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추가) 이게 부모와 연 끊을 만한 사유일까요

oo2022.07.29
조회65,603

안녕하세요?
2년 전에 이곳에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이어쓰기가 안 돼서 링크를 올립니다.
이전 글 : https://pann.nate.com/talk/353585625

저는 아들 본인입니다.
아내 아이디로 글을 썼었고 댓글들을 보면서 참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었는데..
그땐 뭐라 추가 내용이나 후기를 적을 수가 없더군요.
그 부분은 죄송하고, 이제라도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서 다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일단 그 글을 제 부모가 썼다고 추측하시는 분들이 많아 너무 놀랐습니다.
어머니에게 항상 듣던 말을 최대한 건조하게 적었을 뿐이고
아들 입장으로 쓴 내용은 제가 정신과 상담 시 말했던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거였습니다.
쓰면서도 내내 나한테 유리한 글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면서
최대한 부모에게 들었던 내용만 적으려 노력했었어요.
그리고 댓글을 보면서 천륜을 져버리고 정말 나쁜 생각을 했던 과거의 제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TV에 나올 법한 사건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결혼하고도 내내 느꼈거든요.
솔직히 정말 교도소에 갈 일 저지를까봐, 그리고 아내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면서 용기를 내 도망쳤습니다.
처음 글은 잠적 이후 아내와 돈 관련해서 계속 이견이 있어 적게 됐습니다.
아내는 받은 돈은 그냥 돌려주고 끝내자는 입장, 저는 억울해서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병원비로 뭔 1억을 썼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 글 상단에 썼듯이 아주 디테일한 부분은 약간 수정했다고 말씀드렸죠.
러프하게 말씀드리자면.

- 2억 5천이란 액수 자체는 어머니가 아내에게 늘 말씀하시던 액수입니다. 너희 밑으로 2억 5천이 들었다, 다 투자한 거다, 나중에 기대하겠다 등등.
- 그 중 1억 5천은 전세금+제가 계속 병원과 요양원에 있을 때 생활비로 지원받았던 돈이었고요.
- 남은 1억여원은 병원비와 요양원비였습니다.

처음 정신과를 다녔을 당시에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부분이 컸습니다.
초기 5년 정도는 주1회를 그렇게 비보험으로 다니느라 진료비에, 약값도 있었기 때문에
매달 실제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꽤 됐고,
폐쇄병동은 아주 막바지였지만 누구나 알 법한 큰 종합병원 입원 치료였고
실비 같은 보험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쌩돈이 많이 나갔습니다.
그 외에 가장 큰 비용은 앞서 말씀드린 요양원비였어요.
편의상 요양원이라고는 했지만 당시 20대 후반~30대 초반이었던 저로서는 향후 사회생활을 위해
최대한 이력이 남지 않되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있느라 돈이 좀 들었습니다.
폐쇄병동과 요양원 입원은 스스로 나쁜 선택을 할 확률이 너무 높은 환자로 분류됐고,
실제 성공에 가까운 시도를 한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이 부탁하다시피 오랫동안 권유하셔서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졌고요.

이런 내용은 제 부모도 모두 알고 있어요.
그래서 병원비를 대 줄 땐 항상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면서 제가 없을 땐 저렇게 온갖 생색을 다 냈더라고요.
당시 아내는 결혼을 한 성인이 어떤 명목으로든 부모에게 돈을 받는 걸 못 견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돈을 돌려주고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저도 아내도 몰랐지만 그땐 아내도 우울증이 극심해진 상황이었고 의사 선생님들 말로는 고도의 가스라이팅이 있었던 거라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부모와 완벽히 분리되고 나서야 저희 부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치료다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주소를 옮기면 찾아올까봐 그냥 잠적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장인어른, 장모님에게 내 새끼 끼고 사니 만족하시냐, 행복하셔라..
이런 문자를 보내오고
외가 쪽에 며느리가 돈은 돈대로 먹고 아들 꾀어내 연을 끊었다고 하소연을 해대서
사촌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이모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이런 호로자식 짓을 하냐고
원망하는 연락들이 오는 통에..주민센터에 구비서류 내고 정보열람 금지 신청을 했습니다.
그 전에도 하고 싶었지만 정신과 몇 년 다닌 걸로는 안 된다고 해서 몇 차례 거부를 당했어요.
그런데 10년 가까이 치료를 꾸준히 받고 뭣보다 아동 성폭행 경험이 의심된다는 전문가 소견서를 받게 돼서 뒤늦게나마 정보열람 금지 접수가 승인됐고, 주소도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주소를 그냥 둔 상태로 그야말로 잠적만 하고 있어서 그 사이 저희 부부 재난지원금도 타 갔더라고요.
주민센터에 문의하니 부모는..서류만 만들어 오면 그게 된다고 합니다.

