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글에 선생 관련된 글이 올라왔길래 몇 자 적어봅니다.익명의 힘을 빌어 답답한 마을을 한번 써봅니다. 30대 초반 여성입니다.지금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고, 직업도 나쁘지 않고 결혼도 해서 아주 평범한 생활을 지내고 있습니다.어릴 때 뼈저리게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툭하면 돈 들고 집 나가는 아버지(라고도 적기 싫은 사람.)그런 돈 들고 온다는 아버지 말만 믿고 종교의 힘으로 기다리는 어머니.두 살 밑 남동생.제대로 된 보살핌이나 먹는 것, 입는 것 일체 못하고,맨날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왔고 곰팡이가 가득 핀 작은방 하나에 전기세와 기름값이 없어 한겨울에 두꺼운 이불과 촛불로 견뎌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7-80년대가 아닌 90년도 후반에도 이런 집이 있었습니다.ㅎㅎㅎ서론이 길었네요.한때 저희 때까진 촌지 문화가 있었습니다.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나쁘지 않게 살았고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 어머니가 촌지를 담임에게 준걸로 압니다. 그래서 그땐 편하게 학교를 다녔네요.동생이 입학하고 나서부터 집이 기울었고 그 후부터 촌지를 못 했던 걸로 압니다.문제는 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되네요.당연히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구요.어느 날 저희담임으로 부터 전달을 받았습니다. 동생 교실로 가보라고, 동생 담임이 절 찾더랍니다.무슨 일인가 싶어 가봤더니 준비물을 안 챙겨왔다고 합니다.지금 생각하면 그걸 왜 나한테 뭐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지만그 당시 때 그 선생은 저에게 화풀이?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더라고요.동생을 니가 똑바로 봐야 하지 않냐. 뭐 하냐.거진 한 시간을 교탁 앞에 서서 동생과 동생과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훈계를 당했습니다.삿대질은 기본이었고 툭하면, 거진 매일 저를 불렀습니다.이유도 다양했습니다.준비물 안 챙기고, 숙제를 잘못했고, 공부 못해서, 애들이랑 떠들어서, 또 가난해서.준비물 안챙기고 숙제못한건 혼나는건 맞지만(이건 동생이 혼나야 하는데...ㅎㅎ)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매일을 불려가서 혼나던 기억이 있습니다.저를 왜 굳이 불러서 수업도 못듣게 하고 매일 한시간 가량이나 훈계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그때 당시는 어린마음에 그게 당연하다 생각 했나봅니다.아직도 그때 기억이 납니다. 오전 2교시 마치고 때쯤 불려갔고 저는 핑크색 잔 꽃무늬 조끼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너희 집 가난하니?'를 온 애들 앞에서 팔을 허리에 얹고 큰소리로 말하더라고요.그 후부터 저와 제 동생의 별명은 거지가 되었습니다.저희 때 분들은 아실 겁니다. 성적표? 담임선생님이 써주시는 말에 특기사항에 보통은 '양호'라고 쓰여있습니다.그때 제 동생은 특이사항. '집안 환경'이라고 써놨더라고요. ㅎㅎ그렇게 1년 가까이 매일같이 시달렸고 동생이 학년을 올라가면서 든 생각이 더 이상 그 선생한테 안 불려가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나중에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땅을 치며 우시고 동생을 매우 혼냈던 게(숙제나 준비물 안 챙겨갔다고) 기억나네요.저도 좀 혼나긴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말 안 했냐고.사실 일찍 철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말하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동생도 집에 돈이 없으니... 준비물 사야 한다고 말을 못 했다 하더라고요. ㅎㅎㅎ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계속우시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집에도 없었구요.그후부터 어머니가 남의집 일을 하며 얼마안되는 돈을 버셨습니다.그 선생은 여선생이고, 그때 결혼을 안 했다는 걸로 기억합니다.가끔씩 스승의날이 다가오면 은사님을 찾는다던지 좋은 이야기거리를 보지만 저는 한번 그선생을 꼭 찾고 싶다고 계속해서 되세기고 있습니다.90년대 후반 대구 J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이였던 선생님.제가 꼭 보고 싶습니다.다행이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당신이름이 있지만 지금 찾을려고 하니 전화번호나 개인신상은 절때 알려줄수가 없다고 하네요.지금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식이 있다면 10대후반 20대 초쯤 될꺼라 생각합니다.당신 자녀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 이였는지 꼭 말하고 싶습니다.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옛날 선생 찾아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인기글에 선생 관련된 글이 올라왔길래 몇 자 적어봅니다.
