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 내가 꼭 복수하지 않아도 세상은 사필귀정이구나.. 라는 마음으로 그 이후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사건이 제 인생에 굉장히 큰 부분이었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문득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과정에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첫째, '서강대 입시비리 2005'를 네이버에서 쳤을때 그 당시 대서특필된 보도들이었고 서강대 총장과 17명의 교수들이 보직을 내려놓는 큰 일이었기에 그 당시만해도 기사와 자료들이 차고 넘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동일한 키워드를 넣어보니 YTN과 노컷뉴스의 자료들만 남아있었습니다.
서강대가 손을 썼든 당사자가 손을 썼든 이 사실이 이렇게 묻혀져 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네이버에서는 검색이 안되지만 구글에서는 다양한 신문사들의 기사가 검색됩니다. 역시 네이버는 이런 곳이더군요.. 구글에서 서강대 입시비리를 쳐보시길 바랍니다.
둘째, 그 당시 입학처장이었던 김*원(실명은 기사에도 나와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구글에 서강대 입시비리 2005를 쳐보셔도 됩니다)이 현재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의 겸임교수로 있었습니다.
과연 그 사람이 저 한사람만 희생양으로 삼았을까요? 이 사람은 자신의 아들을 서강대에 넣기 위해 출제교수까지 손을 댄 사람입니다. 재직했던 동안 서강대와 이 입학처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을까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시간이 지났다고 버젓이 이름난 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과연 한양대학교의 학생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한양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저는 이 글을 쓰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이 다시 교직생활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해 40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힘들때마다 수능치는 꿈을 꿉니다.
그런 식으로 삼수를 해야했던 제 마음은 시꺼멓게 멍이 들었고 대학에 와서는 도서관을 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한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질까요?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두 가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첫째, 저는 부산에 있는 특수지고에서 인문계로 바뀐 고등학교의 첫번째 졸업생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유명한 특목고의 학생이었거나 힘있는 부모님의 자녀였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하지 못했겠죠. 분명 리스트를 보며 누구를 희생시킬것인가 의논을 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지리적으로 멀고(부산), 부모님도 평범하고, 이름도 모르는 고등학교의 학생이 선별된 것이겠죠.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둘째, 과연 입학처장의 문제였을까요? 다른 이들은 몰랐을까요? 글쎄요.. 저는 조직적인 범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말고도 그런 식으로 선별되어 희생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겠죠. 그리고 입학처장을 비롯해 그 윗 라인, 그 윗윗라인까지 모두 알고 그를 이용했겠죠.
그 입학처장은 연임됐었거든요.
셋째, 다시돌아간다면 저는 교육청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할겁니다.
"아니요, 원천적으로 재조사해서 꼭 답변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언론에 크게 터뜨리겠습니다."
지금의 몸과 마음으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꼭 세상과 싸웠을 겁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소송이지만 다시 한번 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과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여 꼭 소송도 걸고 언론에도 알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을 겁니다.
서강대 입시비리를 고발합니다. (현재 한양대 겸임교수)
저는 2003년 서강대 입시비리의 피해자입니다.
이제 이 무거운 이야기를 세상에 털어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2002년 재수를 결심하고 2003년에 수능을 보아 서강대에 원서를 썼습니다.
당시 다른 두 곳은 떨어지고 서강대는 대기번호 16번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재수생으로서 서강대도 떨어지면 삼수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번호를 받자마자 서강대에 전화해서 이 정도 번호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담당자에게 그 정도면 1차 추가합격자에 문안하게 합격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1차때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저는 다시 한번 전화를 하여 현재 저의 대기 번호가 몇번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수화기를 든채로 수화기를 막고 다른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의논을 했고 전화기를 돌리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더니 번호를 하나 불러주었습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2차 발표도 있으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2차 추가 합격자 발표도 그냥 지나갔고 저는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때도 그들은 몇번이라는 말없이 서로 상의를 하고 전화를 돌리더니 번호를 하나 불러주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번호 순서가 맞지 않았고 진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몇번을 더 전화하여 저의 대기 번호를 물었습니다.
이제는 대기 번호가 왔다갔다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안그래도 의심을 하고 있던 찰라에 대기번호까지 왔다갔다하니 부모님이 서강대를 찾아갔습니다.
부모님은 입학처장을 만나 리스트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보여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다른곳에 붙은게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없다고 대답했고 그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이건 명확한 입시비리라고 판단을 하셨고 그 당시 교육청에 이것을 조사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습니다.
교육청에서는 일주일 뒤, 부모님께 사안이 너무 크니 묻어줄 수 없겠냐는 말을 하였습니다.
............
그 뒤로 저희 집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 저리가라였습니다.
저는 집안의 민폐인이 된것 같아 숨죽이며 지내야했고 아버지는 분을 삭이지 못해 검찰에 제소를 하고 소송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어렸고 이런 일들이 너무 무서웠고 제 앞길이 두려웠습니다.
