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대한민국 지방직 공무원이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자랑스러워하는 한 사람의 유권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20대 대선 사전투표 선거사무원으로 양일간 근무했고, 확진자 사전투표 현장의 최전선에서 발로 뛰었습니다. 9일 본투표 때도 선거사무원으로 일할 예정에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번 20대 대선을 준비하고 사전투표까지를 치르면서 선거를 수행하는 실무자이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선관위의 업무 처리방식과 태도에 대해 크게 분노했고, 이에 대한 공론화와 책임 촉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비일상화가 진행된 지 어언 3년째, 20대 대선의 사전투표를 앞두고 확진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해주기 위하여 확진자/격리자 투표소를 따로 마련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준비해야 하는 현장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데, 지금 쟁점이 되는 문제의 핵심은 확진자 투표소에 투표함을 따로 둘 수 없기 때문에(공직선거법 제151조 2) 기표된 투표용지를 사무원이 받아 비확진·격리자 유권자 투표소(이하 일반인 투표소)의 투표함에 전달하게끔 선관위 지침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처음 지시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게 말이 되냐며 탄식이 터져 나왔고, 실제 여러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항의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를 처음 수행해보는 새내기 공무원 입장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너무나도 많았고, 어제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했습니다.
기표용지를 전달하는 선거사무원을 신뢰할 수 있다거나 참관인이 입회하에 그 과정이 공정무사하게 처리되었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기표용지가 비닐봉지에 보관되었건 번지르르한 플라스틱 박스에 보관되었건, 유권자가 스스로의 투표 결과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원칙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는 투표함 2개를 둘 수 없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더 큰 전제인 헌법을 위반하는 꼴이며 심지어 선관위에서 근거로 내세운 같은 공직선거법에서의 제157조 4(선거인은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인의 후보자를 선택하여 투표용지의 해당 란에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투표참관인의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와 제158조 4(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은 선거인은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명의 후보자를 선택하여 투표용지의 해당 칸에 기표한 다음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이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함한 후 사전투표함에 넣어야 한다)의 내용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겠으나, 사전투표에서 투표용지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지문 또는 서명을 입력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확진자 투표가 진행될 때에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사무원이 대리 입력 후 투표용지를 발급했습니다. 이 또한 공직선거법 제158조 2(사전투표를 하려는 선거인은 사전투표소에서 신분증명서를 제시하여 본인임을 확인받은 다음 전자적 방식으로 손도장을 찍거나 서명한 후 투표용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선거인에게 투표용지가 교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신분증명서의 일부를 전자적 이미지 형태로 저장하여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보관하여야 한다)에 위배되는 것이며, 제가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질책하고자 하는 선관위의 무책임한 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선관위는 본인의 고유업무인 선거 사무를 놓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신중하고 면밀하게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지자체와 선거사무원, 투표관리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부리고 있습니다.
선거사무는 지방공무원의 고유업무가 아닙니다. 지난 5월 법원이 공직선거 선거사무종사자가 강제적 행정처분이 아니라 일종의 근로계약에 해당된다고 판결했으나 실제로는 강제차출되어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당을 받고 일 14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서 그 정도 희생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겠으나, 이는 체계적으로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선관위의 감독과 ‘책임’ 아래 협조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선거 공보 포장·발송 작업부터 벽보 부착·보수·철거 작업, 투·개표 사무, 심지어는 벽보 부착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해당 건물 관리인에 찾아가 굽신거리는 일, 투표함 호송차량을 구하기 위해 관내 어린이집마다 전화를 돌려 차량 협조 양해를 구하는 실질적인 모든 업무를 기초지자체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인쇄된 벽보를 인쇄업체에서 바로 동으로 배달해주기만 해도 일이 한 단계는 줄어드는데 선관위는 무조건 직접 가지러 와서 각자 받아가라는 식입니다.
