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성폭행목사 피해자 엄마입니다.

제딸을살리고싶어요2022.01.10
조회23,990
안녕하세요
1월 6일 방송에 보도된 전주 교회 성폭행사건
피해자 엄마입니다.
방송을 보신분들도 있을거고,
못보신분들도 있을 텐데..
방송이 나가고 나서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댓글들을 보게 되었고 방송을 나가기 전 예상을 했던
부분이긴 했지만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쏟아지는 비난들,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글을 보며 과연 자기 가족이었다면
저런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고,
가해자는 연락을 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상처받을 피해자들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말이나 함부로 내뱉는 현실에 피해자 가족으로
참 가슴이 무너집니다.

제 딸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그런가운데 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때는 해달라는걸 다 해줄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풍족해서 하고싶은 걸 다 다 해줬지만
IMF때 집이 힘들어졌었고 그 어려운 와중에도
투정 한번 없이 스스로 꿈을 키우고,
꿈을 위해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대학교도 혼자서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부모 손 한번 가지 않게 뭐든 알아서 하던 아이였습니다.

저희 아이가 선교사를 한다고 기독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니
교회에서 장학금을 주고, 신학교에 입학을 하니 등록금의
일부를 지원하고, 아이가 졸업을 하면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하겠다고 하여 더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제딸이 어렸을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학생이되고 선교사파송까지 하게되는 첫 사례라며
교회사람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교회일에
열심히 했던 아이입니다.

고3 다들 공부만 해야하는 그 때도 제 딸은
교회일이 우선이었고,
수요일이면 학교에서 교회로 바로 가서 예배 반주를 하고,
금요일도 9시부터 11시까지 기도회가 끝날때까지
마지막까지 남아서 반주하고 정리하고 오던 아이에요.
토요일이면 집이 아닌 교회에 더 오랜시간을 있었고,
학교 친구보다 교회친구가 더 많던 아이라
교회를 그만두고 나니 아픔을 나눌 친구가 없어서
그 힘든 일을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던
외롭게 혼자 버텨내던 저한테는 그렇기 소중한 딸이에요.

심지어 고2떄는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보고
신학교를 빨리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선교사의 꿈이 확고한 딸이었어요.

신학교에 입학 후 교회에서 아이의 등록금을 내주고,
전도사를 하며 월급을 30만원을 받으며 학교, 집, 교회만
오가며 생활했던 딸이었습니다.
딸은 교회일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했고,
그 일을 너무나도 좋아했고 야무지고 밝은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던 일을 2년쯤 하다
갑자기 그만하고 싶다고 하며 사임을 했고,
선교사의 꿈도 바뀌었다며 신학교도 자퇴를 하며
집에는 한번도 무슨일이 있는지 티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떄 그 나이가 21살, 23살..그 어린나이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도 억장이 무너지고 엄마로서
한번이라도 이유라도 물어볼껄 후회하며 지켜지주지
못해서 너무나도 미안하기만 합니다.

제 딸은 전도사와 학교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정신없이
배우기도 하고 직장도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생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번도 집을 떠나서 살아본적도 없는 딸이
대구에 가서 사업을 한다고 돈 한푼 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곳에 가서 딸은 혼자 외로움과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밤잠을 안자면서 남들보다 빨리
일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항상 전화하면 괜찮다고, 아무일없다고,
제 앞에서 눈물 한번 보이지 않았고,
집에 필요한 물건들은 딸이 다 사서 보내주고
저한테는 너무도 힘이 되준 귀한 딸이였습니다.

이 일이 있으면서 이제서야 알았지만 딸이 금전적인 부분에
엄마가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생활에 힘들어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니까 그 모든것을
딸이 부족함 없게 해주려고 무려 5년동안 희생했습니다.

