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QnA답변 추가] 존잘남 가득한 곳에서 유학했던 썰 푼다_3탄

ㅇㅇ2022.02.01
조회6,922

* 연애썰 아님
* ‘존잘’의 기준은 글쓴이의 시각에서 판단된 것이므로 절대적인 것은 아님
*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한 글이므로 언급되는 인물들은 특정한 지역/문화/사람들을 대표하지 않음
* 첨부 이미지는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진들 구글링해서 가져옴


안녕 얘들아! 존잘남들과 함께했던 유학썰 마지막 이야기 시작해볼게ㅎㅎ
마지막이다보니까 글이 좀 많이 길어….ㅎㅎ 그래도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밑에 이 전 글에 댓쓰니들이 해 준 질문들에 대한 답변도 따로 추가했어!



7-2. 북유럽 남신 등판…그런데 여기에 지성미와 매너를 겸비한..





스웨덴 친구가 담요를 가지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오길래, 나는 순간 당황해서 나 곧 들어갈 거라서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손사래쳤음. 그랬더니 이 친구가 씩 웃으면서 ‘이거 나 덮으려고 가져온 건데?’ 라고 하더라고… 아..?….ㅋㅋㅋㅋ 나는 또 혼자 괜히 설레발 쳐서 얘가 나 담요 주려는 줄 알고 착각했다는 사실에..진심.매우.너무 부끄러워져서 그 순간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음..그래서 미안하다고, 내가 착각했다고 사과하고, 나의 설레발..이 너무 어이 없어서 그냥 허허 웃기만했음..그러니까 이 친구가 막 웃으면서 자기 스웨디시라고 이 정도 추운 건 추위도 아니라면서 너 필요하면 덮으라고 내가 앉은 자리 옆에 담요를 놓아줌. 그리고 자기도 안에 공기 답답해서 (대마초 연기 쩔…) 잠깐 나온 거라고 했음. 한 손에는 맥주캔 들고 소파 옆 기둥에 비스듬히 서 있는데, 정말…계속 훔쳐보게 되는 비주얼이었음..…약간 늘어난 니트 재질의 상의에 핏되는 바지 입고 있었는데, 후줄근한 공대생의 모습이 아니었음…아까는 사람들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 있어서 몰랐는데, 둘이 있는 동안 자세히 관찰해보니까…북유럽 사람들이 정말 눈돌아가게 잘생겼다는 말이 사실임을 실감했음…간간히 인상 찌푸리는 모습 마저도 존잘이었음..ㅎㅎ 거기에다 아까 토론하면서 뿜어낸 지성미 덕에 이 오빠는 이미 나에게 그저 신…까진 아니더라도 엄청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음. 처음에는 그냥 조용히 서로 각자 마실 거 마시면서 핸드폰 보다가, 이 친구가 나한테 유학 오게된 계기, 전공하는 과목 등등 물어보기 시작했음. 그렇게 서로의 네덜란드 생활에 관련해서 이야기하다가 내가, 네덜란드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키가 너무 커서 한 번 놀랐고, 센트럴역 딱 내렸을 때 정말 마리화나 냄새가 사방에서 퍼져 있어서 두 번 놀랐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친절해서 세 번 놀랐다고 했음. 네덜란드에 처음 온 날, 공항에서 내려서 센트럴까지 가는 기차를 탔어야했는데 내가 그 때 등에는 배낭, 한 손으로는 내 몸 만한 캐리어 끌고 다른 손으로 또 짐을 들고 있었음. 기차 문이 열리고 타려는데 이 기차가 문 뒤로 계단을 몇 개 올라가야 탑승할 수 있던 구조인거임..? 아씌…하면서 서둘러 짐 옮기려는데, 문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도와주기 시작했음…짐 하나하나 위로 올려다주고 센트럴 도착해서도 다 바깥으로 내려주고 심지어 그 중 한명이 개찰구까지 다 들어다 줌….그러고 Have a great day 한 마디 남기고 제 갈길 감..그 때 나는 와…진짜 유럽 국가라서 레이디퍼스트 정신이 투철하구나..하고 편견 어린 생각을 했었음. 근데 이 스웨덴 친구가 가만히 듣다가 레이디퍼스트 정신..이 부분에서 갑자기 의문을 제기함. 사람들이 너를 도와준 건 너가 레이디여서가 아니라 짐을 많이 들고 있어서인 거 같다고, 너가 남자였어도 도와줬을 것이라고 말함. 물론 이건 자기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이면서, 자기는 지나가다가 무거운 짐을 가득 들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힘겨워 하고 있다면 성별 상관 없이 도와줬을거라고 함. 도와주는 대상의 초점이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가는 사람’, 이지 ‘여성’이 아니라는 거임. 여자이기 때문에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가서 도와줘야된다..? 이건 오히려 그 여성에게 실례라고 함. 왜냐하면, ‘여자는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한다’는 전제 조건을 깔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음. 남자라고 무거운 걸 당연히 들어야한다는 생각 또한 편견이고, fixed gender role 을 만드는 편협한 사고 방식이라고 했음. 물론 이런 사고 방식이 여전히 사회적 통념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남녀 평등을 외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음.

