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외국 기숙사에서 쓰는 인생 썰

스쿠너영이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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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했던 일상이 살짝 연해졌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학교, 수업, 과제, 시험 준비 등 평범했다. 한동안 누나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생각만 더 나니까. 해외 인턴 프로그램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았다. 장학생으로 선정만 되면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었다. 4개월 동안의 해외체류비, 비행기 값, 교육비, 인턴 경험 등등 상당한 지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가고 싶은 나라도 고를 수 있었다.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호주 등등.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패키지 여행만 가본 나는 항상 외국에서 여행 말고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자유롭게 떠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 나라 음식을 먹고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대학생의 여름방학은 상당히 길었다. 60일 정도 되는 기간. 친구들이 각자 여름방학의 계획에 대해서 얘기했다. 아르바이트, 해외여행, 토익 점수, 자격증 따기 등등. 룸메이트 형은 기숙사를 나간다고 했다. 친구 자취방에서 같이 생활하기로 했다고. 아쉬웠다. 나름 4개월 동안 재미있었는데. 그래도 근처에 있으니까 종종 연락해서 보자고 형이 말해주었다. 나도 선택을 해야 했다. 처음에 들어올 때 계약을 1학기만 했기 때문에 기숙사를 나가 집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계약을 연장하거나. 여름방학 때부터 준비가 필요 하다던 해외 프로그램에 관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한번 준비해서 해외를 가보고 싶다고. 2달 여름방학 동안 학교에 나가면서 평일 5일 하루에 6시간 씩 수업을 들으며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고. 흔쾌히 마음대로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결국 기숙사를 2학기를 포함한 겨울방학까지 연장했다.


개인 시간이 날 때 마다 서울로 나가보았다. 홀로 서울 구경을 했다. 남산, 명동, 이태원, 이화벽화마을, 낙산공원, 한강 등 하루 날 잡으면 종일 걸어 다녔다. 20살의 서울 구경은 내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되었다. 같은 한국이지만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외국으로 여행을 와 관광을 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평일 사람이 많지 않은 날,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 내 주변이 화사하게 색감이 입혀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혜화역을 자주 갔었다. 이화벽화마을, 낙산공원을 걸을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심규선 (루시아)’ 노래들. 대부분 잔잔한 노래들인데 그 중에 새벽녘, 선인장, 이화동,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등. 이화벽화마을을 걸으며 ‘이화동’ 노래를 무한 반복했다. 시간 되는 분들은 한번 따라해보는 걸 추천 드린다. 누나가 생각났다. 이런 장소를 누나랑 같이 와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여름방학 준비 과정의 시작은 레벨 테스트였다. 모의 토익의 점수 결과를 바탕으로 반을 A, B, C 등급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살면서 토익을 공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구성인지도 몰랐다. 그냥 풀기만 했다. 다음날, A 반으로 배정받았다. 솔직히 좀 놀랐다. 개판으로 풀었던 것 같은데, 반으로 들어가니 30명 정도 있었다. 영어 관련 전공자로서 자존심이 있지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같은 과 친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주변 사람들이랑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전공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간호학과 사람들이었다. 하긴, 이 학교는 간호학과가 그나마 유명하지, 영어관련 전공이라고 한들 수능 망쳐도 합격하는 그런 과인데. 순간 현실을 직시했다. 간호학과 룸메이트 형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학과에 예쁜 애들 진짜 많다고. 왜 그렇게 자랑을 했는지,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 다닌 건지 이해가 갔다. 내가 봐도 정말 예쁘시고 스타일 좋으신 분들이 많았다.


수업은 그저 그랬다. 강의마다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같은 학과 교수님도 계셨다. 나를 보더니 아는 척 해주셨다. 신기했다. 조용하고 그저 그런 학생이었는데 나를 기억해 주신다는 게. 2주정도 지났을까. 미국 위스콘신 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교수님 한 분과 학생 2명이 방학기간동안 우리학교로 교환 학생을 왔다고 했다. 오늘부터 수업을 같이 듣는다며 소개를 해주었다.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보았는데 좋은 친구들인 것 같았다. 교수님과 학생들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는데 주말마다 서울 구경을 간다고 했다. 여름방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중에서 주말에 같이 다니며 가이드 할 학생을 지원 받는다고 했다. 듣자마자 바로 손들었다. 첫번째는 서울 구경을 할 수 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도 많으며, 심지어 소정의 지원금을 제공해주는데 돌아다니며 하루 2끼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지루한 일상에 또 하나 재미난 일이 생겼다. 주말마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서울 돌아다니며 가이드하기! 지하철부터 버스 환승까지 이제 더 이상 하차 태그 실수는 없다. 외국인 교수님과 학생들에게도 하차 태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여름방학 내내 서울 곳곳을 많이도 다녔다. 경복궁, 청계천, 한강, 북촌한옥마을, 동대문 시장 등.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분들보다 내가 더 신났던 것 같다. 한강에서 치킨과 맥주를 처음 먹어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또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서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름방학이 반 정도 지났을 쯤. 페이스북에 누나가 게시물을 올렸다. 여러 사진들이 올라왔다. 관광한 곳, 밥 먹은 곳, 공부한 곳, 등 여러 외국인들과 잘 어울려 좋은 경험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누나 주변 사람들도 다들 착해 보였다. 간만에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잘 지내고 있는지, 외국 생활은 어떤 지. 시간이 지나고 답장이 왔다. 오랜만에 연락하네 하며 잘 지낸다고 하였다. 나도 여름방학에 집에 내려가지 않고 기숙사에 있으면서 같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온 미국인 친구와 교수님과 함께 서울구경 얘기도 해주었다. 잘 하고 있네 하면서 칭찬 해주었다. 그 이후부터 누나랑 자주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오늘은 뭐했는지. 내일은 뭐 하는지. 곧 인턴으로 일할 장소를 배정 받는다고 하였다. 영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는 잘 할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내일은 같이 온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했다. 잘 놀고 오라고 얘기해주었다. 사진도 몇 장 찍어서 보내 달라고. 다음날, 이 시간이면 다 놀고 숙소로 왔겠지 예상하며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1시간 정도 지나서 였을까. 누나의 답장을 보고 걱정이 많이 되었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고 했다. 열도 심하게 나고, 어디 돌아 다닐 정도가 아니라고. 간호 해줄 사람은 있냐고 물었다. 자기 걱정하면서 혼자만 놔두고 다들 놀러 갔다고 했다. 마음이 안 좋았다. 해외에서 아프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약은 먹었는지, 밥은 잘 해결 했는지 걱정되는 마음을 메시지로 물어보았다. 그 다음 답장은 오랜만에 날 설레게 만들었다.


혼자 어느 정도 먹었어, 같이 온 친구들은 걱정 해주면서 다 놀러 갔는데, 한국에서 진심으로 나 걱정해 주는 사람 있으니까, 기분 좋네~ 고마워.’


오늘 날짜를 보았다. 2달 정도 있으면 누나가 한국에 돌아온다.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어쩌면 정말로 누나와 함께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