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그런 드라마를 우연히 본적이 있었다 장르가 청소년 드라마인지 농촌드라마인지 기억이 정확친 않는데 주인공은 아니고 대략 조연 내지 단역쯤 되는 극중 대략 중,고생 정도 되는 가출청소년으로 설정된듯한 아이를 극중 주연급 등장인물들이 아마도 다들 착한(!) 사람들이었는지 ‘얘,너 집에가...’ 하면서 집에 가라고 촉구하는 대충 그런 내용의 드라마를 본적이 있었다 좀 지루하고 짜증날정도로 극중 주연급인 어른들이 ‘집에가’라는 대사를 반복하는... 헌데 난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저 아이가 돌아갈 집이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집에갈 처지가 못되는 그런 환경이나 상황에 처한 그런 아이면 어찌되는것인가 하는... 나는 일곱 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그리고 양육권 문제가 좀 X같이 돌아갔는지 나는 부모님중 어느 한쪽이나 친척집도 아닌 무려 엄마의 대학동창의 동생네 집안에 맡겨져 한동안 살아야했다 엄마 대학동창의 동생이란 그분댁엔 대략 나랑 비슷한 나이의 딸도 두명 있었던 것 같은데 난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도 엄마친구나 이모도 아닌 이런집에 얹혀살면 최소한 눈밖에 나는일이나 말썽을 부려서는 안되겠다는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아이였던지 가급적 말썽 안부리고 튀는행동 안하고 조용히 살려고 했었다 허나 세상일이 다 내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것인지 그래도 대략 초등학교 6학년 될 때까진 무난하게 그분 댁에서 살았는데 일단 그분도 당신 딸들이 점점 자라는 상태라서 교육비나 생활비가 점점 더 들어가는 문제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때 이미 엄마는 연락이 두절된지는 오래인 상태라 나하고는 물론 엄마 친구든 엄마친구의 동생이나 다른 지인이든 일절 엄마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점점 자라나는 게다가 사내아이이기까지 한 날 어느덧 자라 사춘기로 접어드는 딸이 둘이나 있는 그분이 계속 거두어 키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시더군 그래서 난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고아원에 맡겨져 고등학교를 마치고 정해진 연령대가 되어 고아원을 나오기 전까진 고아원에서 자랐다 사실 나도 그때 만 18세 정도가 되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규칙대로 고아원을 나와야 한다는 규칙 정도는 대충 알고 있었기에 연락 안되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 소식이라도 알려고 수소문을 해봤다 기억에 어릴때지만...아버지한테 내게는 큰아버지와 삼촌이 되시는 위로 형님 한분, 아래로 남동생 한분이 더 계셔서 그분들 사시는 동네에 명절같은데 한두번 가본 기억이 있어서 한번 그리고 찾아가보았지 큰아버지도 삼촌도 내가 찾아오니까 무척이나 놀라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군 그래도 핏줄이라 마냥 외면만은 할 수가 없었던것인지 아버지 현재 사시는 주소를 가르쳐주시긴 하더라 그때가 어느덧 내가 고2때인데... 난 어쩄든 그때 아버지 소식이라도 알수있다는 점에 뛸 듯이 기뻐하면서 아버지 사신다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가긴 했지만... 아버지댁엔... 들어가기가 더더욱 난감한 상황임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 아예 연락도 안되고 소식도 안 되는 어머니는 그렇다치고 - 헌데 일단 어머니한테 나한테 이모나 외삼촌이 되는 다른 친척이 있는지 여부도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여하튼 자기 대학동창의 동생한테 날 맡겨놓고도 정작 자기 친구든 학교동창이 되었든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그때까지 일절 연락을 끊고 살았다는걸 생각해보면 내게 어머니란 여자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 아버지의 경우엔 그 무렵에 무려 스물한살밖에 안된 러시아 여자와 재혼 알콩달콩 잘 살고 계시더라 사실 그때가 이미 혼기를 놓친 농촌총각이라던가 이런이들이 동남아는 물론 우즈베키스타까지 가서 동남아 여성을 구해와 결혼하는게 새로운 문화처럼 정착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지만 동남아도 우즈벡같은 중앙아지역도 아닌 스물한살 러시아여자라니... 그때 이미 고2인 난...피차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런 러시아여자와 함께 살고있는 아버지댁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일것이란 판단이 되어 바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을 나온 나는 월세방을 구한뒤 일용직 알바를 구해 일을 시작했지 사실 난 어차피 대학을 갈만한 처지나 형편은 못 되었기에 고등학교까지라도 무사히 졸업할수 있었던 것을 감지덕지하고 이쯤에서 적당히 생계수단을 찾아 그것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생각을 했었어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직업의 세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이가 선택할수 있는 직업의 수보다 최소한 대학은 나와야 선택할수 있는 직업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그래서...머지않아 하다못해 어디 허접한 대학 타이틀이라도 하나 있어야겠다 가나마나 대학의 배우나마나 학과라도 좋으니 일단 대학은 졸업하고나서 뭘 시작하자 결심하고 뒤늦게나마 대학입시준비를 했어 다행히 내가 중,고등학교때 그래도 공부는 좀 한편이었고 소위 노는애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록 상대적으로 이름은 없을지언정 그래도 서울시내에 위치한 4년제 대학에 진학이 가능했지...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년만의 일이야... 그러니 어찌보면...3수생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고나 할까 우려했던(?) 사태는 바로 벌어졌지 특히 내가 대학에 갓 신입생으로 들어가자 나보다 1년위인 2학년 선배들은 아무래도 나이많아 보이는 나를 3수생으로 지레짐작하더라 어쨌거나 졸지에 실제로는 나보다 한 살어린 2학년 선배들이 생긴셈인 나... 뭐 적당히 3수생 행세하며 다니는게...내 구체적인 신분이 발각나지 않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나도 그리 행세했어 대학에서 난 어찌어찌하다보니 나보다 한 살어린 2학년 선배인 희재선배,희준선배등과 어울려다녔다. 사실 날 3수생으로 추정한 희재선배,희준선배는 자신들보다 나이들어보이는 날 처음엔 어색해하긴 했는데 그래도 좀 어울리다보니 친근해지긴 했어 다만 희재선배는...난 그래도 나름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는데 내 인상이나 분위기가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거만하게 보였는지 ‘지가 3수를 했으면 했지...’ 하는식으로 씹었다더군... 어쨌든 대학에서 난 자연스레 나보다 한 살어린 선배인 희재선배,희준선배등과 어울렸는데... 가끔 뭐 식사도 같이 하고 술자리도 같이하고 그러면서... 난 처지가 처지라서 가급적 밤늦게까지 그네들과 어울리기 바랬는데 그러면 그들은 나한테 이러더군 ‘형, 집에 안가요 ?’, ‘후배님, 이제 그만 집에 가셔야죠 ?’, ‘OO씨, 집은 어디에요 ?’ 집에 안가요...집은 어디에요... 나로선 참 어찌 대답해야할지 난감해지는 말이더군. 난 이렇게 대꾸했어 ‘그래, 너희에겐 집이란게 있지...’ 왜 그런식으로 말했냐면 실은 고아원에 살 때 나보다 두 살많은 형과 같은방을 쓴적 있는데 그 형은 그때 이미 사실상 학업은 포기하고 알바나 이런걸 하며 살때였는데 그러면서 깨달은 세상이치나 노하우 같은게 있었는지 그 형이 이렇게 나한테 충고해주더라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도 혹시 누구한테 도움청할때는...가급적 은유적으로 상대방에게 암시를 주듯이...그런식으로 말해야지...노골적으로 ’저 요즘 너무 힘들어요 취직시켜 주세요 !!! 어떻게 해주세요 !!!’ 이렇게 노골적으로 애원하면 상대방에게 부담만 되고 될일도 더 안 된다 그렇게 그 형이 충고해주더라... 헌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 그 형 말대로 한걸 무척이나 후회하게 되었다 난 희재선배나 희준선배나 대충 보니까 그래도 좀 머리도 돌아가고 눈치도 좀 빠른 그런 선배들인줄 알았어 그래서 ‘그래, 너희에겐 집이란게 있지’, ‘당신들에겐 집이란게 있군요...’ 이렇게 슬쩍 암시라도 주듯 흘리면 그 선배들이 알아서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대충 눈치 챌거라 예상했어 헌데 아니었더라 다만 그 무렵 두 선배의 가정환경은 대충 알게되긴 했는데 희재선배의 경우엔 아버지가 언론사 간부시고 어머니는 청소년 상담사 희준선배의 경우엔 아버지가 명문대를 나온 대기업 간부 어머니는 이대 음대를 나온뒤 KBS 합창단에서 3년정도 일하신뒤 퇴직한후 이후엔 전업주부로 사시며 아이키우는데만 전념하셨지만 나름 교양도 있고 기품도 갖춘 그렇게 대충 봐도 그 시절 우리사회 기준으로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가진 그런 집안에서 자란 자녀들이었어 그리고 희재선배는 가족관계가 위로 누나가 둘 있는 막내고 희준선배의 경우엔 집안에서 3대독자(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독자(獨子)인) 그러니 ‘둘만낳아 잘기르자’는 국가시책과 ‘대를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 는 전통적 가부장적 가치관이 한참 충돌하던 시절 얼마나 귀한 대접받고 자란 아들들이었을지 능히 짐작할만하지 무엇보다...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전혀 있을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두 선배와 어울리며 그네들 집에도 가끔 놀러간적도 있었어 강남까진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우리나라에서 어느정도 잘사는 사람들이 밀집되어 사는곳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 희재선배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희준선배는 5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하고도 인사나눌 기회가 있었지 허나 밤늦은 시간되면 그분들은 자연스레 이러시더군 “ 얘, 그만 집에 들어가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 그만 집에 들어가렴...부모님이 걱정하시곘다... 초등학교 1학년떄...엄마친구도 아닌 그냥 엄마 대학동창의 동생네 집에 맡겨진후 어머니와는 연락두절...아버지는 어디사는지 알고는 있지만 젊은 러시와 여자와 재혼 한참 깨가 쏟아지는 분위기라서 차마 그 집안에 내가 들어가 살수 없는 처지 이런 나한테...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의 저와같은 말씀 ‘얘, 너무 늦었는데 그만 집에 들어가렴. 어머니,아버지가 걱정하시겠다...’ 이런말이 어떻게 들였을까...... 아무래도 내가 소싯적에 ‘사랑이 꽃피는 나무’나 ‘우리들의 청춘’ 같은 대학 캠퍼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을 너무 재미있게 열심히 봤던거 같아 난 솔직히 그런 드라마들 보면서 꼭 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로 특정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 아들 가진 중산층 이상 가정환경의 어머니들은 모두 ‘사랑이 꽃피는 나무’나 ‘우리들의 청춘’ 같은데 나오는 김창숙 아줌마나 서승현 아줌마 같은...그런 어머니들 같은줄 알았어 - 거 왜 그런 드라마에 보면 이따금 이런 설정 있잖아.