이 말을 듣고 순간 정신이 멍했음…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랄까..? 컬쳐 쇼크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었음. 지금은 페미니즘 및 젠더 이슈에 대해 많이 배우고 다양한 의견들을 접해와서 익숙한 이야기지만, 이 당시의 나는 남녀 평등 문제에 대해 저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이 날 도와준 이유가 내가 ‘체구가 작은 여성’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음. 스웨덴 친구가 담요를 들고 나왔을 때도 당연히 ‘추워하고 있는 나(여성)’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서 설레발을 쳤던 것이고…이 친구 말을 듣고 그 동안의 내 자신을 돌아보니, 나는 여자가 ‘약하고 예민한 존재이기에’ 더 ‘대접 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음.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알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임. 내가 학창 시절 즐겨 읽던 로맨스 소설, 친구들과 서로 꺅꺅 거리면서 보던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자는 늘 신데렐라였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씩씩한 주인공이라 할 지라도 결국은 옆에 회장님 아들 (or 손자), 이웃 나라 왕자, 또는 제국 제 1의 수호기사같은 서포터가 있었음 (이렇게 까발려진 내 취향…ㅎㅎ). 온라인으로 흔히 접하는 ‘연인에게 오래 사랑받는 남자/여자’, ‘남자/여자친구에게 주면 좋을 선물 리스트’ 같은 제목의 게시물도 남성과 여성의 취향과 태도를 따로 구분 짓고 고정된 성역할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는 것, 수동적인 여성상이 더 가치 있게 여겨 지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나는, 그 사회가 나에게 주입하는 수동적인 여성관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내 스스로 그 수동적인 여성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행동해 왔다는 사실을…저 스웨덴 친구와 대화 후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음. 이 친구는 저 날 파티에서 만나고 그 후로는 본 적이 없지만, 이 친구와의 토론/대화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 또한 얻었음. 후에 찾아보니 Global Gender Gap 순위에서 스웨덴이 4위에 랭크 되어있었음..(현재는 2021기준으로 스웨덴 5위, 1위는 아이슬란드, 한국은 102위. 출처: Global Gender Gap Report 2021 / World Economic Forum).





8. 따가운 햇살(?) 같았던 스페인 친구





티모시…ㅎㅎ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처음 봤는데 보자마자 이 친구 생각이 났음..ㅋ 티모시는 프랑스계 미국인이고 이 친구는 스페인 사람인데 숨겨진 형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우 닮았음…얼굴형이나 머리색 이런 건 다른데 특유의 몽환적인 눈빛..?이 프린터로 찍어낸 것 처럼 닮음..내가 영화 보고 나서 이 친구한테 너 언제 배우 데뷔했냐고 농담조로 물어보니까..안 그래도 자기 예전부터 티모시 닮았다는 말 많이 들었다고 (+잘생겼다고)…나한테 너 생각보다 늦게 깨달은 거 아니냐고 반문함..ㅎㅎ (그래 너 잘났다..ㅎ) 이 친구와는 대학 입학했을때부터 거의 모든 렉쳐/ 그룹수업을 같이 들었음 (일부러 그렇게 선택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짜여졌음). 이 친구가 말투는 정말 신랄한데…속정이 깊고 배려가 넘치는 애임 (그래서 제목이 따가운 햇살..ㅎㅎ) 이 친구에게 네덜란드 유학 시절 내내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외적인 부분을 떠나 내가 가장 좋아하고 멋있다고 생각한 인물이기에, 특.별.히. 카테고리를 나눠서 썰을 풀도록 하겠음.


1) ‘I fxxk anything’

