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버지께서도, 내가 고집부리면
꺽어보려고 별짓다해보셨다가,
포기...
그걸두고두고 오늘날까지 후회하시지.
여튼 유년기는 이모양이었고,
내가 남편을 만나서 토뀐뒤에야
오빠들이 장가를 갔다.
나이차이가 좀 있거든.
좀 늦은편이었어.
큰올케언니는 좀 계산을 안하면 괜찮은데,
일은 내가해도 계산은 지가하드라고.
나머진 내가 암말도 안하는 이유가
고생하는걸 아니까 말은 잘 안해.
날건들지만 않으면.
우리언니들은 집순이들만 시집왔다고
바락바락을 했었는데,
뭐 이해는 하는데, 남의집딸 욕할게 아닌게
그 집순이 좋다는건 내오빠놈이자노?
굳이 내가 뭐라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가끔 성질은 나.
자연스럽게 부모님한테 돈을 받아가더라고.
내가 대학어렵게 졸업했다 했잖아, 부모님이 딱한번
등록금의 일부를 도와준거에 입대면서
이야길하더라고.
그때 올케언니를 잡아버렸는데,
아들이라고, 며느리라고 도리 똑바로 하면서
집안돈 탐내라고,
내가작정하고 지분빼간다고 들면 감당가능하냐
했더니 조용해졌지.
아버지의 애착 1순위가 나인걸 모르는 집안사람은
없거든.
이유는, 간단해.
우리집 아들딸들 다 전투민족이기만 했지,
다정한것들이 없다
곰살떨고, 챙겨주고, 사소한것에도 소소한
이벤트가 없어.
난그게 되는 이집안의 유일한인간이고.
카네이션만 주던집에 편지 쓰는 최초,
결혼기념일에 두분 드시라고 초콜렛이라도 선물해준 최초,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준다고 카드만들어 주는딸.
그냥 친구한테 해주면 좋아하는건 부모님부터
해주고 크게 되더라고.
아무도 안해주니까. 여섯살부터 저랬으니.
당연히, 내가울면 난리난줄아시고,
내가 못견디겠다고 산으로 튀면
산에와서 달래서 데리고가셨지.
언니오빠모르게 업어주고, 맛난거 한입더주는건
그냥 아버지의 습관같은거였어.
거기다 집안이 일이 많은집인데,
살려고 입꾹닫고 일만하던애야.
뭔들안주고싶을까?
내가 입을 안대는거지.
우리올케들이 그래서인지,
시집오자마자 날 그렇게 구박했다.
그냥싫대. 어쩌란거지? 싶더라고.
그래서 우리엄마가 어떤 시엄마가 될지 알면서도
눈감고 나는 안보인다 했었어.
친정을와도, 밥먹는것도 미워하는 올케들한테
잘해주기가 싫더라고.
게장 안먹는다더니 내가먹음 들고튀고,
꼬막도 내가먹으니까 통째들고 튀더라.
일할거있음 나있다고 도망이나 치고.
없던 시누노릇도 하고싶어진달까.
둘다 집에서 전업주부면서.
난일도하고, 두집살림하고, 어쩌다 친정오는건데도.
쉬어본적이 없다.
남들은 친정가서 못잔 잠이라도 잔다든데.
내팔자는 젠장.
왜 그느낌 알아? 콩불려서 갈아서 끓여서 고생고생해서
두부해놨더니, 아가씨랑 어머님은 또하라고
다들고가는 올케 뒤통수에 짱돌던지고싶은거.
내가 올케한테는 못하겠어서 오빠넌 양심이없다고
꼴도보기싫다 했었지.
딸이강도가아니라 아들이 강도인집은 우리집뿐이라고.
지금도 그버릇을 다 고치진 못했어.
김장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천포기 겨우하고 널부러지면
담아서그냥튀고...
그러다 아부지한테 디지게혼나고.
나 몇통가져가나 세다가 엄마한테 욕한자리먹어.
