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들 5

그날들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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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뚫린 것 처럼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또 무더위가 기승 입니다.들어보니 지방은 아직도 강수량이 낮아 가뭄이 심하다는데 지방쪽으로 비가 더 내렸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벌써 금요일 입니다.조금만 더 버티시어 모두 행복한 주말을 잘 맞이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일기처럼 쓰여집니다.
대체적으로 글이 깁니다.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만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다.
특별한 스케쥴이 있다거나 급한 일이 있으신 날을 제외하면 주말예배에 가시는 것을 본인의 절대적 소임이라고 여기셨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시고,본인의 심적 평안을 위해 기도하시고,본인을 지켜주는 신을 위해 기도하셨다.
종교적 자유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다른 가족들은 성당에 동행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종교적인 부분에 불만을 갖진 않았다.그래 그렇게라도 해서 심적으로 편하시다면 얼마든지..
다만 내 개인적인 불만은 있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길때 마다 그 주체를 데리고 성당으로 인도하셨다.보통 거의 대부분은 내가 그 주체가 되었다.
가위에 눌려도,꿈을 꾸어도,이상한게 보이거나 들려도 어머니는 마치 성당이 대단한 치유의 공간이라도 되는냥 날 그곳으로 이끄셨다.마치 회계하고 기도하면 뭔가 나아지겠지 싶겠지만,아쉽게도 로마 교황청에서 나와 퇴마의식을 벌여주지 않는 이상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적 문제에 대한 생각이나 신념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비하나 곡해의 의미가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오해마시길)

그 날도 심한 가위에 눌려 잠을 거의 못이룬 상태에서 약간의 몸살끼로 예민해져 있었고,그냥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별 말없이 혼자 성당에 가시길 바랬다.
(보통 오전 예배는 날 보디가드 삼아 데리고 다니셨다)

하지만 여지없이 옷을 건내며 가서 기도해 보자는 어머니에 말에 잔뜩 짜증이 났기에 날카롭게 반응했다.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가봐야 별 의미도 없는데 오늘은 좀 놔둬요.

어머니가 움찔하셨다.한번도 동행에 태클을 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한참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계시다가 기분이 상하신 듯 본인의 겉옷을 챙겨 황급히 나가시며 호통을 치셨다.

걱정되서 말하는지 알면 그렇게 반응하면 안되는거야..

가슴속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어머니로써의 그분은 강했지만,어머니를 떠난 여자로써의 그분은 마음이 여리고,연약한 소녀의 감성을 지닌 분이셨기에 내 말투가 어머니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매번 그렇게 이끌려 억지로 가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을 들었다.문을 세게 닫고 나가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이 세어나옴을 느꼈다.

오전예배가 끝나고 올 시간이 되서도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주말도 방에서 공부를 하는 우등생 누나가 말했다.

니가 좀 가봐..엄만 아빠 보다 널 많이 의지하니까 그런거야..

이게 의지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구시렁 거리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 내가 조금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15분거리에 성당으로 향했다.
예배가 끝나 성당 밖에 있던 안면이 있는 신도들이 보여 가볍게 인사를 건냈다. 본인들 끼리 무슨 심각한 담화라도 나누듯 얘기하기에 엿들었는데 예배를 온 신도 한분이 좀 이상하다는 식의 대화였다..계단을 올라 성당문을 열고,들어갔다.

한참 오전 예배가 마무리되는 그곳은 휴게시간을 이용해 종교를 잠시 내려놓은 신도들간의 대화의 장이 되어 있었다.
단발 머리에 2:8가르마를 정확하게 하신 전형적인 목회형 복장을 하신 목사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왔네...장 집사님 찾으러 왔구나?뒤쪽에 계신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뒷쪽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심술이 가득하다.여자들이란;;
다가가 같이 있는 분들께도 인사를 드리고,아침에 일에 대해 사과를 했더니 못이긴 척 받아주신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순간 온 몸에 급격한 한기가 돋는다.
매번 반복되는 것이지만 느낄때 마다 기분이 참 더럽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법칙은 아닌듯 했다.

시선을 돌려 바라 본 곳에는 5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날카로운 눈매에 까무잡잡한 피부나 다부진 체격으로 봤을때 현장일을 하실 것 같은 분이셨다.
그리고 그 분의 어깨어 매달려 있는(걸쳐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여성의 형체 보였다.형태부터가 산 사람은 아니었다
한쪽 얼굴이 함몰된듯 심하게 뭉개져 내려 흉측하고,단발머리는 핏덩어리로 엉켜 있었으며,입으로 부터 쏟아진 토사물과 피가 뒤엉켜 입고 있던 원피스 상의가 엉망이었다.

그 전까지 그런적이 없었는데 코끝으로 비릿한 피냄세가 풍겨와 역겨운 느낌에 우욱 하는 헛구역질이 올라와 당황했다.
어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그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남성을 노려보는 시선이 나에게 옮겨질까 애써 태연한 척 어머니에게 괜찮다는 말을 했다.눈에 실핏줄이 다 터져서 하얀 눈흰자가 빨갛게 되어 있어 시선을 다른쪽으로 돌려야 했다.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더 충격으로 다가 온 것은 냄세를 맡기 시작했다는 점도 그러했지만,귀신이나 혼령으로 부터 안전한 성역,즉 성당안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론 그곳에 그런게?있으면 안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을 마주 할 때마다 뒷통수를 거하게 얻어 맞은듯 물리적,정신적 코마상태에 빠지고는 했다.