네덜란드 유학 전 까지만 해도 나는 LGBTQ+집단에 대해서 거의 무지했음. 주변에 (오픈된) 성소수자인 친구들이 없었고, 게이, 레즈 커플 정도만 유투브 썸네일로 간간히 보던 정도였음 (시청한 게 아니라 정말로 썸네일만 보고 아,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아는 정도?). 그러다 보니 네덜란드 와서 존잘 애들이 파티에서 서로 키스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대로된 컬쳐 소ㅑㅋ을 느꼈음. 정작 스킨쉽하는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혼자 부끄러워함… 이렇게 하루하루 나의 세계관을 넓혀 가던 중, 반 친구 한 명이 자기 오늘 홍등가에 있는 쇼 보러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봐서 저 스페인 친구 포함한 몇 명이랑 같이 쇼를 봄…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유교걸이었던 나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위였음..ㅎㅎ 피날레는 남녀 두명의 라이브…음…야스..음…그런 것이었는데, 이게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약간 정말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았음. 비트 있는 음악에 맞춰서 빠르게 진행이 되는데, 자세를 바꿀 때마다 배우들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Ho! 하고 기합을 넣는데…말 그대로 정말 ‘라이브 XX 공연’이었음… 공연이 끝나고 근처 바에서 친구들이랑 맥주 한 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데, 성생활..에 대해 화제가 전환이 되고, 이런 저런 꿀렁꿀렁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물론 나는 여기서도 리스너…) 저 스페인 친구가 ‘I fxxk anything’이렇게 말해서 순간 놀랐음 (anyone도 아니고 anything…) 자긴 취향 이런 거 없고 눈 맞고 마음 맞으면 언제든지 가능! 하다는 거임…그런데 여기서는 아직 눈/맘 맞는 대상을 못 찾았다고…그리고 덧붙이길 자기 바이섹슈얼이라는 거임. 그 당시에 처음 들어본 컨셉이었어서 바이섹슈얼 그게 모야..? 하고 물어 봄. 그랬더니 얘가 나한테 윙크하면서 ‘It means, everyone looks beautiful in my eyes’라고 하는 거임. 여기서 내가 신기한 경험을 한 게, 이 친구가 자기 눈엔 모두가 아름다워 보인다..라고 하는 순간 이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의문들이 싹 사라짐. 그냥 내가 존잘 언니 오빠들을 보고 환호하는 거랑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성애든 양성애든 그냥 다 같은 일반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됨.


2) 노트 필기? 그게 뭔데?

앞에서 말했지만, 이 친구랑은 1학년 때부터 거의 모든 수업을 같이 듣다 보니까, 안면 튼 이후로는 누구 한 명이 지각하지 않는 이상,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게 되었음. 렉쳐 시간에 나는 교수님이 스크린에 띄워 놓은 수업 자료들 부지런히 요약 정리하면서 손에 불이 나게 필기를 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강의 시작 하고 끝날 때 까지 내내 팔짱 끼고 앉아 있더니 강의 끝나고 자기 노트에 걍 몇 줄 끄적이던게 다였음. 시험 기간에도 나는 도서관에서 그간 필기 했던 것들 복습/피피티 자료 복습하면서 ‘배운 지식을 외우는’ 공부를 했고, 이 친구는 피피티 한 번 훑어보고 끝! 하더니 자기가 가져 온 책 읽다가 배고프다고 집에 일찍 가고 그랬음. 그런데 막상 시험 보면 이 친구가 점수는 월등히 높았음.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는 건가 싶어서, 노트 한 번 보여달라고 해서 봤더니,..ㅋㅋ 강의 시간에 몇 줄 끄적이던 내용의 정체가 약간..’what..?’, ‘boring..’,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등의 소소한 불평과 함께 강의 듣다가 떠오른 의구심, 질문 같은 거였음. 얘 말로는 1학년때 배우는 이론 수업 같은 건 자기 이미 중, 고딩 때 다 배웠다고…liberal democracy, populism 이런 건 그냥 검색 몇 번만 하면 나오는 건데 굳이 수업에서 왜 또 배우는 지 모르겠고, 자기가 대학 수업에서 기대한 내용은 이게 아니라면서..this school sucks…이렇게 신랄하게 강의 평가를 함… 그리고 자기는 남들이 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늘 의문점을 던지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음.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사회 체계로써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의 자리 잡혀 있는 데, 과연 민주주의가 모든 사회에 적합한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짐. 이게 이 친구의 정치색과는 관계가 없는, 정말 학문적인 접근이었음. 많은 나라들이 선택 한다고 해서 과연 그게 옳은 시스템일까? 나라마다 종교, 문화, 역사가 전부 다른데 왜 소수의 몇 가지 사회 구조만 ‘일반적인 것’ 으로 받아들여져야하는 것일까?…라는 식의 질문들이 노트에 적혀 있었음.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 있었던 나는 이 친구의 접근 방식이 너무 새롭고 신기했음.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기만의 견해를 더한다는 것…정말 본받고 싶은 배움의 자세였음...그렇다고 해서 매사 심각하기만 한 친구는 아니었음. 내가 중동의 종교 갈등 관련해서 정말 머리 터지게 자료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노트에 큰 글씨로 I HATE ITTTT (종교 교리 관련해서 일어난 민족, 지역 갈등 공부하다가 진짜 머리 터지는 줄 알았음) 이렇게 쓴 거 보고, 얘가 옆에서 젤리 먹으면서 ‘종교? 넘 serious하게 생각하지 마’하면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을 신으로 믿는 집단도 있다고..종교 별 거 아니라고 함 (이게 종교인을 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너무 힘들게 공부하고 있으니까 릴랙스하라고 던진 농담이었음!). 저게 뭔 말이지? 하고 찾아보니까 진짜 있었음… Pastafarianism이라고..정식 종교로 인정 받지는 못한 거 같지만..암튼 진짜 있는 종교였음…