익명의 힘을 빌어 답답한 마을을 한번 써봅니다.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지금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고,
직업도 나쁘지 않고 결혼도 해서 아주 평범한 생활을 지내고 있습니다.
어릴 때 뼈저리게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툭하면 돈 들고 집 나가는 아버지(라고도 적기 싫은 사람.)
그런 돈 들고 온다는 아버지 말만 믿고 종교의 힘으로 기다리는 어머니.
두 살 밑 남동생.
제대로 된 보살핌이나 먹는 것, 입는 것 일체 못하고,
맨날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왔고 곰팡이가 가득 핀 작은방 하나에 전기세와 기름값이 없어 한겨울에 두꺼운 이불과 촛불로 견뎌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7-80년대가 아닌 90년도 후반에도 이런 집이 있었습니다.ㅎㅎㅎ
서론이 길었네요.
한때 저희 때까진 촌지 문화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나쁘지 않게 살았고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 어머니가 촌지를 담임에게 준걸로 압니다. 그래서 그땐 편하게 학교를 다녔네요.
동생이 입학하고 나서부터 집이 기울었고 그 후부터 촌지를 못 했던 걸로 압니다.
문제는 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되네요.
당연히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구요.
어느 날 저희담임으로 부터 전달을 받았습니다.
동생 교실로 가보라고, 동생 담임이 절 찾더랍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봤더니 준비물을 안 챙겨왔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왜 나한테 뭐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때 그 선생은 저에게 화풀이?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더라고요.
동생을 니가 똑바로 봐야 하지 않냐. 뭐 하냐.
거진 한 시간을 교탁 앞에 서서 동생과 동생과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훈계를 당했습니다.
삿대질은 기본이었고 툭하면, 거진 매일 저를 불렀습니다.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준비물 안 챙기고, 숙제를 잘못했고, 공부 못해서, 애들이랑 떠들어서,
또 가난해서.
준비물 안챙기고 숙제못한건 혼나는건 맞지만
(이건 동생이 혼나야 하는데...ㅎㅎ)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매일을 불려가서 혼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를 왜 굳이 불러서 수업도 못듣게 하고 매일 한시간 가량이나 훈계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당시는 어린마음에 그게 당연하다 생각 했나봅니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납니다. 오전 2교시 마치고 때쯤 불려갔고 저는 핑크색 잔 꽃무늬 조끼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너희 집 가난하니?'를 온 애들 앞에서 팔을 허리에 얹고 큰소리로 말하더라고요.
그 후부터 저와 제 동생의 별명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저희 때 분들은 아실 겁니다. 성적표? 담임선생님이 써주시는 말에 특기사항에 보통은 '양호'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때 제 동생은 특이사항. '집안 환경'이라고 써놨더라고요. ㅎㅎ
그렇게 1년 가까이 매일같이 시달렸고 동생이 학년을 올라가면서 든 생각이 더 이상 그 선생한테 안 불려가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땅을 치며 우시고 동생을 매우 혼냈던 게(숙제나 준비물 안 챙겨갔다고) 기억나네요.
저도 좀 혼나긴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말 안 했냐고.
사실 일찍 철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말하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도 집에 돈이 없으니... 준비물 사야 한다고 말을 못 했다 하더라고요. ㅎㅎㅎ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계속우시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집에도 없었구요.
그후부터 어머니가 남의집 일을 하며 얼마안되는 돈을 버셨습니다.
그 선생은 여선생이고, 그때 결혼을 안 했다는 걸로 기억합니다.
가끔씩 스승의날이 다가오면 은사님을 찾는다던지 좋은 이야기거리를 보지만 저는 한번 그선생을 꼭 찾고 싶다고 계속해서 되세기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대구 J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이였던 선생님.
제가 꼭 보고 싶습니다.
다행이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당신이름이 있지만 지금 찾을려고 하니 전화번호나 개인신상은 절때 알려줄수가 없다고 하네요.
지금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식이 있다면 10대후반 20대 초쯤 될꺼라 생각합니다.
당신 자녀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 이였는지 꼭 말하고 싶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