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관종 그 자체였다는 루이 14세 TMI

ㅇㅇ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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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왕의 춤>, <베르사유>)










 






- 평생 목욕을 단 3번밖에 하지 않았다. 


이는 중세시대에 더러운 물로 인한 감염과 전염병에 트라우마를 가졌던 유럽인들이 


오히려 중세시절보다 더 물을 멀리하면서 몸을 씻지 않게된 시대적 특성이기도 했다. 














 






- 당시에는 포크가 막 도입될 때였는데 손자가 포크를 사용하려고 해도 
"나는 칼과 손가락 말고는 다른 걸 사용해 본 적이 없어"라며 못하게 했다. 
당시는 포크를 사용하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꾸지람을 주던 때라 
포크 없이 음식을 손으로 마구 집어 먹었다.










 






- 여성 편력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던 인물이다. 


당시 유럽의 왕이라면 누구나 왕비 외에도 여러명의 정부(애첩)을 두기는 했지만 


루이 14세의 경우 수십명의 정부를 두었고 사생아까지 수백명의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많은 자녀들을 알뜰살뜰히 챙기고 


사이가 좋지않던 자식들도 멀리 떠나게되면 


실신할 정도로 펑펑 우는 등 혈육에 대한 정도 유별나기도 했다.














 





- 친동생(오를레앙 공)의 아내와도 
염문을 뿌릴 정도로 막장스런 사생활을 자랑했던 그지만, 
정비인 아내 마리 테레즈를 사랑하지는 않아도 무척 존중해주었다. 
애첩들과 즐기다가도 잠은 항상 왕비의 방에서 함께 잤고 
부부관계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챙기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는 스페인의 공주로 자라 정략결혼으로 프랑스까지 시집 온 아내를 챙겨주고 
국모로서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한 나름의 배려로 보인다. 
아내 마리 테레즈는 선량한 성품이긴 했지만 
근친혼이 만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답게 다소 우둔했는데, 
그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발언의 진짜 주인공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당시 오스만 제국이 독점하던 커피 원두를 선물로 가득 받고 


오스만 제국의 빈 침공에 대해 일절 모른척한 바 있다. 


배신당한 오스트리아에서는 겨우 커피 콩에나 넘어가는 뚱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 위장병이 심한 나머지 속이 좋지 않아 의자에 앉은 채로 똥을 쌌다고 한다. 


왕의 배변 순간에 함께한 사람들 중 일부는 닦아주는 뒤처리를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남에게 항문을 맡긴다는 것은 굉장히 큰 빈틈을 보이는 것인 만큼, 


암살위험 등이 없다고 확신하는 굉장한 신뢰관계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왕의 뒤를 닦아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바다 건너 영국의 헨리 8세도 시종중에 자신의 뒤를 닦아주는 걸 전담하는 


청결관이라는 직책을 뒀었는데, 후작급의 고관대작들이 담당했다. 













 






- 주치의가 이빨을 다 뽑아버리고 입천장을 지지는 바람에 


입천장에 구멍이 나서, 음식을 먹으면 코로 음식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당시 의학에서는 치아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며, 


건강을 위해서는 불결한 입천장을 소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무지에서 비롯된 악습이었다. 


또한 가장 이상적인 장의 상태는 텅 빈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18세기까지도 왠만한 질병은 다 관장으로 치료했다)


항상 다량의 설사약을 먹었고, 그것이 늘 용변을 보고 산 원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루이 14세 시대에 화장실은 그의 가장 주된 정무 공간이었다.












 






- 당시 중국 문명을 동경하여 


청나라의 강희제에게 직접 친필 편지를 여러번 썼고


여러가지 선물도 함께 보내기도 했다.













 





- 젊은 시절엔 미남으로 유명했고, 


특히 각선미가 매우 뛰어나서 그의 초상화를 보면 하나같이 다리를 강조하고 있다. 


루이 14세는 실제로 자신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즐겼는데, 


이는 그만큼 스스로의 외모와 춤에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특히 발군의 발레 실력을 자랑했는데 


젊고 잘생기고 음악을 사랑하며 뛰어난 춤실력을 가진 스스로를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과 비교하며 


아폴론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영화 '왕의 춤'에 잘 묘사되어 있다.













 





- 자신의 사생활을 대중들에게 드러내기를 매우 좋아하고 즐겼다. 


특히 일요일의 만찬은 누구나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루이 14세가 삶은 달걀을 까먹는 모습이 


우아하다고 소문이 나서 구경꾼들이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왕은 그런 백성들의 기대에 답하기 위해 한 번에 5개씩 까먹기도 했다.













 






- 정치적으로든 사생활에서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직성이 풀렸다. 


이러한 심리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배우와 비슷한 것이었다. 


권력자가 예술을 향유함에 있어서 루이 14세가 다른 왕들과 가장 남달랐던 점은


 그 스스로가 예술의 주체, 즉 아티스트였다는 데 있다. 


천성이 연예인이었던 그는 배우에게 향하는 박수조차 질투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무대에 서는 쪽을 택했다. 


후대의 미국인 미술사학자 헨드릭 빌렘 반 룬은 이런 루이 14세에 대해 


"왕으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한량이 되었을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루이 14세 초상화)



- 이러한 그의 성향은 죽음의 순간에 몸의 반신이 썩어들어가는 와중에도 


귀족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