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임상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3년의 수련을 거쳐 변방의 병원에서 밥벌이를 하는 심리학자입니다. 다가오는 봄과 희미한 엔데믹의 조짐이 반가운 요즘, 몸담은 영역에서 입법 예고 소식이 들려 기꺼운 한편 염려와 두려움이 일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관심을 쏟으시는 가운데, 궁색한 처지이지만 이번 입법 예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또 두루 여쭙고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줄을 적습니다.
1. 정말 충분합니까?
심리 서비스의 수요가 늘고 필요성이 부각되는 중에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었습니다. 지금 한국은 “심리”나 “상담”을 표방하는 수천 개의 자격증이 난립하고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거치지 않은 인력이 현장으로 배출됨에 따라 심리 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2022년 3월 최종윤 의원과 전봉민 의원이 각기 대표발의한 「심리상담사법안」과 「국민 마음건강증진 및 심리상담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마음건강증진법안)은 모두 심리상담 서비스의 주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법으로 보호해 국민 정신건강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면 서비스 제공자는 자격에 상당하는 처우를 보장받고 소비자는 고르게 양질의 서비스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이번 입법 예고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생기는 것은 이 선한 목적이 과연 제안된 법안들로 달성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공신력 있는 민간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금번 제안된 두 법안에서 심리상담사에게 요구하는 조건을 비교할 때 의심은 깊어집니다. 두 법안에서는 심리상담사시험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대학·대학원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사람 또는 심리상담 관련 시설에서 5년 이상 심리상담업무에 종사한 사람(「심리상담사법」), 대학원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한 사람 또는 대학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3년 이상 심리상담사 업무 혹은 유사 업무에 종사한 사람(「마음건강증진법안」)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심리상담 영역에서 일부 민간자격은 이미 보다 엄격한 기준을 두고 선별된 전문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임상심리학회가 발부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해서는 석사 학위와 3년 간 3000시간 이상의 수련이 요구됩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가 발부하는 상담심리사 1급 자격시험에는 학부를 졸업한 후 4년 이상의 상담 경력을 가진 사람, 상담 관련 전공의 석사를 취득했거나 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이 지원할 수 있으며 400회기 이상의 상담, 50회 이상의 지도·감독(supervision)을 비롯한 최소 수련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상담학회에서 주관하는 1급 전문상담사 자격의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540시간 이상의 수련을 받거나 상담학 관련 석사를 취득하고 720시간의 수련을 받은 사람, 박사과정 재학 이상의 학력으로 540시간 이상의 수련을 받은 사람이 취득할 수 있으며 역시 일정 시간 이상의 상담자 경험과 지도·감독이 수련요건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제안된 두 법안에서는 심리상담을 각기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인지적·정서적·행동적 상담전략과 대면·비대면 대화로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거나 일상생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활동”(「심리상담사법안」), “일상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전문적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유·무형의 지원과 원조를 제공하는 활동”(「마음건강증진법안」)이라고 정의하면서 하나같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강조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습니까. 정당한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헌데 법안들에 명시된 조건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보장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헐거워 보입니다. 대학에서 몇몇 관련 과목을 수강한다고 해서 상담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들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있고 폭과 깊이가 방대합니다. 여러 제한이 따르므로 학부 수준의 교과목에서는 심리학의 각론을 개괄하고 상담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살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응용을 꾀한다면 추가적인 학습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과를 막 마친 의대생이 전문의 시험을 치를 수 없고 제아무리 법학개론을 충실히 수강한 법대생도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실무경험과 경력을 강조한 항목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각기 5년(「심리상담사법안」)과 3년(「마음건강증진법안」)이라는 기간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된바 없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로부터의 지도·감독 또한 요구되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기술”, “인지적·정서적·행동적 상담전략”은 글로써 배울 수 없으며 시간이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반복적인 실천과 피드백을 통한 반성, 교정의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고 그렇기에 앞서 적었듯 공신력 있는 민간자격에서는 구체적인 조건을 두어 실무경험과 지도·감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데 심리상담 영역의 체계화와 국민 정신건강증진이라는 목표가 이 법안들로 달성될 수 있을까요. 정말 충분합니까?