그래도 큰올케언니가 밉지않은건 종가에 시집와서
종부일배우는게 얼마나 고역일지 아는데,
두말없이 그 제사, 시제, 그많은걸 할땐 소리가 없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성질부리거나,
선넘는다 싶으면, 올케언니 들어가서 좀 쉬라그러고
내가 싸워주긴해.
엄마딸들도 딴집 며느리인데, 엄마이러는거
사돈들이 알면 엄마딸들 가루되게 시집살이 당한다고.
바락바락 승질내곤 하거든.
그래서 그런지 태도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문제는 둘째올케였지.
이 희대의 ㅆㄴ은... 내가 욕빼곤 써지질않는다.
얽힌이야길 다 쓰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감출수가 없으니까.
내가 처음부터 일찍 시집가려한게 아닌게,
돈벌어서 시골구석 탈출하려고 시도는 했었어.
남편과 연애초기, 시골을 탈출할 기회가있었다.
이 둘째냔이 나타나기 전까진,
꽤 희망적이었다.
나는 진짜 그때가 시골서 사무직을 여섯군데를
커피심부름을 빙자한 성희롱으로 때려치우고
심각하게 고민중이었고,
장사를 배워봐야하나 하는 갈등을 하고있었다.
그런내게 둘째오빠는 올라와서 같이 지내면서
콜센터라는게 있으니 입사를 권했지.
그때도 이사놈이 성희롱발언을하며 회식자리에서
안놔줘서 남친이었던 남편을 불러내서 겨우탈출,
(망할늙은이가 지첩하래..아오...드럽게몬생기가꼬. 남편은 서울에서 장학금받던 대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둔.)
알바삼아서 동대문 남대문에서 일을잠시했었다.
이때의 인맥이 내겐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렇게 두어달의 시간이 지날즘,
둘째냔이 진짜 어느날갑자기 짐보따리 싸들고
쳐들어왔다.
진짜 잠도못자게 시끄럽고,
(행동자체가 시끄러움. 냉장고도 쿵소리나게 닫는것도 재주임)
진짜 이기적이고,
오빠좋아하는 생선구이라도 하면
나한테 집에서 이딴거 한다고 욕을쳐날리던
지손으로 지속옷도 안빨아입는,
앉은자리는 뒤엄자리가 되고만다는
천하의 게으른 돼지도 이런 돼지가없었다.
너무하다고? 지속옷빼놓고 손빨래한다고
지 생리혈이 벤 속옷 나한테 던지는 냔한테
고운말 나가믄 내가 부처님이지 사람이냐.
하... 삼시세끼 차려달라고 징징대지,
소세지라도 고기비슷한거 안올라오면 난리지,
아니 내가 식모냐고 하녀냐고.
안해주면 기어이 오빠 일터까지가서 발광해서
오빠랑 나는 미친개는 피하는거다 하는심정으로
그냥 진짜 조심하고살았다.
열받아진짜. 생각만해도 홧병이 치밀만큼.
근데 더 열받는건
그뒤였다.
우리집에 남친이랑 자주만난다고 일르고,
둘이 이미 자서 애만들었을거라고
싸구려만들고.
만나는사람마다 다 남자라고.
아니 대학동기 서울이라고 밥먹자고 해서
딱한번 밥먹은게
남자만난거냐고,
그리고
누차말하지만 남편은 지꺼라고 날 한집에 들이기전까진
날 심하게 아껴주셔서 진도가 안나갔다고.
아주 징글징글하게 애껴주셔서
난 내가 설탕유리인줄 톡하믄 깨지는.
그와중에 내친구들은 다시골에 있다보니
난 논적이 별로없이범생...
심지어는 오빠랑 나랑 운동다니는것도
둘이 뭔짓하는것처럼 매도했고,
나는 그냥 존재자체가 ㅆㄴ이 되더라고.
입이산것들이 정말싫다.