다수의 종교인들이 성당이나 법당,교회 같은 공간이 절대적 성역이라고 생각한다.그곳은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절대적인 공간이라고...법당은 사실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성당이나 교회는 자주 가봤는데 다는 아니지만 실제로 귀신이 있는 곳들이 있었다.내가 아는 종교적 지식에서 그곳은 악마나 귀신따위의 출입이 제한 된 금단의 구역인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흉찍한 여성의 입이 찢어질듯 크게 벌어지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기에 예전에 무당할머님과 만났을적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귀신들도 악질이 있고,덜 한것들이 있는데 대놓고,괴롭히거나 헤를 가할 녀석들은 그전에 상대를 기만하듯 웃는다는 것이다.
특히 몸에 들러붙은 것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대에게 헤를 가하게 만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로 그냥 찐 붙은 귀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헤를 가할 의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중년의 아저씨가 몇 일전 장례식장을 다녀 온 이후로 계속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였다.갑자기 실없이 웃는가 하면,평소에 조용한 분이셨는데 찬송가를 부를때 난대없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고,험한 말을 섞어가며 대화를 하고,가만히 사람을 노려보다가 신도들에게 넌 구원받지 못한다든지 이런데 다녀서 뭐하냐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곁에 계셨던 아내분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몇몇 목회자 분들이 붙어 이야기도 나누고,등이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럴때 마다 아저씨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드러운 손을 내려놓으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난 늘 선택에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묵과해 버리겠는가??남들의 조롱 섞인 비난과 시선을 감수하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야하는가??
후자의 선택은 늘 나와 내 주변인 들에게 큰 상처와 상심을 주었다.그래서 외면한 적이 더 많았던게 사실이다
거기다가 그곳은 다른 곳도 아닌 신성한 성역,성당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을 하고 얌전히 어머니를 불렀다.
무당할머니가 그러셨다.어떤 선택을 하든지 판가름이 안될때는 그 중에 내 스스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내 얘기를 듣는 어머니의 표정에 난처함이 뭍어나왔다.
말하자니 본인의 사정도 난처하게 될 것이고,말 안하고 넘기자니 자식놈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다.
한숨은 덤이었다.니가 말하라고 하실수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힘든 걸음을 옮기셔 젊은 목회자 한분과 함께 성당 밖으로 향했다.나도 함께 따라나섰다.
젊은 목회자의 표정이 가관이다.뭐지?이 신박한 얘기는?
난저함이다.왜 이딴 얘기를 본인에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는 긁적이다 고개를 끄덕인 뒤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성당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잎 같았다.
쥐구멍이 있었다면 들어가셨겠지...한숨을 푹푹 쉬며 마음을 정리하는 어머니 옆에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어설프게 웃던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나도 모르겠다..니 말을 믿는게 맞는지!그래도 넌 내 자식이고,내가 널 못 믿으면 누가 널 믿냐?

기분좋은 대답이다.내가 하는 말을 온전히 믿고,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딱 거기까지였다.

곧이어 나오신 아내 되시는 분이 우리를 향해 비소를 던진다
성당 꽤나 다니시는 크리스천 이라는 사람이 정신나간 아들에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떠벌렸다는 것에 대한 비난 섞인 표정이었다. 상태가 안좋은 중년에 아저씨도 따라 나왔다.
여전히 어깨츰에 붙어 있는 흉칙한 여성과 함께 심하게 노려본다.
시선을 피했다.아저씨가 무섭진 않았다.
광기어린 여성의 눈이 두려웠을뿐....
대신 운전해 주시겠다는 목사님의 조언을 무시한채 두 부부가 차량에 오른 뒤 이내 시동을 걸고,주차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될 때로 되라지...

목사님이 어머니를 부르신다.나는 눈치를 보다가 스윽 피했다.
아마도 방금 전 했던 얘기에 대한 종교적 핀잔이겠거니 했다.
한 소리 들으셨는지 표정이 별로다.
아이러니 했다..정작 미친척 행동하는 사람은 그런가 보다 넘기면서 이상한 걸 봤다는 말에는 적대적으로 대하는 그들을 보면 말이다.그런것이 그들이 말하는 종교적 신념인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묻지 않았다.그럴 필요도 없었고..
집으로 향하는 길,어머니가 넌지시 본인의 신념을 내려놓고 말씀하셨다.

혹시 너....무당 할머님께 가보지 않을래? 아...아니다 가자

어머니가 하시려던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챗다.
기도로 안되면 다른 방식으로도 정상적인 삶을 찾아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평생 그렇게 살면 본인이나 주변에 사람들도 그날처럼 난처해 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후에 아쉽게도 부부가 탑승했던 차량의 사고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문제가 없으셨는데 아저씨가 많이 다치셨다는 소식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여전히 성당에 나가시는 어머니는 당분간 나에게 동행을 부탁하지 않으셨다.자식을 향한 수근거림을 예측하셨으리라..
나도 그 뒤로 전처럼 성당에 자주 나가지 않았다.
소문에는 발이 달리고,삽시간에 퍼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던 그해 겨울에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종교를 내려놓았다.거창하지만 사실 나이롱 종교인 이었으니 크게 의미는 없었다.



시덥지않은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고 관심을 갖어 주시어 감사에 말씀을 전합니다.시간을 투자하여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저에게 큰 힘이 되고있습니다.
매우 무덥습니다.현장일 하시는 분들 특히 몸조리 잘하시고,다른 분들도 건강관리에 유념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