2. 심리상담의 최소요건
이들 법안이 통과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법적인 승인을 받은 채 심리상담 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정신건강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낙관해서는 안 되며 그 비용도 따져보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의 크고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외연이 넓어지고 자격을 얻기 쉬워질수록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워집니다. 지금 법안들의 면면을 고려하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 온전한 전문가로서 기능할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과장된 수사를 배제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저 사람들이 미래의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정신건강에 개입하게 될 것이므로 신중해져야 합니다. 또한 법제화를 통해 상담이 진지한 전문성의 실천임을 인정받을 것인지 아니면 간단히 취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격증을 만드는 데 그칠 것인지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의 최소요건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어둡고 아둔하여 그런 큰 물음에 답할 능력이 없지만 한 가지는 진정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상담은 최소한의 역량이 보장된 전문 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자격의 폐해는 심각합니다. 심심찮게 문제가 되는 상담자의 내담자 착취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의학에 전문성이 없는 의사, 약학에 서투른 약사, 신학에 무지한 신부나 목사를 상상하는 일은 두렵습니다. 심리상담을 업으로 한다면 마음의 일과 대화를 통한 치료에 관한 한 어엿하게 전문가여야 합니다.
이에 두려운 마음으로 두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두 제안은 이번 법안의 제 조건을 강화 및 보완하자는 것이고 결국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라는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합니다. 먼저 심리상담의 주체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도록 석사 학위 취득 이상으로 학력 기준을 강화해야합니다. 대학을 다니다 우연히 몇 개의 관련 과목을 수강한 사람이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상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전문적인 기술”과 “상담전략”을 담보하기 위해 최소 수련시간을 명시하고 상담 회기 수, 전문가로부터의 지도·감독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수련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정하는 데 있어 상기한 민간 자격의 요구조건을 참고할 만하며 심리학, 상담학 분야 전문가들과 현재 자격 취득을 위해 수련 중인 수련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3. 밥그릇을 넘어서
상담은 무엇입니까? 저에게 업으로서의 심리상담은 늘 나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것, 그럼에도 언제나 충분치 못한 것, 그러므로 두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담이 내담자의 무한히 복잡한 인격과 개별성에 마주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며 그러기 위해 알아야할 것과 배워야할 것, 경험하고 느껴야할 것 또한 끝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번 입법 예고에 당면해 내게는 이토록 어렵고 중요하며 진지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간단하고 가볍게 여겨질 수 있겠다는 예감으로 문득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심리 서비스와 상담에 대한 공통의 인식, 정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담은 무엇보다 과학적 실천입니다. 과학적이라 함은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의 많은 부분이 수치와 통계로 포착될 수 없으며 상담자의 직관과 역량 역시 중요함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전문적인 실천으로서의 심리상담이 일상에서의 따뜻한 위로나 정직한 충고와 구별되는 점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된 이론적 개념과 치료기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직관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자의적으로 치료기법을 선택하거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 주먹구구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오직 근거가 있는 실천이 윤리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달성하기 어렵지만 추구해야하는 목표이고 오랜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는 자질입니다. 그래서 저는 쉽게 심리와 상담을 운운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전문성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공허한 엘리트주의로 매도하고 직역이기주의로 폄하하며 수천 개의 유사 자격증을 만들어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을, 상담을 업으로 삼으면서 과학적 사고와 지식,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착한 마음과 따뜻한 입술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들을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짧게나마 임상에 머물며 병원 안팎에서 마음의 병을 얻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단지 착한 마음이 아닌 단단하게 다져지고 날카롭게 벼려진 전문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공감적인 태도는 상담자의 필요조건이지만 언제나 그 이상을 요구해야합니다. 만약 저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를 위해 그런 전문가들이 준비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글이 밥그릇 챙기려는 아귀다툼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어느 전공이 상담을 하는가 못 하는가 혹은 누가 떼돈을 벌고 누가 쪽박을 차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라는 화두가 공적 영역에 등장했고 이번 법제화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심리상담의 위상과 역할을 틀 짓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입니다. 조금 느려도 좋으니 충분한 토론과 숙고를 거쳐 우리가 가장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법제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상담과 심리 서비스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에 이바지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우리 중 누구의 밥그릇보다, 누구의 명예나 실적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후대의 상담자인 학생들,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을 두신 분들의 바른 눈과 정직한 의견이 필요합니다.