결국 오빠랑 싸웠고
일방적으로 당한뒤 내려간 시골은,
더이상 내집이 아니었다.
살면서 그런 냉대는 처음이었다.
때는 이때라고, 시모의 세치혀가 만든소문과,
남편역시 집에서 당한일들로
우린 세트로 희대의 ㅆㄴㄴ들이되서,
살림을 차리게 된거였다.
내가 집과 연을 끊다시피한 그 신혼초,
게으르고, 더럽고, 남자밝히는.
그런인간으로 매도당해있었고,
그 오해는 내 앞자리 언니가 열받아서 술먹고
집을 다 엎어버리게 1차,
몇해뒤
그언니 결혼식에 온 시댁동네살던 친척이
아버지한테 딸죽일거냐고,
쟤(나) 어떻게 사는줄 아냐고 해서 2차.
이게 오해를 풀게된 계기였다.
왜 말안했냐기에,
내가 안했는지, 나보고 욕하고 말못하게 한건지
구분하고 그런소리 하랬더니 다들입을 다물었다.
시엄니와 그일당들의 패악은 그때 극에달해있었고
나는 걸리기전까지 아픈것도 입다문 이유가
죽으려고 한짓이었으니 무슨말을 더할게있을까.
근데
둘째냔이 내가 암에걸린 그때,
식구들한테 걸린직후 임신을 했다.
그래도 풀어보려고
입덧은 안심한지, 먹고싶은게 있는지 물었더니,
좋은소린 기대도 안했다만
저 망할 주둥이가 내뱉는소리가
애도 안낳아본게, 저러니 암걸렸다더라.
(유산직후, 암치료거부상태였음)
내가 성질이 안돌면 이상할 정도로 참았더라.
오빠 두놈다 그날로 욕으로 후드러팼다.
한번 터지니까 장난이 아니더라.
큰오빠놈 그럴수도 있다길래 니딸이당해도?
그랬더니 악담한다길래 니딸은 안되고 난당해도 되냐?
그랬을만큼.
큰올케가 안미운게 그때 오빠보고
입다물라고, 우리가 잘못한거라고
미안하다고 울드라.
근데 둘째냔이 미운이유?
별걸 다 유세떤단다.
하.. ㅆㄴ...진짜 귀신뭐하냐. 쟤안잡아가고.
저냔은 날때부터 악마였나 싶더라.
그날 둘째냔부부 시골집에서 싸운걸 듣고,
우리엄마는 미안하다고했다.
나와 언니들, 형부들은 기가 차서 듣고 있었다.
나중에 듣다못한 아버지가 그래서 재한테 누명씌운거냐니까
지가 언제그랬냐고,
증거있냐더라.
대체무슨말이 오갔냐고?
지가 좀반반하고 날씬하면 다냐
(아니 나 통통족이라고. 니가 뚱뚱한거라니까)
쟤가 당신 기준치를 올려놔서 평생비교당한다
(밥먹고 설거지 바로하는게 잘못임? 방닦는게 잘못임?)
쟤가 내 빨래해준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피묻은 니빤스도 손빨래하란건 잘한거냐)
지가 뭔데 음식좀 한다고 꼴값이냐
(미역국 끓이는거 알려달래서 두번 알려줬다간 내가 죽일냔일듯)
그냥 쟤는 존재자체가 짜증난다더라.
올케들이 어리냐고?
나보다 훨씬많다...
최소 7살차이다...
둘째는 밥할줄도 모르는 인간이었고
사먹는 외식비로 그당시에 150을 쓰던인간이었다.
일하냐고?
누차말하지만 사회부적응자라서 저분은 일 못한다.
나한테만 저런게아니거든.
직장 동료였던 여자가 죽여버린다고
3년넘게 찾다 나까지 알아내고 찾고다닐정도면
말다했지 않을까.
둘째 오빠는 현장직이었기에 일이 엄청 힘들고 섬세함도
요구되는 직업이었다
쉬게해야 하는데, 우리 둘째냔은
저만 세상에서 제일 연약하고 나머진 다 무쇠인줄안다.