3)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이 친구가 수업 평가는 칼 같이 해도, 다른 나라의 관습이나 문화에 대해 새롭게 배울 때는 굉장히 조심스러워했음. 보통은 자기 나라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것들을 받아들이거나 판단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친구는 그러지 않았음. 하루는 내가 한국의 경쟁 사회에 대해서 이 친구한테 말한 적이 있었음. 내가 한국 교육 방식에 답답함을 느끼고 유학을 선택한 사람이라서, 한국 청소년이 보내야하는 경쟁+대학 입시의 늪…에 대해 정말 정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데 늘 초조하고 불안했고, 내가 대학을 잘 간다고 해서 인생이 다 풀릴 것 같지도 않고,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서 평가 받으면서 살아야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음 (대학, 직장, 결혼, 육아 등등..). 보통 외국 친구들한테 한국 중,고딩들은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거나 afterschool academy에서 학교 시험 및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한다고 하면, 애들이 놀라면서 한국 청소년들 너무 불쌍하다고…인생이 너무 재미 없을 거 같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음. 그런데 이 친구는 묵묵히 듣다가 너가 참 많이 힘들었구나. 한 마디 하고 별 말이 없었음. 내가 그래서 이런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까, 자기는 한국인으로써 살아보지 않았기때문에 이게 좋다 나쁘다 단정지어서 판단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조심스럽고 차분한 톤으로, 너의 말을 들어보니까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힘들고 불안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미래의 시스템을 책임질 젊은 세대가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청소년기에 그렇게 우울감을 느끼면서 보내는데, 왜 그러한 사회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는 거냐고 물어봄…..내가 여기서 아무말도 못했음.. 그러니까 이 친구가, 각 나라들은 저마다 풀어야 할 큰 과제들이 있다고, 스페인은 실업 문제, 중동의 나라들은 여성 인권 문제, 아프리카 몇 몇 나라들은 내전, 기아 문제 등등…각자 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고, 사회에서 중요시 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굳이 어디 어디를 비교해서 이 나라는 살기 좋고 저 나라는 살기 힘들다 라고 객관적으로 수치를 따지거나 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해줌. 이 때 정말 이 친구가 생각이 깊고 마인드가 열려있음을 느낌….그리고 상대를 위한 배려심도…자기 친구가 자라 온 나라의 문화에 대해 본인의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틀림’이 아닌 ‘다름’이 있을뿐이라고 존중해주는 태도가 대화를 하다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졌음. 그게 너무 멋있었음…ㅠㅠ


4) ‘인간 세상에 온 걸 환영해’

