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막4 33 ~ 34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https://youtu.be/mKtLpBmsLwE
찬송가: 138 햇빛을 받는 곳마다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 하시더라
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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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강해:
알아 들을 수: ajkouvw(191, 아쿠오)
듣다, 경청하다, 주의하다, 들어서 깨닫다.
동사 아쿠오(Oracula sibyllina 이래로)는 '듣다'라는 의미를 가졌으며, 본래 '들음'이란 의미로 소리에 대한 지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들음'은 청각 작용 뿐 아니라 들려온 내용을 정신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로 인하여 다양한 언어학적 용법이 나타난다.
...아쿠오는 이런 과정을 걸으면서 '듣다, 경청하다, 주의(유의)하다, 이해하다'와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고대와 중세 영어에서 '듣다'와 *'복종하다'는 두 의미를 동일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나타난다. 전자의 의미는 후자의 의미를 포함하며, 어떤 문장에서는 그것을 대용하기도 한다.
(주품이 주: 듣다를 한번 설명한적이 있지만 두가지 키포인트를 잊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못 알아 듣게 하여 구원 못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요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말씀을 기록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안 믿는 것은 그 스스로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는 다 하는데 들음은 복종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복종하는 자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선포되었으니 주님을 부인하는 자, 주님을 믿는 다면서 복종치 않는 자 이들은 모두 구원영생에서 소외된 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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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duvnamai(1410, 뒤나마이)
할 수 있다 be able.
동사 뒤나마이(Homer. 이래)는 뒤나(duna-) 어간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능력'(ability), '역량'(capability)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니며, 따라서 이단어는
(주품이 주: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에서 수 있는 만을 조사 하였다 하나님은 남녀노소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 역량대로 말씀을 선포하신다. 아이 유아나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라 할지라도 모든 열국어를 쓰는 다른 언어 사용자라도 다른 문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준비 되신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도 그 오지어로 성경은 번역되고 그들은 이해하고 성경학교를 세울 정도이다. 즉, 말씀은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만물 모두에게 말씀은 전할 수있고 만물은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말씀을 역량과 능력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대로:
kaqwv"(2531, 카도스)
*~에 따라서, 바로 ~처럼.
(주품이 주: 두말없이 앞의 내용을 더 잘 이해케하는 표현이다. 남여노소 누구든지 *그에 따라서 하나님은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말씀을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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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i[dio"(2398, 이디오스)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 속한 것, 개인적으로.
형용사 이디오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 속한',
① '자신의 것'(요 10:3; 요 10:12; 눅 10:34; 히 9:12; 히 13:12; 행 28:30; 살전 4:11; 벧후 1:20; 롬 10:3; 약 1:14; 딤후 4:3; 벧후 3:3; 딛 1:12; 요 8:44; 고전 4:12; 눅 6:41).
② '자기의 재산, 가족, 집, 나라 등에 속하는 것'(행 4:32; 눅 18:28; 행 13:36; 눅 2:3; 행 1:19; 행 25:19; 요 1:11; 요 13:1; 행 4:23; 행 24:23; 딤전 5:8; 요 1:11; 요 16:32; 요 19:27; 고전 77:2; 엡 5:22; 딛 2:5; 벧전 3:1; 벧전 3:5; 엡 5:24; 딛 2:9; 롬 8:32; 요 5:18; 막 4:34).
③ '자기의 본성, 성격, 목표, 행위와 조화하거나 그로부터 기인된, 타당한', 행 1:7; 고전 3:8; 고전 15:38; 마 25:15; 고전 15:23; 유 1:6; 행 1:25; 갈 6:9; 딤전 2:6; 딤전 6:15; 딛 1:3).
④ 소유 대명사 대신 사용됨(마 22:5; 마 25:14; 요 1:41).