내가 사라진후 오빠는 쉬어본적이 없다했다
불쌍한인간... 이번생은 너나나나 망했다고 했다.
온식구가 둘째냔 투명인간 취급하고 몇해뒤
결국 개ㅈㄹ하다가 명절에 쫒겨난뒤
발도 못딛고 산다.
애들때문에 이혼안시키는건데,
애들 좀크면 생각해보라고 하시는 아버지는.
내인생을 망친게 당신탓이라고,
가끔 자책하곤 하신다.
그래서 가시는 그날까지 둘째냔은 용서가 안된다고.
처음에 동네사람들이 나 싸가지없다하니,
구경도 왔었다.
근데 어딜봐도 싸가지가?
오히려 내욕을 할수록 내편만 늘어갔다.
그러자 시댁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누가봐도 참아서 병난년이 되었다.
다들 참지말고 도망치라고 할만큼.
돌아가신 시엄니 모친께서 시엄니 등짝을 후드려팰정도로.
너도 딸있는 년이 죄받을짓거리 작작하랬다지.
남편도 여러번 혼났다.
대리효도 시킨다고. 그게 당연한건줄 알고 크고,
하고 살았는데 대리효도인걸
사람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물론 엎을때 잘 써먹었고, 알려줘서 고마울뿐이다.
시짜들이 날 못괴롭히게 된 계기이기도 했고.
후...
돌아보면 너무 참고살았다.
근데 친정은 옆에없어야 살수있었고,
이미 친정에 죽일년 되고보니
시댁에서 날 말려죽여도
도망칠곳이 없었고,
내가 나를 놔버렸었다.
세월이 흐르면, 내 감정이 가라앉을줄 알았다.
시간이 약이라니까
근데, 아니었다
난 아무도 용서못하고 나도 용서못하고
살아있는 이유가 먼저죽는 불효만 말자였는데,
신이 나를 불쌍히여겨서,
아이를 이제라도 제대로 안겨준건가 싶다.
살라고, 너도 소중한애였다고,
좀느끼라고.
그러다가도,
나처럼 사는 바보가있을까봐.
나처럼 인생이 억울 그 자체인애들이
어딘가에 있을까봐 쓰고있는것도 맞다.
나처럼살지말라고.
너는 너자체로 소중한이라고.
뱃속에 아이가 클수록,
내 존재도 소중했을텐데 싶어서.
우리부모는 여자가 희생하는게 당연했던 세대였다.
그 세대조차, 후회하는게
그렇게 사는거라고 가르친걸 후회한다.
그러니 내 옛날상황인 누군가가 있다면,
참지마라.
병난다.
그리고
소설이냐그러고 댓삭튀하는 애가 있던데
소설이었음좋겠다.
밥퍼먹고 할일읍냐?
이딴재미읍는 소설쓰게.
착한~병, 나만죽는다 6
늦은임신축하한다고
지인들이 찾아오고 불러내고
나름난리가 나서 바빴어.
애기 검사한결과도 보고, 병원도 다녀오느라.
눈코뜰새가 없었지.
오늘은 개싸움의 역사...
내환경이 얼마나 뭣같았고,
내가 왜 정신줄을 놓은 전투민족이 된건지,
그게 뚝하고 뭐가 부러진것처럼
성격이 바뀐건지.
써볼까해.
내는 어렵게 경어.존대 이런거 몬해.
그런거시르면 뒤로가기버튼 꾹꾹바람.
난 식구가많은. 정말 모이면 집이미어터져버리는
그런식구많은집 거의 끝자락서열이야.
내성격은 몸이 약해서 자주 아파서그렇지 엄마말에 의하면
뭔애가 있는듯 없는듯 그랬대.
놀거하나주면 방구석서 혼자 잘노는애.
바로위에언니는 나무에서 뛰어내리고,
호박에 말뚝박는 크레이지모드 말괄량이라.
