아이를 혼자 돌볼정도로요... 이때 저도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번 돈으로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늦은나이에 공기업합격)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약 1년간 방황했습니다. 무책임했고 무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지더군요.. 부모님의 도움과 누나들의 격려. 그리고 아내의 아이를 위한 헌신적인 모습에 다시 일어서게 되었지만 다시 사업을 하기엔 금전적 손실이 컷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써 집안의 선장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쿠팡의 프리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송,배달,물류센터 일을 돌아가며 했습니다.
공기업의 월급으론 생활이 어려워서요... 늦은나이에 공기업을 갔고 월300만원으론 외벌이 충당이 안되더군요.. 딸의 치료센터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렇게 약2년간 월 평균400~500만원의 순수입으로 지금까지 꾸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매월 부모님께 100만원을 지원받습니다. 손녀의 치료비용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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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근데 올해 3월부터 장인과 장모와 연을 끊었습니다. 도저히 스트레스 받아서 함께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일단 이해를 했구요. 그렇다고 저희집과 인연을 같이 끊은건 아닙니다. 이때부터 아내의 성격이 변했다고 할까요? 아님 장모님의 성격과 오버랩이 됩니다. 비슷해지는 느낌?
정말 3월부터 매월 1회씩 싸웠습니다. 싸움의 이유는 사소한 것인데... 항상 제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본인이 잘못할땐 사과도 잘하던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당당하게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주장하니까 잘못됬다는게 아니라 , 본인이 잘못한것도 일단 목소리 높이고, 제가 하는말은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본인이 모르는게 많아서 넘어간것이지.,
본인도 이제 책도읽고(육아관련책) , 사람들(특수유치원엄마들) , 나이도 먹고(저와5살차이)
하다보니 이제 자기 할말은 하겠답니다. 근데 특수아동을 키우시는 부모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이키우기가 엄청 힘이듭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저도 살았습니다. 아내에게요..
또한 금전적으로 저축은 못하지만 부족해서 못쓸정도는 안하고 살았습니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저는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저는 사람을 안만납니다. 이쪽에 사는 친구도 없을뿐더러 일 자체가 혼자 일하는 것이라서요. 집과 일만 왔다갔다하고 쉬는날과 남은시간은 무조건 아이와 보냅니다. 그리고 반찬은 사먹고(요리할 시간없음) , 질리면 가족외식하고, 식비와 치료비 가 주된지출이죠.
또한 아내는 유일하게 아이가 유치원갔을때 사람도 잠깐 보고 , 커피숍에서 책도읽고,집안일도하고
유치원이 끝나면 아이치료센터 픽업하고... 또 집에와선 애 돌보구요.. 고생많죠.
근데 최근 몇개월전부터는 제가 아플때 음식 시켜먹은것을 가지고 잔소리를 합니다.
감기몸살이 왔을때 입맛 없지 않나요? 17000원 어치 배달음식을 먹었는데, 아내가 제게 본인은 돈 아껴쓰라고 하면서(제가 택배박스가 하루에 6개가 온날..돈 생각하면서 쓰지?라고 말함)
음식 시켜먹은다고...
이번엔 백신 맞아서 팔이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하루 쉬면서 햄버거를 배달시켰는데 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제가 몸을 쓰는 일을 하다보니까 몸이 아프면 일하기가 어렵거든요..
처음 배달음식 가지고 싸울때, 아내가 제게 말하길 돈을 아껴쓰라고 하면서 저는 술도하고 담배도 다하지 않으냐면서,, 타박하더군요.. 근데 술도저는 집에서만 먹어요.. 물론 아내도 맥주를 즐겨해서 마트에서 산 맥주 같이 먹습니다. 담배는 유일한 저의 친구네요. 의지박약한건 알지만 담배까지 끊으면 무슨재미로 사나 싶어요. 근데 배달음식..그것도 아플때 시켜먹은걸로 잔소리를 하는데 무슨 사는의미가 있나 싶네요...
제가 돈을 벌지만.. 카드는 아내꺼로 씁니다. 개인회생중이라 제 명의 카드발급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카드를 쓰면 아내에게 문자로 갑니다. 아내는 사람들만나서 밥먹고 커피먹어도 저는 모를뿐더러 돈관리도 아내가 하기 때문에... 굳이 저도 구구절절 얼마썼냐고 물어보지도 않아요.. 이유는 아이키우느라 고생하는걸 알기에... 왠만한건 분쟁을 안만들려합니다.
음식은 이렇게 사소하게 싸우는 사례중 하나인데요... 얼마전부터 이런생각이 들어요.. 집이편해야 일도 잘되는것인데.. 매번 이런 걸로 다투고... 그러면 3명밖에 없는 집에 냉기가 흐르고..
제가잘못했다면 서럽진 않겠죠. 반성해야 할테구요.. 제나이 40인데 지금도 밥한끼 먹었네요..ㅜ
일할땐 아침에 먹고가서 밤에 집에 올때까지 군것질도 안합니다. 돈 아까워서요..
근데 집에서 맥주먹고 담배피고 할거 다하면서 . 돈 생각하면서 쓰지? 라고 공손하게도 말했네요 당시에... ... 그래도 본인 기분나쁘면 할말 다하고..
제가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가요? 어디서 부터 잘못된건가요? 아내는 사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 살구요.. 인정합니다. 인정하는데 ...너무 아이 키우는게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생각도 해봤는데... 이런 부분까지 잔소리를 하고 목소리를 높여대니 미래가 보이질 않아 힘이듭니다.
집이 편해야 일이 잘되더군요. .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저는집이 유일한 편안한 공간이니까요.
또한 매번 저축하지 못하며 오늘만 보는 삶이 싫어서 내년부턴 일과병행해서 공부를 하려고 해요... 염치없지만 가족들의 도움도 좀받으면서요..
이유는 단하나! 저의 딸과 아내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다행인게 영어와 암기에는 어릴적부터 자신이 있어서.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려는데 이런 조그마한 일들로 매번 다투는게 싫네요.
부부간에 싸울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반복되는 다툼도 그러려니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제가 아내에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이해를 못하고 다투는걸까요?
뭐가 문제인지 혼란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