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자 대학생에게 지방에서 올라와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이나 좀 열악한 환경에 사는 학생 한두명을...나중에 김창숙 아줌마나 서승현 아줌마 같은 이들이 등장해서 이런식으로 말하잖아 ‘얘, 그러지말고 정히 갈집이 없으면 우리집 들어와서 같이 살아라. 뭐 옛날엔 하숙도 치고 그랬는데...뭐 어떠니 ? 아니 하숙이 뭐니 ? 우리 OO이 친구라니까 그냥 다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스토리로 나가는줄만 알았어 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도 ‘TV는 사랑을 싣고’나 ‘우리들의 천국’ 같은데 나오는 김창숙 아줌마나 서승현 아줌마처럼 그렇게 나올줄 알았거든 ? 헌데 아니더라...실제로 나오는 반응은 대개 이랬어 ‘얘얘, 지금이 몇신데...집에 안가니 ?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 어서 집에 들어가렴...’ 사실 난 월세방도 구해야하고 또 학비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평일엔 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어 (* 고아원을 나와서 직장생활을 할때는 월세방이라도 구할수 있었는데 이땐 그럴 형편도 못 되었던거지) 엑스트라는...처음엔 사극에 몇편 출연하게 되었는데 사극이...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시절엔 보통 경복궁이나 이런 고궁에서 촬영을 했지 아마 요즘은 화재위험이나 기물파손 문제 때문에 고궁에선 촬영허가를 잘 안 내주고 제작사에서 자체 세트를 제작 촬영하는 것 같더군 난 그때까지 잠자리는 주로 기차역이나 전철역 같은데서 노숙을 하거나 또 때론 밤에도 열려있는 상가건물이나 아파트 단지 계단같은대라도 들어가서 잠을 청하고 날이 밝으면 학교에 가는 이런식으로 일상을 보냈는데 따라서 경복궁에서 사극촬영을 할때도 가급적 부지런히 일찍 출근하고 싶어서 촬영이 끝나면 촬영지인 경복궁 근처 가까운곳에서 잠을 청하고 날이 밝으면 대충 상가건물 같은데서 세수를 하고 출근하려 했던거야 헌데 보니까 경복궁에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무슨 안쓰는 건물인지 어떻게 되는건지 일단 내부로는 깊숙이 들어갈수 있고 추위나 비바람은 충분히 피할수 있는 딱 안성마춤인곳이...경복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더군 그래서 거기서 잠을 청하려 했지 촬영을 마치고 미리 점찍어둔 그곳으로 가서 피곤한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벨소리가 막 울리고 요란스러운 한떼의 차량이 도착하더군 그리고 누군가가 나한테 달려와서는 ‘뭐냐 !!!’고 외치더라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곳은 청와대 인근 보안시설이더군 사실 좀 이해가 안갔어...민주화가 되고나서 군사정권 시절 안가나 그런 것은 다 철거되었다고 들었는데...근데 그건 대통령 유흥이나 이런걸 위해 쓰였던 안가들이 철거된거고 그 외 청와대 경비나 간첩방지를 위한 보안시설들은 대개 그대로 남아있다 하더군 헌데 내가 경복궁 근처 그런대로 잠을 청할만한 ‘괜찮은 건물’이 하나 보여 들어간 그게 그런 보안시설이었던거야 난 안기부에 끌려가 밤샘조사를 받았지 무엇보다 부모도 집도절도 없는 나는 더더욱 수상쩍어 신원을 보증할만한 인물도 없는 사람이라 날 조사하는 안기부 관계자는 더더욱 수상쩍게 여기더군 한참만에...결국 사실은 엑스트라 알바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명하고 관련 매니저(* 매니저라면 흔히 유명 연예인들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의 그런 매니저를 생각할텐데, 엑스트라들을 조달,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매니저’ 라고 함)가 밤늦은 시간 연락을 받고 달려와선 겨우 신원이 확인되어 풀려날수는 있었지 - 덕분에 안기부 조사과정에선 일곱 살때 부모 이혼하고...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때 이후 연락두절, 아버진 러시아 새엄마랑 살고계시다...모든 집안사를 사실대로 다 불 수밖에 없었고... -.-;;;; 허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안기부에서 일단 풀려나긴 했는데 대신 날 신원보증을 해준 엑스트라 매니저가 날 X나 갈구는거야 ‘세상에 내가 남산 KBS 시절부터 엑스트라 조달업을 벌써 30년 가까이 한 사람인데...그동안 엑스트라들 관리하면서 별의별 사고치는 X들을 다 겪어 봤지만...세상에 간첩으로 오해받는 경우는 니X이 처음이다 !!!’라며 ‘아니 도대체 어떻게 군사정권때도 안 겪어봤던일을 소위 문민정부가 출범한 시대에 내가 다 겪을수가 있는거냐 ?’고...그야말로 수많은 엑스트라를 관리하면서도 무슨 간첩 오해를 받아 정보기관에서 조사받고 하는 경우를 군사정권 시절에도 못겪어봤는데...심지어 소위 민주화가 되었던 시대에 이런일을 겪으니...그런데 연루된 날 진짜 어지간한 문제아로 봤던거지 결국 난 엑스트라 일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짤릴 수밖에 없었어... 엑스트라 일은 짤렸으니 월세방은 새로 구하기 어렵게 되었고 학교는 계속 다녀야했으니 난 다시 새로운 거처를 찾아보는수밖에 없었지 사실 근데 일전에 봐둔적이 있는 참 안성마춤인데가 하나 있었어 실은 내가 다니는 A대학 뒤로 산이 하나 있는데 희재선배,희준선배랑 가끔 산책삼아 그 산에 오를 때 마침 거기 안 쓰는 텅빈창고 비슷한게 눈에 들어왔거든 그땐 관심이 없었지만 처지가 이렇게되니 차라리 거기를 숙소로 삼자 그 생각을 한거지 - A대학에 기숙사가 있긴 했는데 여학생들만 이용할수 있는곳이라 난 해당사항이 되지 않았어 사실 처음 그 창고를 얼핏 봤을때는 먼발치라 몰랐는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제법 안성마춤이란 생각이 들더라 일단 생각보다 공간도 제법 넓었고 여기저기 이런저런 집기나 나무의자,책상 따위가 너저분하게 널려있긴 했지만 정돈만 잘하면 책상은 물론 침대대용으로도 충분히 쓸만한 물건들이 될 수가 있었어 날 추워지면 어디서 이불로 쓸수있는것만 구하면 거기서 그냥 침대이용하면서 겨울을 날수도 있겠다 그 생각을 하니 내 가슴은 잔뜩 희망에 차 부풀어오르기 시작했지 - 집도절도 없는 떠돌이가 겨울에 이불덮고 잘 공간이 생긴다는것만으로도 느끼는 기쁨은...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거야 또 하나 특이하게 문을 안에서 걸어잠글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러니 안에서 잠구고 밤에 잠들면 누가 들어와서 귀찮게 하거나 할 일도 없어서 더더욱 좋겠다. 그래서 학교 뒷산 빈 창고를 임시숙소로 정했지 학교도 바로 학교 뒷산이니 얼마든지 일찍 등교를 해 강의실에 들어갈수 있고 이래저래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 그래서 한 며칠을 숙소로 썼는데... 어느날 아침...한떼의 사람이 들어오더라 문을 안에서 잠굴수 있게 되었는데...자기네들끼리 열쇠가 있는것인지 여하튼 어떻게 들어왔는지 한떼의 젊은 남녀가 날 깨우며 이렇게 묻더라. ‘아저씨 뭐에요 ? 뭐하는 사람인데 여길 들어오냐구 !!!’ 삼수생이나 다름없는 1학년이기도 했지만 좀 나이들어보이는 인상과 분위기 탓인지...더더욱 수상쩍게 여기는 그들 아뿔사...나중에 알았지만 거긴 사실 그 대학 한*련 비밀 아지트였던거야 난...한총련 애들한테 이번엔 안기부 프락치 가능성을 의심받아 원래 숙소로 삼으려 했던 빈 창고에 감금된 상태가 되어 조사를 받았어 그때 새삼 깨달은 이치(?)가 있다면 안기부에서 하루 밤샘조사 받는것보다 운동권 애들한테 사흘동안 감금되어 조사받을때가 더 고통스럽고 힘들다는거야 와...진짜...물론 이땐 민주화가 되어있을때라 안기부도 이전에 비해 조사하는 강도가 많이 누그러진 면도 참고해야겠지만 18...진짜 운동권 애들이 안기부보다 더하더라... 말 나온김에 덧붙이지만...안기부는 그래도 밤샘조사 하면서 ‘배 안 고프냐 ?’며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밥이나 먹으라며 중간에 쇠고기 국밥도 시켜주더라 근데 한총련 X끼들은...사흘을 가둬놓고 조사하면서 그 흔한 커피한잔을 안 주더라...하마터면 운동권 애들한테 고문당해 죽는것도 아니고 굶어죽을뻔했다...18... 안기부에서 조사받을땐 엑스트라 조합 매니저가 신분보장을 해줘서 풀려났지만 이번엔 희재선배,희준선배가 연락을 받고 달려와 내 신분보장을 해주서 풀려날 수 있었지 허나 그런일을 겪고나니...희재선배,희준선배도 나랑 어울리는걸 꺼리는 분위기더라 무엇보다 나 역시...한번은 안기부애서 간첩으로 오해받아 한번은 운동권 애들한테 반대로 안기부 프락치로 오해받아 이런 처지에서 계속 떠돌이 생활을 했다간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에 철판깔고 아버지를 찾아가보기로 했어 고2때 소식은 알수있었지만 그때 이미 20대 초반 러시아 여자와 재혼 알콩달콩 잘 살고 계시기 때문에 차마 들어갈수가 없었던 그 아버지 집으로... 작심하고 아버지 집으로 찾아가기로 한날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그것도 몹시... 어차피 평일 낮이니 직장생활을 하시는 아버지가 퇴근하실때까지 기다려야겠기에 난 일단 대문앞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대충 비를 피하며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는데 그러다 깜빡 잠이들었으려나 헌데 깼을때는...웬 경찰차 사이렌이 들리고 있었어 나중에 알았지만 마트에 장이라도 보기위해 잠시 외출한 러시아 새엄마가 돌아오는길에 기겁했나봐 자기집 대문앞에 웬 낯선 남자가 그러고 잠들어있으니 러시아 새엄마와는 피차 초면이니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필 확인해볼 생각도 안하고 바로 경찰에 전화부터 하다니 - 그것도 안기부에서 조사받은지 얼마되지도 않는 나한테말야. -.- 일단 경찰서에서 해명을 했고 아버지는 물론 큰아버지랑 삼촌까지 연락을 받고 달려와 난 일단 풀려날순 있었지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어 그러고보니 정말 14년만에 만나는 아버지네 피차 얼굴도 못 알아볼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 엄마가 대학동창(친구도 아닌 그냥 대학동창)의 동생네 날 맡기고 떠났을 때 이미 아버지하고도 연락이 끊긴 상태고 그때부터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각기 3년...그리고 삼수생이나 다름없는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그 정도 시간이 흐른거지 난 일단 아버지한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만약 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제가 함께 사는게 정 불편하면 학교 졸업하고 나면 제가 알아서 일자리를 알아보든 해서 나가든가 할테니 제발 대학 졸업할때까지만이라도 이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려 했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묻더라. ‘군대는 ?’ 와...18...진짜 충동적으로 자기 부모 때려죽였다는 자식 심정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게 14년만에 만난 아들앞에서 그것도 제1성으로 물어볼 소리냐 ? ‘이X아 !!!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녔고 ? 그래...걱정마라. 새엄마한테도 내가 사정을 잘 말씀드릴테니...애비가 있으니 그냥 여기가 니 집이지 뭐...그러니 괜히 딴데서 또 고생할생각 말고...이제부터 이 애비랑 같이 살도록 하자...’ 이 정도 수준까진 바래지도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그동안 어디서 뭘하며 어떻게 지냈고 어쩌다 이렇게 14년만에 자기집까지 찾아오게되었는지 경위정도는 물어봐줄줄 알았는데 대뜸 묻는 제1성이 ‘군대는 ?’이라니 ? 뭐 어차피 이때 내 나이도 20대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이니 군대갈 나이가 되긴 했다만.. - 게다가 난 엄밀히 따져 무슨 3대독자나 이런것도 아니고 집에 부양해야할 노모나 먹여살려야할 어린 동생들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증의 신체장애니 질병같은게 있어 온전히 군생활을 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조건이 안되는것도 아니니... 