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예랑이라고 쓴 제 남자친구와는 내년 봄 결혼 예정으로, 예식장만 예약해 둔 상태입니다. 같은 대학 출신에 현재 같은 직장 다니고 있으며 알고 지낸지는 1n년, 교제를 시작한 건 2년 정도 됐습니다.
남친이 오래 만났던 사람이 있는 건 대학교 다닐 때에도 알고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동창이고 18살부터 만나서 20대 중반까지 만나고 있다며 사랑꾼으로 유명했었어요. 10년도 넘은 그때 술자리에서 본인의 첫사랑이라며 수줍게 말하던 게 생각이 나네요..ㅋㅋ
남친의 첫사랑(편의상 A라고 쓰겠습니다)이 취직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도 나왔고, 그러다 A의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결혼은 없던 일이 되고 둘 사이도 자연스레 멀어져 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로는 서로 행복을 빌어줬다는데 폐인처럼 몇 달을 술에 절어 살던 남친 모습도 기억이 나네요.
남친과 저는 대학 때부터 꽤 절친한 친구였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언젠가부터 썸 비슷한 걸 타게 됐고 어쩌다 보니 사귀게 됐고.. 취향, 외모, 직업, 가정환경 등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 결혼까지 가게 된 그런 케이스입니다. 솔직히 저도 남친도 서로를 죽을 만큼 사랑하진 않아요. 그럴 수 있는 나이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고요.
남친이 첫사랑을 틀린 글씨 지워내듯 잊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고, 저 또한 첫사랑이 있지만 그땐 그랬지~ 뭐 그런 흐뭇하면서도 씁쓸한 마음 정도만 남아 있는 것처럼 남친도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대학 때 이야기가 나오면 제가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꽐라돼서 울면서 집에 가던 걸 영상으로 남겨놨어야 됐는데ㅠㅠㅋㅋ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얼마 전 남친이 자취하는 집에서 갈아입을 만한 옷을 찾다가 아기자기한 선물 박스 하나를 봤습니다. 호기심에 열어보니 첫사랑과 찍은 스티커 사진, 날짜 써진 폴라로이드 사진, 손편지들... 심지어 녹슬어서 누래지다 못해 초록색이 된 반지까지 있었습니다. 아마도 옛날 커플링이 아닐까 싶은.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더라고요. 그래도 그날은 꾸역꾸역 배달 시켜 먹고 같이 드라마 보고.. 그랬는데도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습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교복을 입은 앳된 남자친구. 하필 드라마에서도 교복 입은 첫사랑 남녀가 나오더라고요ㅋㅋ 저는 앞으로 평생 남친과 같이 살아도 그런 모습은 볼 수가 없겠죠.
물어봐야 하는 걸 아는데, 왜 거기에 둔 거냐, 왜 아직도 버리지 않는 거냐, 그렇게 물으면 그냥 추억이라 냅둔 거다... 이런 답이 돌아올 것을 알기에 질문하기가 두렵습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진 않아도 그래도 사랑이 있기는 했었는지..
A와 남친은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압니다. 단 둘은 아니고 모임으로, 가기 전에도 미리 말을 하고 가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을 보고 나니 그 모임들도 왠지 모르게 꺼림칙해지네요. 중고등학교 동창, 심지어 계속해서 친했기에 남친과 A 사이에 겹치지 않는 지인이 없고, 같이 노는 무리가 있고, 고등학교 동문 골프 모임이고.. 다 알긴 아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마음은 납득이 안 됩니다.
이만큼 조건과 환경이 맞아떨어지는 남자는 솔직히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이도 나이다 보니 결혼을 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생활 방식, 음식/영화/드라마/스포츠 등의 취향, 목표와 지향점 등도 모조리 비슷하고 저에게 워낙 잘했던 사람이라 사실 대단한 사랑만 바라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중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걸까요... 그래도 일생의 중대사인 결혼인데.. 첫사랑을 못 잊은 건지 아니면 정말 그저 추억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남친에게 물어보면 확실해질까요? 제가 지금 너무 답정너인 걸까요..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자니 저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여기에라도 여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