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3월 4일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총장직을 사퇴하며 남긴 말이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윤 당선인은 정치 참여 선언에서부터 당내 경선 승리, 대선 승리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여정을 걸어왔다. 국회의원 등 정치 경험이 없는 비정치인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나 검찰 출신으로 대권을 잡은 것 모두 사상 최초다.
◇사시 9수 집념 끝에 검사로 첫발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전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대광초, 충암중, 충암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1980년 5월 교내 모의재판에서 판사 역할을 맡아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은 유명하다. 모의재판 이야기가 퍼지자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던 먼 친척이 피신을 권유해, 윤 당선인은 석 달간 강릉 외가에 머물다 돌아왔다.
두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不同視)’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선 번번이 낙방했다. 친구가 상을 당하면 빈소를 끝까지 지키고, 지방의 친구가 결혼하면 내려가서 함을 지는 등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탓이 컸다고 한다. 9수 만인 1991년 33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4세의 윤 당선인은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결기
검사 시절 윤 당선인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사하는 ‘강골 특수통 검사’로 주목받았다.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의 경찰 실세로 꼽히던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을 때였다. 2002년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검찰에 돌아왔다. 2003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맡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 기소했고,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에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2012년엔 52세의 나이에 띠 동갑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늦깎이 결혼을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일은 윤 당선인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업무에서 배제됐고, 그해 국정감사장에서 증인으로 나와 외압을 폭로하며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란 말을 남겼다.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되며 지방을 전전했지만, 2016년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윤 당선인의 인생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활약한 윤 당선인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며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했다.
◇‘살아있는 권력’수사로 정권과 갈등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윤 당선인을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인은 총장에 취임한 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비리 의혹에 칼을 겨눴다.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 핵심을 겨냥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다 직무배제 및 정직 처분을 받기까지 했다. 지난해 3월 총장직을 내던진 윤 당선인은 한동안 잠행하다가 6월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7월엔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같은 해 11월 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강직… 사상 첫 비정치인·檢 출신 대통령
지난해 3월 4일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총장직을 사퇴하며 남긴 말이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윤 당선인은 정치 참여 선언에서부터 당내 경선 승리, 대선 승리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여정을 걸어왔다. 국회의원 등 정치 경험이 없는 비정치인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나 검찰 출신으로 대권을 잡은 것 모두 사상 최초다.
◇사시 9수 집념 끝에 검사로 첫발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전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대광초, 충암중, 충암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1980년 5월 교내 모의재판에서 판사 역할을 맡아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은 유명하다. 모의재판 이야기가 퍼지자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던 먼 친척이 피신을 권유해, 윤 당선인은 석 달간 강릉 외가에 머물다 돌아왔다.
두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不同視)’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선 번번이 낙방했다. 친구가 상을 당하면 빈소를 끝까지 지키고, 지방의 친구가 결혼하면 내려가서 함을 지는 등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탓이 컸다고 한다. 9수 만인 1991년 33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4세의 윤 당선인은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결기
검사 시절 윤 당선인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사하는 ‘강골 특수통 검사’로 주목받았다.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의 경찰 실세로 꼽히던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을 때였다. 2002년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검찰에 돌아왔다. 2003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맡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 기소했고,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에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2012년엔 52세의 나이에 띠 동갑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늦깎이 결혼을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일은 윤 당선인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업무에서 배제됐고, 그해 국정감사장에서 증인으로 나와 외압을 폭로하며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란 말을 남겼다.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되며 지방을 전전했지만, 2016년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윤 당선인의 인생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활약한 윤 당선인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며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했다.
◇‘살아있는 권력’수사로 정권과 갈등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윤 당선인을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인은 총장에 취임한 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비리 의혹에 칼을 겨눴다.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 핵심을 겨냥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다 직무배제 및 정직 처분을 받기까지 했다. 지난해 3월 총장직을 내던진 윤 당선인은 한동안 잠행하다가 6월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7월엔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같은 해 11월 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