1학년 말 마지막 블록 (한국에서 ‘학기’같은 개념) 에서 내가 번아웃이 심하게 왔었음. 입학 하고 부터 정말 하루도 안 쉬고 공부..만 한 결과였음…영어로 전공 지식을 배우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까지 짜내야하는 대학 수업을 해 내려니 정말 한 과목 과제만 하는데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음…주말에도 친구들이랑 약속 없을 때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근데 여기는 대학생들이 주말 포함 매일 공부하는게 생각 보다 흔한 일임. 대신 나처럼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음..) 약속 있었을 때도 약속 시간 제외하고는 항상 다음 주 수업 준비, 과제 하는데 시간을 쏟았음. 이렇게 매일 같이 공부해도 수업에서 한 마디 못하고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고, 아무리 책을 읽어도 모르는 것 천지였음…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하루 하루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았음. 1학년 마칠 때 즈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때려치고 싶었음. 밤에 잠을 못자니까 수업에 나가도 집중도 안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수업도 안 나가게 되었음. 그런데 내가 입학한 학교가 출석에 굉장히 까다로운 학교였어서 그룹 수업 3번 이상 결석 하면 그 코스는 자동 F였음… 학교를 안 나간 지 열흘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학과 사무실에서 경고 메일이 왔고, 그걸 보고 나는 걍 삶의 의지를 잃어서.. 집 밖에 아예 나가질 않았음 (학교가 뭐라고..ㅠㅠ 근데 그때는 나한테 정말 크게 느껴졌었음). 가족들한테 말도 못하고 그냥 혼자 속으로 삼키고 하루하루 버텼음. 친구들한테 오는 연락은 걍 씹거나, 몸이 안 좋아서 결석 했다고 대충 둘러댔음. 저 스페인 친구도 내가 일주일이 넘게 학교를 안 나가니까 무슨 일 있냐고 문자 보냈는데, 내가 걍 별 거 아니라고, 휴식이 좀 필요한 거 같다고 말하니까 그 이후로 따로 연락이 없었음. 기말 시험도 안 쳐 버리고..칩거한 지 한 2주 가까이 되었을까? 갑자기 누가 내 긱사 방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음. 문 여니까 그 스페인 친구를 선두로 그룹 수업에서 그나마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이 서 있었음..애들이 문 열리자마자 걍 휙 들어오더니 책상(겸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펼쳐져있던 노트, 프린트물을 다 치우고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데, 과자 몇 봉지랑 케잌, 술…이었음. 같이 온 독일 여자애는 작은 꽃 다발도 가져왔음….아니 얘네들 대체 뭐지 싶어서 얼떨떨하게 있는데, 스페인 친구가...내 방에서 찌든 내 난다고…oh it smells like death here 이러면서 창문 열고 환기 부터 시킴…ㅋㅋ 몇 몇 애들이 냉장고 열어보더니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긱사 앞 슈퍼에서 뭐 좀 더 사온다고 나가고…남은 애들은 우리 오늘 여기서 종강 파티할 거라고 테이블에 술이랑 과자 깔고 케잌 세팅도 함..그래서 내가..나 시험도 안 보고 이번 블록 다 페일이라고 딱히 파티할 기분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런 거 없다고 우리 다 같이 수업 듣고 그랬으니까 다 같이 파티할 거라고 막무가내로 우김…2주 만에 봤는데 너 괜찮냐 어떠냐 이런 소리는 아무도 안 했음. 애들 다 모였을 때 다 같이 건배 하고 케잌 부터 먹는데, 내가 나 하루종일 암것도 안 먹어서 지금 케잌 먹으면 속 안 좋을 거 같다고…일부러 사와줬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했음 (그 때..입맛이 진짜 1도 없었음…) 그러니까 그 스페인 친구가 케잌 가리키면서 여기 시트는 빵, 크림은 유제품이니까 첫 끼 식사로 충분하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면서…? 무조건 먹으라고 함. 포크가 인원 수 만큼 없어서 몇 개는 옆 방에서 빌리고 나는 젓가락으로 조금씩 떼어서 깨작깨작 먹고 있는데, 애들이 각자 방학 때 뭐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함. 대부분 가족들과 휴가 보낸다는 쪽이었는데, 나는 가족이야기 나오는 순간 한숨 부터 지어졌음. 아직 1학년인데 벌써 이렇게 망쳐버려서…리싯(재시험)도 자신이 없고…한 학년을 더 다녀야할 거 같다고 가족들한테 말할 용기가 안났고, 이런 이유 때문에 방학 때 한국을 들어갈 지 조차 결정 하지 못하고 있었음. 이런 고민들을 이야기 하니까 네덜란드 친구가 픽 웃으면서 말하기를, 원래 이 나라에서 대학 제때 졸업 하는 사람 많이 없다고 함. 자기도 저번 블록 과목 하나 망쳐서 재수강해야 한다고 했음. 그래서 내가 난 아무리 해도 좋은 점수 받기가 너무 힘들다. 수업에서는 늘 자신감이 없어서 항상 긴장하고 너네들 처럼 말 잘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서 힘들다…이렇게 속마음을 토로함. 그랬더니 독일 여자 친구가 너가 왜 말을 안 한다고 생각하냐, 너가 말을 ‘많이’ 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항상inspiring 의견을 던지지 않느냐. 항상 너가 새로운 시각에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한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너 안 온 2주 동안 다들 걱정했다고…we’ve been missing you…라고 말해줌ㅠㅠ 그 옆에 있던 스페인 친구가 얘 한국에서 맨날 최상위권에 있던 애라서 A랑 A*가 성적의 전부인지 안다고…ㅎㅎ….패스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얘는 honours class가는게 미니멈 기준이라고 하니까 애들이 다들 고개 절래 절래 흔들면서, 그건 정말 극소수의 인원에 불과하다고;; 유럽에 왔으니까 유럽식 교육 방식에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함. 내가 그래도 재수강까지 가는 건 너무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된다고..하니까 뭘 그렇게 시리어스하게 받아들이냐, 패스 못하는 게 일상인 우리들을 보라면서ㅋㅋㅋ….너도 좀 ‘인간’다운 삶을 살 필요가 있다면서, 걱정 말고 파티 즐기자고 함. 건배하는데 막 ‘oo의 인간 세상의 입성을 위하여~’ 이런 식으로 구호를 붙여서 지들끼리 좋아함…(아니, 이 사람들아. 내가 니들보다 학비 3-4배는 더 내면서 다니거든요..나도 EU시민이었으면 이렇게 까지 돈 걱정 하면서 유학 안했다고…ㅎ)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그래도 애들이 날 생각해주는게 여실히 느껴져서 너무 고마웠음…

