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배달' 간호사 늦자, KTX 3분 연착했다…소방관 살린 기적

ㅇㅇ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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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기적을 선물 받은 것 같았죠.”

지난 1월 어느 날 저녁의 기억은 신혜림(36) 간호사에겐 기적을 체험한 시간이다. 그날 앰뷸런스에 탄 그의 손엔 아이스박스가 들려 있었다. 대구 영남대 병원에서 기증받은 심장이었다. 신씨가 돌보던 서울의 응급환자에게 꼭 맞는, 말 그대로 생명과 같은 장기였다.

그러나, 기상 악화로 헬기가 갑자기 뜨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이 급박해졌다. 앰뷸런스로 동대구역으로 향한 신씨는 연신 떨리는 손으로 시계를 매만졌다. 오후 8시 30분 서울행 KTX를 타지 못하면 다음 기차까지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미 1시간 전 기증자에게서 나온 심장은 얼음 조각과 얼린 식염수 더미에 겹겹이 둘러싸여 장기보존액에 들어 있는 상태였고, 서울의 환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앰뷸런스의 질주도 시간을 붙잡을 순 없었다. 3분 늦게 승강장에 도착해 절망하는 순간, KTX 열차가 나타났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장을 들고 열차에 올랐다. 호흡을 진정하고 난 뒤에야 병원 측의 긴급 연락으로 KTX가 속도를 늦춰 연착한 사실을 알게 됐다. ‘기적’을 배달하던 그에게 또 하나의 ‘기적’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진행된 4시간의 심장이식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새 심장은 소방관이 직업인 환자 서모씨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기증자가 누구인지 신씨는 알고 있지만, 가족 허락 없인 공개할 수 없는 정보라고 했다. 신씨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시간과 싸웠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게 된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응급실 간호사가 택한 낯선 길

신씨는 13년간 응급실을 지킨 베테랑 간호사였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간호사 일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오래도록 응급실을 지킬 것 같았던 그의 삶은 2019년 급변했다. “장기이식을 담당하는 전문간호사가 되어 보지 않겠냐”는 은평성모병원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다.

‘같은 병원 일이 얼마나 다르겠어’라는 생각은 첫날부터 여지없이 깨졌다고 한다. 매번 지원자가 적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임무는 단순한 장기의 ‘조달(procurement)’이 아니었다. 원활한 이식을 위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이견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했다.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이자, 책임이었다.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 가족을 설득하고 이식과 연관된 병원 각 부서 의견을 취합해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했다. 이식 수술 후 환자가 잘못됐을 때의 상황까지 감당하는 것도 코디네이터의 몫이었다. 이식의 처음과 끝을 아우르는 일련의 과정을 의료계에선 ‘구하여 얻는다’는 뜻의 ‘구득(求得)’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엇보다 심적으로 힘든 격무였다. 이식받을 장기를 가지러 갈 땐 1분, 1초를 아끼기 위해 뛰어야 했다. 장기 기증자 가족을 설득할 땐 시간에 쫓기더라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야 했다. 밤낮으로 시간과 씨름하고 시간에 쫓겼다.

25살 신참 간호사 때의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부딪혀 익히다 보니 조금씩 눈이 뜨였다. 환자 말에 귀 기울여 염려하는 부분을 짚어주며 반복해서 설명했고 차분히 기다렸다. 공감대를 넓히니 라포(rapport·친밀감과 신뢰 관계)가 형성됐고 힘든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달 초 딸이 간을 기증하겠다고 했지만, 환자인 어머니가 이식을 거부한 적 있었어요. 아이 둘을 키우는 딸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어요. ‘어머님이 행복해야 따님도 행복할 수 있다’고 몇 시간을 호소했고 결국 이식하기로 하셨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밖에서 다른 분들도 울고 계셨는데…다행히 지금은 모두 건강하십니다.”

죽음과 삶, 감격과 절망이 교차하지만…

늘 감동의 눈물만 흘리는 일은 아니다. 열정을 쏟고도 비극으로 끝난 결말 앞에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장기이식 후 거부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재이식을 기다리다가 세상을 뜬 환자를 지켜만 봐야 할 때 병원장부터 간호사까지 모두 소리 내 울기도 했다고 한다. 신씨는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지난 1월 대구에서와 같은 기적들”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은평성모병원에서는 장기 기증자 가족 등 30여명이 참석한 위령미사가 열렸다.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처음엔 참석을 꺼린 이들이 많았지만, 병원을 찾게 된 이들은 기증자 이름이 새겨진 ‘기억의 벽’을 보며 아픔을 나눴다고 한다. 신씨는 “사랑하는 가족을 더는 보지 못하는 아픔을 전부 헤아리긴 어렵지만, 그 애틋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했다.

지난달 23일 은평성모병원에서는 장기 기증자 가족 등 30여명이 참석한 위령미사가 열렸다.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처음엔 참석을 꺼린 이들이 많았지만, 병원을 찾게 된 이들은 기증자 이름이 새겨진 ‘기억의 벽’을 보며 아픔을 나눴다고 한다. 신씨는 “사랑하는 가족을 더는 보지 못하는 아픔을 전부 헤아리긴 어렵지만, 그 애틋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했다.

“하늘의 별이 준 선물 잊지 않길”

최근 신씨는 시간을 쪼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엔 장기이식 관련 전문 과정이 없어서 생명윤리와 의료경영을 공부하며 전문성을 키워갈 계획이다. 엄마를 찾는 5살 아들이 눈에 밟히지만, 아이가 자라날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걷히면 장기이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활동도 할 계획이다.

성탄절을 닷새 앞둔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워킹맘의 결심은 단단해 보였다. “장기 기증자들은 하늘의 별이 되면서 선물처럼 꽃씨를 뿌리고 간 분들이에요. 그런 별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잊지 않고 ‘모두의 별’로 기억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