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지독하게 싫으신 분.. 어떻게 사시나요

ㅇㅇ2022.02.14
조회26,348
죄송합니다
너무 답답해서 써보았습니다
많이 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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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경상도 작은 시골의 사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어른들이 다 그랬듯이 우리 아빠네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한다
다만 아빠는 공부를 참 잘했다고 한다
늘 전교1등만 했기에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하는 목표를 다졌는데, 중3 시절 할아버지가 돈도 없는데 뭔놈의 대학이냐며 그냥 공고에 지원을 해놓고 왔더란다
인문계에 못간것이 억울해서 몇달동안 입이 댓발나와서 가방을 발로 툭툭 차고 다녔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도 아빠의 성적은 늘 우수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좋은 대학교 가서 소위 성공했다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꿈이 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해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였고, 정신없이 일하다가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전라도의 작은 시골에서 형제들과 화목하고 맑게 자란 숙녀였다
아빠를 만났을 때 눈빛이 빛나고 자기확신이 넘치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한다
또 다정한 오빠들과 자랐기에 남자들은 다 오빠같이 기본적으로 다정한 줄 알았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결혼했다
아빠는 내 자식들은 돈 없어서 공부 못하고 무시 당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돈을 악착같이 벌었고, 제대로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아빠의 말로는 31살부터 39살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한다
오로지 일만 했다고 한다
새벽 6시에 나가서 새벽 1시에 들어오는 삶을 10년을 보냈다 휴일도 없이
엄마는 혼자서 아이 3명을 키웠다
아빠는 본인이 밖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오면 엄마가 아이들을 번듯하게 키워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것이 각자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했단다

아빠는 독하고 꼼꼼하고 예민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단칸방에서 200만원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자수성가를 했다
강남에 몇십억을 들여서 평생 살 단독주택을 지을 정도로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냉혹한 현실 속에서 지독하게 살아왔고, 가족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가족도 일종의 비지니스 관계와 같았다
아빠는 사장, 엄마와 아이들은 각자의 직책이 있는 사원들

순하고 평범한 엄마의 살림과 교육방식은 아빠 맘에 들지 않았다
직원이면 해고를 하면 되는데, 와이프니깐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마다 행사가 터졌다
엄마는 아빠한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빠 말을 들으면 아빠 말이 다 맞으니깐
엄마는 말주변도 없었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본인이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30년이 넘는 나날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빠의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하지만 아빠는 질린다고 했다
30년 동안 어떻게 변함이 없냐고, 니가 놀러도 나가고 그래야지 내가 애들이랑 라면이라도 끓여먹을거 아니냐고, 니가 애들과 내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있는 거라고
아빠가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일 때도 엄마에게 주는 생활비는 동일했기에, 엄마는 평생 아끼고 살았다
마음에 드는 옷 한 벌 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꼴보기 싫다고 했다
어떻게 꾸밀 줄을 모르냐고, 우리가 이 정도 사는데 좀 꾸미고 다니라고,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고, 쪽팔린다고 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한 번만이라고 엄마와 아빠가 동등한 관계에서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을 보고 싶었다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보고 싶었다
아빠가 엄마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혼내는 모습말고

그 즈음 나는 우연히 아빠 핸드폰에서 다른 여자를 발견했다
부적절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냥 모른척 했다
나만 모른척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점점 성공했고, 덕분에 나는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좋은 동네에 살게 되어서 그런지 좋은 남편도 만나서 결혼도 잘했다
좋은 차도 있었고, 신혼집도 좋은 곳이었다