그 어느 면제사유에도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꼼짝없이 군대에 가야할몸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4년만에 만난 아들한테 묻는 제1성이 ‘군대는 ?’은 좀...너무한거 아니냐 !!! T.T 어쨌거나 난 대충 집도절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대학 졸업할때만이라도 의탁할곳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대충이나마 드렸고 아버진 고민스럽게 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장시간 고민하는 듯 하더니... ‘당분간만...쉬어라...’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군대는 ?’ ‘당분간만...쉬어라...’ 안기부에까지 끌려가 간첩으로 오해받아 조사받고 한술더떠 운동권 애들한텐 안기부 프락치로 오해받아 죽을고생하고 결국 의탁할곳이 없어 14년만에 아버지 집으로 찾아온 아들한테 아버지가 한 말씀은 저 세마디가 전부였다... 2층 빈방을 대충 배정받아 그곳에서 짐을 풀렀다. 헌데 한 십여분이나 지났을까. 아버지와 결혼한 젊은 러시아 새엄마가 2층으로 올라오시더라 뭐...맛있는것도 갖다 주시던가 아니면 나에대해 궁금한게 있어 그런거라도 물어보시려 올라오신건가... 하는 기대감은...2초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러시아 새엄마의 올라온 용건은 짧고 간단명료했다 ‘죄송하지만 2층에서만 생활하시고 1층에는 내려오지 말아주세요 제가 지금 나이도 어리고 임신 초창기라 많이 예민해서 그러거든요 그러니...여기 2층에 화장실도 있고 부엌에 조리시설도 다 있으니 가급적 2층에 있는 시설들을 이용해주시고 1층앤 내려오지 말아주세요 제가 임신 초창기라 많이 예민할때니 좀 배려해주세요’ 그게 용건이더라... 우와 진짜...뭐 젊은 여자 입장에서 장성한 의붓아들이 어색한것까진 그런대로 이해해준다 치자. 허나 자신이 임신을 했으면 했지...그걸 또 굳이 강조할 이유는 또 뭔가 ? 이건 뭐...날 아예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니 !!! 아무렴 그런거에 환장한 놈이기로 그것도 임신까지 했다는 초면의 젊은 새엄마를 건드리겠나 !!!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초면의 낯선 의붓아들한테 저런소리가 다 나오냐구 !!!’ 백번 양보해서...여하튼 날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 한건...젊은 여자 입장에서 초면의 낯선 남자 충분히 경계하는 마음에 나올수도 있는 이야기다...거기까진 이해해준다 이거야 !!! 근데 지가 임신을 했으면 했지...그건 또 굳이 왜 강조하냐구 !!! 아무렴 내가...그런 임신한 젊은여자까지 건드리는 파렴치한이겠냐 !!!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보구 T.T ... 이게 나라냐 !!! 18...-.-;;;; 헌데 다른건 다 그렇다치고 천상 학교갈때는 1층으로 내려가야 할거아냐 학교갈 때 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릴순 없는일이니까... 그래서 그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럼 학교갈 시간만 미리 말씀해주세요. 그럼 그 시간에만 1층 내려오는거 허용해 드릴께요. 이러고 가더라... 와 18...진짜 이제와 하는말이지만 그래도...엄마 대학동창(거듭 말하지만 친구도 아니고 그냥 대학동창...) 동생네 얹혀살땐...뭐 아직 초등학교 어린나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집 딸들은 나 엄마없이 자라게 된게 불쌍하다고 가끔 간식도 챙겨주고 그랬었다 근데... 그래서 그때 깨달았다...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한집에 산다는 것은 엄마 대학동창 동생네 딸들과 함께 사는것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될수 있다는 것을...... 헌데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러시아 여자랑 재혼한게 내가 고2때 일인데... 그리고 내가 삼수생이나 다름없는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그후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여태 뭐하다가(?) 이제야 새엄마가 첫 아이를 임신한건지 그게 좀 이해안가지만 그건 어차피 아버지와 새엄마의 사적 영역이니 내가 알수는 없는 부분이고 또 한가지...어쨌든 러시아 새엄마 말에 의하면 2층에도 별도의 부엌이 있다는 소리니...꽤 집이 큰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아님...2층집이지만 1층도 2층도 실평수는 30평이 채 안 되는 그 정도 크기고... - 뭐 그래도 1,2층 다 합하면 60평 가까운 크기긴 하다만 ^^; 어쨌든 결코 크다고는 할수 없는 집인 이런집에 1층은 물론 2층까지 부엌이 따로있을 필요가 있는건지...그것도 좀 이해가 안 가지만 어쨌든... 비록 새엄마로부턴 1층에 절대 내려오지 말라는 경계가 담긴 엄명을 들었을지언정 난 안도의 한숨을 쉴수가 있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적어도 이제 한동안은 내가 편안히 잘 수 있는 집이 생긴 것이 어딘가... 이제 더 이상 학교 파하고 갈곳이 없어 쓸데없이 밤늦게까지 배회하지 않아도 되고...날이 추워지면 어디서 자나...여름이 되면 또 어떻게 견디나 그럴 걱정 할 필요 없는 마음편히 자고 쉬고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그 자체가 좋았다. 얼마나 좋았으면...대학 동급생들과 술을 한잔 했다 이때는 원래 어울리던 희재선배,희준선배는 운동권한테 내가 안기부 프락치로 오해받은 사건 이후론 날 경계하고 멸리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동급생들과 술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동안 주로 어울린게 희재선배랑 희준선배였기 때문에 동급생들과 친해질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모처럼만에 동급생들이 술한잔 하는데 한자리 낀거야 그리고는 자랑스레 말했지. 너무 감격스런 눈물까지 흘리며 이제 나도 집이 생겼노라고...이제 나도 학교 끝나고 갈곳이 있노라고 이제 더 이상 수업 끝나고 갈곳이 없어 여기저기 밤늦게까지 배회하며 방황할일 없노라...울며불며 한참 횡설수설 했는데 동급생애들도 희준선배나 희재선배처럼...대개는 먹고살만한 가정환경에서 별다른 어려움없이 자란 애들이라 그런지 내 말 거의 못알아듣는 눈치더라 그래도 난 너무 기쁨에 겨워 한동안 자랑스레 그런 이야길 주절주절 늘어놓았던거야 그리고 술에 많이 취해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아빠와 젊은 러시아 새엄마가 사는집에 헌데 그러고보니 아빠와 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살아서 진짜 좋은 이점은 밤늦게 술먹고 들어와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더라... 일단 둘 다 나는 관심밖에 있는 사람들이라 봐야할테니 여하튼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서는 2층 내 방에 들어가 대충 퍼질러잤다 술도 많이 취했으니 옷만 대충 벗어던진채 그대로 쓰러져 잔거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 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아직은 어두운 밤시간... 아직 정신은 다 맑아지지 않은 몽롱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때이긴 한데 방에...내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 원래 내가 쓰는 가방은 두 개다. 하나는 학교갈 때 쓰는 보통 책과 노트,필기구 따위를 넣어두는...그야말로 학생가방 대충 샐러리맨들 서류용 가방과 비슷한 분위기의 그 정도 크기 가방이고 그 외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옷가지와 세면도구 정도는 넣어놓고 다니는 조금 큰...여행가방 정도 크기의 짐가방이 또 하나 있는데 떠돌이 생활 할떄는 책가방은 늘 소지하며 학교를 다녔고 짐가방은 옷갈아 입을때랑 세수할떄를 빼놓고는 보통 지하철 사물함이나 이런데 보관해두곤 했었다 허나...이제 ’집‘이 생겼으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어쨌든 아버지로부터 당분간이든 어쨌든 이 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가방부터 먼저 챙겨 가져왔는데...책가방도 여행가방도 둘 다...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둘 다 보이지 않았어 2층의 내 방이래봐야 기껏 성인 한두명정도 누우면 꽉 차는 그리 넓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그 정도 평수인데... 거기서 가방이 어디 깊숙이 들어가거나 할수도 없을텐데 통 안 보이는거야. 난 혹시 내가 취중에 귀찮아서 가방을 1층 거실에 대충 떨어뜨린 것 아닌가 싶어 아직 술이 덜 깬 몸 상태로 비틀거리며 1층으로 내려가봤지 어둠속에서 여기저기 더듬다가 ‘물컹~!’ 손에 잡히는게 있었어 느낌에 가방인가...싶어...근데 여행가방인지 책가방인지 확실치 않아 난 확인을 해보려했어. 짐가방의 경우엔 지퍼로 열 수 있는 구조고 책가방은 가운데 단추가 있어 그걸 누르면 열리는 구조거든. 일단 뭔가 짚이는게 있어서 난 짐가방 지퍼인가 싶어 내리려했지 근데 웬지 제대로 내려지지 않는거야. 난 내가 아직 술이 덜깨서 몸이 말을 안 듣는건가 싶어 좀 더 힘을 내서 지퍼를 열려고 했지 그러나 여전히 안 열리는 것 같아서 ‘옳아~! 짐가방이 아니라 책가방이었구나...그럼 그렇지...하고...’ 이번엔 단추를 누르려했어. 책가방 문을 열 수 있는 가운데 단추구멍을 찾았지... 헌데 이번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단추구멍도 손에 안 잡히고 눌러야하는 버튼도 잘 안눌려지는 것 같더라 혹시 가방문이 고장나서 잘 안눌리는건가 싶어 여하튼 다시금 버튼을 찾아 눌러보려 했어 째지는 여인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건... 확실히 그때까진 아직 내가 많이 취한 상태란 변명은 가능할게다... 불이 확~~~!!! 하고 켜졌어. 내가 최악의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지 러시아 새엄마가 1층거실 바닥 한가운데 누워있었고 내가 처음엔 짐가방 지퍼려니 하고 열려고 했던 것은 새엄마의 팬티였고 가방 버튼이나 단추구멍인줄만 알고 누르려 했던 것은 그래...바로 거기...여인의 은밀한 부분... 질구...라고 하더가... 거길 책가방 버튼인줄 알고...누르려 했던거야... 새엄마는 째지는 비명을 연거푸 지르고 있었고 아버지가 놀라 방에서 나와 불을 켰을때는 난 새엄마 팬티에 손을 집어넣은채 팬티는 내리고 한손으로 새엄마의 엉덩이와 질구 부위를 손으로 움켜쥔채 (그곳을 책가방 단추버튼이라 생각하고) 계속 누르는...상황이었지... 새엄마는 기겁하며 날 밀치고 달아나 아버지 품에 안겨 사시나무 떨 듯 하며 울고있었고 격노한 아버지는 날 반 죽도록 두들겨 패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당장 내집에서 나가 !!!’ 라고... 무슨 변명을 할수도 할 기회도 없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지... 그렇게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 집에서조차도 쫒겨나야만 했던 나 한동안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던 나 다시 밤에 열려있는 4층짜리 상가건물 같은데 들어가거나 아파트 계단이나 복도같은데 들어가 잠을 청한후 날이 밝으면 학교에가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러다 하루는 그날도 그런식으로 한 열려있는 4층건물안으로 들어갔다가 좀 뜻밖의 시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는 기독교 선교단체 사무실이었는데 열려있는 안으로 들어가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게...