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세가 된 학생입니다. 수능을 망쳐 재수를 준비하고 있고요. 저희 부모님은 명문대를 나와, 두 분 다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평소 가정 불화도 적고, 딸들에게 손 드는 일도 없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머니와의 관계입니다.
저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은 아닙니다. 중학교를 상위 50%로 졸업했고, 고등학교 내신도 3~4등급 내외입니다. 3년 동안 모의고사는 반 1등을 몇 번 했지만, 전교권엔 거의 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저에 대한 기대가 크셨습니다. 공부를 안 해서 못하는 거다,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 라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을 정도요.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성적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인서울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떨어지더라도요. (저는 내신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더 높았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뻐꾸기 타입입니다. 새벽 3~4시에 자고, 아침에 알림을 세 번은 들어야 일어납니다. 저를 깨워 학교에 보내시던 어머니는 이 점에서 늘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생활 패턴을 고치지 못한다고 욕을 듣고, 맞기도 몇 번 맞았습니다. 너처럼 게으른 애는 없을 거다. 짐승새끼도 이렇게 살지 않는다. 말하시며 저에 대한 기대도 점점 떼셨습니다. 비난을 쏟는 일도 늘었습니다. 고쳐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수험 생활을 마쳤습니다.
수능 성적이 참 나빴습니다. 모의고사 대비 10% 가까이 떨어졌으니까요. 인서울은 가지 못할 성적이었고, 저는 재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학원은 다니지 않고 재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재학 중에도 영어학원만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과학, 수학 학원은 도중에 끊었고요.) 그때부터 갈등을 빚어오던 어머니와 계속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재수를 안 좋게 생각하고 계셨거든요.
재수해서 성적이 오른 예가 없다. 취직 안 되는 문과로 바꿀 바엔 대학을 가지 마라. 네가 공부한다고 뭐가 나오겠냐.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듣는 입장에서 참 서러운 말들이었습니다. 시험을 망친 건 저였기 때문에 듣고만 있었습니다.
수능을 친 날 저녁에도 궂은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치고 온 날은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 듣고 웃으며 잠들고 싶었습니다. 망친 성적보다 안 될 줄 알았다고 비꼬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더 아팠습니다. 울다가 밤을 꼬박 새고 부은 눈으로 생각했습니다. 죽고 싶다. 죽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어서요.
그다음부터 매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안 될 거다. 너 같은 애한테 들인 시간이 아깝다. 그런 걸 해서 뭐하냐. 저희 어머니는 글을 쓰는 일을 하십니다. 제가 글재주가 부족해 모두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정말 무수한 말들을 들었습니다. 이천 원짜리 튀김 하나로도 트집이 잡혔습니다. 얼굴 뵐 때나 메신저로 말할 때나. 어떻게 수능 망한 애 얼굴이 그렇게 태평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죽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죽고 싶었습니다. 사랑해서 하신 말일 텐데 저는 버티질 못할 것 같았습니다. 형편 좋은 이야길 하는 것 같아서 어디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재수를 금지당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내쫓긴 것도 아니니까요.
공부를 잘하지는 못합니다. 매일 5~6시간씩 앉아서 매달리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공부한 만큼, 하던 만큼의 성적은 받아서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처럼 저는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애니까요. 재수를 선택하고, 저를 늘 지지해주시던 부모님이 돌아섰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 놓은 사람처럼 게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수록 비난이 심해졌습니다. 공부를 하지 못한 게 부모님 탓 때문은 아니지만,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오늘 여쭤봤습니다. 왜 이렇게 듣는 사람 아픈 말만 하는지. 어머니 말씀이, 사실이라 그렇답니다. 네가 공부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도. 동생이 너처럼 될까 무섭다는 것도. 바뀔 사람이 못 된다는 것도. 다 사실이라서. 바뀔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화풀이랍니다. 기대한 세월이 아쉬워서 그렇답니다. 네가 부모 기대만큼 하지 못해 본인을 농락했고, 집에 편히 붙어 살려고 재수생 딱지를 붙이는 협잡을 했다고요. 제가 배워먹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농락과 협잡이 스무 살 된 딸에게 할 말 같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는 20년이나 네 뒷바라지를 해준 본인을 두고 혼자 피해자 행세하기 바쁘다고 하십니다.
술, 담배, 흔히 말하는 일진짓 한번 한 적 없습니다. 비싼 화장품 한번 안 사봤습니다. 좋은 자식은 못 돼도 아주 못나고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자식은 아니고 싶었습니다. 대학 가서 26살 전에 취직하고 30살엔 꼭 기반 다져서 부모님께 더는 손 뻗지 않는 자식, 부모님 욕먹이지 않는 자식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직업 교육을 받지 못해 어머니 말씀처럼 20살에 나가 살 자신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못난 자식인가요. 이게 아주 못난 짓인가요. 잘한 것 없이 우는데도 울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20세 재수생입니다 저만 이렇게 힘든가요?