물론 아빠는 부녀관계도 비지니스라고 덥썩덥썩 주지는 않았다
내가 마땅한 보상이 필요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여겨질 때만 하나씩 해주었다
남들에게 보란듯이 말할만한 딸의 직장,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사위의 직업같이
그 과정은 내 자존감이 수백번 짓밟혔다가 그럼에도 일어나기 위해 조금씩조금씩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비록 아빠가 엄마와 우리에게 이토록 모질게 굴어도, 요즘 세상에 이정도로 성공하려면 아빠처럼 지독해질 수밖에 없는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엄마와 우리는 아빠 덕분에 좋은 동네, 좋은 집에서 돈 걱정 없이 밥은 먹고 사니깐
그렇기 때문에 엄마와 나와 내동생들이 아빠에게 받는 상처는 그냥 삼켜야하는거라고 생각했다
불평도 사치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우리는 행복한거라고 만번은 되뇌었다

그렇게 불로한 호랑이 같던 아빠도 시간은 못이기더라
아빠가 암에 걸렸다, 발견한게 천운이라는 암이었다
바로 수술을 했다
하지만 후유증이 심한 수술이었다
평생 밖에서 혈기 넘치게 휘젓고 다니던 사업가는 이제 집에만 있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존심이 상해 암이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 못한단다 쪽팔리니깐
우리 가족 말고는 아빠가 암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사실 나는 어린시절 아빠를 잘 보지 못했다
내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내가 자고나면 퇴근했으니깐
가끔 아빠가 일찍 퇴근해도 할 말이 없고 집에 있는 아빠가 어색해서 방 안에만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직장을 다니며 더 만날 일이 없어졌고, 결혼하고나서는 몇주에 한 번 씩 봤다
집에 있는 엄마와 동생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가 하루종일 거실에 앉아있으니 점점 트러블이 많아졌다
아빠는 엄마가 몸이 망가지면서 아빠의 병간호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채를 잘게 썰어넣은 죽, 세가지의 찬, 샐러드, 계란후라이, 낫또, 토마토, 사과, 수많은 약을 아침 일곱시마다 차려주었다
아빠는 식단이 매일 똑같다고 답답하다고 했다
일상에 변화를 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미련하다고 했다
아빠가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 엄마도 일절 밖에 다니지않고 옆에서 아빠를 챙겼다
아빠는 답답하다고 했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냐고 친구도 없냐고 조롱했다
아빠는 수술한게 후회된다고 어떻게 옆에서 말리지도 않았냐고 매일 엄마를 비난했다
암 선고 받고 명의를 찾아내서 돈까지 쥐어주며 가장 빠른 날짜로 수술해달라고 한건 본인이어도 말이다

그리고 엄마는 점점 이상해져갔다
웃지 않았다
기억도 잘 못했다
말도 잘 못하더라
말주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못했다
그래도 순수해서 생글생글하고 맑은 매력이 있는 엄마였는데 묘하게 총기도 사라졌다
예전에는 아빠가 말도 안되는 거로 엄마를 뭐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더 답답했다
머리를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빠가 왜 엄마한테 뭐라하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엄마는 그냥 기계처럼 일어나서 밥차리고 밥치우고 밥차리고 밥치우고 장보고 밥차리고 밥치우고 잤다
엄마는 우울증이었다

그리고 웃기게도 아빠도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365일 사람 만나고 다니면서 잘나가던 사업가가 집에 앉아만 있으니 마음의 병이 왔나보다
아빠가 매일 만나는 사람은 엄만데 엄마가 마음에 안드니 더 속이 터져 미칠 것 같다고 한다

그 집에 같이 있는 내 동생도 우울증에 걸렸다
아빠 눈치보고, 엄마 달래고 북돋아주고, 그와중에 본인도 아빠한테 상처받고, 엄마가 너무 안쓰러운데 그러면서도 엄마가 너무 답답하고를 반복하다보니 동생도 깊은 우울에 빠졌다