비교를 많이 당했대.
그래서 언니가 나밉다고 내인형 목만뽑아가고.
혼자놀면 때리고. 머리도 막 잡아당기고.
온갖짓을 다 당해주다가 아프면 운대.
엄마가 발견했을땐 어디한군데라도 멍들어있었다고.
실제로 손발에 멍안들고 큰기억이 별로없다.
내애착인형을 우리언니가 가위로 난도질 해서
언니인형 귀자른게 최대복수였던 애기였어.
내성질은 사춘기 전까진, 뭐 까라면 까고,
시키면 꽁알거려도 두번손댈거없이 일하고,
대신 싫으면 암만패도 안들어먹긴 했대.
그래서 아버지께서도, 내가 고집부리면
꺽어보려고 별짓다해보셨다가,
포기...
그걸두고두고 오늘날까지 후회하시지.
여튼 유년기는 이모양이었고,
내가 남편을 만나서 토뀐뒤에야
오빠들이 장가를 갔다.
나이차이가 좀 있거든.
좀 늦은편이었어.
큰올케언니는 좀 계산을 안하면 괜찮은데,
일은 내가해도 계산은 지가하드라고.
나머진 내가 암말도 안하는 이유가
고생하는걸 아니까 말은 잘 안해.
날건들지만 않으면.
우리언니들은 집순이들만 시집왔다고
바락바락을 했었는데,
뭐 이해는 하는데, 남의집딸 욕할게 아닌게
그 집순이 좋다는건 내오빠놈이자노?
굳이 내가 뭐라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가끔 성질은 나.
자연스럽게 부모님한테 돈을 받아가더라고.
내가 대학어렵게 졸업했다 했잖아, 부모님이 딱한번
등록금의 일부를 도와준거에 입대면서
이야길하더라고.
그때 올케언니를 잡아버렸는데,
아들이라고, 며느리라고 도리 똑바로 하면서
집안돈 탐내라고,
내가작정하고 지분빼간다고 들면 감당가능하냐
했더니 조용해졌지.
아버지의 애착 1순위가 나인걸 모르는 집안사람은
없거든.
이유는, 간단해.
우리집 아들딸들 다 전투민족이기만 했지,
다정한것들이 없다
곰살떨고, 챙겨주고, 사소한것에도 소소한
이벤트가 없어.
난그게 되는 이집안의 유일한인간이고.
카네이션만 주던집에 편지 쓰는 최초,
결혼기념일에 두분 드시라고 초콜렛이라도 선물해준 최초,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준다고 카드만들어 주는딸.
그냥 친구한테 해주면 좋아하는건 부모님부터
해주고 크게 되더라고.
아무도 안해주니까. 여섯살부터 저랬으니.
당연히, 내가울면 난리난줄아시고,
내가 못견디겠다고 산으로 튀면
산에와서 달래서 데리고가셨지.
언니오빠모르게 업어주고, 맛난거 한입더주는건
그냥 아버지의 습관같은거였어.
거기다 집안이 일이 많은집인데,
살려고 입꾹닫고 일만하던애야.
뭔들안주고싶을까?
내가 입을 안대는거지.
우리올케들이 그래서인지,
시집오자마자 날 그렇게 구박했다.
그냥싫대. 어쩌란거지? 싶더라고.
그래서 우리엄마가 어떤 시엄마가 될지 알면서도
눈감고 나는 안보인다 했었어.
친정을와도, 밥먹는것도 미워하는 올케들한테
잘해주기가 싫더라고.
게장 안먹는다더니 내가먹음 들고튀고,
꼬막도 내가먹으니까 통째들고 튀더라.
일할거있음 나있다고 도망이나 치고.
없던 시누노릇도 하고싶어진달까.
둘다 집에서 전업주부면서.
난일도하고, 두집살림하고, 어쩌다 친정오는건데도.
쉬어본적이 없다.
