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꼭 ‘남혐’을 해야겠느냐”,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정확히 다릅니다.
우선 여성혐오 문제에 거의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대다수의 남성이 묻는 거라면,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여성혐오를 언제 알았습니까? 남성혐오 전에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언제 문제의식을 가졌습니까?
만일 남성혐오가 생겨나고서야 여성혐오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순간 남성혐오는 목적을 달성해버리므로 유의미 합니다.
지금 말하는 ‘남혐’이라는 현상은 작년도 메르스 사태 이후 생겨났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마치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존재해온 ‘김치녀’와 ‘된장녀’를 필두로 한 여성혐오 현상을 ‘미러링’하여 남성들이 여성 일반의 생활, 소비, 행동 등을 싸잡아 비난하고 재단하던 어휘를 그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하는 말로 바꿔 제시한 움직임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것을 손쉽게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 라고 동일시하면서 ‘그렇게 똑같이 혐오로 맞대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려면, 남성혐오가 생겨나기 이전에 그토록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과 제재가 있어야 했고, 그것을 재밌다고 소비하거나 묵인 혹은 방관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 있어야 했고, 남성혐오 직전까지 여성들이 수없이 제기해온 온건하고 지적인 비판에 반응을 했어야 합니다.
여성이 더 나은 수를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남성이 ‘저급하고 의미 없는 수’에만 반응한 겁니다.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이렇게 쉽게 대등한 문제 취급을 받는 상황은, 성별 간 권력 차를 또 한 번 실감케 합니다. 누구나 남이 죽는 것보다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아프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혐오로 목숨을 잃고 폭력을 당하는데 누군가는 억울하고 불쾌한 말을 듣는 데 그칩니다.
이것이 동일한 혐오이고 동일한 폭력인 것처럼,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둘 다 문제’라는 식으로 다뤄지는 겁니다. 여성의 목숨을 해치는 죄와 남성의 기분을 상하게 한 죄는 대등한 것인가 봅니다.
사회가 남성 가해자의 심중을 헤아려주고 여성 피해자의 허점을 들춰내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그의 기분과 나의 목숨이 같은 값인가 싶어 절망감이 듭니다.
여혐남혐 다 싫다는 말이 불편한 이유
우선 여성혐오 문제에 거의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대다수의 남성이 묻는 거라면,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여성혐오를 언제 알았습니까? 남성혐오 전에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언제 문제의식을 가졌습니까?
만일 남성혐오가 생겨나고서야 여성혐오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순간 남성혐오는 목적을 달성해버리므로 유의미 합니다.
지금 말하는 ‘남혐’이라는 현상은 작년도 메르스 사태 이후 생겨났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마치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존재해온 ‘김치녀’와 ‘된장녀’를 필두로 한 여성혐오 현상을 ‘미러링’하여 남성들이 여성 일반의 생활, 소비, 행동 등을 싸잡아 비난하고 재단하던 어휘를 그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하는 말로 바꿔 제시한 움직임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것을 손쉽게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 라고 동일시하면서 ‘그렇게 똑같이 혐오로 맞대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려면, 남성혐오가 생겨나기 이전에 그토록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과 제재가 있어야 했고, 그것을 재밌다고 소비하거나 묵인 혹은 방관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 있어야 했고, 남성혐오 직전까지 여성들이 수없이 제기해온 온건하고 지적인 비판에 반응을 했어야 합니다.
여성이 더 나은 수를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남성이 ‘저급하고 의미 없는 수’에만 반응한 겁니다.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이렇게 쉽게 대등한 문제 취급을 받는 상황은, 성별 간 권력 차를 또 한 번 실감케 합니다. 누구나 남이 죽는 것보다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아프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혐오로 목숨을 잃고 폭력을 당하는데 누군가는 억울하고 불쾌한 말을 듣는 데 그칩니다.
이것이 동일한 혐오이고 동일한 폭력인 것처럼,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둘 다 문제’라는 식으로 다뤄지는 겁니다. 여성의 목숨을 해치는 죄와 남성의 기분을 상하게 한 죄는 대등한 것인가 봅니다.
사회가 남성 가해자의 심중을 헤아려주고 여성 피해자의 허점을 들춰내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그의 기분과 나의 목숨이 같은 값인가 싶어 절망감이 듭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