심리상담 관련 입법 예고에 부쳐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임상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3년의 수련을 거쳐 변방의 병원에서 밥벌이를 하는 심리학자입니다. 다가오는 봄과 희미한 엔데믹의 조짐이 반가운 요즘, 몸담은 영역에서 입법 예고 소식이 들려 기꺼운 한편 염려와 두려움이 일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관심을 쏟으시는 가운데, 궁색한 처지이지만 이번 입법 예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또 두루 여쭙고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줄을 적습니다.
1. 정말 충분합니까?
심리 서비스의 수요가 늘고 필요성이 부각되는 중에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었습니다. 지금 한국은 “심리”나 “상담”을 표방하는 수천 개의 자격증이 난립하고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거치지 않은 인력이 현장으로 배출됨에 따라 심리 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2022년 3월 최종윤 의원과 전봉민 의원이 각기 대표발의한 「심리상담사법안」과 「국민 마음건강증진 및 심리상담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마음건강증진법안)은 모두 심리상담 서비스의 주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법으로 보호해 국민 정신건강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면 서비스 제공자는 자격에 상당하는 처우를 보장받고 소비자는 고르게 양질의 서비스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이번 입법 예고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생기는 것은 이 선한 목적이 과연 제안된 법안들로 달성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공신력 있는 민간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금번 제안된 두 법안에서 심리상담사에게 요구하는 조건을 비교할 때 의심은 깊어집니다. 두 법안에서는 심리상담사시험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대학·대학원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사람 또는 심리상담 관련 시설에서 5년 이상 심리상담업무에 종사한 사람(「심리상담사법」), 대학원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한 사람 또는 대학에서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3년 이상 심리상담사 업무 혹은 유사 업무에 종사한 사람(「마음건강증진법안」)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심리상담 영역에서 일부 민간자격은 이미 보다 엄격한 기준을 두고 선별된 전문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임상심리학회가 발부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해서는 석사 학위와 3년 간 3000시간 이상의 수련이 요구됩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가 발부하는 상담심리사 1급 자격시험에는 학부를 졸업한 후 4년 이상의 상담 경력을 가진 사람, 상담 관련 전공의 석사를 취득했거나 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이 지원할 수 있으며 400회기 이상의 상담, 50회 이상의 지도·감독(supervision)을 비롯한 최소 수련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상담학회에서 주관하는 1급 전문상담사 자격의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540시간 이상의 수련을 받거나 상담학 관련 석사를 취득하고 720시간의 수련을 받은 사람, 박사과정 재학 이상의 학력으로 540시간 이상의 수련을 받은 사람이 취득할 수 있으며 역시 일정 시간 이상의 상담자 경험과 지도·감독이 수련요건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제안된 두 법안에서는 심리상담을 각기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인지적·정서적·행동적 상담전략과 대면·비대면 대화로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거나 일상생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활동”(「심리상담사법안」), “일상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전문적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유·무형의 지원과 원조를 제공하는 활동”(「마음건강증진법안」)이라고 정의하면서 하나같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강조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습니까. 정당한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헌데 법안들에 명시된 조건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보장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헐거워 보입니다. 대학에서 몇몇 관련 과목을 수강한다고 해서 상담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들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있고 폭과 깊이가 방대합니다. 여러 제한이 따르므로 학부 수준의 교과목에서는 심리학의 각론을 개괄하고 상담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살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응용을 꾀한다면 추가적인 학습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과를 막 마친 의대생이 전문의 시험을 치를 수 없고 제아무리 법학개론을 충실히 수강한 법대생도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실무경험과 경력을 강조한 항목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각기 5년(「심리상담사법안」)과 3년(「마음건강증진법안」)이라는 기간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된바 없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로부터의 지도·감독 또한 요구되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기술”, “인지적·정서적·행동적 상담전략”은 글로써 배울 수 없으며 시간이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반복적인 실천과 피드백을 통한 반성, 교정의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고 그렇기에 앞서 적었듯 공신력 있는 민간자격에서는 구체적인 조건을 두어 실무경험과 지도·감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데 심리상담 영역의 체계화와 국민 정신건강증진이라는 목표가 이 법안들로 달성될 수 있을까요. 정말 충분합니까?