남들은 친정가서 못잔 잠이라도 잔다든데.
내팔자는 젠장.
왜 그느낌 알아? 콩불려서 갈아서 끓여서 고생고생해서
두부해놨더니, 아가씨랑 어머님은 또하라고
다들고가는 올케 뒤통수에 짱돌던지고싶은거.
내가 올케한테는 못하겠어서 오빠넌 양심이없다고
꼴도보기싫다 했었지.
딸이강도가아니라 아들이 강도인집은 우리집뿐이라고.
지금도 그버릇을 다 고치진 못했어.
김장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천포기 겨우하고 널부러지면
담아서그냥튀고...
그러다 아부지한테 디지게혼나고.
나 몇통가져가나 세다가 엄마한테 욕한자리먹어.
그래도 큰올케언니가 밉지않은건 종가에 시집와서
종부일배우는게 얼마나 고역일지 아는데,
두말없이 그 제사, 시제, 그많은걸 할땐 소리가 없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성질부리거나,
선넘는다 싶으면, 올케언니 들어가서 좀 쉬라그러고
내가 싸워주긴해.
엄마딸들도 딴집 며느리인데, 엄마이러는거
사돈들이 알면 엄마딸들 가루되게 시집살이 당한다고.
바락바락 승질내곤 하거든.
그래서 그런지 태도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문제는 둘째올케였지.
이 희대의 ㅆㄴ은... 내가 욕빼곤 써지질않는다.
얽힌이야길 다 쓰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감출수가 없으니까.
내가 처음부터 일찍 시집가려한게 아닌게,
돈벌어서 시골구석 탈출하려고 시도는 했었어.
남편과 연애초기, 시골을 탈출할 기회가있었다.
이 둘째냔이 나타나기 전까진,
꽤 희망적이었다.
나는 진짜 그때가 시골서 사무직을 여섯군데를
커피심부름을 빙자한 성희롱으로 때려치우고
심각하게 고민중이었고,
장사를 배워봐야하나 하는 갈등을 하고있었다.
그런내게 둘째오빠는 올라와서 같이 지내면서
콜센터라는게 있으니 입사를 권했지.
그때도 이사놈이 성희롱발언을하며 회식자리에서
안놔줘서 남친이었던 남편을 불러내서 겨우탈출,
(망할늙은이가 지첩하래..아오...드럽게몬생기가꼬. 남편은 서울에서 장학금받던 대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둔.)
알바삼아서 동대문 남대문에서 일을잠시했었다.
이때의 인맥이 내겐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렇게 두어달의 시간이 지날즘,
둘째냔이 진짜 어느날갑자기 짐보따리 싸들고
쳐들어왔다.
진짜 잠도못자게 시끄럽고,
(행동자체가 시끄러움. 냉장고도 쿵소리나게 닫는것도 재주임)
진짜 이기적이고,
오빠좋아하는 생선구이라도 하면
나한테 집에서 이딴거 한다고 욕을쳐날리던
지손으로 지속옷도 안빨아입는,
앉은자리는 뒤엄자리가 되고만다는
천하의 게으른 돼지도 이런 돼지가없었다.
너무하다고? 지속옷빼놓고 손빨래한다고
지 생리혈이 벤 속옷 나한테 던지는 냔한테
고운말 나가믄 내가 부처님이지 사람이냐.
하... 삼시세끼 차려달라고 징징대지,
소세지라도 고기비슷한거 안올라오면 난리지,
아니 내가 식모냐고 하녀냐고.
안해주면 기어이 오빠 일터까지가서 발광해서
오빠랑 나는 미친개는 피하는거다 하는심정으로
그냥 진짜 조심하고살았다.
열받아진짜. 생각만해도 홧병이 치밀만큼.
근데 더 열받는건
그뒤였다.
우리집에 남친이랑 자주만난다고 일르고,
둘이 이미 자서 애만들었을거라고
싸구려만들고.
만나는사람마다 다 남자라고.
