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8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고독한 인생이었다.누군가 에게 는 나의 시간들이 잘못된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고 , 또 다른 누군가 에게 는안타까운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개개인 생각이 다르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살면서 손가락 개수만큼 이야기 해본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고 이야기하고 솔직히 내 인생이 어떤 인생이었는지 그 사람은 나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이제부터 1편을 적을것이다. 모두들 책 읽는거처럼 잘 봐줬으면 한다. (3살 4살 5살은 자세히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짤잘하게 기억이나니 그때의 나 이야기는 패스를 하겠다) 나는 현재 28살 남자사람이다. 3살때부터 나는 고아원에서 자라왔다. 6살때 고아원 형 한명이 나한테. 때리면서 한가지를 시켰다. (어린이집)에 있는 가방들 다 디져서 봉투 같은걸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울면서 알겠다 했고. 그 날에 어린이집에 있는 가방을 모두 디져 봉투를 뺴낸다음 그 형한테 다 갖다줬다. 그러다. 고아원 선생님들이 알게되었고 그날에 나는 남자 선생님한테 플라스틱 빗자루로 손바닥, 발바닥 수없이 맞았다. 맞으면서 나는 펑펑 울었고 선생님이 왜 훔쳤냐고 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형들이 무서웠으니까..선생님이 봉투들은 다 어디갔냐고 묻길래 나는 모른다 하였고 그날에 2시간 정도 계속 맞았다. 우리 고아원은 맞는게 일상이었다. 토요일,일요일 되면 늘 아침 8시까지 고아원 뒤에있는 학교 뒷산으로 집합을 했다. 나이대는 정말로 다양했다 6살 ~ 중학생?? 까지 집합을 하였고,한사람씩 나와서 빠따(엉덩이)를 맞았다. 한사람이 잘못하면 단체 체벌이었기에 늘 맞는게 일상이었다,,, 정말로 주말만되면 지옥같은 시간이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주말이 좋았을지 몰라도 나는 주말이 정말 싫었다,, 그래도 어느 주말은 안맞는 주말도 있었지만?? 그게 1년에 5번 있을까 말까다..또한 우리 고아원은 무조건 주말되면 단체로 축구를 했어야됬고, 폭력성 게임 오징어 달구지, 짐짓기를 했어야 됬다, 그 게임을 하면서 어떨때는 행복했지만?? 내가 못하면 늘 게임 끝나고 맞았다,,,, 나는 7살떄 정말 지금도 잊지 못한 기억이있다. 그당시 그 형의 나이는 19살 이었다. 그형이 갑자기 샤워실로 오라고 해서 나는 뛰어갔다 그러니 그형이 갑자기 샤워실 문을 잠그고 나를 무작정 때리기 시작했다.나는 울지도 못했다. (왜냐 울면 우리는 더 심하게 맞았기 때문이다.)계속 맞다가 그 형이 나한테 자기 성기를 빨으라고 시켰다. 나는 처음에 싫다고 하였지만,그 폭행이 계속 지속되고 그러다가 나는 어쩔수없이 그 형의 성기를 빨았다.그날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나는 죽을때까지 그날의 기억은 잊지 못할거같다.. 선생님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 선생님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않았고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믿어주지도 않고 때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그떄의 일을 잊지 못하고 혼자 간직하며 살아왔다. (1편 끝)
나의 인생사 (1편)
나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살면서 손가락 개수만큼 이야기 해본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고 이야기하고 솔직히 내 인생이 어떤 인생이었는지 그 사람은 나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이제부터 1편을 적을것이다. 모두들 책 읽는거처럼 잘 봐줬으면 한다.
(3살 4살 5살은 자세히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짤잘하게 기억이나니 그때의 나 이야기는 패스를 하겠다)
나는 현재 28살 남자사람이다.
3살때부터 나는 고아원에서 자라왔다.
6살때 고아원 형 한명이 나한테. 때리면서 한가지를 시켰다. (어린이집)에 있는 가방들 다 디져서 봉투 같은걸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울면서 알겠다 했고. 그 날에 어린이집에 있는 가방을 모두 디져 봉투를 뺴낸다음 그 형한테 다 갖다줬다. 그러다. 고아원 선생님들이 알게되었고 그날에 나는 남자 선생님한테 플라스틱 빗자루로 손바닥, 발바닥 수없이 맞았다. 맞으면서 나는 펑펑 울었고 선생님이 왜 훔쳤냐고 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형들이 무서웠으니까..선생님이 봉투들은 다 어디갔냐고 묻길래 나는 모른다 하였고 그날에 2시간 정도 계속 맞았다.
우리 고아원은 맞는게 일상이었다. 토요일,일요일 되면 늘 아침 8시까지 고아원 뒤에있는 학교 뒷산으로 집합을 했다. 나이대는 정말로 다양했다 6살 ~ 중학생?? 까지 집합을 하였고,한사람씩 나와서 빠따(엉덩이)를 맞았다. 한사람이 잘못하면 단체 체벌이었기에 늘 맞는게 일상이었다,,, 정말로 주말만되면 지옥같은 시간이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주말이 좋았을지 몰라도 나는 주말이 정말 싫었다,,
그래도 어느 주말은 안맞는 주말도 있었지만?? 그게 1년에 5번 있을까 말까다..또한 우리 고아원은 무조건 주말되면 단체로 축구를 했어야됬고, 폭력성 게임 오징어 달구지, 짐짓기를 했어야 됬다, 그 게임을 하면서 어떨때는 행복했지만?? 내가 못하면 늘 게임 끝나고 맞았다,,,,
나는 7살떄 정말 지금도 잊지 못한 기억이있다.
그당시 그 형의 나이는 19살 이었다. 그형이 갑자기 샤워실로 오라고 해서 나는 뛰어갔다 그러니 그형이 갑자기 샤워실 문을 잠그고 나를 무작정 때리기 시작했다.나는 울지도 못했다. (왜냐 울면 우리는 더 심하게 맞았기 때문이다.)계속 맞다가 그 형이 나한테 자기 성기를 빨으라고 시켰다. 나는 처음에 싫다고 하였지만,그 폭행이 계속 지속되고 그러다가 나는 어쩔수없이 그 형의 성기를 빨았다.그날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나는 죽을때까지 그날의 기억은 잊지 못할거같다.. 선생님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 선생님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않았고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믿어주지도 않고 때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그떄의 일을 잊지 못하고 혼자 간직하며 살아왔다.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