왠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고 승산없는 싸움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삼수를 준비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소송을 시작하면 그 일에 미친듯이 집착하게 될거같고 그럼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건지 대학은 갈수 있을런지 너무 두려워 부모님께 그냥 묻고 지나가자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이 순간을 너무 후회합니다.
그때 그냥 아버지 말씀대로 소송을 하고 세상에 이 사실을 알렸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쨌든 저는 이 사실을 묻고 너무도 하기 싫었던,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던 삼수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제가 왜 삼수를 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롯히 삼수생으로서의 시선을 견뎌야했고
공부를 해내야 했으며 저 자신을 다독여야 했습니다.
3개월간 말이 없으시던 아버지가 제게 뱉은 첫 마디는 "내가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평생의 대못으로 남아 아버지께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한 제가 너무 미웠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004년에 저는 대학을 들어갔고 2005년에 서강대 입시비리 사건이 크게 터진겁니다.
결국 그 입학처장은 자신의 아들을 넣기 위해 동료교수와 짜고 시험문제와 점수를 조작했다가 그것으로 인해 학교를 잘리고 서강대 역시 입시비리 사건으로 크게 명성을 잃었습니다.
<실제 기사>
https://m.nocutnews.co.kr/news/45310?source=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sm%3Dmtb_hty.top%26where%3Dm%26oquery%3D%25EA%25B9%2580%25EC%25A4%2580%25EC%259B%2590%26tqi%3DhOYgidp0JWCssl6Cielssssstj0-359013%26query%3D%25EA%25B9%2580%25EC%25A4%2580%25EC%259B%2590%2B%25EC%2584%259C%25EA%25B0%2595%25EB%258C%2580%2B%25EC%259E%2585%25EC%258B%259C%25EB%25B9%2584%25EB%25A6%25AC
<방송>
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0068431
그래서 아! 내가 꼭 복수하지 않아도 세상은 사필귀정이구나.. 라는 마음으로 그 이후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사건이 제 인생에 굉장히 큰 부분이었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문득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과정에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첫째, '서강대 입시비리 2005'를 네이버에서 쳤을때 그 당시 대서특필된 보도들이었고 서강대 총장과 17명의 교수들이 보직을 내려놓는 큰 일이었기에 그 당시만해도 기사와 자료들이 차고 넘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동일한 키워드를 넣어보니 YTN과 노컷뉴스의 자료들만 남아있었습니다.
서강대가 손을 썼든 당사자가 손을 썼든 이 사실이 이렇게 묻혀져 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네이버에서는 검색이 안되지만 구글에서는 다양한 신문사들의 기사가 검색됩니다. 역시 네이버는 이런 곳이더군요.. 구글에서 서강대 입시비리를 쳐보시길 바랍니다.
둘째, 그 당시 입학처장이었던 김*원(실명은 기사에도 나와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구글에 서강대 입시비리 2005를 쳐보셔도 됩니다)이 현재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의 겸임교수로 있었습니다.
과연 그 사람이 저 한사람만 희생양으로 삼았을까요? 이 사람은 자신의 아들을 서강대에 넣기 위해 출제교수까지 손을 댄 사람입니다. 재직했던 동안 서강대와 이 입학처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을까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시간이 지났다고 버젓이 이름난 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과연 한양대학교의 학생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한양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저는 이 글을 쓰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이 다시 교직생활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해 40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힘들때마다 수능치는 꿈을 꿉니다.
그런 식으로 삼수를 해야했던 제 마음은 시꺼멓게 멍이 들었고 대학에 와서는 도서관을 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한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질까요?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두 가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첫째, 저는 부산에 있는 특수지고에서 인문계로 바뀐 고등학교의 첫번째 졸업생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유명한 특목고의 학생이었거나 힘있는 부모님의 자녀였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하지 못했겠죠. 분명 리스트를 보며 누구를 희생시킬것인가 의논을 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지리적으로 멀고(부산), 부모님도 평범하고, 이름도 모르는 고등학교의 학생이 선별된 것이겠죠.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둘째, 과연 입학처장의 문제였을까요? 다른 이들은 몰랐을까요? 글쎄요.. 저는 조직적인 범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말고도 그런 식으로 선별되어 희생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겠죠. 그리고 입학처장을 비롯해 그 윗 라인, 그 윗윗라인까지 모두 알고 그를 이용했겠죠.
그 입학처장은 연임됐었거든요.
셋째, 다시돌아간다면 저는 교육청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할겁니다.
"아니요, 원천적으로 재조사해서 꼭 답변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언론에 크게 터뜨리겠습니다."
지금의 몸과 마음으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꼭 세상과 싸웠을 겁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소송이지만 다시 한번 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과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여 꼭 소송도 걸고 언론에도 알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을 겁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한양대학교의 학생들에게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