아니 대학동기 서울이라고 밥먹자고 해서
딱한번 밥먹은게
남자만난거냐고,
그리고
누차말하지만 남편은 지꺼라고 날 한집에 들이기전까진
날 심하게 아껴주셔서 진도가 안나갔다고.
아주 징글징글하게 애껴주셔서
난 내가 설탕유리인줄 톡하믄 깨지는.
그와중에 내친구들은 다시골에 있다보니
난 논적이 별로없이범생...
심지어는 오빠랑 나랑 운동다니는것도
둘이 뭔짓하는것처럼 매도했고,
나는 그냥 존재자체가 ㅆㄴ이 되더라고.
입이산것들이 정말싫다.
결국 오빠랑 싸웠고
일방적으로 당한뒤 내려간 시골은,
더이상 내집이 아니었다.
살면서 그런 냉대는 처음이었다.
때는 이때라고, 시모의 세치혀가 만든소문과,
남편역시 집에서 당한일들로
우린 세트로 희대의 ㅆㄴㄴ들이되서,
살림을 차리게 된거였다.
내가 집과 연을 끊다시피한 그 신혼초,
게으르고, 더럽고, 남자밝히는.
그런인간으로 매도당해있었고,
그 오해는 내 앞자리 언니가 열받아서 술먹고
집을 다 엎어버리게 1차,
몇해뒤
그언니 결혼식에 온 시댁동네살던 친척이
아버지한테 딸죽일거냐고,
쟤(나) 어떻게 사는줄 아냐고 해서 2차.
이게 오해를 풀게된 계기였다.
왜 말안했냐기에,
내가 안했는지, 나보고 욕하고 말못하게 한건지
구분하고 그런소리 하랬더니 다들입을 다물었다.
시엄니와 그일당들의 패악은 그때 극에달해있었고
나는 걸리기전까지 아픈것도 입다문 이유가
죽으려고 한짓이었으니 무슨말을 더할게있을까.
근데
둘째냔이 내가 암에걸린 그때,
식구들한테 걸린직후 임신을 했다.
그래도 풀어보려고
입덧은 안심한지, 먹고싶은게 있는지 물었더니,
좋은소린 기대도 안했다만
저 망할 주둥이가 내뱉는소리가
애도 안낳아본게, 저러니 암걸렸다더라.
(유산직후, 암치료거부상태였음)
내가 성질이 안돌면 이상할 정도로 참았더라.
오빠 두놈다 그날로 욕으로 후드러팼다.
한번 터지니까 장난이 아니더라.
큰오빠놈 그럴수도 있다길래 니딸이당해도?
그랬더니 악담한다길래 니딸은 안되고 난당해도 되냐?
그랬을만큼.
큰올케가 안미운게 그때 오빠보고
입다물라고, 우리가 잘못한거라고
미안하다고 울드라.
근데 둘째냔이 미운이유?
별걸 다 유세떤단다.
하.. ㅆㄴ...진짜 귀신뭐하냐. 쟤안잡아가고.
저냔은 날때부터 악마였나 싶더라.
그날 둘째냔부부 시골집에서 싸운걸 듣고,
우리엄마는 미안하다고했다.
나와 언니들, 형부들은 기가 차서 듣고 있었다.
나중에 듣다못한 아버지가 그래서 재한테 누명씌운거냐니까
지가 언제그랬냐고,
증거있냐더라.
대체무슨말이 오갔냐고?
지가 좀반반하고 날씬하면 다냐
(아니 나 통통족이라고. 니가 뚱뚱한거라니까)
쟤가 당신 기준치를 올려놔서 평생비교당한다
(밥먹고 설거지 바로하는게 잘못임? 방닦는게 잘못임?)
쟤가 내 빨래해준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피묻은 니빤스도 손빨래하란건 잘한거냐)
지가 뭔데 음식좀 한다고 꼴값이냐
(미역국 끓이는거 알려달래서 두번 알려줬다간 내가 죽일냔일듯)
그냥 쟤는 존재자체가 짜증난다더라.
