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인생, 10년 홀로 육아, 유악한 인간의 넋두리

웃으면행복해져요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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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많은 언니 그리고 귀여움 받던 막내딸 하지만 내가 10살도 되지않을 때 부모님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얻었고, 나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관심을 바랐고, 삐둘어졌고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을 먹으면 나를 때렸다 힘들었나보다 엄마는 그런 나를 혼자 나가 사는게 좋겠다고 했다 16살되던 해 나는 혼자 살기 시작했고, 외로웠다 학교에서 체벌이 심해 자퇴가 많은 곳에서 전학을 부탁드렸고 처참히 거절당했다 가출을 해서라도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6개월간 방황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이상한 아저씨가 자기 성기를 만져주면 만원을 준다고 했다 배고파서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물었고 생쌀을 씹어먹다가 토를 했다 다시 6개월간의 방황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달라진건 없었다 난 학교로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때리진 않았지만 체별에서 열외되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 학창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모 대학 교수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모든 지원을 약속하셨지만 부모님은 이제 막 시작한 가게를 위해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나는 부모님가게에서 일을하면서 아버지와도 참 많이 부딪혔다술을 먹고 패악질을 부리는 당신을 밀친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월 15만원 창문도 없는 원룸에서 울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미친듯이 울었다 죽지는 않더라 그 이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죽으면 얼마나 편해지는지 설득시켰고, 나쁘지 않았다 환청이 시작된지 2주가 되었을 무렵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와 나를 덮치고 칼로 미친듯이 쑤셨다 눈을 떴을때 그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정신병자냐'라는 차가운 말이 가슴을 콕콕 쑤시지만 기댈곳이 없었다언니도 어렸을때 부모님이 일해야한다고 시골집에 언니를 맡기고 나는 부모님이 데리고 가신부분 그렇게 3-4년을 지낸 것에 대해 한이 맺힌 사람이라 내가 미울법도 하다병원에선 내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살고 싶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도 놀라워하실만큼 빠르게 회복했고 완치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아픔은 누구도 치료할수없었다그럴 때쯤 임신을 했고, 나는 최악과 최악 중 덜 최악 인 것을 선택했다 시 부모님은 내 눈 앞에서 폭력을 보이며 싸웠고, 아이 아빠는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서로 어렸기에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지금은 각자 위치에서 잘살길 바라지만 그땐 많이 미웠다 아이에게 손찌검 하는 아이 아빠와 나는 헤어졌고, 2살된 아이와 나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사실 힘들 것도 없었던게 남편이 150만원을 벌어오면 180만원을 써서, 임신했을때도 부업을 해서 그 돈을 메꾸기 바빳고 나는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친권 양육권을 모두 받은 나는 조금씩 모아둔 500만원으로 아이와 악착 같이 살았다아이를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하고, 원룸에서 투룸 조금씩 살림을 넓혀갔다 5년전 아이가 5살때 결혼을 하자던 사람이 나타났고, 아이에게 아버지인냥 굴었다 상견례를 앞두고 그 사람은 사라졌고, 얼마 뒤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고 결혼을 했다 나는 쓰러졌다 엎어져서 일어나지 않았다 죽을 계획을 짯다 매일 일어나 미사 시간이 아닐 때 성당에 가서 불 꺼진 성당 안에서 멍청하게 있다가 도서관을 가서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은지 써내려 갔다열심히 모은돈 조금이라도 쓰고 싶었다 몇년동안 한달에 만원도 나에게 안썻으니까.. 