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시친과 제가 하고 싶은 얘기의 결이 조금 비슷하지 않나 싶어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여성가족부는 없어도 되잖아 하는일이 뭐야? 라는 말로 취부될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글을 써봅니다.
물론 제 얘기입니다.선거 당일 이런 얘기 하는거 무슨 영향을 줄까 싶지만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한부모 가정 즉 미혼모의 자식이고 나이는 서른 초반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여성가족부의 직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제가 태어났을 쯤에는 호주제라는 것이 있었어요.남자어른에게만 자식으로 올라 호적신고 즉 출생신고를 해야만 했었어요.그래서 저는 초등학교도 제나이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출생신고를 못했기 때문이죠. 즉 무명인 이었습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한 사람이었죠.당연하게도 출생신고도 안되어 있는 가난한 집이었기에 병원도 가지 못했고 애기때 맞는 주사는 하나도 맞지 못했음에도 살아남았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90년생이 온다 라는 핫한 책도 있음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저의 어머니도 저를 제대로 키우고 학교도 보내고 싶어서 백방으로 노력을 하셨습니다. 어렸지만 그런 부분은 분명한 기억들이 있어요.어머니의 남자 형제들과 외할아버지 그분들의 호적에는 올라가지 못한걸로 봐서 거절을 하셨을테고 저는 무명인으로 장기간 살았습니다.그런 사정을 이해할 리 없었던 어린 저는 왜 동네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는데 나는 다니지 못하냐고 가방을 메고 학교를 찾아간적도 있었어요.쓰고 보니 지금이었으면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를 이야기네요. 운이 좋게도 90년대 후반에 어머니의 지인이신 나이 많으신 어르신께서 호적에 저를 올려주셨어요. (실제로는 호적을 파서 그 핏줄 안섞인 사람과 연을 끊고 싶지만 법적으로 쉽지 않은 점으로 피눈물을 흘렸다는것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겠습니다.)그래서 늦었지만 저는 학교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90년대부터 많은 여자 국회의원의 노력과 여성부의 산실로 2000년 초반에 호주제가 폐지되었습니다.가정폭력에도 어쩔수 없이 아이를 위해서 산다는 말의 배경이 이런 것이었죠. 여자 혼자서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으니깐요. 여성가족부는 이런 일을 했던거에요. 이건 페미니즘이 아니에요. 여성부가 했던 일은 그렇게 페미니즘이라는 비아냥으로 취부할 일이 아니에요. 사람이 사는 일이었어요. 남자 여자 편갈라서져서 서로 화살을 쏘지만 남자분들도 미혼모의 자식이 있다면 그혜택 분명히 받았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 미혼모의 자식이 있다면 여성가족부에 돌멩이는 던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공약을 낸 그들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대부분 기득권층과 부자들은 양쪽 부모가 반드시 존재했나봐요. 그러니 그런 공약을 냈겠죠.
솔직히 결시친 남자분들도 많이 본다고 해서 여기에 글 올리게 됐구요. 그리고 하나 더 저는 윤을 뽑을수 없는 이유가 그사람이 되면 국민청원도 없어지잖아요.뭔가 억울한 일 당했을때 손이라도 뻗어 보거나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는 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씁쓸해요.거기서 원할한 답변을 백프로 다 주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20만명 안되도 국민청원 올라가면 그중에 몇 개는 기사도 되고 화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억울한 목소리 낼 수 있는곳 있어서 좋지 않았나요? 분명히 도움 받은 사람도 많을텐데 그사람들도 다들 등 돌린거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물론 집값 많이 올랐고 기득권층의 부는 더 견고해지고 타이밍을 놓쳐서 나만 집 못사고 부자가 못된거 같고 그 모든것이 정부 탓이라고 생각들 많이 하시는거 알아요.저도 그런식의 부동산 놀이로 돈을 많이 번 거 많이 부럽고, 그런 지식이 그때 있었으면 그렇게 투자 했을거에요. 그런데 인생이라는게 이렇지 않나요? 10년 전에 금을 살 거, 삼전 주식 살 거 그때 코인 할 걸. 물론 다른 거 알아요. 저는 가난하고 이제 평생 집은 사지도 못할 인생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걸지도 몰라요.그래도 부끄러움을 알고 염치를 알고 가난을 아는 사람이 좋습니다. 인생도 회사생활도 그렇잖아요. 당장 같이 일하는 동료가 공부만 잘한 실무 하나도 모르고 눈치도 없으면 실제로 그사람보다 일은 내가 더 해도 월급은 똑같이 받잖아요. 이런게 불공평이라도 우리 그냥 욕하면서 회사 다니잖아요. 어쩔 수 없으니깐 그런데 회사 사장까지 상황 돌아가는거 모르고 잘되고 있으니깐 우리 회사는 문제 없어라고 하면 조금 빡치지 않나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력과 능력 알아주고 누가 베짱이 처럼 일하는지 아는 사장이라면 그 자체로 위로 받지 않나요? 공감 능력이 없는 것도 학습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눈치없고 공감능력도 없으면 아주 많은 사람이 피곤해 진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들이 아무 맥아리가 없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썼습니다.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여성가족부 존재에 도움 받은 이야기
여성가족부는 없어도 되잖아 하는일이 뭐야? 라는 말로 취부될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글을 써봅니다.