(*주품이 주: 원어를 해석하면 사실 혼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신 것은 의역이고 직역은 자신의 소유 가족 아래인 제자들에게 이르신다는 의미 일 수가 있다. 혼자->자신의 소유, 계실 때에-> 아래로, 으로 로 직역이 되기 때문이다. 즉 알아듣기 쉬운 직역은 예수님의 소유인 제자들에게만 이르신 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 말씀은 제자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된 하나님의 성도인 것이다. 여러분이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따르는 참된 하나님의 제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이는 자녀의 특권을 누리는 행복과 함께 피로 사신 주를 위해로 나의 피된 생명을 다하여 자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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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실 때에:
katav(2596, 카타)
아래로, ~에 대하여
(a) 속격과 함께
① '~으로부터, 아래로'
② '~위로 내려'(속으로 내려)
③ '~통하여, ~의 도처에, ~에 두루'
④ '~에 대항(대적)하여, ~위에 내려'
(b) 대격과 함께
① '~으로 두루 내려'
② '~을 따라, ~을 끼고'
③ '~으로'
④ '~을 향하여, ~에 대하여, ~와 마주 대하여, ~의 맞은 편에, 정면으로'
⑤ 시간에 대하여, '~동안, ~경에, ~때쯤'
⑥ '~에 비례하여, ~의 분량에 따라'
⑦ '~의 이유로, ~때문에, ~으로 인하여'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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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 비유는 축복의 작은 통로문과 같은 것입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이 낫고 믿어 구원 받기 위해서는 작은 순종의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무시하고 떠났다면 저주요 그가 순종하였기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비유의 이중 성인 것입니다. 비유의 문을 통해 축복과 저주의 구분점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삶에 선하고 진실하고 의로운 자라면 빛이 되신 주님의 말씀에 친근함을 가지며 주님의 비유를 이해하려하고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무시하며 믿지 않으려하고 자신의 삶이 악하고 거짓에 치우치고 불의하다면 빛되신 주 앞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 참된 말씀에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유의 조금만 복잡한 말씀을 하시면 짜증내고 들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지옥행은 스스로 결정을 한것이고 지옥에서는 자신도 알기에 수천년 무한히 지옥에 갇혀도 그때 열심히 믿어더라면 했더라면 할걸 할걸 하며 영원히 후회하고 지옥에서 타는 원망의 울부짖음이 있는 것입니다. 34절과 같이 비록 제자에게 해석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33절과 같이 조금이라도 묵상한다면 알아 들을 수 있게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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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절,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 하시더라
->비유의 이중성이라면 마태복음의 말씀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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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하였둣 비유의 축복의 문을 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악하기에 그 선을 스스로 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은 빛을 보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어쩜 비유는 선인과 악인을 가르는 원유증류탑과 같은 것입니다. 도로 바닥의 아스팔트같이 평생 도로 바닥에 깔리느냐 사람들의 안방에서 깨끗하게 쓰이는 lpg 가스냐가 되느냐입니다. 증류탑은 끓는 점에 따라 가장 아래는 아스팔트, 배의 연료, 디젤, 항공연료, 가솔린 연료, 가정연료가 나온다 합니다.
지옥같은 매연이 나오고 타르가 나는 디젤, 배연료, 아스팔트가 되느냐 매연에 자유로운 항공연료, 가솔린 연료, 가정용 lpg가 나오는 구분과 같이 주님의 비유나 말씀을 잘 받아 들이냐에 따라, 제일 좋은 3층천,2,1층천을 가게 되고 악의 강도에 따라 지옥1,2층 가장 악한 지옥3층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진정한 제자가 됨으로 우리의 피 생명다해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순종하고 복종하여 정성을 다해 섬겨야 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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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순종복종하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시옵소서 새벽부터 이제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주의 종이 따르겠나이다. 종일 말씀 하시옵소서 종일 평생을 다하여 따르겠나이다. 완악한 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르치지 아니하도록 우리의 맘을 빛으로 주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빛에 나오는 모든 주위와 나라 사회, 온오프라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절강해(막4 33 ~ 34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구절강해(막4 33 ~ 34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https://youtu.be/mKtLpBmsLwE
찬송가: 138 햇빛을 받는 곳마다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 하시더라
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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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강해:
알아 들을 수: ajkouvw(191, 아쿠오)
듣다, 경청하다, 주의하다, 들어서 깨닫다.