무슨 시설이 열악해서 충격을 받은게 아니라 (*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상가건물이나 아파트 계단에서 잠을 청하는 나보다 생활이 더 열악한 집이나 가구는 존재할 수가 없지 ^^;;) 사무실과 살림집이 함께 연결이 되어있는 그런식의 구조인 곳은 처음 보았거든 그게 선교단체든 시민단체든간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같은 경우엔 사무실과 살림집 공간이 연결되어있어 함께 쓰는 그런 구조의 사무실을 처음봤다는 이야기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마침 ‘누구요 ?’하고 방에서 나오는 아마 그곳 대표인듯한 분에게 - 역시 나중에 알게된것이지만 그분은 나이 30대 후반에 전도사가 되신 늦깎이 전도사였고...게다가 독신이라서...그런식으로 아마 집을 따로둔채 출퇴근하기가 귀찮았는 듯(* 솔직히 집구하기가 쉽지 않았었을수도 있고 ^^;;) 선교단체 사무실 옆에 별도의 살림집 구조를 만들어 그렇게 두칸을 이용하고 계신거였다 여하튼 들어가보니 욕실도 침실도 부엌도 다 딸린 그런곳이라 애원해봤어. 사실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떠도는 몸인데 대학졸업할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먹고자게 해주시면 안되느냐고 전도사님은 난색을 표하셨다 난색을 표한게...생전 처음보는 모르는이가 너무 황당하고 해괴한 부탁을 한것도 이유지만... 실은 그 살림집의 두어개 여분의 방은 그 선교단체에서 데려온 탈북자들이 정착할 집이 생길때까지 잠시 머물만한곳을 만들기 위해 만든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한테 내어주기 곤란하다는거지 임마 !!! 세상에 벼룩의 간을 빼먹지...아무리 그래도 탈북자 돕는 단체에 가서 니가 도움을 청하냐 !!! 라고 손가락질하지마라 니들이 한번...초등학교 1학년때 부모 이혼으로 어머니 대학동창 동생집에 맡겨지고 이후론 엄마와도 연락끊기고 다시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등학교때 아버지 소식알아 찾아가봤더니 러시아 새엄마랑 살고있고 게다가 한번은 안기부 애들한테 한번은 운동권 애들한테 간첩으로 오해받아 곤욕치르고 모처럼 찾아간 아버지 집에선 젊은 러시아 새엄마한테 파렴치한 성*행범으로 몰려 쫒겨나고... 이래서 오갈데없는 신세되어 상가건물이나 아파트 계단,복도 같은데서 한 몇 달 자면서 지내봐...탈북자고 나발이고 그딴거 가릴 정신적 여유가 생기나 !!! 여하튼...대학졸업할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먹고잘수 있게 해달라 그 다음엔 제가 알아서 일자리를 구하든 거처를 마련해든 알아서 나갈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애원하는 날 전도사님은 난감해하셨고 그러다 밤이 가고 날이밝아 아침이 되자 선교단체 사무간사가 출근을 하더라 사무간사는 이때 30대 초반 정도된 독신여성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내게 이러더라 ‘OO교회로 가보세요. 거기 목사님 설교가 참 좋아요 !!!’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때 그 사무간사가 추천해준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가족구원,영혼구원’ 문제와 관련한 불꽃같은 설교를 하시는걸로 꽤 유명한 그런 목사님이시라고 했다. 대형교회 수준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한 몇백명 성도는 출석하는 서울 OO구 지역에서 제법 유명하고...교단에서도 여하튼 ‘가족구원 설교’에 관해선 여하튼 캡빵급인 그런 유명한(무슨 정치적으로 유명하다던가 그런 세속적 권위말고 그야말로 영혼설교와 관련해서 유명한) 목사님이시라고 했다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그 사무간사 누나가 추천해준 OO교회(* 가족구원 설교로 유명한 목사님이 시무하신다는)에 다음 주일에 가보긴 했다 그러고보면 그 날이 내 생전 처음 교회라는데 가본날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그날 목사님 설교 주제가 ‘어머니’와 관련된 주제더라 뭐 대충 성경에 나오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훌륭히 양육한 일화 두어가지 그리고 아마 산업화 시대에 있었던 일종의 전형같은 스토린가본데 일자리를 구하기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농촌,지방 청년들이 많던 그 시절 객지에서 고생하면서도 ‘얘야, 어떤일이 있더라도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리렴’ 하고 편지보내시는 어머니의 신앙심에 힘입어 서울에서도 신앙생활 잘하고 좋은직장구해 돈도 잘벌고 성공한 그런 사람의 이야기까지 뭐 대충 그런 예화,일화들을 뒤섞어 설교하시더군 그리고 그 설교가 대충 절정에 이를때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자, 이제 옆자리,앞뒷자리 성도분들과 교제나누십시다. 옆자리,앞,뒷자리 성도분들과 이렇게 인사 나누십시오 ‘어머니의 양육하심이 있어 온전한 그리스도의 자녀로 성장할수 있었습니다’ ’ 목사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성도들은 대충 자기 옆자리,앞자리쯤 앉은 성도들과 그런식으로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난 순간...좀 멍하게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분이 어땠을 것 같냐 ?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는 날 엄마 대학동창 동생네집에 버려두고 떠났고 고2때 소식들 듣게된 아버지는 러시아 여자와 재혼 살고계시고 그 러시아 새엄마한테 성*행범으로 몰려 집에서 쫒겨난 내가 옆자리 앞자리 성도들과 ‘어머님의 양육하심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의 자녀로 성장할수 있었다’ 뭐 이런식으로 말을 하든 인사하든 어쩌란 소리에... 난 어떤 기분이 들었을거냐구 일단 그건 ‘거짓말’이잖아 물론 어차피 그 교회에 난 그날 생전 처음 간거고 옆자리 성도건 앞자리 성도건 다들 그날 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대해 알지도 못할뿐더러 막말로 오늘만 이 교회가고 다음부터 안오면 영원히 볼일 없을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어머니가 잘 양육해주셔서 예수그리스도 자녀가 되었다느니 어쩌느니...... 이런 ‘거짓말’을 한다고 그게 거짓말인지 참인지 그네들이 알수도 없을터인데 그냥 그러니 얼굴에 철판깔고 그렇게 말해버리면 될일을 그래도 꼴에 양심이 있는 X이라서 차마 그날 처음보는 옆자리,앞자리 성도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내 좌우 옆자리엔 아마 그 교회 집사,권사님쯤으로 추정되는 40-50대 아주머니가 그리고 앞자리엔 20대 젊은 여성도 두어명이 앉아있었는데 이미 목사님 말씀대로 어느덧 내 손을 부여잡고 ‘어머니의 양육하심이로 예수그리스도의 자녀로 온전히 성장할수 있었습니다’ 이렇게...자랑질하고 있더군... 솔직히 부아가 치밀어올라 성질같아선 ‘야 !!! 이 XXX들아 !!! 일곱 살때 에미가 날 지X 대학동창 동생네 버리고 가서 에미는 어디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얼마전에 새파랗게 어린 젊은 러시아 새엄마한테 성*행범으로 오해받아 쫒겨난X이다...근데 무슨 에미한테 예수 뭘로 양육되고 뭐고 할게 있겠냐 !!! 뭘 좀 제대로 알고말해 !!! 이 XX같은 쓰레기 목사야 !!!’ 라고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으며 생난리를 치고 싶은 심정을...한껏 억누르며 그러다고 생전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어머니의 양육하심으로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 양육될수 있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할수도 없기에 난 그냥 멍하니 내 손을 잡고 인사하는 앞자리,옆자리 아줌마,아가씨 성도들을 바라보며 가만있을 수밖에 없었어 사실 목사님의 설교는 보편성을 띠어야한다 어느 특정 한두 성도만을 상대하는분이 아니시잖아 가령 아무리 작은 4층상가건물 한칸 빌려서 하는 교회라도 성도가 수십명은 될테고 또 그 지역에서 어느정도 이름난 중규모 교회라면 성도가 수백명은 될테고 또 심지어 이름난 대형교회중엔 성도가 수천명에 이르는곳도 있다며 ? 그러니 수십명이든 수백명이든 수천명이든 그 많은 성도들을 상대로 ‘보편적 설교’를 해야하는 목사님이 어느 한두 특정인만을 위한 맞춤형 설교는 할수 없는게 맞아 그러나...하필이면 내가 처음으로 교회에 간날 들은 설교가 그런 내용이라니... 이건...하나님이 고의적으로 날 교회에서 쫒아내기로 작정하신게 아니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란 생각마저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나하곤 이렇게 완전히... 그냥 안맞는정도가 아니라 아주 상극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의 설교를 할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하나님이 날 작정하고 교회에서 쫒아내시려 하시는구나 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거지 결국 탈북자 선교단체 사무간사가 추천해준 OO교회에 (그것도 생전처음 교회에 간날) 설교를 듣고 나와서는 난 어디선가 휘발유통을 하나 샀어 그리고...아버지 집으로 향했지...날 쫒아낸 아버지와 러시아 새엄마가 있는 그 집으로 그냥 쫒아낸것도 아닌...그것도 날 젊은 새엄마를 **행이나 하는 천하 파렴치한으로 몰아 쫒아낸 그 연놈들이 있는 집으로 말이지... 벨을 누루고 놀라서 막으려는 아버지를 밀쳐내고 휘발유를 집에 한껏 뿌린뒤 불을 질렀다 아버진 놀라 경찰에 신고하러 달려가셨고 집에 불이 붙어 막 타오를때쯤 나는 아직 달아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러시아 새엄마를 붙잡아 불길속에 집어던져버렸다 내 인생을 이꼴로 만들어버린 그 결정적인 원인제공자라는 생각에 이 내 몸속 쌓인 모든 분노,증오,혐오의 마음을 한데담아 임신중이기까지 하다는 젊은 러시아 새엄마를 불길속에 집어던져버렸다...... 집에가... 원론적으로는 틀린말은 아니다 허나 만약 집에 돌아갈수 있는 처지나 환경이 못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는걸까 ? 가령 한 10년만에 아버지한테 찾아갔더니 아버지는 새파랗게 젊은 외국인 새엄마랑 알콩달콩 잘 살고 있어서 도저히 그 집에 들어갈수 없는 경우라던가... 또 이전에 봤던 어떤 드라마엔 입양을 한 막내아들이 가출을 해서 그로인해 힘들어하는 그런 가족들의 이야기를 방영하는것도 본적이 있다 헌데 내가 알기로 그 드라마의 경우 제작취지 자체가 돈을 벌기위해 지방이나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은 그 시절 그 세대들의 두고온 고향이나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담기위해 만든 드라마로 알고 있다 그러니...얼핏보면 꽤 현실적이고 일상을 담은 드라마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런 드라마가 오히려 집,고향,부모 이런것들에 대한 하나의 환타지를 그린것일수도 있고 오히려 실제상황이라면 이런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머리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더니만...오갈데 없는거 불쌍해서 근본도 모르는걸 거두어 키워줬더니...은혜를 갚아도 시원찮을판에 허구헌날 사고만 치다 집까지 나가 !!! 에잇~~~!!! 망할 것 같으니 !!! 야 !!! 아무개 그 X식 혹 나중에 돌아오더라도 절대 받아주지마. 이미 호적에서도 다 정리해버렸으니까 !!!’ 때론 어떨땐 드라마가 오히려 더 말이 되고 현실이 더 말이 안되는 경우도 더 많고 사실적으로 그린 것 같은 드라마가 오히려 진정한 환타지를 담은 경우도 있다. - 굳이 구분하자면 착한 환타지라고나 할까... 집에가... 원론적으로는 틀린말은 아니지만... 만약 집으로 돌아갈수 없는 그런 처지나 환경에 놓인이가 아니라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
젊은 러시아 여자
언제였을까...