물론 제 얘기입니다.선거 당일 이런 얘기 하는거 무슨 영향을 줄까 싶지만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한부모 가정 즉 미혼모의 자식이고 나이는 서른 초반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여성가족부의 직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제가 태어났을 쯤에는 호주제라는 것이 있었어요.남자어른에게만 자식으로 올라 호적신고 즉 출생신고를 해야만 했었어요.그래서 저는 초등학교도 제나이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출생신고를 못했기 때문이죠. 즉 무명인 이었습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한 사람이었죠.당연하게도 출생신고도 안되어 있는 가난한 집이었기에 병원도 가지 못했고 애기때 맞는 주사는 하나도 맞지 못했음에도 살아남았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90년생이 온다 라는 핫한 책도 있음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저의 어머니도 저를 제대로 키우고 학교도 보내고 싶어서 백방으로 노력을 하셨습니다. 어렸지만 그런 부분은 분명한 기억들이 있어요.어머니의 남자 형제들과 외할아버지 그분들의 호적에는 올라가지 못한걸로 봐서 거절을 하셨을테고 저는 무명인으로 장기간 살았습니다.그런 사정을 이해할 리 없었던 어린 저는 왜 동네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는데 나는 다니지 못하냐고 가방을 메고 학교를 찾아간적도 있었어요.쓰고 보니 지금이었으면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를 이야기네요.
운이 좋게도 90년대 후반에 어머니의 지인이신 나이 많으신 어르신께서 호적에 저를 올려주셨어요. (실제로는 호적을 파서 그 핏줄 안섞인 사람과 연을 끊고 싶지만 법적으로 쉽지 않은 점으로 피눈물을 흘렸다는것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겠습니다.)그래서 늦었지만 저는 학교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90년대부터 많은 여자 국회의원의 노력과 여성부의 산실로 2000년 초반에 호주제가 폐지되었습니다.가정폭력에도 어쩔수 없이 아이를 위해서 산다는 말의 배경이 이런 것이었죠. 여자 혼자서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으니깐요.
여성가족부는 이런 일을 했던거에요.
이건 페미니즘이 아니에요. 여성부가 했던 일은 그렇게 페미니즘이라는 비아냥으로 취부할 일이 아니에요.
사람이 사는 일이었어요.
남자 여자 편갈라서져서 서로 화살을 쏘지만 남자분들도 미혼모의 자식이 있다면 그혜택 분명히 받았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 미혼모의 자식이 있다면 여성가족부에 돌멩이는 던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공약을 낸 그들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대부분 기득권층과 부자들은 양쪽 부모가 반드시 존재했나봐요. 그러니 그런 공약을 냈겠죠.
솔직히 결시친 남자분들도 많이 본다고 해서 여기에 글 올리게 됐구요.
그리고 하나 더 저는 윤을 뽑을수 없는 이유가 그사람이 되면 국민청원도 없어지잖아요.뭔가 억울한 일 당했을때 손이라도 뻗어 보거나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는 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씁쓸해요.거기서 원할한 답변을 백프로 다 주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20만명 안되도 국민청원 올라가면 그중에 몇 개는 기사도 되고 화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억울한 목소리 낼 수 있는곳 있어서 좋지 않았나요? 분명히 도움 받은 사람도 많을텐데 그사람들도 다들 등 돌린거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물론 집값 많이 올랐고 기득권층의 부는 더 견고해지고 타이밍을 놓쳐서 나만 집 못사고 부자가 못된거 같고 그 모든것이 정부 탓이라고 생각들 많이 하시는거 알아요.저도 그런식의 부동산 놀이로 돈을 많이 번 거 많이 부럽고, 그런 지식이 그때 있었으면 그렇게 투자 했을거에요. 그런데 인생이라는게 이렇지 않나요? 10년 전에 금을 살 거, 삼전 주식 살 거 그때 코인 할 걸.
물론 다른 거 알아요. 저는 가난하고 이제 평생 집은 사지도 못할 인생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걸지도 몰라요.그래도 부끄러움을 알고 염치를 알고 가난을 아는 사람이 좋습니다. 인생도 회사생활도 그렇잖아요. 당장 같이 일하는 동료가 공부만 잘한 실무 하나도 모르고 눈치도 없으면 실제로 그사람보다 일은 내가 더 해도 월급은 똑같이 받잖아요. 이런게 불공평이라도 우리 그냥 욕하면서 회사 다니잖아요. 어쩔 수 없으니깐 그런데 회사 사장까지 상황 돌아가는거 모르고 잘되고 있으니깐 우리 회사는 문제 없어라고 하면 조금 빡치지 않나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력과 능력 알아주고 누가 베짱이 처럼 일하는지 아는 사장이라면 그 자체로 위로 받지 않나요? 공감 능력이 없는 것도 학습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눈치없고 공감능력도 없으면 아주 많은 사람이 피곤해 진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들이 아무 맥아리가 없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썼습니다.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