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감리교인이었던 좌옹 윤치호에게 한국인은 ‘감정적인’ 민족이었다. 그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사랑의 도’가 복음이 들어오기 수천년 전부터 한국인의 민족성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믿었다. 또 그는 한민족이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배워야 할 도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도를 실현할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이었다고 여겼다.”
안신 박사(에딘버러대학교)가 제249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김흥수 소장) 학술발표회에서 좌옹 윤치호의 종교사상에 대한 종교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이번 발표회는 2일 오후 4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열렸으며, 안 박사는 ‘윤치호의 종교사상 연구 : 종교학적 방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윤치호의 종교사상에 초점을 맞춰 한국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전통종교들을 어떻게 이해했고 수용했는지를 설명했다. 윤치호에 대해 ‘민족의 선각자’ ‘기독교교육의 지도자’ ‘한국 개신교 선교의 영웅’ ‘친일파, 변절자’ ‘희생자’라는 상호 모순되는 평가를 내려온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나, 그의 종교사상에 중점을 두고 연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그 동안 윤치호의 삶과 사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접근이 있어 왔지만, 그의 종교사상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했다.
안 박사는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과 종교론에 대해서 설명하며 이성과 민족성과의 관련 속에서 종교의 의미를 찾았던 ‘기독교인 윤치호’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은 ‘선교’와 ‘기독교 교육’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끼쳤고, 당시 서양 선교사들과 다수의 한국 토착기독교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갖고 행동했다”고 했다.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은 다분히 사회개혁적 성격을 보였다. 안 박사는 “윤치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사후의 피안을 소망하며 현실의 가난과 고통을 감내하는 수동적 형태의 신앙은 결코 아니었다”며 “그는 사회개혁을 지향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려고 했다”고 전했다.
윤치호는 기독교가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길에 대해 “정직과 신용과 같은 ‘의지의 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사회를 건전하게 변화시킬 때 종교는 죽은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종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교’에 대한 이해를 좁은 의미의 교리적 ‘개종’보다는 넓은 의미의 ‘변혁’에 초점을 둔 것이다.
또 윤치호는 종교의 개념에 대해 “현생에서 복락을 사후세계로 확대, 연장하고 악을 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며 바람”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종교를 경험적이며 윤리적이고 기능적을 본 것이다. 안 박사는 “이러한 개념은 윤치호가 기독교적 국수주의나 배타주의적 태도를 고수하지 않고, 기독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들 사이의 공통점을 이해하는 성숙한 시각을 갖게 했다”고 평가했다.
윤치호는 기독교만이 유일하다는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보다는 다른 종교의 진리도 존중했다. 동시에 ‘살아 있는 신앙’(living faith)은 맹신이나 미신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상식에 어긋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치호는 신앙적 회의주의자나 상대주의자, 다원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종교와 인간사회 제반의 문제들과의 복잡한 관련성을 발견하고 종교의 이상이 실제 생활 가운데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과 전쟁과 침략을 오히려 정당화시키는 종교의 폐해를 목도하기도 했다.
안신 박사는 이 같은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박사는 “이 같은 개인별 종교사상에 대한 사례 연구는 초기 기독교인을 포함한 한국인들의 종교관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 동안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종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뤄진 데에 반해 정작 ‘토착’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전통종교들을 어떻게 이해했고 수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안신 박사의 발제에 이어 윤은순 교수(숙명여대 박사과정)는 ‘일제강점기 기독교계의 공창폐지운동’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기독교 공창폐지운동의 내용과 성격, 의의와 한계에 대해 분석했다
한국인 최초 감리교인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
“한국인 최초 감리교인이었던 좌옹 윤치호에게 한국인은 ‘감정적인’ 민족이었다. 그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사랑의 도’가 복음이 들어오기 수천년 전부터 한국인의 민족성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믿었다. 또 그는 한민족이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배워야 할 도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도를 실현할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이었다고 여겼다.”
안신 박사(에딘버러대학교)가 제249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김흥수 소장) 학술발표회에서 좌옹 윤치호의 종교사상에 대한 종교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이번 발표회는 2일 오후 4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열렸으며, 안 박사는 ‘윤치호의 종교사상 연구 : 종교학적 방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윤치호의 종교사상에 초점을 맞춰 한국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전통종교들을 어떻게 이해했고 수용했는지를 설명했다. 윤치호에 대해 ‘민족의 선각자’ ‘기독교교육의 지도자’ ‘한국 개신교 선교의 영웅’ ‘친일파, 변절자’ ‘희생자’라는 상호 모순되는 평가를 내려온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나, 그의 종교사상에 중점을 두고 연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그 동안 윤치호의 삶과 사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접근이 있어 왔지만, 그의 종교사상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했다.
안 박사는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과 종교론에 대해서 설명하며 이성과 민족성과의 관련 속에서 종교의 의미를 찾았던 ‘기독교인 윤치호’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은 ‘선교’와 ‘기독교 교육’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끼쳤고, 당시 서양 선교사들과 다수의 한국 토착기독교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갖고 행동했다”고 했다.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은 다분히 사회개혁적 성격을 보였다. 안 박사는 “윤치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사후의 피안을 소망하며 현실의 가난과 고통을 감내하는 수동적 형태의 신앙은 결코 아니었다”며 “그는 사회개혁을 지향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려고 했다”고 전했다.
윤치호는 기독교가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길에 대해 “정직과 신용과 같은 ‘의지의 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사회를 건전하게 변화시킬 때 종교는 죽은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종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교’에 대한 이해를 좁은 의미의 교리적 ‘개종’보다는 넓은 의미의 ‘변혁’에 초점을 둔 것이다.
또 윤치호는 종교의 개념에 대해 “현생에서 복락을 사후세계로 확대, 연장하고 악을 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며 바람”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종교를 경험적이며 윤리적이고 기능적을 본 것이다. 안 박사는 “이러한 개념은 윤치호가 기독교적 국수주의나 배타주의적 태도를 고수하지 않고, 기독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들 사이의 공통점을 이해하는 성숙한 시각을 갖게 했다”고 평가했다.
윤치호는 기독교만이 유일하다는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보다는 다른 종교의 진리도 존중했다. 동시에 ‘살아 있는 신앙’(living faith)은 맹신이나 미신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상식에 어긋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치호는 신앙적 회의주의자나 상대주의자, 다원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종교와 인간사회 제반의 문제들과의 복잡한 관련성을 발견하고 종교의 이상이 실제 생활 가운데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과 전쟁과 침략을 오히려 정당화시키는 종교의 폐해를 목도하기도 했다.
안신 박사는 이 같은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박사는 “이 같은 개인별 종교사상에 대한 사례 연구는 초기 기독교인을 포함한 한국인들의 종교관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 동안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종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뤄진 데에 반해 정작 ‘토착’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전통종교들을 어떻게 이해했고 수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안신 박사의 발제에 이어 윤은순 교수(숙명여대 박사과정)는 ‘일제강점기 기독교계의 공창폐지운동’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기독교 공창폐지운동의 내용과 성격, 의의와 한계에 대해 분석했다
(츨처-크리스천투데이)
[출처] 한국인 최초 감리교인 윤치호의 기독교 사상|작성자 성경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