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한계와 바닥을 느낍니다.

쓰니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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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3년차 남편입니다. 제 아내가 임신한 것을 확인할 때는 인생의 새 장이 펼쳐진 것 같았는데, 제 그릇의 한계로 벌써 절벽이 느껴집니다.
아내가 임신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비타민과 칼슘 등이 들어간 종합영양제를 샀습니다. 제가 교사라 2월달은 매일 챙겨서 먹였고, 3월에는 휴일엔 매번 챙기고 평일엔 아내가 자는지라 퇴근 때 챙겨먹었는지 물어보고 "먹었다"는 답변을 듣고는 오메가3 알약시트가 다 빌 때나 새걸로 꺼내는 정도로만 챙겼습니다. 사실 제가 챙겨줄 때도 매끄러운 오메가3는 잘 먹지만 겉이 뻑뻑한 질감의 비타민 알약은 먹기 불편해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한알씩 먹으라고(1일 2정) 줘도 귀찮다며 두알씩 먹는 걸 보고 조금 불편해할 뿐인걸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3월 말에 혈액검사 결과가 비타민D 부족이란 것을 알고 즉석에서 의문이 들다가 비타민을 산 날과 제가 챙겨준 날을 계산하니, 제가 출근한 평일에는 하루도 안 챙겨먹고 거짓말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소하게 할 수 있는 것마저 거짓말로 안하냐며 짐승만도 못하다고 화를 냈습니다. 다음날 퇴근하니 의사가 크게 문제되는건 아니라고 별일 아닌걸 왜이리 화내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확실히 이성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인건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실망감이 마지막 마지노선마저 깨지며 감정의 회복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어떤 점에서 이렇게까지 감정이 깨져나가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주 사소하게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중요한 일이면 당연히 챙길거라는 책임감이 있으리라 여겼는데 먹기 불편하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져버린 것에서 인간적인 실망감을 느꼈고, 매일 물어봤을 때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히 이야기했다면 다른 약을 사던가 하는 대안을 찾았을 텐데 한달간 매일 거짓말로 일관한 것에서 믿음이 깨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영양제를 먹는 것은 의사의 조언을 듣고 우리 둘 모두가 동의한 일임에도 내팽겨쳤다는 점에서도 좌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걸 들은 아내의 첫마디가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라는 말이라 벽을 보고 말하는 느낌을 다시 받았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아내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 있었습니다. 결혼 일년쯤 후에 아내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직업의 불안정성에 공무원을 준비하고 싶다 하여 인강, 독서실, 교재 등을 준비해 주었지만 한달 정도 독서실을 다니더니 집에서 한두시간 하다가 그냥 안하고 놀게 되었습니다. 이사계획이 있어서 새 집에선 맘 잡고 할거라 약속하기에 우리 삶도 편해지고 공부에도 집중하도록 도움되는 가전기기등을 준비해서 이사를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이사 후에도 대부분은 그냥 놀더군요. 그러다 자신은 전업주부가 하고싶다며 공부는 취미로 할 거라고 말했을 때 하고싶다면 그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하루에 저녁 한끼 준비하는 것 외에는 집안은 손이 안간 상태였고 출근 때 보는 건 아내의 자는 모습뿐이었습니다. 식기세척기, 건조기도 있었고 해서 전업주부로서 부담가는 환경까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쯤 그냥 기대는 접었지만 맘 속으론 책임감 없는 모습에 어느정도 실망감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맞벌이할 때도 생활비는 제돈으로만 냈지만 그 때는 작았던 서운함이 원초적인 편함만 추구한 채 거짓말로 상황을 회피해가는 모습에 점점 커져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와 둘뿐인 가정에 나태한 건 참고 넘어갔어도 아기에게까지 이렇게 무책임한 모습을 보며 그사람의 밑바닥까지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네가 나한테는 이래도 설마 아기한테까지는 안그러겠지'라는 인식이 깨졌습니다. 안먹었으면 챙겨주기 위해 매일 퇴근때마다 첫마디로 물어봤음에도 매일을 거짓말로 회피한 그 모습에 네가 이젠 인간으로 안보인다고, 아이가 태어나면 이혼하고 싶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아기를 생각하면 무책임한 말임에도 그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이후로 말을 안한채 출퇴근만 해왔습니다.

오늘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오빠가 직업인으로서든, 주부로서든, 엄마로서든 세 역할 중에 최소 한가지 정도는 완벽하길 원하는 것 같다고. 그런데 나는 한가지도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걸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죠. 그리고 이혼할거면 애를 위해서도 지금 지우는게 낫다고 합니다.

어쩌면 애를 위해서도 이혼얘기까진 안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는게 더 현명한 대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아내에게 '완벽함'을 요구해서 이런 암담한 마음이 드는걸까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내에 대한 감정은 회복되지 않지만 아이는 소중합니다. 저 혼자서라도 꼭 키우고 싶지만, 현 상황에서는 아이를 위해 제가 먼저 사과하고 그냥 이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최선일까요? 왜 가장 현명해지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시점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흘러가게 되는지 제 그릇의 한계에 인생 어느때보다 혐오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