이 날이 내 네덜란드 유학 생활 중 가장 기억의 남는 날 들 중에 하나임. 그 당시에는 몸에 힘이 없어서 감동 받았어도 울 기력이 없었는데, 그 때 그 밤을 상기하며 이 글을 적는 지금 오히려 더 울컥하는 느낌임..ㅠ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그냥 남이 아닌 함께 동고동락하며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직접 들으니까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았음. 결국 그 블록은 망치게 되었지만, 그 때의 기억이 그 이후의 인생에서 맞닥뜨린 크고 작은 시련들을 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 (특히 공부하는 데 있어서!). 그 이후로 이런 저런 소소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개인 사정이 생겨서 학교를 그만 두고 전과를 하게 되면서 유학 하는 나라 자체를 바꾸게 되었는데, 살던 기숙사에 위약금 문제로 또 한 번에 큰 시련을 맞이했음..계약 기간 내에 방을 빼게 되면 위약금을 물었어야 하는데, 여기가 사설 기숙사라 위약금이 진짜 어마어마 했음….한 번에 내야하는 금액이 거의 한 학기 학비의 반이었음…ㅠㅠ 그 당시에 나에겐 너무 큰 돈이었어서 부모님한테 너무 죄송하기도하고, 돈 걱정에 하루하루 삐쩍 말라가는데, 스페인 친구가 같이 밥 먹으면서 하는 말이, 위약금 낼 돈 자기가 빌려주겠다고, 그깟 돈 몇 천 유로 때문에 자학하지 말라고 했음. 내가 깜짝 놀라서 그 돈이 얼마인데 너가 빌려주냐. 니가 돈이 어디있냐. 있다고 해도 절대 못 받는다고 손사래를 쳤음. 그랬더니 얘가, 그냥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라고, 나중에 너가 일해서 나한테 달마다 갚으면 된다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함. 이 말이 나는 고맙기 보다는 어이가 없었던 게, 얘는 절대 집에 돈이 많다거나 하는 애가 아니었음. 학비만 집에서 지원 받고, 생활비는 본인이 일해서 벌었기 때문에 월세 엄청 저렴하고 낡은 집 구해서 살고, 식비랑 기타 생활비 아끼고 아끼면서 사는 애였음. 이런 애가 갑자기 몇 천 유로나 되는 돈을 선뜻 빌려주겠다니까 나는 이게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지 가능한 일인가? 싶었음..내가 너 그러다 내가 돈 받고 한국으로 날라서 잠수라도 타면 어떻게 할 거냐고 웃으면서 말하니까, 어차피 계약서 쓸 거기 때문에ㅋㅋ 너 잠수 못 탄다. 만약 잠수 탈 시에는 국제법의 심판을 받을 준비하라며ㅋㅋ 위약금 정확하게 얼마냐고 물어봄. 아휴…그래도 내가 니 돈을 어떻게 받냐고, 부모님한테 부탁해보겠다고 거절했는데, 얘가 잠시 고민하더니, 너 기숙사 계약할 때 썼던 계약서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봄. 계약서가 글씨도 엄청 작은데 무슨 조항도 엄청 많고 더치본/영어본 이렇게 합쳐져 있어서 거의 한 50페이지 가량했음. 근데 얘가 계약서 조항 하나하나 읽어보더니 자기가 아는 더치 친구한테 좀 물어보겠다면서 집에 갈 때 내 계약서를 아예 들고 감…ㅋㅋ 그리고 며칠 후에, 그 더치 친구랑 긱사에 찾아와서 내 상황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물어보더니, 위약금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 알았다면서 긱사 오피스에 약간 협박 아닌 협박을 하라고..? 방법을 알려줌. 그 협박(?)의 내용을 여기서 쓸 수는 없지만….중요한 건 그 협박이 먹혔음….몇 천 유로에서 한 달치 월세로..위약금이 절감되어서…내가 진짜 너 내 구세주라고 발이라도 닦겠다고 절까지 했음…ㅋㅋ 하…정말..말 그대로 어메이징한 친구였음….이 친구가 나에게 보여준, 우정이라는 울타리안에 있는 깊은 애정, 걱정, 관심은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 같음. 전과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오늘 따라 너무 보고 싶다 친구야..ㅠ…망할 코시국…부스터 맞고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러 간다..기다려ㅠ…





QnA



몇 몇 댓쓰니들이 달아준 질문에 대한 답글인데, 아마 다른 친구들도 궁금해 할 부분인 거 같아서 게시글에 이렇게 따로 추가해!
이 답글에 나온 ‘외국 or 서양’의 기준은 내가 네덜란드 및 다른 여러 나라에서 장/단기 거주하면서 만났던 서구권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데이타이고, 유학 시절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거라는 점,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절대 이 몇 몇의 예시만으로 한 나라/문화권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점 꼭 염두에 두고 읽어 주길 바라!