문제는 어머니와의 관계입니다.
저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은 아닙니다. 중학교를 상위 50%로 졸업했고, 고등학교 내신도 3~4등급 내외입니다. 3년 동안 모의고사는 반 1등을 몇 번 했지만, 전교권엔 거의 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저에 대한 기대가 크셨습니다. 공부를 안 해서 못하는 거다,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 라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을 정도요.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성적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인서울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떨어지더라도요. (저는 내신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더 높았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뻐꾸기 타입입니다. 새벽 3~4시에 자고, 아침에 알림을 세 번은 들어야 일어납니다. 저를 깨워 학교에 보내시던 어머니는 이 점에서 늘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생활 패턴을 고치지 못한다고 욕을 듣고, 맞기도 몇 번 맞았습니다. 너처럼 게으른 애는 없을 거다. 짐승새끼도 이렇게 살지 않는다. 말하시며 저에 대한 기대도 점점 떼셨습니다. 비난을 쏟는 일도 늘었습니다. 고쳐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수험 생활을 마쳤습니다.
수능 성적이 참 나빴습니다. 모의고사 대비 10% 가까이 떨어졌으니까요. 인서울은 가지 못할 성적이었고, 저는 재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학원은 다니지 않고 재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재학 중에도 영어학원만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과학, 수학 학원은 도중에 끊었고요.) 그때부터 갈등을 빚어오던 어머니와 계속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재수를 안 좋게 생각하고 계셨거든요.
재수해서 성적이 오른 예가 없다. 취직 안 되는 문과로 바꿀 바엔 대학을 가지 마라. 네가 공부한다고 뭐가 나오겠냐.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듣는 입장에서 참 서러운 말들이었습니다. 시험을 망친 건 저였기 때문에 듣고만 있었습니다.
수능을 친 날 저녁에도 궂은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치고 온 날은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 듣고 웃으며 잠들고 싶었습니다. 망친 성적보다 안 될 줄 알았다고 비꼬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더 아팠습니다. 울다가 밤을 꼬박 새고 부은 눈으로 생각했습니다. 죽고 싶다. 죽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어서요.
그다음부터 매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안 될 거다. 너 같은 애한테 들인 시간이 아깝다. 그런 걸 해서 뭐하냐. 저희 어머니는 글을 쓰는 일을 하십니다. 제가 글재주가 부족해 모두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정말 무수한 말들을 들었습니다. 이천 원짜리 튀김 하나로도 트집이 잡혔습니다. 얼굴 뵐 때나 메신저로 말할 때나. 어떻게 수능 망한 애 얼굴이 그렇게 태평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죽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죽고 싶었습니다. 사랑해서 하신 말일 텐데 저는 버티질 못할 것 같았습니다. 형편 좋은 이야길 하는 것 같아서 어디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재수를 금지당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내쫓긴 것도 아니니까요.
공부를 잘하지는 못합니다. 매일 5~6시간씩 앉아서 매달리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공부한 만큼, 하던 만큼의 성적은 받아서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처럼 저는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애니까요. 재수를 선택하고, 저를 늘 지지해주시던 부모님이 돌아섰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 놓은 사람처럼 게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수록 비난이 심해졌습니다. 공부를 하지 못한 게 부모님 탓 때문은 아니지만,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오늘 여쭤봤습니다. 왜 이렇게 듣는 사람 아픈 말만 하는지. 어머니 말씀이, 사실이라 그렇답니다. 네가 공부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도. 동생이 너처럼 될까 무섭다는 것도. 바뀔 사람이 못 된다는 것도. 다 사실이라서. 바뀔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화풀이랍니다. 기대한 세월이 아쉬워서 그렇답니다. 네가 부모 기대만큼 하지 못해 본인을 농락했고, 집에 편히 붙어 살려고 재수생 딱지를 붙이는 협잡을 했다고요. 제가 배워먹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농락과 협잡이 스무 살 된 딸에게 할 말 같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는 20년이나 네 뒷바라지를 해준 본인을 두고 혼자 피해자 행세하기 바쁘다고 하십니다.
술, 담배, 흔히 말하는 일진짓 한번 한 적 없습니다. 비싼 화장품 한번 안 사봤습니다. 좋은 자식은 못 돼도 아주 못나고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자식은 아니고 싶었습니다. 대학 가서 26살 전에 취직하고 30살엔 꼭 기반 다져서 부모님께 더는 손 뻗지 않는 자식, 부모님 욕먹이지 않는 자식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직업 교육을 받지 못해 어머니 말씀처럼 20살에 나가 살 자신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못난 자식인가요. 이게 아주 못난 짓인가요. 잘한 것 없이 우는데도 울음이 그치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