투표를 앞두고 사전투표 기간 및 선거일 신분증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신분증명서 발급에 협조를 해달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소위 말하는 임시신분증은 ‘주민등록증 발급사실 확인서’라고 하는 것으로 이는 신분증 재발급 신청 시 신분증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종이 신분증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주민등록법 시행령 제36조 3에 의거하여 6개월 이내의 사진을 필요로 하고, 시행규칙 제17조 2에 의거 수수료를 징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이나 대안 없이 무조건 발급해주라고만 공문을 보내고, 발급해준다는 식으로 홍보·안내가 되고 있어 일선에서는 실랑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질의에도 선관위는 지자체 재량으로 판단해달라는 답변만이 돌아왔고, 어떤 지자체는 사진 없이도 임시 신분증을 발급해주고 어떤 곳은 원칙대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발급해주는 등 중구난방 가지각색으로 일처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사전투표만 해도 논란이 되었던 파란색 라텍스 장갑은 선관위에서 일괄배부한 것인데 논란이 있을 것임은 미리 짐작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그러면 무색 라텍스 장갑을 구해서 쓰라고 하든지 어떤 후속조치를 오더해줘야 하는데 파란색 장갑을 끼지 말라는 말만 하고 그 대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투표소에서 자체 해결하라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비닐장갑을 끼고 하든지 맨손으로 하든지 선관위에서는 관심도 없었고 일선에서는 무방비로 감염위험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렇듯 선관위는 실제 투표사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투표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습니다. 이번 확진자 투표로 예를 들면 제가 근무한 투표소를 기준으로 고작 6인분의 방역장비와 방역수당이 지급되었으며 이 인원이 백여 명을 상회하는 확진·격리자를 통제하고 욕받이가 되어야 했으며, 그나마도 두어 명은 확진자 투표소와 일반인 투표소를 오가느라 현장을 관리하지 못하고 방역복 속으로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현장 인력의 모자람에 대해서는 비용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물론 이 부분도 개선이 시급한 사안이긴 합니다) 이례적인 방법(사무원 전달의 간접 투표를 말합니다)으로 투표가 이루어진다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예측해서 상황에 따른 매뉴얼을 제공하거나, 또 실제 투표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현장에 나와 눈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바로바로 판단을 내려 시정조치를 해주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끝까지 무신경한 태도로 일축했습니다.
높은 사전투표율을 핑계로 대거나 아직까지도 코로나 탓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사전투표가 최초 시행된 2013년 이래 사전투표율은 매번 최고를 경신했고 언론과 정당, 기관 모두에서 앞다투어 장려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단연 사전투표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확진자 역시 나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사전투표의 확진자 유권자 보장이 결정된 시기에도 이미 3월 확진자 그래프 전망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일 거라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이후 처음 있는 투표도 아니었을뿐더러, 사전투표도 본투표와 같이 투표 시간을 연장하더라도(일반인 투표 종료 후 확진자 투표 시작) 일반인과 확진자의 투표 시간을 구분하자는 정당 제안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문제 등을 운운하며 일반인 유권자와 확진자 유권자의 시간을 겹쳐 동선은 동선대로 겹치고, 선거의 본질은 본질대로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확진자 투표와 관련한 논란이 일자 본인들은 마치 책임이 없는 제3자인 양 입장을 표명하고 벌써부터 지자체 투표관리관과 사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포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 업무를 실제 수행한 입장에서 부정선거는 가능하지 않으며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대중의 입장에서 이번 확진자 투표는 그렇게 비칠 여지를 너무나도 많이 남겼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매우 ‘부실’한 선거였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번 사전투표에 있어 일반인 투표소 운영시간과 확진자 투표소 운영시간을 겹쳐 결정한 담당자 및 책임자, 그리고 사무원이 기표용지를 받아 투표함에 전달하게끔 지시한 담당자와 책임자를 대상으로 엄중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2. 선거 업무에 대한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지금은 선관위의 (사실상) 지시 아래 지자체가 실질적인 업무를 전면 수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원론적인 방침만 있을 뿐 어떤 세부적인 지침도 책임도 없습니다. 인력 문제로 인해 공무원 및 기타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선거에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책임있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며, 선관위 직원을 현장 사무에 적극 투입하여 현장과 행정이 동떨어진 채 작동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 상기 2번을 위하여 비용 및 예산 편성에 대한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선거 사무 종사자들의 노동을 노동으로서 인정하고 그에 따른 처우 개선과 수당 및 임금에 대한 현실적인 보장이 시급합니다. 사실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것은 그깟 돈 몇 푼 아끼고자 일어난 일입니다. 확진자 사전투표 시간을 일반인 투표소와 겹치지 않게 별도 조정하여 알맞은 수당을 제공하고 업무를 수행하였으면 적어도 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부족한 글솜씨로 쓴 졸고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그 실현 과정이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확진자 투표로 개빡친 현직 공무원의 국민청원
안녕하세요. 저는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대한민국 지방직 공무원이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자랑스러워하는 한 사람의 유권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20대 대선 사전투표 선거사무원으로 양일간 근무했고, 확진자 사전투표 현장의 최전선에서 발로 뛰었습니다. 9일 본투표 때도 선거사무원으로 일할 예정에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번 20대 대선을 준비하고 사전투표까지를 치르면서 선거를 수행하는 실무자이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선관위의 업무 처리방식과 태도에 대해 크게 분노했고, 이에 대한 공론화와 책임 촉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비일상화가 진행된 지 어언 3년째, 20대 대선의 사전투표를 앞두고 확진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해주기 위하여 확진자/격리자 투표소를 따로 마련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준비해야 하는 현장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데, 지금 쟁점이 되는 문제의 핵심은 확진자 투표소에 투표함을 따로 둘 수 없기 때문에(공직선거법 제151조 2) 기표된 투표용지를 사무원이 받아 비확진·격리자 유권자 투표소(이하 일반인 투표소)의 투표함에 전달하게끔 선관위 지침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처음 지시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게 말이 되냐며 탄식이 터져 나왔고, 실제 여러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항의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를 처음 수행해보는 새내기 공무원 입장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너무나도 많았고, 어제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했습니다.