올케들이 어리냐고?
나보다 훨씬많다...
최소 7살차이다...
둘째는 밥할줄도 모르는 인간이었고
사먹는 외식비로 그당시에 150을 쓰던인간이었다.
일하냐고?
누차말하지만 사회부적응자라서 저분은 일 못한다.
나한테만 저런게아니거든.
직장 동료였던 여자가 죽여버린다고
3년넘게 찾다 나까지 알아내고 찾고다닐정도면
말다했지 않을까.
둘째 오빠는 현장직이었기에 일이 엄청 힘들고 섬세함도
요구되는 직업이었다
쉬게해야 하는데, 우리 둘째냔은
저만 세상에서 제일 연약하고 나머진 다 무쇠인줄안다.
내가 사라진후 오빠는 쉬어본적이 없다했다
불쌍한인간... 이번생은 너나나나 망했다고 했다.
온식구가 둘째냔 투명인간 취급하고 몇해뒤
결국 개ㅈㄹ하다가 명절에 쫒겨난뒤
발도 못딛고 산다.
애들때문에 이혼안시키는건데,
애들 좀크면 생각해보라고 하시는 아버지는.
내인생을 망친게 당신탓이라고,
가끔 자책하곤 하신다.
그래서 가시는 그날까지 둘째냔은 용서가 안된다고.
그리고, 내가 아프고 분노조절이 안된
가장 큰 키가 둘째냔과 시모였다
우리시모야...책으로 엮어도 몇권이었다.
일시키고, 부려먹고, 괴롭히고, 누명은 당연했던.
처음에 동네사람들이 나 싸가지없다하니,
구경도 왔었다.
근데 어딜봐도 싸가지가?
오히려 내욕을 할수록 내편만 늘어갔다.
그러자 시댁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누가봐도 참아서 병난년이 되었다.
다들 참지말고 도망치라고 할만큼.
돌아가신 시엄니 모친께서 시엄니 등짝을 후드려팰정도로.
너도 딸있는 년이 죄받을짓거리 작작하랬다지.
남편도 여러번 혼났다.
대리효도 시킨다고. 그게 당연한건줄 알고 크고,
하고 살았는데 대리효도인걸
사람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물론 엎을때 잘 써먹었고, 알려줘서 고마울뿐이다.
시짜들이 날 못괴롭히게 된 계기이기도 했고.
후...
돌아보면 너무 참고살았다.
근데 친정은 옆에없어야 살수있었고,
이미 친정에 죽일년 되고보니
시댁에서 날 말려죽여도
도망칠곳이 없었고,
내가 나를 놔버렸었다.
세월이 흐르면, 내 감정이 가라앉을줄 알았다.
시간이 약이라니까
근데, 아니었다
난 아무도 용서못하고 나도 용서못하고
살아있는 이유가 먼저죽는 불효만 말자였는데,
신이 나를 불쌍히여겨서,
아이를 이제라도 제대로 안겨준건가 싶다.
살라고, 너도 소중한애였다고,
좀느끼라고.
그러다가도,
나처럼 사는 바보가있을까봐.
나처럼 인생이 억울 그 자체인애들이
어딘가에 있을까봐 쓰고있는것도 맞다.
나처럼살지말라고.
너는 너자체로 소중한이라고.
뱃속에 아이가 클수록,
내 존재도 소중했을텐데 싶어서.
우리부모는 여자가 희생하는게 당연했던 세대였다.
그 세대조차, 후회하는게
그렇게 사는거라고 가르친걸 후회한다.
그러니 내 옛날상황인 누군가가 있다면,
참지마라.
병난다.
그리고
소설이냐그러고 댓삭튀하는 애가 있던데
소설이었음좋겠다.
밥퍼먹고 할일읍냐?
이딴재미읍는 소설쓰게.
참지말고들살자.
난 자야겠다.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