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죄송] 결혼 후에도 과거에 학대수준의 채벌이 잘 잊혀지질 않네요..!

도돌이표2022.03.14
조회20,788
아동학대.. 아직도 티가 안 날뿐 흔한 일이겠죠?

제가 겪은일이 학대까진 아닐 수 있어도
아동,청소년기의 일이 인생에 길게 영향을 미칠줄 몰랐어요.

저는 친척들에게는 온실속의 화초
주변인에게는 평범하고 화목한 대가족 친정을 둔
그저 평범한 30대 부부에요.


어릴때 저희 집 체벌은 아빠가 했으며
7살때부터 시작되었어요.
연 3~4회정도..성인 전까지 꾸준히..저희집 연례 행사였죠..
그 이후 아빠에게 제가 먼저 다가가지 못했어요.

매일같이 채벌 받던건 아니라
제가 괜찮은줄 알았는데 상처가 생각보다 깊나봐요.
제가 너무 곱게 자라 이런걸 학대라 푸념하는건지
사실 글쓰는데도 잘 구분이 안 가요.

주먹으로 머리와 얼굴가격....
가격당한 힘에의해 날라가서 쓰러짐...
쓰러지면 발로 전신 구타...
제 몸에 멀리서부터 보이는 물건 집어던지기..
(심지어 유리도 몸에던져서 다 깨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2m도 안 되는 방 안에 있는 전화기까지
걷지도 못하고 바닥에 기어서
112신고 하러 겨우 전화기까지 힘겹게 가면
우습다는듯 전화기 부수기..

맞다가 너무 아프고 놀라서 울면
재수없게 내 앞에서 운다고
울음 멈출때까지 싸대기 때리기

아빠앞에 무릎꿇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해도
쌍욕과 폭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한날은 충격으로
일시적 간질 증상으로 호흡곤란에
상반신 경직과 손가락이 다 뒤틀린적도 있었어요..

맞은 이유들은 시시콜콜 했어요.
그날 기분에 따라 시작됩니다.

의자에 걸어둔 아빠 옷이
바닥에 떨어져있는데 안주워놨다고
다짜고짜 화내서

못봐서 몰랐어ㅎㅎ <<라고 답하면(진짜못본거였음)

"이 싸가지 없는 년이, 너 미쳤어?"라며
보통 시작되는 레파토리가 비슷했어요ㅎㅎ

하지만, 미련하게도 순종적인 성격으로
반항한번 못 해보고
그저 회초리로 맞아보는게 소원이었네요;;;


7살부터 시작된 구타의 기억...
피멍든 얼굴로 피흘리며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할머니께서 절 등교 시키지 못했던 날이었네요.
(부모님 맞벌이로 할머니께서 절 케어)


항상 아빠와 둘이 문잠그고 들어간 방에서
아빠의 분이 풀릴때까지 맞고 나오면

맞고있던 방 너머 밖에서 초조한 목소리로
애 죽는다. 그만하라고 애타게 기다리던
은신처 같은 할머니와 엄마가 다독여줬죠.

이런 점이 불행중 다행이었고
제가 삐뚫어지지 않고 큰 이유기도 했죠..

할머니와 엄마는
제가 맞고 나올때하다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매번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묵언이 가족 평화를 위한 일인걸
어릴때부터 눈치로 알고
철저히 비밀을 지켜왔어요.
친동생도 지금까지 제 스토리를 모르고
이 글 봐도 저인지 모릅니다...ㅎㅎ;;

터올이 많이 나는 친동생이 신생아일때..
아빠, 아기, 저 셋이
집을 지키고 있을때도
아기를 제 앞에 눕혀두고 구타하기도 했어요.
아기가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어서 멈췄죠..

그때는 아빠가 사람으로 안 보였던거 같네요.

동생만큼은 나처럼 피해자가 되면 안 된다.
'못 때리게 내가 지켜야겠다'
다짐을 했고 온 힘을 다해서
다행이 동생은 성인이 될때까지
단 한번도 안 맞아서
제 소원 하나는 지켜냈네요..


제가 동생을 문 잠그고 숨겨주면
밖에서 미친듯 문을 내려쳐도
문이 부셔지는 일이 있더라도
열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엄마가 마지못해
때리라고 문열어줄때와
맞으러 잠긴 방으로 둘이 들어가는
그 순간들이 매번 제일 두려웠거든요..


애어른이라 다 수용하던 제가
30대에 오히려 긴장풀리고 철이 없어져서 그런지

엄마도 아빠한테 신혼때 뺨맞고
한번 더 때리면 이혼한다고 하고
그 다음부터 맞은적이 없다며,,
왜 내가 죽도록 맞을때는
이혼한다고 협박하면서 못 말리고
10년간 고되게 폭력을 당해야 했을까..

지나가는 유치원생, 초등학생을 보면
저리 연약하고 조그만한 아이에게 왜그러셨을까
나머지 가족들은 왜 못 말리셨을까
유치하게 원망도 드네요..

전 사실 이런 얘기를 남에게 해본적이 없어서
제 친구들도 다 이렇게 맞고 자랐는데 제가 예민한건지
궁굼하기도 하네요ㅎㅎ


그래도 이 긴 글의 끝은 다행이도

스무살 대학생때 만난 친구가
저의 상처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제 낮은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먼저 나서서 노력해줬고..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변함 없는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가정이 이렇게 안락한 것이구나 느끼는 중이에요.

덕분에 바닥을 쳤던 제 자존감도
차차 많이 회복되고 있어요.
여기까지 아무도 안읽으실거 같지만
혹시나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