그런 드라마를 우연히 본적이 있었다
장르가 청소년 드라마인지 농촌드라마인지
기억이 정확친 않는데
주인공은 아니고 대략 조연 내지 단역쯤 되는
극중 대략 중,고생 정도 되는 가출청소년으로 설정된듯한 아이를
극중 주연급 등장인물들이 아마도 다들 착한(!) 사람들이었는지
‘얘,너 집에가...’ 하면서 집에 가라고 촉구하는
대충 그런 내용의 드라마를 본적이 있었다
좀 지루하고 짜증날정도로 극중 주연급인 어른들이
‘집에가’라는 대사를 반복하는...
헌데 난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저 아이가
돌아갈 집이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집에갈 처지가 못되는 그런 환경이나 상황에 처한
그런 아이면 어찌되는것인가 하는...
나는 일곱 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그리고 양육권 문제가 좀 X같이 돌아갔는지
나는 부모님중 어느 한쪽이나 친척집도 아닌
무려 엄마의 대학동창의 동생네 집안에 맡겨져
한동안 살아야했다
엄마 대학동창의 동생이란 그분댁엔
대략 나랑 비슷한 나이의 딸도 두명 있었던 것 같은데
난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도 엄마친구나 이모도 아닌
이런집에 얹혀살면
최소한 눈밖에 나는일이나 말썽을 부려서는 안되겠다는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아이였던지
가급적 말썽 안부리고 튀는행동 안하고
조용히 살려고 했었다
허나 세상일이 다 내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것인지
그래도 대략 초등학교 6학년 될 때까진 무난하게 그분 댁에서 살았는데
일단 그분도 당신 딸들이 점점 자라는 상태라서
교육비나 생활비가 점점 더 들어가는 문제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때 이미 엄마는 연락이 두절된지는 오래인 상태라
나하고는 물론 엄마 친구든 엄마친구의 동생이나 다른 지인이든
일절 엄마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점점 자라나는 게다가 사내아이이기까지 한 날
어느덧 자라 사춘기로 접어드는 딸이 둘이나 있는 그분이
계속 거두어 키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시더군
그래서 난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고아원에 맡겨져
고등학교를 마치고 정해진 연령대가 되어 고아원을 나오기 전까진
고아원에서 자랐다
사실 나도 그때 만 18세 정도가 되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규칙대로 고아원을 나와야 한다는 규칙 정도는 대충 알고 있었기에
연락 안되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 소식이라도 알려고
수소문을 해봤다
기억에 어릴때지만...아버지한테 내게는 큰아버지와 삼촌이 되시는
위로 형님 한분, 아래로 남동생 한분이 더 계셔서
그분들 사시는 동네에 명절같은데 한두번 가본 기억이 있어서
한번 그리고 찾아가보았지
큰아버지도 삼촌도 내가 찾아오니까 무척이나 놀라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군
그래도 핏줄이라 마냥 외면만은 할 수가 없었던것인지
아버지 현재 사시는 주소를 가르쳐주시긴 하더라
그때가 어느덧 내가 고2때인데...
난 어쩄든 그때 아버지 소식이라도 알수있다는 점에
뛸 듯이 기뻐하면서 아버지 사신다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가긴 했지만...
아버지댁엔...
들어가기가 더더욱 난감한 상황임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
아예 연락도 안되고 소식도 안 되는 어머니는 그렇다치고
- 헌데 일단 어머니한테 나한테 이모나 외삼촌이 되는 다른 친척이 있는지
여부도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여하튼 자기 대학동창의 동생한테 날 맡겨놓고도
정작 자기 친구든 학교동창이 되었든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그때까지
일절 연락을 끊고 살았다는걸 생각해보면 내게 어머니란 여자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
아버지의 경우엔 그 무렵에
무려 스물한살밖에 안된 러시아 여자와 재혼
알콩달콩 잘 살고 계시더라
사실 그때가 이미 혼기를 놓친 농촌총각이라던가 이런이들이
동남아는 물론 우즈베키스타까지 가서 동남아 여성을 구해와
결혼하는게 새로운 문화처럼 정착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지만
동남아도 우즈벡같은 중앙아지역도 아닌
스물한살 러시아여자라니...
그때 이미 고2인 난...피차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런 러시아여자와 함께 살고있는
아버지댁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일것이란 판단이 되어
바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을 나온 나는
월세방을 구한뒤 일용직 알바를 구해 일을 시작했지
사실 난 어차피 대학을 갈만한 처지나 형편은 못 되었기에
고등학교까지라도 무사히 졸업할수 있었던 것을 감지덕지하고
이쯤에서 적당히 생계수단을 찾아 그것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생각을 했었어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직업의 세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이가 선택할수 있는 직업의 수보다
최소한 대학은 나와야 선택할수 있는 직업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그래서...머지않아 하다못해 어디 허접한 대학 타이틀이라도 하나
있어야겠다
가나마나 대학의 배우나마나 학과라도 좋으니
일단 대학은 졸업하고나서 뭘 시작하자 결심하고
뒤늦게나마 대학입시준비를 했어
다행히 내가 중,고등학교때 그래도 공부는 좀 한편이었고
소위 노는애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록 상대적으로 이름은 없을지언정 그래도
서울시내에 위치한 4년제 대학에
진학이 가능했지...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년만의 일이야...
그러니 어찌보면...3수생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고나 할까
우려했던(?) 사태는 바로 벌어졌지
특히 내가 대학에 갓 신입생으로 들어가자
나보다 1년위인 2학년 선배들은 아무래도 나이많아 보이는 나를
3수생으로 지레짐작하더라
어쨌거나 졸지에 실제로는 나보다 한 살어린
2학년 선배들이 생긴셈인 나...
뭐 적당히 3수생 행세하며 다니는게...내 구체적인 신분이
발각나지 않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나도 그리 행세했어
대학에서 난 어찌어찌하다보니
나보다 한 살어린 2학년 선배인
희재선배,희준선배등과 어울려다녔다.
사실 날 3수생으로 추정한 희재선배,희준선배는
자신들보다 나이들어보이는 날 처음엔 어색해하긴 했는데
그래도 좀 어울리다보니 친근해지긴 했어
다만 희재선배는...난 그래도 나름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는데
내 인상이나 분위기가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거만하게 보였는지
‘지가 3수를 했으면 했지...’ 하는식으로 씹었다더군...
어쨌든 대학에서 난 자연스레 나보다 한 살어린 선배인
희재선배,희준선배등과 어울렸는데...
가끔 뭐 식사도 같이 하고 술자리도 같이하고 그러면서...
난 처지가 처지라서 가급적 밤늦게까지 그네들과 어울리기 바랬는데
그러면 그들은 나한테 이러더군
‘형, 집에 안가요 ?’, ‘후배님, 이제 그만 집에 가셔야죠 ?’, ‘OO씨, 집은 어디에요 ?’
집에 안가요...집은 어디에요...
나로선 참 어찌 대답해야할지 난감해지는 말이더군.
난 이렇게 대꾸했어
‘그래, 너희에겐 집이란게 있지...’
왜 그런식으로 말했냐면
실은 고아원에 살 때 나보다 두 살많은 형과 같은방을 쓴적 있는데
그 형은 그때 이미 사실상 학업은 포기하고 알바나 이런걸 하며 살때였는데
그러면서 깨달은 세상이치나 노하우 같은게 있었는지
그 형이 이렇게 나한테 충고해주더라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도 혹시 누구한테 도움청할때는...가급적 은유적으로
상대방에게 암시를 주듯이...그런식으로 말해야지...노골적으로 ’저 요즘 너무 힘들어요
취직시켜 주세요 !!! 어떻게 해주세요 !!!’ 이렇게 노골적으로 애원하면
상대방에게 부담만 되고 될일도 더 안 된다
그렇게 그 형이 충고해주더라...
헌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 그 형 말대로 한걸 무척이나 후회하게 되었다
난 희재선배나 희준선배나 대충 보니까
그래도 좀 머리도 돌아가고 눈치도 좀 빠른 그런 선배들인줄 알았어
그래서 ‘그래, 너희에겐 집이란게 있지’, ‘당신들에겐 집이란게 있군요...’
이렇게 슬쩍 암시라도 주듯 흘리면
그 선배들이 알아서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대충
눈치 챌거라 예상했어
헌데 아니었더라
다만 그 무렵 두 선배의 가정환경은 대충 알게되긴 했는데
희재선배의 경우엔 아버지가 언론사 간부시고 어머니는 청소년 상담사
희준선배의 경우엔 아버지가 명문대를 나온 대기업 간부 어머니는 이대 음대를
나온뒤 KBS 합창단에서 3년정도 일하신뒤 퇴직한후 이후엔 전업주부로 사시며
아이키우는데만 전념하셨지만 나름 교양도 있고 기품도 갖춘
그렇게 대충 봐도 그 시절 우리사회 기준으로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가진
그런 집안에서 자란 자녀들이었어
그리고 희재선배는 가족관계가 위로 누나가 둘 있는 막내고
희준선배의 경우엔 집안에서 3대독자(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독자(獨子)인)
그러니 ‘둘만낳아 잘기르자’는 국가시책과 ‘대를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
는 전통적 가부장적 가치관이 한참 충돌하던 시절
얼마나 귀한 대접받고 자란 아들들이었을지 능히 짐작할만하지
무엇보다...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전혀 있을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두 선배와 어울리며 그네들 집에도 가끔 놀러간적도 있었어
강남까진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우리나라에서 어느정도 잘사는 사람들이
밀집되어 사는곳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 희재선배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희준선배는 5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하고도 인사나눌 기회가 있었지
허나 밤늦은 시간되면 그분들은 자연스레 이러시더군
“ 얘, 그만 집에 들어가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
그만 집에 들어가렴...부모님이 걱정하시곘다...
초등학교 1학년떄...엄마친구도 아닌 그냥 엄마 대학동창의 동생네 집에
맡겨진후 어머니와는 연락두절...아버지는 어디사는지 알고는 있지만
젊은 러시와 여자와 재혼 한참 깨가 쏟아지는 분위기라서
차마 그 집안에 내가 들어가 살수 없는 처지
이런 나한테...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의 저와같은 말씀
‘얘, 너무 늦었는데 그만 집에 들어가렴. 어머니,아버지가 걱정하시겠다...’
이런말이 어떻게 들였을까......
아무래도 내가 소싯적에
‘사랑이 꽃피는 나무’나 ‘우리들의 청춘’ 같은
대학 캠퍼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을
너무 재미있게 열심히 봤던거 같아
난 솔직히 그런 드라마들 보면서
꼭 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로 특정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 아들 가진 중산층 이상 가정환경의 어머니들은
모두 ‘사랑이 꽃피는 나무’나 ‘우리들의 청춘’ 같은데 나오는
김창숙 아줌마나 서승현 아줌마 같은...그런 어머니들 같은줄 알았어
- 거 왜 그런 드라마에 보면 이따금 이런 설정 있잖아.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자 대학생에게 지방에서 올라와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이나 좀 열악한
환경에 사는 학생 한두명을...나중에 김창숙 아줌마나 서승현 아줌마 같은
이들이 등장해서 이런식으로 말하잖아
‘얘, 그러지말고 정히 갈집이 없으면 우리집 들어와서 같이 살아라.
뭐 옛날엔 하숙도 치고 그랬는데...뭐 어떠니 ? 아니 하숙이 뭐니 ?
우리 OO이 친구라니까 그냥 다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스토리로 나가는줄만 알았어
희재선배 어머니나 희준선배 어머니도
‘TV는 사랑을 싣고’나 ‘우리들의 천국’ 같은데 나오는
김창숙 아줌마나 서승현 아줌마처럼
그렇게 나올줄 알았거든 ?