동사 아쿠오(Oracula sibyllina 이래로)는 '듣다'라는 의미를 가졌으며, 본래 '들음'이란 의미로 소리에 대한 지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들음'은 청각 작용 뿐 아니라 들려온 내용을 정신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로 인하여 다양한 언어학적 용법이 나타난다.
...아쿠오는 이런 과정을 걸으면서 '듣다, 경청하다, 주의(유의)하다, 이해하다'와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고대와 중세 영어에서 '듣다'와 *'복종하다'는 두 의미를 동일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나타난다. 전자의 의미는 후자의 의미를 포함하며, 어떤 문장에서는 그것을 대용하기도 한다.
(주품이 주: 듣다를 한번 설명한적이 있지만 두가지 키포인트를 잊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못 알아 듣게 하여 구원 못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요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말씀을 기록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안 믿는 것은 그 스스로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는 다 하는데 들음은 복종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복종하는 자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선포되었으니 주님을 부인하는 자, 주님을 믿는 다면서 복종치 않는 자 이들은 모두 구원영생에서 소외된 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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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duvnamai(1410, 뒤나마이)
할 수 있다 be able.
동사 뒤나마이(Homer. 이래)는 뒤나(duna-) 어간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능력'(ability), '역량'(capability)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니며, 따라서 이단어는
(주품이 주: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에서 수 있는 만을 조사 하였다 하나님은 남녀노소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 역량대로 말씀을 선포하신다. 아이 유아나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라 할지라도 모든 열국어를 쓰는 다른 언어 사용자라도 다른 문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준비 되신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도 그 오지어로 성경은 번역되고 그들은 이해하고 성경학교를 세울 정도이다. 즉, 말씀은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만물 모두에게 말씀은 전할 수있고 만물은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말씀을 역량과 능력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대로:
kaqwv"(2531, 카도스)
*~에 따라서, 바로 ~처럼.
(주품이 주: 두말없이 앞의 내용을 더 잘 이해케하는 표현이다. 남여노소 누구든지 *그에 따라서 하나님은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말씀을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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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i[dio"(2398, 이디오스)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 속한 것, 개인적으로.
형용사 이디오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 속한',
① '자신의 것'(요 10:3; 요 10:12; 눅 10:34; 히 9:12; 히 13:12; 행 28:30; 살전 4:11; 벧후 1:20; 롬 10:3; 약 1:14; 딤후 4:3; 벧후 3:3; 딛 1:12; 요 8:44; 고전 4:12; 눅 6:41).
② '자기의 재산, 가족, 집, 나라 등에 속하는 것'(행 4:32; 눅 18:28; 행 13:36; 눅 2:3; 행 1:19; 행 25:19; 요 1:11; 요 13:1; 행 4:23; 행 24:23; 딤전 5:8; 요 1:11; 요 16:32; 요 19:27; 고전 77:2; 엡 5:22; 딛 2:5; 벧전 3:1; 벧전 3:5; 엡 5:24; 딛 2:9; 롬 8:32; 요 5:18; 막 4:34).
③ '자기의 본성, 성격, 목표, 행위와 조화하거나 그로부터 기인된, 타당한', 행 1:7; 고전 3:8; 고전 15:38; 마 25:15; 고전 15:23; 유 1:6; 행 1:25; 갈 6:9; 딤전 2:6; 딤전 6:15; 딛 1:3).
④ 소유 대명사 대신 사용됨(마 22:5; 마 25:14; 요 1:41).