기표용지를 전달하는 선거사무원을 신뢰할 수 있다거나 참관인이 입회하에 그 과정이 공정무사하게 처리되었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기표용지가 비닐봉지에 보관되었건 번지르르한 플라스틱 박스에 보관되었건, 유권자가 스스로의 투표 결과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원칙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는 투표함 2개를 둘 수 없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더 큰 전제인 헌법을 위반하는 꼴이며 심지어 선관위에서 근거로 내세운 같은 공직선거법에서의 제157조 4(선거인은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인의 후보자를 선택하여 투표용지의 해당 란에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투표참관인의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와 제158조 4(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은 선거인은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명의 후보자를 선택하여 투표용지의 해당 칸에 기표한 다음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이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함한 후 사전투표함에 넣어야 한다)의 내용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겠으나, 사전투표에서 투표용지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지문 또는 서명을 입력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확진자 투표가 진행될 때에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사무원이 대리 입력 후 투표용지를 발급했습니다. 이 또한 공직선거법 제158조 2(사전투표를 하려는 선거인은 사전투표소에서 신분증명서를 제시하여 본인임을 확인받은 다음 전자적 방식으로 손도장을 찍거나 서명한 후 투표용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선거인에게 투표용지가 교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신분증명서의 일부를 전자적 이미지 형태로 저장하여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보관하여야 한다)에 위배되는 것이며, 제가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질책하고자 하는 선관위의 무책임한 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선관위는 본인의 고유업무인 선거 사무를 놓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신중하고 면밀하게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지자체와 선거사무원, 투표관리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부리고 있습니다.
선거사무는 지방공무원의 고유업무가 아닙니다. 지난 5월 법원이 공직선거 선거사무종사자가 강제적 행정처분이 아니라 일종의 근로계약에 해당된다고 판결했으나 실제로는 강제차출되어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당을 받고 일 14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서 그 정도 희생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겠으나, 이는 체계적으로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선관위의 감독과 ‘책임’ 아래 협조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선거 공보 포장·발송 작업부터 벽보 부착·보수·철거 작업, 투·개표 사무, 심지어는 벽보 부착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해당 건물 관리인에 찾아가 굽신거리는 일, 투표함 호송차량을 구하기 위해 관내 어린이집마다 전화를 돌려 차량 협조 양해를 구하는 실질적인 모든 업무를 기초지자체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인쇄된 벽보를 인쇄업체에서 바로 동으로 배달해주기만 해도 일이 한 단계는 줄어드는데 선관위는 무조건 직접 가지러 와서 각자 받아가라는 식입니다.