2. 심리상담의 최소요건
이들 법안이 통과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법적인 승인을 받은 채 심리상담 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정신건강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낙관해서는 안 되며 그 비용도 따져보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의 크고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외연이 넓어지고 자격을 얻기 쉬워질수록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워집니다. 지금 법안들의 면면을 고려하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 온전한 전문가로서 기능할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과장된 수사를 배제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저 사람들이 미래의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정신건강에 개입하게 될 것이므로 신중해져야 합니다. 또한 법제화를 통해 상담이 진지한 전문성의 실천임을 인정받을 것인지 아니면 간단히 취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격증을 만드는 데 그칠 것인지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의 최소요건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어둡고 아둔하여 그런 큰 물음에 답할 능력이 없지만 한 가지는 진정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상담은 최소한의 역량이 보장된 전문 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자격의 폐해는 심각합니다. 심심찮게 문제가 되는 상담자의 내담자 착취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의학에 전문성이 없는 의사, 약학에 서투른 약사, 신학에 무지한 신부나 목사를 상상하는 일은 두렵습니다. 심리상담을 업으로 한다면 마음의 일과 대화를 통한 치료에 관한 한 어엿하게 전문가여야 합니다.
이에 두려운 마음으로 두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두 제안은 이번 법안의 제 조건을 강화 및 보완하자는 것이고 결국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라는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합니다. 먼저 심리상담의 주체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도록 석사 학위 취득 이상으로 학력 기준을 강화해야합니다. 대학을 다니다 우연히 몇 개의 관련 과목을 수강한 사람이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상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전문적인 기술”과 “상담전략”을 담보하기 위해 최소 수련시간을 명시하고 상담 회기 수, 전문가로부터의 지도·감독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수련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정하는 데 있어 상기한 민간 자격의 요구조건을 참고할 만하며 심리학, 상담학 분야 전문가들과 현재 자격 취득을 위해 수련 중인 수련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3. 밥그릇을 넘어서
상담은 무엇입니까? 저에게 업으로서의 심리상담은 늘 나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것, 그럼에도 언제나 충분치 못한 것, 그러므로 두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담이 내담자의 무한히 복잡한 인격과 개별성에 마주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며 그러기 위해 알아야할 것과 배워야할 것, 경험하고 느껴야할 것 또한 끝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번 입법 예고에 당면해 내게는 이토록 어렵고 중요하며 진지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간단하고 가볍게 여겨질 수 있겠다는 예감으로 문득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심리 서비스와 상담에 대한 공통의 인식, 정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담은 무엇보다 과학적 실천입니다. 과학적이라 함은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의 많은 부분이 수치와 통계로 포착될 수 없으며 상담자의 직관과 역량 역시 중요함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전문적인 실천으로서의 심리상담이 일상에서의 따뜻한 위로나 정직한 충고와 구별되는 점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된 이론적 개념과 치료기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직관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자의적으로 치료기법을 선택하거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 주먹구구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오직 근거가 있는 실천이 윤리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달성하기 어렵지만 추구해야하는 목표이고 오랜 공부와 훈련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는 자질입니다. 그래서 저는 쉽게 심리와 상담을 운운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전문성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공허한 엘리트주의로 매도하고 직역이기주의로 폄하하며 수천 개의 유사 자격증을 만들어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을, 상담을 업으로 삼으면서 과학적 사고와 지식,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착한 마음과 따뜻한 입술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들을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짧게나마 임상에 머물며 병원 안팎에서 마음의 병을 얻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단지 착한 마음이 아닌 단단하게 다져지고 날카롭게 벼려진 전문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공감적인 태도는 상담자의 필요조건이지만 언제나 그 이상을 요구해야합니다. 만약 저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를 위해 그런 전문가들이 준비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글이 밥그릇 챙기려는 아귀다툼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어느 전공이 상담을 하는가 못 하는가 혹은 누가 떼돈을 벌고 누가 쪽박을 차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라는 화두가 공적 영역에 등장했고 이번 법제화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심리상담의 위상과 역할을 틀 짓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입니다. 조금 느려도 좋으니 충분한 토론과 숙고를 거쳐 우리가 가장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법제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상담과 심리 서비스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에 이바지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우리 중 누구의 밥그릇보다, 누구의 명예나 실적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후대의 상담자인 학생들,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을 두신 분들의 바른 눈과 정직한 의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