제 딸이 전도사일을 하던거처럼 사업도 정말 자랑할 정도로
성장해있었어요. 그래서 전주에도 사무실을 추가로 냈고,
저는 딸이 전주에 오니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고,
이제부터 내 삶이 즐겁구나,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딸을 통해서 저는 행복해하고
그 어느때보다 웃을수 있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중 저와 딸 사이가 8월말쯤부터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딸아이는 그전부터 우울증이 있어서 병원을 스스로 찾아가
상담을 하고 치료를 받고 있었더라구요.
이 우울증치료 또한 누구의 권유나 도움 없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갈 정도로 모든 일을 다른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다 하는 아이였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던 아이는 축 늘어졌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저희가족은 돌아가면서
하루하루 딸아이를 지켰습니다.

아침이면 딸아이가 괜찮은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문을 열어보고 확인을 해야했습니다.
한살 아래 여동생인 막내딸은 하던일을 그만 두고
언니를 24시간 지킬수밖에 없었어요.

하루는 저와 딸아이와 같이 병원에 다녀오다 제가
별 뜻없이 그냥 하는 말을 딸아이가 오해를 해서
차안에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집 근처에 왔을때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차에서 딸이 내려버렸습니다.

어떻게 차를 주차했는지도 모르게 딸아이 뒤를 쫓아갔어요.
당시 딸이 극도로 불안하고 흥분한 상태였기 떄문에
금방이라도 자살시도를 하겠다 싶었어요.
딸아이가 본인 차 앞에까지 갔을때 겨우 딸아이 손목을
있는 힘을 다해 잡았습니다.

취재하러 오셔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딸 체구 작고 여립니다.
키가 150cm에 몸무게가 40kg도 안나가요..
저는 얼마나 힘을 주고 잡았는지 제 손에 쥐가 날 정도였고
숨이 차올라 숨을 쉬기 힘들어졌어요.
딸아이 팔을 잡은 채로 숨을 고르고 있을때
그때부터 딸아이는 제가 한번도 보지못한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엄마, 나 감당못할거 같으면 지금 그 손 놓으라고...."

제가 그 손을 놓는 순간 딸을 잃을거 같았고,
마지막일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가에서 딸아이 팔을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힘도 없어서 겨우 천천히 걷던 아이가 순식간에
3층에 있는 집으로 뛰어 올라갔고 들어가자마자 딸아이는
칼이 있는 부엌쪽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아이아빠와 제가 아이를 막아서고 옷방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살라고 도대체 왜그러냐,
말을해야 될거 아니냐라고 말을 하니 딸은
그때 처음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한번도 하지도 않던 부모에 대한 원망섞인
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제 딸이 30살이 되도록 한번도 하지 않던 원망섞인 소리를
듣는데 저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딸 아이 방 앞에서 미안해, 엄마가 미안하다,
저는 울면서 딸아이 방앞에서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너 덕분에 행복했는데 너는 너무도 힘이 들었구나..

그뒤로 저와 딸은 조금 떨어져 있었고
잠시 서로 연락을 하지 않으며 일주일을 멍하니
아무런 의욕도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채로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사는 딸아이의 큰이모,
저에게는 언니가 전화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딸이 전도사를 할때 목사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제 딸이 처음엔 이모한테 피해사실을 그렇게 추행정도로만
이야기를 했고, 딸에게 가족들은 니잘못이 아니다.
힘내자. 용기내자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딸의 우울증과 자살시도는 나아지는듯 하다가
더욱 심해져갔습니다.
집에 곧 도착한다는 아이가 연락이 되지 않아
실종신고를 해야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다량의 약을
한번에 복용하고, 손목을 긋고,
딸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수 없을 정도로
제 딸은 점점 망가져 갔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8월부터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제 딸을 지키기 위해서 피말리는 생활을 날마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와 같이 바다로 빠지는 그 끔찍한 일까지
겪고서야 저 작고 여린아이를 혼자 보낼수 없다고 생각해서
저는 딸과 같이 세상을 떠나야겠다 생각했고,
그 사고로 딸 아이는 치료를 받으며 다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삶을 살아가는것 같았어요.