헌데 아니더라...실제로 나오는 반응은 대개 이랬어
‘얘얘, 지금이 몇신데...집에 안가니 ?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
어서 집에 들어가렴...’
사실 난 월세방도 구해야하고 또 학비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평일엔 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어
(* 고아원을 나와서 직장생활을 할때는 월세방이라도 구할수 있었는데
이땐 그럴 형편도 못 되었던거지)
엑스트라는...처음엔 사극에 몇편 출연하게 되었는데
사극이...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시절엔 보통 경복궁이나 이런 고궁에서
촬영을 했지
아마 요즘은 화재위험이나 기물파손 문제 때문에 고궁에선 촬영허가를 잘
안 내주고 제작사에서 자체 세트를 제작 촬영하는 것 같더군
난 그때까지 잠자리는 주로 기차역이나 전철역 같은데서 노숙을 하거나
또 때론 밤에도 열려있는 상가건물이나 아파트 단지 계단같은대라도 들어가서
잠을 청하고 날이 밝으면 학교에 가는 이런식으로 일상을 보냈는데
따라서 경복궁에서 사극촬영을 할때도
가급적 부지런히 일찍 출근하고 싶어서 촬영이 끝나면
촬영지인 경복궁 근처 가까운곳에서 잠을 청하고 날이 밝으면
대충 상가건물 같은데서 세수를 하고 출근하려 했던거야
헌데 보니까 경복궁에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무슨 안쓰는 건물인지 어떻게 되는건지
일단 내부로는 깊숙이 들어갈수 있고 추위나 비바람은 충분히 피할수 있는
딱 안성마춤인곳이...경복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더군
그래서 거기서 잠을 청하려 했지
촬영을 마치고 미리 점찍어둔 그곳으로 가서 피곤한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벨소리가 막 울리고 요란스러운 한떼의 차량이 도착하더군
그리고 누군가가 나한테 달려와서는 ‘뭐냐 !!!’고 외치더라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곳은 청와대 인근 보안시설이더군
사실 좀 이해가 안갔어...민주화가 되고나서 군사정권 시절 안가나 그런 것은
다 철거되었다고 들었는데...근데 그건 대통령 유흥이나 이런걸 위해
쓰였던 안가들이 철거된거고
그 외 청와대 경비나 간첩방지를 위한 보안시설들은 대개
그대로 남아있다 하더군
헌데 내가 경복궁 근처 그런대로 잠을 청할만한 ‘괜찮은 건물’이 하나 보여
들어간 그게 그런 보안시설이었던거야
난 안기부에 끌려가 밤샘조사를 받았지
무엇보다 부모도 집도절도 없는 나는 더더욱 수상쩍어
신원을 보증할만한 인물도 없는 사람이라 날 조사하는
안기부 관계자는 더더욱 수상쩍게 여기더군
한참만에...결국 사실은 엑스트라 알바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명하고
관련 매니저(* 매니저라면 흔히 유명 연예인들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의 그런
매니저를 생각할텐데, 엑스트라들을 조달,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매니저’
라고 함)가 밤늦은 시간 연락을 받고 달려와선
겨우 신원이 확인되어 풀려날수는 있었지
- 덕분에 안기부 조사과정에선 일곱 살때 부모 이혼하고...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때 이후 연락두절, 아버진 러시아 새엄마랑 살고계시다...모든 집안사를
사실대로 다 불 수밖에 없었고... -.-;;;;
허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안기부에서 일단 풀려나긴 했는데
대신 날 신원보증을 해준 엑스트라 매니저가
날 X나 갈구는거야
‘세상에 내가 남산 KBS 시절부터 엑스트라 조달업을 벌써 30년 가까이
한 사람인데...그동안 엑스트라들 관리하면서 별의별 사고치는 X들을 다 겪어
봤지만...세상에 간첩으로 오해받는 경우는 니X이 처음이다 !!!’라며
‘아니 도대체 어떻게 군사정권때도 안 겪어봤던일을 소위 문민정부가 출범한 시대에
내가 다 겪을수가 있는거냐 ?’고...그야말로
수많은 엑스트라를 관리하면서도 무슨 간첩 오해를 받아 정보기관에서 조사받고
하는 경우를 군사정권 시절에도 못겪어봤는데...심지어 소위 민주화가 되었던 시대에
이런일을 겪으니...그런데 연루된 날
진짜 어지간한 문제아로 봤던거지
결국 난 엑스트라 일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짤릴 수밖에 없었어...
엑스트라 일은 짤렸으니 월세방은 새로 구하기 어렵게 되었고
학교는 계속 다녀야했으니
난 다시 새로운 거처를 찾아보는수밖에 없었지
사실 근데 일전에 봐둔적이 있는 참 안성마춤인데가 하나 있었어
실은 내가 다니는 A대학 뒤로 산이 하나 있는데
희재선배,희준선배랑 가끔 산책삼아 그 산에 오를 때
마침 거기 안 쓰는 텅빈창고 비슷한게 눈에 들어왔거든
그땐 관심이 없었지만 처지가 이렇게되니
차라리 거기를 숙소로 삼자 그 생각을 한거지
- A대학에 기숙사가 있긴 했는데 여학생들만 이용할수 있는곳이라
난 해당사항이 되지 않았어
사실 처음 그 창고를 얼핏 봤을때는 먼발치라 몰랐는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제법 안성마춤이란 생각이 들더라
일단 생각보다 공간도 제법 넓었고
여기저기 이런저런 집기나 나무의자,책상 따위가
너저분하게 널려있긴 했지만 정돈만 잘하면
책상은 물론 침대대용으로도 충분히 쓸만한 물건들이
될 수가 있었어
날 추워지면 어디서 이불로 쓸수있는것만 구하면
거기서 그냥 침대이용하면서 겨울을 날수도 있겠다
그 생각을 하니 내 가슴은 잔뜩 희망에 차
부풀어오르기 시작했지
- 집도절도 없는 떠돌이가 겨울에 이불덮고 잘 공간이 생긴다는것만으로도
느끼는 기쁨은...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거야
또 하나 특이하게 문을 안에서 걸어잠글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러니 안에서 잠구고 밤에 잠들면
누가 들어와서 귀찮게 하거나 할 일도 없어서
더더욱 좋겠다. 그래서 학교 뒷산 빈 창고를
임시숙소로 정했지
학교도 바로 학교 뒷산이니 얼마든지 일찍 등교를 해
강의실에 들어갈수 있고 이래저래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
그래서 한 며칠을 숙소로 썼는데...
어느날 아침...한떼의 사람이 들어오더라
문을 안에서 잠굴수 있게 되었는데...자기네들끼리 열쇠가 있는것인지
여하튼 어떻게 들어왔는지 한떼의 젊은 남녀가
날 깨우며 이렇게 묻더라.
‘아저씨 뭐에요 ? 뭐하는 사람인데 여길 들어오냐구 !!!’
삼수생이나 다름없는 1학년이기도 했지만 좀 나이들어보이는
인상과 분위기 탓인지...더더욱 수상쩍게 여기는 그들
아뿔사...나중에 알았지만 거긴 사실 그 대학 한*련 비밀 아지트였던거야
난...한총련 애들한테
이번엔 안기부 프락치 가능성을 의심받아
원래 숙소로 삼으려 했던 빈 창고에
감금된 상태가 되어 조사를 받았어
그때 새삼 깨달은 이치(?)가 있다면
안기부에서 하루 밤샘조사 받는것보다 운동권 애들한테 사흘동안 감금되어 조사받을때가
더 고통스럽고 힘들다는거야
와...진짜...물론 이땐 민주화가 되어있을때라
안기부도 이전에 비해 조사하는 강도가 많이 누그러진 면도 참고해야겠지만
18...진짜 운동권 애들이 안기부보다 더하더라...
말 나온김에 덧붙이지만...안기부는 그래도 밤샘조사 하면서
‘배 안 고프냐 ?’며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밥이나 먹으라며 중간에 쇠고기 국밥도 시켜주더라
근데 한총련 X끼들은...사흘을 가둬놓고 조사하면서
그 흔한 커피한잔을 안 주더라...하마터면 운동권 애들한테
고문당해 죽는것도 아니고 굶어죽을뻔했다...18...
안기부에서 조사받을땐 엑스트라 조합 매니저가 신분보장을 해줘서 풀려났지만
이번엔 희재선배,희준선배가 연락을 받고 달려와
내 신분보장을 해주서 풀려날 수 있었지
허나 그런일을 겪고나니...희재선배,희준선배도
나랑 어울리는걸 꺼리는 분위기더라
무엇보다 나 역시...한번은 안기부애서 간첩으로 오해받아
한번은 운동권 애들한테 반대로 안기부 프락치로 오해받아
이런 처지에서 계속 떠돌이 생활을 했다간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에 철판깔고 아버지를 찾아가보기로 했어
고2때 소식은 알수있었지만 그때 이미 20대 초반 러시아 여자와 재혼
알콩달콩 잘 살고 계시기 때문에 차마 들어갈수가 없었던
그 아버지 집으로...
작심하고 아버지 집으로 찾아가기로 한날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그것도 몹시...
어차피 평일 낮이니 직장생활을 하시는 아버지가
퇴근하실때까지 기다려야겠기에
난 일단 대문앞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대충 비를 피하며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는데
그러다 깜빡 잠이들었으려나
헌데 깼을때는...웬 경찰차 사이렌이 들리고 있었어
나중에 알았지만 마트에 장이라도 보기위해 잠시 외출한 러시아 새엄마가
돌아오는길에 기겁했나봐
자기집 대문앞에 웬 낯선 남자가 그러고 잠들어있으니
러시아 새엄마와는 피차 초면이니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필 확인해볼 생각도 안하고 바로 경찰에 전화부터 하다니
- 그것도 안기부에서 조사받은지 얼마되지도 않는 나한테말야. -.-
일단 경찰서에서 해명을 했고 아버지는 물론 큰아버지랑 삼촌까지
연락을 받고 달려와 난 일단 풀려날순 있었지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어
그러고보니 정말 14년만에 만나는 아버지네
피차 얼굴도 못 알아볼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 엄마가 대학동창(친구도 아닌 그냥 대학동창)의 동생네 날 맡기고 떠났을 때
이미 아버지하고도 연락이 끊긴 상태고 그때부터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각기
3년...그리고 삼수생이나 다름없는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그 정도 시간이 흐른거지
난 일단 아버지한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만약 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제가 함께 사는게 정 불편하면
학교 졸업하고 나면 제가 알아서 일자리를 알아보든 해서 나가든가 할테니
제발 대학 졸업할때까지만이라도 이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려 했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묻더라.
‘군대는 ?’
와...18...진짜
충동적으로 자기 부모 때려죽였다는 자식 심정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게 14년만에 만난 아들앞에서
그것도 제1성으로 물어볼 소리냐 ?
‘이X아 !!!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녔고 ?
그래...걱정마라. 새엄마한테도 내가 사정을 잘 말씀드릴테니...애비가 있으니
그냥 여기가 니 집이지 뭐...그러니 괜히 딴데서 또 고생할생각 말고...이제부터
이 애비랑 같이 살도록 하자...’
이 정도 수준까진 바래지도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그동안 어디서 뭘하며 어떻게 지냈고
어쩌다 이렇게 14년만에 자기집까지 찾아오게되었는지
경위정도는 물어봐줄줄 알았는데
대뜸 묻는 제1성이
‘군대는 ?’이라니 ?
뭐 어차피 이때 내 나이도 20대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이니 군대갈 나이가 되긴 했다만..