1. 쓰니가 만났던 외국 친구들과 한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이 어떻게 다른지

1) 외모, 스펙 언급의 차이
외국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타인의 외모나 집안 환경, 학벌 같은 스펙이 화제가 된 적이 거의 없었어. 아니, 아예 없었어…ㅎㅎ 누군가의 '외적인 모습'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어. 그 흔한 ‘너 오늘 힘들어 보여/피곤해보여’ 이런 말조차도 애들한테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 학벌이야 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따로 할 말이 없었고, 집안 환경은 우리 가족 인원이 몇 명이고 내가 형제가 누구누구 있다 이 정도..? 그런데, 방학 때나 전과 할 때 잠깐 한국에 머물렀을 때 고교 동창생들 만나서 이야기 하다 보면 다들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 및 대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 외모 고민, 퍼스널 컬러 이야기 등등 외모/스펙 위주의 이야기가 차지 하는 비중이 높았던 거 같아. 그리고 MBTI….지겹도록 들었다…

2) 화제의 포커스 (나 vs. 타인)
내가 한국에서 특히 놀란 게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근황이나 안부를 물으면 친구 자신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친구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거.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타인의 삶과 연결이 되어있더라고. A는 어디 대학 들어가서 ~~의대생이랑 사귄다는데…나는…blah blah…/B는 이번에 어디어디 고쳤대, 사진 봤어? 완전 예뻐졌더라…./C는 이번에 캐나다로 교환학생 간대…부럽다 나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난 가고 싶어도 돈 없어서 못 가는데… 등등 남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본인의 인생을 한탄하는….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나는 위로나 공감할 처지가 못 되어서 그냥 들어주는 입장이었어…뭐랄까…본인이 처한 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거 같아. (참고: 이 대화를 나눌 시에 나는 20대 초반이었어. 나이에 따라서 대화주제도 달라 지는 거 같아서? 추가 정보로 적어 놓을게)
이것과는 다르게, 외국 친구들은 '남의 인생'에 큰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 남에게 일어났던 사건 사고에 대한 언급은 가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의 일이니까 나의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어. 본인과 타인을 비교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어. 걔랑 나랑 어차피 다른 인생을 살아왔는데 비교해서 무엇함..? 이런 가치관이랄까... 그냥 남에 대한 이야기 거의 안하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판단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더라.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어. 앞에 스페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있다 하면 본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도와주려고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

2.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영어 공부…정말 시행착오가 많았는데…ㅎㅎ..가장 중요한 건 본인에게 맞는 영어 공부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영어 환경에 꾸준히 노출되는 것 이거 두 가지인 거 같아.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토익책/토플책 사가지고 풀다가 몇 장 못 풀고 때려쳤고, 무자막 혹은 영어자막으로 미드를 보라길래 시도했다가 10분도 못 보고 껐어..ㅋㅋ 자격증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는 증.말. 내 취향이 아니었고, 한글 자막 없는 미드는 이해를 못해서 재미가 없었거든..그렇게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다가 영어로 된 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내가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거 같았어. 쉬운 영어로 된 소설 부터 한 권씩 한 달에 걸쳐서 나누어 읽었는데, 어휘력이 굉장히 많이 늘었어. 토론 수업도 적응하니까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점점 어렵지 않게 되었고ㅎㅎ (물론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유학 하는 도중에도 친구들이랑 책 읽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영어 공부는 꾸준히 했어.


