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 죄송합니다 이번에 추석에 친가 안간다고 싸운 글 보고 제 글을 안 남길 수 없었어요.진짜 공감가서 눈물날뻔 했거든요.물론 우리집이랑 상황이 아예 같다곤 할 수 없지만 저희 집 친가도 만만치 않아요.저는 현재 고3이고 지금 할머니 문제 뿐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아빠와 크게 다투어 대화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사사로운 얘기를 제외하고 저는 어린 유년기 시절부터 친가를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항상 할머니께서는 당연하게 장손을 챙기셨고,또한 큰집의 둘째를 막내라고 부르셨으니까요.저는 어느 꼭두각시 인형처럼 인원수 채우기에 급급한 깍두기 손녀였습니다.물론 지금도요. 제가 가면 형식적인 인사치레만 있거나 매번 원치 않는 포옹을 강요하셨죠.그리고 저는 굉장히 스킨쉽을 불편해 하는 사람입니다.저희 부모님께도 별로 못해드린 스킨쉽을 할머니에게 하는 것 자체가 저에겐 고문에 가까웠습니다.어릴때이니 저는 그것이 무조건 해야하는 것 인줄알았습니다.그래야 모두가 웃고 넘어가니까요.그리고 매번 명절에 저의 기억 속에서는 큰엄마 대신 저희 어머니께서 대부분의 요리를전담하고 계셨습니다.같이 하는 것이 설명절 아니었나요?그러다 큰엄마는 일 때문에 가장 먼저 가셨습니다.할말하않이었죠... 그렇다면 그곳의 음식은 당연히 신선하고 마트에서 바로 사온 것들로 조리할 것이라 다들 생각하시겠죠? 아니요. 매번 노란밥(묵은밥)과 언제 사온지 모를 냉장고에 처박혀 있던 고기 그리고 떫은 나물들 등등 정말 많았습니다.그 후 제가 아픈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그래서 후엔 어머니가 직접 반찬을 만들어 오시거나 나물등을 사오셨는데 저는 그것만 먹었습니다.그나마 저때는 추석일 때나 개인적으로 아빠와 함께 동행했을 때이고, 설날은 정말 심각 그 자체였습니다.할머니는 정말 위생관념과는 거리가 먼 분이신데 다른 볼일을 보시다가 갑자기 손도 씻지 않은 채로 만두를 빚어서 오래된 묵은 떡국떡과 어떻게 조리되었을지 상상하기도 두려운 사골 국을 새해 첫 끼로 먹었죠. 그리고 저희 어머니께서 고부 갈등을 넘어서 아버지와도 마찰이 잦자 친가와의 단절을 선언하셨고 아버지와 크게 다투셨지만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즈음부터는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강박증이 생기셨는지 아버지께서는 매주 주말마다 저를 강압적으로 친가에 데려가셨습니다. 잠깐 아버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결혼전에는 본체만체하던 친가를 결혼 후에 저희 외갓댁을 보고 적잖이 놀라셨는지 그 후로 착한 아들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하시고 계십니다.정말 저희와의 중요한 약속도 할머니의 연락 한 통이면 바로 달려가시고, 할머니의 수술비(하지만 정작 저희 어머니가 수술하셨을때는 치료비를 급하게 내야했는데 돈이 없다고 갓 수술하신 저희 어머니에게 윽박지르셨습니다.), 치료비 등등 할머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혼자 감당하고 있고 (저희 집은 평범한 집입니다.) 결혼 전에 할머니에게 맡긴 아버지의 월급등도 돌려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막상 장남인 큰아버지께선 거의 본체만체 상태로 일관하면서 사업비로 할머니에게 많은 비용을 빌려가셨죠.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발길이 끊긴 중학생무렵부터 저를 데려가셨는데,제가 초반에 맛있는 음식으로 어린맘에 잠시 혹했었으나 언젠가부터나는 누른내나는 불판냄새,그 집의 특유의 분위기 등등 다양한 이유로 가기를 꺼려했는데 ,그럴때 제가 자는 척도 해보고 별의별 짓도 다해보고 가기싫다고 울고불고 해봤음에도 심하면 폭력을 사용하셔서 기여코 친가에 데려가셨습니다.마치 전유품처럼요. 그곳에서 전 어색한 분위기에 저만 홀로 동떨어지고 고립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그리고 아버지께선 그 곳에만 가시면 시간약속을 안지키셨고요. 이를테면 제가 몇시에 갈 것이냐 했을 때 정시에 간적이 없습니다.하도 그러니 큰아빠가 '00아 너 솔직히 집가고 싶지'라는 말에 그렇다라고 답했다가 아빠가 소리지르시면서 잔뜩 윽박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제가 정말 울면서 안맞는다고 여기 안오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는그게 저의 탓이고 제가 맞춰야 맞는 것 아니냐고 하시면서(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에 가까웠습니다.) 버스자리도 따로 앉으시고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몇달을 저와 대화를 하지않으셨습니다.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어린마음에 저는 당연히 따라갔고(안 그러면 저를 없는 사람 비슷하게 취급하셨으니까요.) 정말 이러다가 우울증이라도 올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코로나가 터진 덕에 명절과 주말에 친가에 가지 않게 되었고 정말 그 무엇보다 좋았습니다.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저를 계속 데려가러 하셨고 그 문제로 어머니와도 엄청 자주 싸우셨습니다.