- 게다가 난 엄밀히 따져 무슨 3대독자나 이런것도 아니고 집에 부양해야할 노모나
먹여살려야할 어린 동생들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증의 신체장애니 질병같은게
있어 온전히 군생활을 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조건이 안되는것도 아니니...
그 어느 면제사유에도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꼼짝없이 군대에 가야할몸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4년만에 만난 아들한테 묻는 제1성이
‘군대는 ?’은 좀...너무한거 아니냐 !!! T.T
어쨌거나 난 대충 집도절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대학 졸업할때만이라도 의탁할곳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대충이나마 드렸고
아버진 고민스럽게 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장시간 고민하는 듯 하더니...
‘당분간만...쉬어라...’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군대는 ?’ ‘당분간만...쉬어라...’
안기부에까지 끌려가 간첩으로 오해받아 조사받고
한술더떠 운동권 애들한텐 안기부 프락치로 오해받아 죽을고생하고
결국 의탁할곳이 없어 14년만에 아버지 집으로 찾아온 아들한테
아버지가 한 말씀은 저 세마디가 전부였다...
2층 빈방을 대충 배정받아 그곳에서 짐을 풀렀다.
헌데 한 십여분이나 지났을까.
아버지와 결혼한 젊은 러시아 새엄마가 2층으로 올라오시더라
뭐...맛있는것도 갖다 주시던가 아니면 나에대해 궁금한게 있어
그런거라도 물어보시려 올라오신건가...
하는 기대감은...2초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러시아 새엄마의 올라온 용건은 짧고 간단명료했다
‘죄송하지만 2층에서만 생활하시고 1층에는 내려오지 말아주세요
제가 지금 나이도 어리고 임신 초창기라 많이 예민해서 그러거든요
그러니...여기 2층에 화장실도 있고 부엌에 조리시설도 다 있으니
가급적 2층에 있는 시설들을 이용해주시고 1층앤 내려오지 말아주세요
제가 임신 초창기라 많이 예민할때니 좀 배려해주세요’
그게 용건이더라...
우와 진짜...뭐 젊은 여자 입장에서 장성한 의붓아들이 어색한것까진
그런대로 이해해준다 치자. 허나
자신이 임신을 했으면 했지...그걸 또 굳이 강조할 이유는 또 뭔가 ?
이건 뭐...날 아예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니 !!! 아무렴 그런거에 환장한 놈이기로 그것도 임신까지 했다는 초면의 젊은
새엄마를 건드리겠나 !!!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초면의 낯선 의붓아들한테
저런소리가 다 나오냐구 !!!’ 백번 양보해서...여하튼 날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
한건...젊은 여자 입장에서 초면의 낯선 남자 충분히 경계하는 마음에 나올수도
있는 이야기다...거기까진 이해해준다 이거야 !!! 근데
지가 임신을 했으면 했지...그건 또 굳이 왜 강조하냐구 !!!
아무렴 내가...그런 임신한 젊은여자까지 건드리는 파렴치한이겠냐 !!!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보구 T.T ... 이게 나라냐 !!! 18...-.-;;;;
헌데 다른건 다 그렇다치고 천상 학교갈때는 1층으로 내려가야 할거아냐
학교갈 때 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릴순 없는일이니까...
그래서 그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럼 학교갈 시간만 미리 말씀해주세요. 그럼 그 시간에만
1층 내려오는거 허용해 드릴께요.
이러고 가더라...
와 18...진짜 이제와 하는말이지만
그래도...엄마 대학동창(거듭 말하지만 친구도 아니고 그냥 대학동창...) 동생네
얹혀살땐...뭐 아직 초등학교 어린나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집 딸들은 나 엄마없이 자라게 된게 불쌍하다고
가끔 간식도 챙겨주고 그랬었다 근데...
그래서 그때 깨달았다...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한집에 산다는 것은
엄마 대학동창 동생네 딸들과 함께 사는것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될수 있다는 것을......
헌데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러시아 여자랑 재혼한게
내가 고2때 일인데...
그리고 내가 삼수생이나 다름없는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그후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여태 뭐하다가(?) 이제야 새엄마가 첫 아이를 임신한건지
그게 좀 이해안가지만 그건 어차피 아버지와 새엄마의
사적 영역이니 내가 알수는 없는 부분이고
또 한가지...어쨌든 러시아 새엄마 말에 의하면
2층에도 별도의 부엌이 있다는 소리니...꽤 집이 큰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아님...2층집이지만 1층도 2층도 실평수는 30평이 채 안 되는 그 정도
크기고... - 뭐 그래도 1,2층 다 합하면 60평 가까운 크기긴 하다만 ^^;
어쨌든 결코 크다고는 할수 없는 집인 이런집에
1층은 물론 2층까지 부엌이 따로있을 필요가 있는건지...그것도 좀 이해가 안 가지만
어쨌든...
비록 새엄마로부턴 1층에 절대 내려오지 말라는 경계가 담긴 엄명을 들었을지언정
난 안도의 한숨을 쉴수가 있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적어도 이제 한동안은 내가 편안히 잘 수 있는 집이 생긴 것이 어딘가...
이제 더 이상 학교 파하고 갈곳이 없어 쓸데없이 밤늦게까지
배회하지 않아도 되고...날이 추워지면 어디서 자나...여름이 되면 또 어떻게 견디나
그럴 걱정 할 필요 없는
마음편히 자고 쉬고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그 자체가 좋았다.
얼마나 좋았으면...대학 동급생들과 술을 한잔 했다
이때는 원래 어울리던 희재선배,희준선배는 운동권한테 내가 안기부 프락치로
오해받은 사건 이후론 날 경계하고 멸리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동급생들과 술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동안 주로 어울린게 희재선배랑 희준선배였기 때문에
동급생들과 친해질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모처럼만에 동급생들이 술한잔 하는데 한자리 낀거야
그리고는 자랑스레 말했지. 너무 감격스런 눈물까지 흘리며
이제 나도 집이 생겼노라고...이제 나도 학교 끝나고 갈곳이 있노라고
이제 더 이상 수업 끝나고 갈곳이 없어 여기저기 밤늦게까지 배회하며
방황할일 없노라...울며불며 한참 횡설수설 했는데
동급생애들도 희준선배나 희재선배처럼...대개는 먹고살만한 가정환경에서
별다른 어려움없이 자란 애들이라 그런지
내 말 거의 못알아듣는 눈치더라
그래도 난 너무 기쁨에 겨워 한동안 자랑스레 그런 이야길
주절주절 늘어놓았던거야
그리고 술에 많이 취해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아빠와 젊은 러시아 새엄마가 사는집에
헌데 그러고보니 아빠와 젊은 러시아 새엄마와 살아서 진짜 좋은 이점은
밤늦게 술먹고 들어와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더라...
일단 둘 다 나는 관심밖에 있는 사람들이라 봐야할테니
여하튼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서는
2층 내 방에 들어가 대충 퍼질러잤다
술도 많이 취했으니 옷만 대충 벗어던진채 그대로 쓰러져 잔거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 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아직은 어두운 밤시간...
아직 정신은 다 맑아지지 않은 몽롱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때이긴 한데
방에...내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
원래 내가 쓰는 가방은 두 개다. 하나는 학교갈 때 쓰는
보통 책과 노트,필기구 따위를 넣어두는...그야말로 학생가방
대충 샐러리맨들 서류용 가방과 비슷한 분위기의 그 정도 크기 가방이고
그 외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옷가지와 세면도구 정도는 넣어놓고 다니는
조금 큰...여행가방 정도 크기의 짐가방이 또 하나 있는데
떠돌이 생활 할떄는 책가방은 늘 소지하며 학교를 다녔고
짐가방은 옷갈아 입을때랑 세수할떄를 빼놓고는
보통 지하철 사물함이나 이런데 보관해두곤 했었다
허나...이제 ’집‘이 생겼으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어쨌든 아버지로부터 당분간이든 어쨌든 이 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가방부터 먼저 챙겨 가져왔는데...책가방도 여행가방도
둘 다...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둘 다 보이지 않았어
2층의 내 방이래봐야 기껏 성인 한두명정도 누우면 꽉 차는 그리 넓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그 정도 평수인데...
거기서 가방이 어디 깊숙이 들어가거나 할수도 없을텐데
통 안 보이는거야.
난 혹시 내가 취중에 귀찮아서 가방을
1층 거실에 대충 떨어뜨린 것 아닌가 싶어
아직 술이 덜 깬 몸 상태로 비틀거리며 1층으로 내려가봤지
어둠속에서 여기저기 더듬다가
‘물컹~!’ 손에 잡히는게 있었어
느낌에 가방인가...싶어...근데 여행가방인지 책가방인지 확실치 않아
난 확인을 해보려했어.
짐가방의 경우엔 지퍼로 열 수 있는 구조고
책가방은 가운데 단추가 있어 그걸 누르면 열리는 구조거든.
일단 뭔가 짚이는게 있어서 난 짐가방 지퍼인가 싶어 내리려했지
근데 웬지 제대로 내려지지 않는거야.
난 내가 아직 술이 덜깨서 몸이 말을 안 듣는건가 싶어
좀 더 힘을 내서 지퍼를 열려고 했지
그러나 여전히 안 열리는 것 같아서
‘옳아~! 짐가방이 아니라 책가방이었구나...그럼 그렇지...하고...’
이번엔 단추를 누르려했어. 책가방 문을 열 수 있는
가운데 단추구멍을 찾았지...
헌데 이번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단추구멍도 손에 안 잡히고
눌러야하는 버튼도 잘 안눌려지는 것 같더라
혹시 가방문이 고장나서 잘 안눌리는건가 싶어
여하튼 다시금 버튼을 찾아 눌러보려 했어
째지는 여인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건...
확실히 그때까진 아직 내가 많이 취한 상태란
변명은 가능할게다...
불이 확~~~!!! 하고 켜졌어.
내가 최악의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지
러시아 새엄마가 1층거실 바닥 한가운데 누워있었고
내가 처음엔 짐가방 지퍼려니 하고 열려고 했던 것은
새엄마의 팬티였고
가방 버튼이나 단추구멍인줄만 알고 누르려 했던 것은
그래...바로 거기...여인의 은밀한 부분...
질구...라고 하더가...
거길 책가방 버튼인줄 알고...누르려 했던거야...
새엄마는 째지는 비명을 연거푸 지르고 있었고
아버지가 놀라 방에서 나와 불을 켰을때는
난 새엄마 팬티에 손을 집어넣은채
팬티는 내리고 한손으로 새엄마의 엉덩이와 질구 부위를 손으로 움켜쥔채
(그곳을 책가방 단추버튼이라 생각하고) 계속 누르는...상황이었지...
새엄마는 기겁하며 날 밀치고 달아나 아버지 품에 안겨
사시나무 떨 듯 하며 울고있었고
격노한 아버지는 날 반 죽도록 두들겨 패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당장 내집에서 나가 !!!’ 라고...
무슨 변명을 할수도 할 기회도 없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지...