3. 대학에서 토론 준비할 때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는지

이 질문 댓쓰니가 토론 주제 관련 자료 조사할 때 영어로 쓰여진 글이랑 한글로 쓰여진 글에 차이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었는데, 정확히 어떤 차이를 말하는 건지 내가 파악을 못했다 미안해;;…일단, 토론을 ‘준비’한다는 게 불가능했어..ㅎㅎ 튜터가 다음 수업 주제랑 관련된 저널 및 아티클 몇 개 뽑아 주면 그걸 읽고 가야하는데, 토론 주제는 그 리스트랑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거든.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이어서 애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뿅하고 떠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그러다 보니 사전 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어. 그래도 관련 주제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많을 수록 좋으니까, 나는 관련 주제에 대해 브리타니아(온라인 백과사전같은 거)랑 위키피디아부터 쭉 정독하고 리딩 리스트 아티클 읽고, 아티클에서 언급된 사건 사고들에 대해 따로 또 찾아보고 하면서 노트를 만들었어. 그 당시에는 한국어 사이트는 거의 이용하지 않아서..ㅠ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4. 서양권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바라보는지 (서양 남성들의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에 대한 시각)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개인의 선택. 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 자기 주변 어떤 사람이 자기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한들 그걸 본인이 좋다/나쁘다 이런 식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다고 했어. 페미니즘은 인문학/사회과학 전공하는 친구들이면 거의 대학에서 한번쯤은 다루는 주제이다 보니까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 (전 글에 언급한 스웨덴 오빠와 그 친구들 사이의 토론처럼).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 혹은 본인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고 한 친구도 있었고ㅎㅎ. 그렇다고 그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행동과 사상에 동의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어. 예를 들어, 어떤 한 친구가 말하기를 (국적은 공개하지 않을게!), 과거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시리즈 (‘프렌즈’나 ‘how I met your mother’)에 성차별적 발언이 나온다고 그 드라마를 아예 소비하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에는 동의 할 수가 없대. 드라마나 영화는 Popular culture의 한 종류로써 그것을 소비하고 공유하는 사회 인원들의 사고 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거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들은 그 시대의 생활 또는 가치관을 반영하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하였어. 문제가 되었던 몇 몇 발언들이 현재 시대의 남녀 평등 사상의 맞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라면서, 그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화적 산물의 유통을 중지 시킬 필요는 없다고 하였어. 그렇게 따지면 시대극, 역사드라마는 다 방영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더라고. 과거의 문화는 과거의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 때와 지금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되지 않냐는 주장이었어.


5. 인종차별을 경험했는지

이건 케바케라고 생각하는데…나는 내가 한국인 혹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다른 대우를 받았던 경험은 없었어.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했지만? 차별이라고 생각을 안 했을수도 있고. 근데 다른 한국인들 이야기 들어보면..별 일을 다 겪었더라고, 맥도날드에서 누가 던지는 쓰레기를 맞았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뭐만 하면 같은 반 학우들한테 that’s because you’re fxxking asian 이러면서 조롱 섞인 놀림을 받은 사람, 레스토랑에서 다른 백인들보다 먼저 주문했는데 자기 디쉬는 훨씬 더 나중에 나왔다는 사람 등등…근데 이거는 정말 사바사, 케바케인 거 같고, 사람마다 보는 시각의 차이가 다르기때문에 무엇이 인종차별이다/아니다라고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 같아!





<글을 마치며>
아이고..지금 몇 시간 째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네..ㅎㅎ
긴 글 읽어 줘서 다들 너무 고마워~ 관심 가져준 모든 쓰니들 덕분에 어쩌다 보니 이렇게 3탄까지 오게 되었네ㅎㅎ 덕분에 옛날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좋은 경험이었어!
하이틴 스타일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쩌다 보니 나름 깊은 주제까지 다루게 되었는데 다들 재밌게 읽어주었길 바라.
이 글을 쭉 읽어 온 친구들은 느꼈을 지 모르지만, 이 글은 내가 마냥 유럽에 있는 존잘남들을 '찬양'하는 글이 아니라는 거..ㅎㅎ 내가 유학 하면서 교류 했던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타지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 (and 존잘..)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아주었으면 해!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유럽 유학을 장려하는 글은 아니야.내가 유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내가 십 대 시절 진로 고민을 하면서, 당시 처해있던 불만족스러운 환경 및 상황을 개선하고자 찾은 '하나의' 길일 뿐이었어. 유학을 갔다는 이유 만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고, 거기서 마주친 일련의 시련들 (매일 매일이 처음 겪는 환경...)을 극복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있었지만, 이상한 사람들한테 상처 받은 경험도 많았어. 글에 언급했던 것처럼 존잘에 스맡+스윗한 사람들도 있지만, 아시안 피버에 달아올라서 cutie, oriental beauty 어쩌고 하는 넘들도 있었던.... 또 언어의 장벽도 생각보다 넘기 힘든 관문이었어. 네덜란드가 일반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는 나라이지만 현지어가 버젓이 존재하고, 대학 수업 시간 외에는 보고 듣는 모든 말이 다 네덜란드어(더치)였거든. 내가 모르는 언어는.. 슬프지만 '그저 소음'에 불과 했고, 그게 나를 현지에 적응하기 힘들고, 더더욱 이방인으로 느껴지게 했던 것 같아. (그래서, 혹시 유럽 유학 생각 있는 친구들은 꼭! 현지 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가는 것을 추천해) 

긴 글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
다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고,
이만 줄일게!

(막짤은 너드+훈남미 넘치는 비에른 모스텐_출처:러브 앤 아나키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