아빠와 엄마와 내 동생이 그나마 웃고 가족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는 나와 내 남편이 방문했을 때였다
내 남편은 우리집과 정반대의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맑고 티없고 꾸밈없이 어른들을 대했다
남편이 우리집을 웃게 했다
꾸깃꾸깃한 잿빛 우리집에 샛노랗고 탐스럽게 익은 오렌지 나무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주택 두 채를 나란히 지었고, 우리 부부보고 옆집으로 이사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보고는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직장 그만두고 집 챙기면서 사업을 하든 하고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동생도 나보고 직장을 그만두면 안되냐고 했다
그래도 아빠가 언니 부부를 제일 좋아하니깐 엄마가 좀 해방되도록 언니가 아빠를 마크(?)해주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우울에 빠져있던 어느 날,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매일 아빠를 만나게 되었다

아빠는 우리집에 와서 본인의 불만을 얘기했다 
엄마에 대한 불만이었다
엄마가 너무 답답하단다 엄마가 지저분하단다 엄마가 게으르단다 엄마가 너무 싫단다 엄마가 멍청하단다 엄마가 이해가 안간단다 엄마가 노력을 안한단다 자기는 노력을 하는데..
한 번 말할 때 마다 세네시간은 기본이었다
나는 아빠의 모든 말을 들어주고, 엄마를 대변하고, 이런 저런 안도 제시해보고, 단호하게 말도 해보고, 회유도 해보고, 달래주고, 아니라고 딱 잘라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거는 다했다
그치만 아빠가 엄마에 대한 불만을 말 할 때 마다 가슴 한 켠부터 흠뻑 구정물 먹은 걸 레가 하나씩 쌓여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목구멍까지 쌓였다
아빠가 엄마 흉을 보는게 너무 싫었다
아빠에게는 와이프지만, 나에게는 엄마인데 어떻게 날 붙잡고 나에게 엄마 흉을 보는지 이해가 안갔다
이해가 안가는게 우리 집이고, 우리 아빠인게 토할 것 같이 싫었다
아이를 낳는 것도 무서워졌다
내 아이가 저런 할아버지 옆에서 자랄까봐 보고 배울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나같이 불완전한 가정을 가진 사람이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어제, 아빠가 그러드라
자기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의 지난 모든 날들이 깨져버렸다
꾸역꾸역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 악착같이 살아온 우리 아빠라고, 아빠랑 엄마가 너무 안맞아서 그렇지 아빠는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방식이 좀 다른거라고, 그렇게 합리화를 만번은 넘게 하면서 살아왔는데 저딴 질문을 결국 딸한테 하더라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도 좀 풀어야되는데 엄마는 엄마대로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랬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냐고 되물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선이 있는데 그걸 넘은거 아냐고 되물었다
그러니 "아니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문제야 너도 성인이잖아" 라는 답이 나왔다
더러웠다
아빠가 평생 밖에서 드러운 여자 만나고 다닌 거 나는 알고 있는데, 나는 그래도 아빠가 최소한의 양심은, 죄책감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따위로 자기 딸한테 떠보는 질문을 하는게 내 아빠라니

그냥 칼 꽂고 죽고싶었다
그래서 칼 가지고 차 끌고 나왔다
그냥 신호가 걸리는대로 한 시간을 달려서 모르는 동네로 왔는데 그런데 우습게도 모르는 동네를 구경하고 있더라
그러다가 또 갑자기 피곤해져서 핸드폰도 없이 나왔기에 표지판을 보면서 집을 찾아오는데 내 남편, 엄마, 우리집 강아지가 순서대로 생각나더라
아 그냥 죽을 수도 없구나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구나 웃기게도 참
그리고 또 그냥 저 아빠랑 같이 살아야 되는구나
또 살아가야 되는구나

그 와중에 남들이 볼 때는 팔자 좋고 걱정 없는 부잣집 딸인 것도 웃기다 참
내 껍데기가 우습고 쪽팔린다
근데 나는 또 그 껍데기로 자존감을 채우는 찌질이여서 그것도 못버리나보다
끔찍하게 가난한 껍데기다

그냥 내 인생이 쪽팔린다
어떻게 살아야 될 지 모르겠다
아빠를 어떻게 대해야 될 지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될 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 지

인생이 지옥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