그래서 그 돈으로 나는 작은 바이크를 샀다 처음이었다 내 힘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닐수있는게 즐거웠다 변화가 생겼다 죽어야지 했던 내가 내일은 뭐하고 다음달엔 뭐하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인생에 있어서 해방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때쯤 일어난 일이 내가 1층 원룸건물에 살때 밖에서 하던 소리가 다들리는 곳이었는데 우리 아이가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어 집앞까지 데려왔나 말소리가 들렸고, 친구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이 집을 확인하고 여기가 니네집이 맞냐고 몇번을 확인하더니 '야 들어가라 그냥' 하면서 면박을 줬다그 이후에도 두번 그런일이 발생했고 초등학교 들어가기전에 제대로 된 집으로 이사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더 악착같이 모았고 아이가 7살 되던해 입학할 초등학교 100m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이사를 했다 지방이라 학군을 따지긴 민망하지만 그래도 전국에서 이름 좀 나왔던 학군 있는 곳이다 (이건 자랑이다)
그렇게 모든 게 좋아지려나 했지만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 투병 생활을 했고 간호를 하면서 돈을 벌기란 참 힘들었다 신이 있다면 나에게 이러면 안된다 많이 울었지만 울면서도 나는 쓰러질수가 없었다 그때당시 한부모가정지원금을 월20만원 받으려면 월급이 150만원(세전)이상이면 안됐다 그 20만원도 아까워서 사장님께 부탁 드렸고, 사장님은 흔쾌히 내가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다했고, 둘이 가진 식사 자리에서 술을 먹고 성추행을 했다 뿌리치고 집에 돌아오며 많이 울었지만 난 출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기억을 못하는 건지 별 말 없이 지나가더니 그때부터 1년 간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물러설곳이 없다 생각들었던 나는 자존심도 내려놓고 버텼다 1년이 좀 지났을 무렵 사장님은 내가 직원들간의 불화를 일으킨다며 해고를 하려하셨고, 없는 사실이었기에 사실확인요청을 드렸더니 '사실은 그냥 니가 싫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퇴사를 하였고, 사장은 내가 부정수급을 했다고 신고했다 300만원 넘는 벌금을 냈다 
떳떳하게 살지못하는게 남 눈치보면서 사는게 이런거구나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친구도 알게되었다 편의점 커피한잔 마시면서 밤새도록 꿈을 키워갔고 힘을 합쳐 사업을 해보자 뜻을 모았다 사업자를 내고 매주 머리를 맞대며 조심스럽게 시작해보려는 때에 친구에게 사고가 났고 많이 아프다 반년을 못보고 있다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취직을 해서 일을 하면서도 기계처럼 규칙대로 살면서도 열심히 살아야지와 내가 왜 살아야지 가 대립하고 있다 내가 왜 이런 재미없고 칙칙하고 입밖으로 구구절절 꺼내본일 없는 이야기들을 하냐하면
일찍 사춘기가 온 10살 자식이 아침에 실랑이 벌이다가 나에게 '저런게 엄마라고'라는 말을 했다머리를 쥐어박고 먼저 출근을 했지만 그냥 지나온 날들이 생각나더라매일 운동도하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성격이 모나진 않아 주변에서 찾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취미활동을 하고있고 긍정적인편이다근데 모르겠다 요즘은 죽고싶은건 아닌데 왜살아야하는지 모르겠고 싫증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벨소리는 소음으로 느껴지고, 모니터앞에서 타자만 타닥타닥 두둘기는 내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가 느껴져서 회의감이 한없이 든다 
아이에게 주려고 아이 이름으로 메일 만들어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기쁘고 슬프고 특별한 일들을 몇년 째 쓰고 있지만 오늘의 일은 절대 쓰지 못할 거 같아서 여기에 넋두리 해봐, 
평생을 사랑받아 본적도 의지해본적이 없어서, 가끔은 외롭다.내가 남자를 잘못만나면 아이도 위험해지니까 늘 스톱을 멈췄어야했어 
늘 그렇듯 오늘만 속쓰려하다가 또 열심히 살아갈게, 일하다 쓰는거라 맞춤법도 두서도 엉망진창이지만 긴글읽어줘서 고마워
꼭 성공할거야 사업해서 떳떳하게 아이도 많이 웃게 해줄거고,, 잘할 수 있어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