(*주품이 주: 원어를 해석하면 사실 혼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신 것은 의역이고 직역은 자신의 소유 가족 아래인 제자들에게 이르신다는 의미 일 수가 있다. 혼자->자신의 소유, 계실 때에-> 아래로, 으로 로 직역이 되기 때문이다. 즉 알아듣기 쉬운 직역은 예수님의 소유인 제자들에게만 이르신 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 말씀은 제자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된 하나님의 성도인 것이다. 여러분이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따르는 참된 하나님의 제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이는 자녀의 특권을 누리는 행복과 함께 피로 사신 주를 위해로 나의 피된 생명을 다하여 자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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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실 때에:
katav(2596, 카타)
아래로, ~에 대하여
(a) 속격과 함께
① '~으로부터, 아래로'
② '~위로 내려'(속으로 내려)
③ '~통하여, ~의 도처에, ~에 두루'
④ '~에 대항(대적)하여, ~위에 내려'
(b) 대격과 함께
① '~으로 두루 내려'
② '~을 따라, ~을 끼고'
③ '~으로'
④ '~을 향하여, ~에 대하여, ~와 마주 대하여, ~의 맞은 편에, 정면으로'
⑤ 시간에 대하여, '~동안, ~경에, ~때쯤'
⑥ '~에 비례하여, ~의 분량에 따라'
⑦ '~의 이유로, ~때문에, ~으로 인하여'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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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 비유는 축복의 작은 통로문과 같은 것입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이 낫고 믿어 구원 받기 위해서는 작은 순종의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무시하고 떠났다면 저주요 그가 순종하였기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비유의 이중 성인 것입니다. 비유의 문을 통해 축복과 저주의 구분점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삶에 선하고 진실하고 의로운 자라면 빛이 되신 주님의 말씀에 친근함을 가지며 주님의 비유를 이해하려하고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무시하며 믿지 않으려하고 자신의 삶이 악하고 거짓에 치우치고 불의하다면 빛되신 주 앞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 참된 말씀에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유의 조금만 복잡한 말씀을 하시면 짜증내고 들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지옥행은 스스로 결정을 한것이고 지옥에서는 자신도 알기에 수천년 무한히 지옥에 갇혀도 그때 열심히 믿어더라면 했더라면 할걸 할걸 하며 영원히 후회하고 지옥에서 타는 원망의 울부짖음이 있는 것입니다. 34절과 같이 비록 제자에게 해석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33절과 같이 조금이라도 묵상한다면 알아 들을 수 있게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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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절,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 하시더라
->비유의 이중성이라면 마태복음의 말씀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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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하였둣 비유의 축복의 문을 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악하기에 그 선을 스스로 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은 빛을 보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어쩜 비유는 선인과 악인을 가르는 원유증류탑과 같은 것입니다. 도로 바닥의 아스팔트같이 평생 도로 바닥에 깔리느냐 사람들의 안방에서 깨끗하게 쓰이는 lpg 가스냐가 되느냐입니다. 증류탑은 끓는 점에 따라 가장 아래는 아스팔트, 배의 연료, 디젤, 항공연료, 가솔린 연료, 가정연료가 나온다 합니다.
지옥같은 매연이 나오고 타르가 나는 디젤, 배연료, 아스팔트가 되느냐 매연에 자유로운 항공연료, 가솔린 연료, 가정용 lpg가 나오는 구분과 같이 주님의 비유나 말씀을 잘 받아 들이냐에 따라, 제일 좋은 3층천,2,1층천을 가게 되고 악의 강도에 따라 지옥1,2층 가장 악한 지옥3층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진정한 제자가 됨으로 우리의 피 생명다해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순종하고 복종하여 정성을 다해 섬겨야 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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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순종복종하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시옵소서 새벽부터 이제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주의 종이 따르겠나이다. 종일 말씀 하시옵소서 종일 평생을 다하여 따르겠나이다. 완악한 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르치지 아니하도록 우리의 맘을 빛으로 주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빛에 나오는 모든 주위와 나라 사회, 온오프라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