꾸짖으신 분들도 계셨지만 얼굴도 모르는 많은 분들이 격하게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솔직히 10년 가까이 정신과 치료 받은 것보다 더 위로가 됐습니다.
저와 아내는 지금도 꾸준히 정신과 상담 치료는 받고 있습니다.
저보다 더 한 고통을 겪고도 훌륭히 사신 분들도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이기 때문에
용서하고 잘 지내는 분들도 물론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무엇보다 아내에게 더 이상 저로 인한 고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저는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꽤 멀쩡하게 살고 있습니다.
의아하실지도 모르지만 댓글 달아주신 분들의 공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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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안녕하세요! 저는 글쓴이 아내입니다 ^^;;
아무래도 제 입장에서의 글을 조금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추가 글을 쓰게 됐어요
저희 지인 중 사정을 아는 분들이 글을 볼까봐 (특히 외사촌들)
내용은 정말정말 컴팩트하게 썼던 걸 우선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ㅠㅠ

치료를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과거 일을 아주 조각조각 기억하고 있었어요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릴 때 얘기 묻거나 둘이 또래니까 우리 어릴 때 저런 거 유행이었지 어쨌지 하면 진짜 기억을 잘 못하더라고요
연애 땐 남편 우울증(?) 증상은 잘 모르다가 결혼하고 생활을 같이 하다 보니 이상하단 걸 알게 됐어요
가장 심한 건 24시간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다?
연애 땐 그냥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것들이
엄청난 강박적 행동이었던 거더라구요
이외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권해서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거고 정말 다행히 몇 선생님을 거쳐 라포가 잘 맞는 주치의 선생님을 만난 거랍니다
제대로 치료 시작하면서 과거 기억이 많이 떠오르고
오히려 그러면서 상태가 쫙 나빠진 거였어요 ㅠㅠ
남편이 그..성학대 가해자 측 한 명한테 전화해서 사과를 요구한 적이 있는데
그쪽에서 시부모님한테 항의하니까 아들 잘못 키워 미안하다고 오히려 가해자한테 사과를 하셨거든요
그 이후로 안 좋은 시도를 심각하게 하게 돼서
폐쇄병동 입원을 했던 거였어요
남편도 대학생 때 정신과에 한 번 찾아간 적이 있대요
근데 말씀드린 것처럼 과거 기억을 잘 못하다 보니
그 의사는 좀 어르신이었어서 되게 혼낸 모양이에요
그때부터 더욱이 아 내가 너무 소심하고 예민한가보다 거의 확신(?)을 해서 그 뒤론 정신과는 아예 안 가고 스스로 막 강해져야 한다고 엄청 노력하던 차에 저를 만났던 거였어요
그리고 제 우울증은 제 개인적인 성격 영향이 큰 것도 있어요
전 너무 일반적인 한국 가정에서 컸고 아빠가 엄청 엄하셨어서..
약간 책임감으로 지탱되는 장녀 스타일? ^^;;
물론 저희 부모님은 저를 엄청 사랑하시고 해주실 수 있는 모든 걸 해주시려고 노력하는 분들이지만
본인들께서 아주 일반적인 부모님들이셔서 그런지 시부모님 같은 분들을 상상을 못하셨어요
설마 부모가 그랬겠냐 설마..하는? 저도 그렇고요
저희 어머님을 이제야 저도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됐지만
그냥 전형적인 푸근한 한국 엄마 같거든요
자식밖에 모르고 평생 인내하고 부지런하게 사시는 ㅎㅎ
처음엔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어요
항상 미안하다 고맙다 니가 천사다 하시면서.
그러다 제가 남편 과거에 대해 다 알기 전에
남편이 철없이 엄마한테 냉정하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아휴 엄마한테 왜 그래~~~ 오지랖 부리고 싹싹하게 하니까
저한테도 슬슬 아들만 알았던 모습을 보이시게 된 거죠..
암튼 여기서 더 너무 구구절절 말씀드리긴 한정된 공간이니 ㅎㅎ
남편은 그런 일이 있었던 사람임에도 의지가 정말 강하고
부모가 없다시피 해서 어디든 굴러다니는 책만 보면 읽고 또 읽었대요 그것밖엔 특별히 할 게 없어서..
그게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남편에겐 하나의 치료법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저도 보호자 교육(?)도 꾸준히 받고 제 우울증 치료도 많이 진행된 터라 무조건적으로 남편 말과 행동에 지지와 응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해서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깨달음과 위로를 주셨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