나아지는게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게 얼마나 힘든지...
그런 아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아이의 큰이모가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설득하여 그 당시 사건을 아이가
처음으로 울면서 21살때 당했던 그 일을 30살이 끝나갈
무렵에 겨우겨우 꺼냈놓더라구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감옥을 들어가더라도 목사를 죽이고 싶었고,
그 엄청난 일을 우리 딸아이는 혼자 묻고 지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얼마나 외롭고 악몽속에서 살았을까, 혼자 얼마나 울었을까,

저는 이제 고통스러운데 제 딸은 그 꽃다웠던 21살
그 예뻤던 내 딸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은
말로다 표현할수 없습니다.
그 당시 제 딸이 얼마나 예뻤는지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만
봐도 너무 예뻐서 아까운 그 아이를 가장 예쁠때
고통속에서 살게했다는게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12월 16일에 저희 아이에게 이야기를 듣고,
18일에 서울에서 언니가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내 딸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서
목사앞에 서야될거 같아 찾아갔습니다.

음성파일, 녹음파일 들으신대로, 그 목사는 그렇게
파렴치하게 죄책감도 없습니다.
이제와서 지난일 가지고 뭐하는거야?
그런식으로 들리더군요.

하물며 목사 딸이 아이와 친구였는데,
자기 딸 친구를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문제인데,
성폭행을 해놓고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맺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그 입을 찢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말하는 음성파일과 동영상을 보고 저희딸이
다시 우울증 증상이 심해지고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울기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병원에 가서 원장님이랑 상담하고
잘 수 있는 약을 더 받아오는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렇게 2주를 보내더니 제 딸이 엄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이거는 해결할수가 없어, 내가 피해자고, 내가 증거고,
내가 증인이고, 장소가 어떻게 생겼고, 뭐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내 머릿속에 그대로 다있는데
내가 해야될거 같아.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이게 저희 딸이에요. 이런 아이가 저희 딸이에요.
내가 피해자인데 내가 알려지는게 뭐가 창피해,
내가 누군지 알려지면 좀 어때,
성폭행 한 사람이 잘못이지 당한사람이 잘못한게 아니잖아.
이렇게 말하는게 저희 딸이에요.

저는 제 딸 용기에 잘했다.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
어른인 시댁,친정 가족들 조차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만 하고 있는데 제 딸이 혼자서 증거를 찾고,
피해자들을 찾고, 제보를 하고 힘든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얼마나 기특한지 모릅니다.

피해자인 어른들도 나서서 증언하려하지 않고,
같은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어른들도 나서지 못해서
계속해서 같은 피해자들이 매년 계속 나오고 있는데
제 딸이 이 문제를 알렸다는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기특합니다.

인터뷰하는 내용 모두가 다 나가면 당연히 좋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2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2~3분으로
줄여서 전달해야 되는 뉴스를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게 말이 되냐, 이러며 2차가해를 하는 댓글을 보면서
딸은 안보면 괜찮다고하지만 또 혼자서 울고 있겠죠.

가해자가 언제 어디에서 딸 곁에 나타날지 몰라서
저희 딸은 혼자서 밖에 나갈수도 없고,
가장 안전해야 하는 공간에서 조차도 불안함속에
홀로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두서없이 썼지만 저희 딸이 고통속에 있는 동안
몇번의 실종신고를 하고, 몇달동안 딸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의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옥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제 딸은 수많은 자살시도를 했고, 이제는 살기위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긴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딸은 버틸겁니다.
혼자가 아닌 같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버틸겁니다.
제 딸은 자기가 찢어지고 다쳐도 자기가 아니라
같이 용기내서 증언해준 피해자들을 위해서 버틸겁니다.

목사는 문자로는 죄송하다, 사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기자님들이 전화하면 성폭행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성폭행이 아니라고 하면서 뭐가 죄송하고
뭘사과한다는건지 모르겠고,
목사측은 잠잠해지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겠죠.

목사는 당연히 더이상 목회 활동을 못하도록
제명되어야 하는데 이미 총회와 노회를 탈퇴하여
총회와 노회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목사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질때까지
힘낼 수 있도록 함께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저희딸 오랫동안 품에 끼고 살고 싶어요.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 예쁜아이 그동안 혼자 아파했으니
이제는 함께 싸우고 지켜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