그렇게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 집에서조차도 쫒겨나야만 했던 나
한동안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던 나
다시 밤에 열려있는 4층짜리 상가건물 같은데 들어가거나
아파트 계단이나 복도같은데 들어가 잠을 청한후
날이 밝으면 학교에가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러다 하루는
그날도 그런식으로 한 열려있는 4층건물안으로 들어갔다가
좀 뜻밖의 시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는 기독교 선교단체
사무실이었는데
열려있는 안으로 들어가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게...무슨 시설이 열악해서 충격을 받은게 아니라
(*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상가건물이나 아파트 계단에서 잠을 청하는 나보다
생활이 더 열악한 집이나 가구는 존재할 수가 없지 ^^;;)
사무실과 살림집이 함께 연결이 되어있는
그런식의 구조인 곳은 처음 보았거든
그게 선교단체든 시민단체든간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같은 경우엔
사무실과 살림집 공간이 연결되어있어 함께 쓰는
그런 구조의 사무실을 처음봤다는 이야기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마침 ‘누구요 ?’하고 방에서 나오는 아마 그곳 대표인듯한 분에게
- 역시 나중에 알게된것이지만 그분은 나이 30대 후반에 전도사가 되신
늦깎이 전도사였고...게다가 독신이라서...그런식으로 아마 집을 따로둔채
출퇴근하기가 귀찮았는 듯(* 솔직히 집구하기가 쉽지 않았었을수도 있고 ^^;;)
선교단체 사무실 옆에 별도의 살림집 구조를 만들어 그렇게 두칸을
이용하고 계신거였다
여하튼 들어가보니 욕실도 침실도 부엌도 다 딸린 그런곳이라
애원해봤어. 사실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떠도는 몸인데
대학졸업할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먹고자게 해주시면 안되느냐고
전도사님은 난색을 표하셨다
난색을 표한게...생전 처음보는 모르는이가 너무 황당하고 해괴한 부탁을
한것도 이유지만...
실은 그 살림집의 두어개 여분의 방은
그 선교단체에서 데려온 탈북자들이 정착할 집이 생길때까지
잠시 머물만한곳을 만들기 위해 만든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한테 내어주기 곤란하다는거지
임마 !!! 세상에 벼룩의 간을 빼먹지...아무리 그래도
탈북자 돕는 단체에 가서 니가 도움을 청하냐 !!! 라고 손가락질하지마라
니들이 한번...초등학교 1학년때 부모 이혼으로 어머니 대학동창 동생집에 맡겨지고
이후론 엄마와도 연락끊기고 다시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등학교때 아버지 소식알아 찾아가봤더니 러시아 새엄마랑 살고있고
게다가 한번은 안기부 애들한테 한번은 운동권 애들한테 간첩으로 오해받아 곤욕치르고
모처럼 찾아간 아버지 집에선 젊은 러시아 새엄마한테
파렴치한 성*행범으로 몰려 쫒겨나고...
이래서 오갈데없는 신세되어 상가건물이나 아파트 계단,복도 같은데서
한 몇 달 자면서 지내봐...탈북자고 나발이고 그딴거 가릴 정신적 여유가 생기나 !!!
여하튼...대학졸업할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먹고잘수 있게 해달라
그 다음엔 제가 알아서 일자리를 구하든 거처를 마련해든 알아서 나갈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애원하는 날 전도사님은 난감해하셨고
그러다 밤이 가고 날이밝아 아침이 되자
선교단체 사무간사가 출근을 하더라
사무간사는 이때 30대 초반 정도된 독신여성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내게 이러더라
‘OO교회로 가보세요. 거기 목사님 설교가 참 좋아요 !!!’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때 그 사무간사가 추천해준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가족구원,영혼구원’ 문제와 관련한 불꽃같은 설교를 하시는걸로
꽤 유명한 그런 목사님이시라고 했다.
대형교회 수준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한 몇백명 성도는 출석하는
서울 OO구 지역에서 제법 유명하고...교단에서도 여하튼
‘가족구원 설교’에 관해선 여하튼 캡빵급인 그런 유명한(무슨 정치적으로 유명하다던가
그런 세속적 권위말고 그야말로 영혼설교와 관련해서 유명한) 목사님이시라고 했다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그 사무간사 누나가 추천해준
OO교회(* 가족구원 설교로 유명한 목사님이 시무하신다는)에 다음 주일에
가보긴 했다
그러고보면 그 날이 내 생전 처음 교회라는데 가본날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그날 목사님 설교 주제가 ‘어머니’와 관련된 주제더라
뭐 대충 성경에 나오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훌륭히 양육한 일화
두어가지
그리고 아마 산업화 시대에 있었던 일종의 전형같은 스토린가본데
일자리를 구하기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농촌,지방 청년들이 많던 그 시절
객지에서 고생하면서도 ‘얘야, 어떤일이 있더라도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리렴’
하고 편지보내시는 어머니의 신앙심에 힘입어
서울에서도 신앙생활 잘하고 좋은직장구해 돈도 잘벌고 성공한
그런 사람의 이야기까지
뭐 대충 그런 예화,일화들을 뒤섞어 설교하시더군
그리고 그 설교가 대충 절정에 이를때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자, 이제 옆자리,앞뒷자리 성도분들과 교제나누십시다. 옆자리,앞,뒷자리 성도분들과
이렇게 인사 나누십시오 ‘어머니의 양육하심이 있어 온전한 그리스도의 자녀로 성장할수
있었습니다’ ’ 목사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성도들은 대충 자기 옆자리,앞자리쯤
앉은 성도들과 그런식으로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난 순간...좀 멍하게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분이 어땠을 것 같냐 ?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는 날 엄마 대학동창 동생네집에 버려두고 떠났고
고2때 소식들 듣게된 아버지는 러시아 여자와 재혼 살고계시고
그 러시아 새엄마한테 성*행범으로 몰려 집에서 쫒겨난 내가
옆자리 앞자리 성도들과 ‘어머님의 양육하심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의 자녀로 성장할수
있었다’ 뭐 이런식으로 말을 하든 인사하든 어쩌란 소리에...
난 어떤 기분이 들었을거냐구
일단 그건 ‘거짓말’이잖아
물론 어차피 그 교회에 난 그날 생전 처음 간거고
옆자리 성도건 앞자리 성도건 다들 그날 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대해 알지도 못할뿐더러
막말로 오늘만 이 교회가고 다음부터 안오면
영원히 볼일 없을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어머니가 잘 양육해주셔서 예수그리스도 자녀가 되었다느니 어쩌느니......
이런 ‘거짓말’을 한다고 그게 거짓말인지 참인지
그네들이 알수도 없을터인데
그냥 그러니 얼굴에 철판깔고 그렇게 말해버리면 될일을
그래도 꼴에 양심이 있는 X이라서
차마 그날 처음보는 옆자리,앞자리 성도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내 좌우 옆자리엔 아마 그 교회 집사,권사님쯤으로 추정되는 40-50대 아주머니가
그리고 앞자리엔 20대 젊은 여성도 두어명이 앉아있었는데
이미 목사님 말씀대로 어느덧 내 손을 부여잡고 ‘어머니의 양육하심이로 예수그리스도의
자녀로 온전히 성장할수 있었습니다’ 이렇게...자랑질하고 있더군...
솔직히 부아가 치밀어올라 성질같아선
‘야 !!! 이 XXX들아 !!! 일곱 살때 에미가 날 지X 대학동창 동생네 버리고 가서
에미는 어디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얼마전에 새파랗게 어린 젊은 러시아 새엄마한테
성*행범으로 오해받아 쫒겨난X이다...근데 무슨 에미한테 예수 뭘로 양육되고 뭐고
할게 있겠냐 !!! 뭘 좀 제대로 알고말해 !!! 이 XX같은 쓰레기 목사야 !!!’
라고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으며 생난리를 치고 싶은 심정을...한껏 억누르며
그러다고 생전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어머니의 양육하심으로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 양육될수 있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할수도 없기에
난 그냥 멍하니 내 손을 잡고 인사하는 앞자리,옆자리 아줌마,아가씨 성도들을 바라보며
가만있을 수밖에 없었어
사실 목사님의 설교는 보편성을 띠어야한다
어느 특정 한두 성도만을 상대하는분이 아니시잖아
가령 아무리 작은 4층상가건물 한칸 빌려서 하는 교회라도
성도가 수십명은 될테고
또 그 지역에서 어느정도 이름난 중규모 교회라면
성도가 수백명은 될테고
또 심지어 이름난 대형교회중엔 성도가 수천명에 이르는곳도 있다며 ?
그러니 수십명이든 수백명이든 수천명이든
그 많은 성도들을 상대로 ‘보편적 설교’를 해야하는 목사님이
어느 한두 특정인만을 위한 맞춤형 설교는 할수 없는게 맞아
그러나...하필이면 내가 처음으로 교회에 간날 들은 설교가
그런 내용이라니...
이건...하나님이 고의적으로 날 교회에서 쫒아내기로 작정하신게 아니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란 생각마저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나하곤 이렇게 완전히...
그냥 안맞는정도가 아니라 아주 상극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의 설교를 할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하나님이 날 작정하고 교회에서 쫒아내시려 하시는구나
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거지
결국 탈북자 선교단체 사무간사가 추천해준 OO교회에
(그것도 생전처음 교회에 간날) 설교를 듣고 나와서는
난 어디선가 휘발유통을 하나 샀어
그리고...아버지 집으로 향했지...날 쫒아낸
아버지와 러시아 새엄마가 있는 그 집으로
그냥 쫒아낸것도 아닌...그것도 날 젊은 새엄마를 **행이나 하는
천하 파렴치한으로 몰아 쫒아낸
그 연놈들이 있는 집으로 말이지...
벨을 누루고 놀라서 막으려는 아버지를 밀쳐내고
휘발유를 집에 한껏 뿌린뒤 불을 질렀다
아버진 놀라 경찰에 신고하러 달려가셨고
집에 불이 붙어 막 타오를때쯤
나는 아직 달아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러시아 새엄마를 붙잡아
불길속에 집어던져버렸다
내 인생을 이꼴로 만들어버린
그 결정적인 원인제공자라는 생각에
이 내 몸속 쌓인 모든 분노,증오,혐오의 마음을 한데담아
임신중이기까지 하다는 젊은 러시아 새엄마를
불길속에 집어던져버렸다......
집에가...
원론적으로는 틀린말은 아니다
허나 만약
집에 돌아갈수 있는 처지나 환경이 못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는걸까 ?
가령 한 10년만에 아버지한테 찾아갔더니 아버지는 새파랗게 젊은
외국인 새엄마랑 알콩달콩 잘 살고 있어서 도저히 그 집에 들어갈수 없는 경우라던가...
또 이전에 봤던 어떤 드라마엔
입양을 한 막내아들이 가출을 해서 그로인해 힘들어하는
그런 가족들의 이야기를 방영하는것도 본적이 있다
헌데 내가 알기로 그 드라마의 경우 제작취지 자체가
돈을 벌기위해 지방이나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은 그 시절
그 세대들의 두고온 고향이나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담기위해 만든 드라마로 알고 있다
그러니...얼핏보면 꽤 현실적이고 일상을 담은 드라마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런 드라마가 오히려 집,고향,부모 이런것들에 대한 하나의 환타지를 그린것일수도 있고
오히려 실제상황이라면 이런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머리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더니만...오갈데 없는거 불쌍해서 근본도 모르는걸 거두어
키워줬더니...은혜를 갚아도 시원찮을판에 허구헌날 사고만 치다 집까지 나가 !!!
에잇~~~!!! 망할 것 같으니 !!! 야 !!! 아무개 그 X식 혹 나중에 돌아오더라도 절대
받아주지마. 이미 호적에서도 다 정리해버렸으니까 !!!’
때론 어떨땐
드라마가 오히려 더 말이 되고 현실이 더 말이 안되는 경우도 더 많고
사실적으로 그린 것 같은 드라마가 오히려
진정한 환타지를 담은 경우도 있다. - 굳이 구분하자면 착한 환타지라고나 할까...
집에가...
원론적으로는 틀린말은 아니지만...
만약 집으로 돌아갈수 없는 그런 처지나 환경에 놓인이가 아니라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