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2(막5 35 ~ 43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주품이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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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강해2(막5 35 ~ 43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https://youtu.be/GjhTuqUvLag


*오늘의 말씀:
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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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05 오랫동안 기다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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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절,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 하나님은 마치 영화 감독과 같다.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런 자의 등장을 통해 더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높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그 위대함을 높이기 위함이기 위함이며 창조된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의 등장을 오늘 본문과 같이 실현을 시키시었다. 아무래도 그는 회당장의 친척이거나 동네 주민 지인 또는 시종일 것이다. 그의 행동은 보통인간과 다름이 없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순간만큼 훼방자의 역할을 한 것이라 본다.

복음을 저도 전하지만 제가 발언한 하나님의 영광과 또는 저의 믿음 안에서의 꿈을 이야기하지만 마치 허풍이라며 나를 놀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믿지 않고 그런 놀라운 능력을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은 할 수 없어 또 하나님 믿는 자들은 실수도 많잖아 무시하는 사람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습니다. 온유함으로 그들이 돌아오시기를 잠잠히 기다리십니다. 전도자인 우리는 그들을 꾸짖지 않고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인자함이 필요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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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지만 항상 두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나의 믿음의 모든 일을 강약도에 따라 다르지만 무시하는 부류와 신뢰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이 신뢰하는 부류가 회당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들은 믿음의 사람과 가까이 하려하고 믿음의 말을 신뢰하고 말씀을 주어도 꺼리끼지 않고 잘 받는 사람입니다. 그 축복의 은혜는 믿음의 사람에게 마침네 더디는 순간이 있더라도 믿음의 순기능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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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 회당장의 아이를 고칠 때와 변화산상의 대면, 겟세마네의 기도 이 세 사람은 항상 예수님과 같이 합니다. 예수님은 기독교라는 기초를 다지기 위해 꼭 필요한 3명의 충성된 사람이 필요 했던 것입니다. 목숨을 다하여 충성하는 자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기에는 죽은 자가 사는 현장을 직접 가까이서 목도하고 엘리야와 모세와 변화산상에서 만나고 예수님의 죽기전 겟세마네의 기도터처럼 기도가 얼마나 소중함을 알게 하시었을 것입니다. 많은 이가 모이는 산만한 회중보단 3명의 수제자가 집중하며 필요 하였으리라 봅니다.

그들은 이것을 집중적으로 가까이 보며 하나님 나라를 확신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바치어도 상관이 없음을 깨닫고 이를 위한 삶의 실천을 날마다 모색하게 되었겠죠 그리하여 야고보는 예수님 이후 첫 순교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를 세웠으며 사도 요한은 끝까지 살아 남아 요한복음과 요한 계시록으로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 하였습니다. 교회를 세우고자하는 많은 목회의 꿈을 가지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충성된 일꾼을 불러 달라 우리는 기도하고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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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절,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 유대인의 장례는 7일간 계속 되며 아무리 가난해도 피리 부는 자와 곡하는 자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은 아니었음이 확실합니다. 죽은지 얼마 안되고 예수님께서 오시고 계시었기 때문에 이들을 부를 겨를이 없었겠지요 저번 주 남긴 그림처럼 곡소리꾼이 아닌 어머니의 곡소리였을 것이라 봅니다. 이것도 희극이라면 극적인 효과를 보이기 위함입니다. 인간들의 완전한 절망과 비극와 통곡 속에 하나님의 부활 생명의 손길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함을 더 들어 내길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영화 감독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어 그들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창조주인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인간의 모든 생사고락을요 나를 보며 내 주위를 봅시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는 나를 높이시던가요 아니지요 처움은 곡소리가 나게 합니다. 우리를요, 더 이상의 인간적인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더 이상 인간적으로 기사회생의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이제는 끝이라고 말할 때 주님은 임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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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절,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 잔다는 의미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잔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봅니다. 언젠가는 신앙의 사람의 육체는 부활하여 그 영이 결합하여 온전하여 지기에 그 육체는 주님 재림의 날에 자는 것이요 그 영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품에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 잔다라는 의미는 오늘 본문에서는 이미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만나기전 아이를 살리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 아이는 예수님의 시공간을 초월한 능력으로 심령의 말씀으로 살리시고 살아서 자고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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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길어서 마칩니다 ^ ^


40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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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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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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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절,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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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하여 예정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케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맘과 고통하는 나라의 맘과 모든 성도들의 탄식을 돌아보시며 강하게 하시고 창조주로서 사용하시고 높여 주시고 위로하여 주심을 압니다. 날마다, 길고 짧은 그 여정의 시간에 낙심하지 않고 기다리며 기도하며 감사하고 인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나라의 창대함과 그 영화로움을 같이 누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이 오면 반드시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