투표를 앞두고 사전투표 기간 및 선거일 신분증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신분증명서 발급에 협조를 해달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소위 말하는 임시신분증은 ‘주민등록증 발급사실 확인서’라고 하는 것으로 이는 신분증 재발급 신청 시 신분증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종이 신분증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주민등록법 시행령 제36조 3에 의거하여 6개월 이내의 사진을 필요로 하고, 시행규칙 제17조 2에 의거 수수료를 징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이나 대안 없이 무조건 발급해주라고만 공문을 보내고, 발급해준다는 식으로 홍보·안내가 되고 있어 일선에서는 실랑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질의에도 선관위는 지자체 재량으로 판단해달라는 답변만이 돌아왔고, 어떤 지자체는 사진 없이도 임시 신분증을 발급해주고 어떤 곳은 원칙대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발급해주는 등 중구난방 가지각색으로 일처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사전투표만 해도 논란이 되었던 파란색 라텍스 장갑은 선관위에서 일괄배부한 것인데 논란이 있을 것임은 미리 짐작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그러면 무색 라텍스 장갑을 구해서 쓰라고 하든지 어떤 후속조치를 오더해줘야 하는데 파란색 장갑을 끼지 말라는 말만 하고 그 대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투표소에서 자체 해결하라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비닐장갑을 끼고 하든지 맨손으로 하든지 선관위에서는 관심도 없었고 일선에서는 무방비로 감염위험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렇듯 선관위는 실제 투표사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투표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습니다. 이번 확진자 투표로 예를 들면 제가 근무한 투표소를 기준으로 고작 6인분의 방역장비와 방역수당이 지급되었으며 이 인원이 백여 명을 상회하는 확진·격리자를 통제하고 욕받이가 되어야 했으며, 그나마도 두어 명은 확진자 투표소와 일반인 투표소를 오가느라 현장을 관리하지 못하고 방역복 속으로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현장 인력의 모자람에 대해서는 비용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물론 이 부분도 개선이 시급한 사안이긴 합니다) 이례적인 방법(사무원 전달의 간접 투표를 말합니다)으로 투표가 이루어진다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예측해서 상황에 따른 매뉴얼을 제공하거나, 또 실제 투표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현장에 나와 눈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바로바로 판단을 내려 시정조치를 해주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끝까지 무신경한 태도로 일축했습니다.
높은 사전투표율을 핑계로 대거나 아직까지도 코로나 탓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사전투표가 최초 시행된 2013년 이래 사전투표율은 매번 최고를 경신했고 언론과 정당, 기관 모두에서 앞다투어 장려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단연 사전투표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확진자 역시 나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사전투표의 확진자 유권자 보장이 결정된 시기에도 이미 3월 확진자 그래프 전망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일 거라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이후 처음 있는 투표도 아니었을뿐더러, 사전투표도 본투표와 같이 투표 시간을 연장하더라도(일반인 투표 종료 후 확진자 투표 시작) 일반인과 확진자의 투표 시간을 구분하자는 정당 제안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문제 등을 운운하며 일반인 유권자와 확진자 유권자의 시간을 겹쳐 동선은 동선대로 겹치고, 선거의 본질은 본질대로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확진자 투표와 관련한 논란이 일자 본인들은 마치 책임이 없는 제3자인 양 입장을 표명하고 벌써부터 지자체 투표관리관과 사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포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 업무를 실제 수행한 입장에서 부정선거는 가능하지 않으며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대중의 입장에서 이번 확진자 투표는 그렇게 비칠 여지를 너무나도 많이 남겼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매우 ‘부실’한 선거였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번 사전투표에 있어 일반인 투표소 운영시간과 확진자 투표소 운영시간을 겹쳐 결정한 담당자 및 책임자, 그리고 사무원이 기표용지를 받아 투표함에 전달하게끔 지시한 담당자와 책임자를 대상으로 엄중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2. 선거 업무에 대한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지금은 선관위의 (사실상) 지시 아래 지자체가 실질적인 업무를 전면 수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원론적인 방침만 있을 뿐 어떤 세부적인 지침도 책임도 없습니다. 인력 문제로 인해 공무원 및 기타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선거에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책임있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며, 선관위 직원을 현장 사무에 적극 투입하여 현장과 행정이 동떨어진 채 작동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 상기 2번을 위하여 비용 및 예산 편성에 대한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선거 사무 종사자들의 노동을 노동으로서 인정하고 그에 따른 처우 개선과 수당 및 임금에 대한 현실적인 보장이 시급합니다. 사실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것은 그깟 돈 몇 푼 아끼고자 일어난 일입니다. 확진자 사전투표 시간을 일반인 투표소와 겹치지 않게 별도 조정하여 알맞은 수당을 제공하고 업무를 수행하였으면 적어도 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부족한 글솜씨로 쓴 졸고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그 실현 과정이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