그래서 가족끼리 대화를 시도했지만 정작 아버지께선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언급만해도 불같이 화를 내고 일방적으로 억지논리로 끝맺음을 하기 급급하셨고,제가 울든 말든 신경도 안쓰셨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저는 어이없는 얘기를 들었습니다.어머니와 싸우시던 중 어머니에게 00이 말할 때 동조해주지말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셨답니다. 충격적인건 그 다음인데 (친가)어머니 싫어하면 나도 00이 싫어. 참.....이게 아버지가 하실 소리인가요?저는 그 얘기를 듣고 한참 벙쪄있었습니다.제가 아버지의 1순위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자기 딸을 울 엄마 싫어해?그럼 난 내 딸도 싫어 ㅋ 이게 무슨 경우가.... 그리고 방문이 꺼려진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인 부분이었던 것은 매번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와 저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주시지 못하셨습니다.매번 포옹이 싫어서 아버지를 보면 딴 곳을 보시면서 허허 웃기만 하셨죠.정말 저는 인형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수십번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석 글쓴님처럼 저도 할머니에게 뭘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큰집 오빠들에겐 새 브랜드 신발과 대학 등록금 통장 매번 배 이상인 세뱃돈이 항상 있었고,저는 할머니에게 가끔 유통기한 넘은 것들이나 복지회관에서 가져오신 공짜 요구르트나 과자등이 전부였습니다. 아..뭐 가끔 생율..?그런 거나 먹이셨죠...ㅎ저는 할머니가 저를 위해 무언가를 사오신 적이 단언컨데 다 한번도 없었습니다.그렇다고 과분한 사랑을 받은건 더더욱 아니고요.큰 사촌오빠가 군대에 가있을 때도 둘째 오빠를 막둥이 저는 ..어? 정도...ㅎㅎ하나뿐인 손녀 딸인데 막내 취급은 커녕 가끔은 여자니 애교도 좀 부릴 줄 알아야한다는 시덥잖은 성차별적인 발언들만 듣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집에 가서도 오빠들이 티비며 온갖것들은 독점해서 저는 눈치보며 쭈뼛쭈뼛 있거나 다른방에서 스마트폰이나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아빠의 만족스러운 것들이 충족되면 그제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죠. 정말 이런 모든 얘기를 꺼내도 추석 글쓴님처럼 사회 부적응자 같다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할머니에게 전화도 계속 요구하셨거든요. 저는 전화가 부담스럽고 할머니집도 부담스럽다니 저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사회 부적응자가 친구가 있고 내편이 있냐고 하니 그것과 별개로 이상한 것이라고 뭐든 싫더라고 '핏줄'이면 당연히 해야된다고...하......그놈의 핏줄.....끊고 싶네요... 제가 진짜 사회 부적응자인가요?그리고 아버지께선 대학생때부턴 데려가시겠다고 다시 엄포를 놓으셨습니다.제가 여러번 싫다고 완강하게 말했지만요. 저는 저에게 호의적이고 잘대해주는 분은 항상 존경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추석 글쓴 분 처럼 저도 외할머니와 정말 잘지내고 그집에선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요.
고3학생인데 추석에 친가 안간다는 글 진짜 제 경험담 같아요 ㅠ
이번에 추석에 친가 안간다고 싸운 글 보고 제 글을 안 남길 수 없었어요.진짜 공감가서 눈물날뻔 했거든요.물론 우리집이랑 상황이 아예 같다곤 할 수 없지만 저희 집 친가도 만만치 않아요.저는 현재 고3이고 지금 할머니 문제 뿐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아빠와 크게 다투어 대화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사사로운 얘기를 제외하고 저는 어린 유년기 시절부터 친가를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항상 할머니께서는 당연하게 장손을 챙기셨고,또한 큰집의 둘째를 막내라고 부르셨으니까요.저는 어느 꼭두각시 인형처럼 인원수 채우기에 급급한 깍두기 손녀였습니다.물론 지금도요.
제가 가면 형식적인 인사치레만 있거나 매번 원치 않는 포옹을 강요하셨죠.그리고 저는 굉장히 스킨쉽을 불편해 하는 사람입니다.저희 부모님께도 별로 못해드린 스킨쉽을 할머니에게 하는 것 자체가 저에겐 고문에 가까웠습니다.어릴때이니 저는 그것이 무조건 해야하는 것 인줄알았습니다.그래야 모두가 웃고 넘어가니까요.그리고 매번 명절에 저의 기억 속에서는 큰엄마 대신 저희 어머니께서 대부분의 요리를전담하고 계셨습니다.같이 하는 것이 설명절 아니었나요?그러다 큰엄마는 일 때문에 가장 먼저 가셨습니다.할말하않이었죠...
그렇다면 그곳의 음식은 당연히 신선하고 마트에서 바로 사온 것들로 조리할 것이라 다들 생각하시겠죠?
아니요.
매번 노란밥(묵은밥)과 언제 사온지 모를 냉장고에 처박혀 있던 고기 그리고 떫은 나물들 등등 정말 많았습니다.그 후 제가 아픈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그래서 후엔 어머니가 직접 반찬을 만들어 오시거나 나물등을 사오셨는데 저는 그것만 먹었습니다.그나마 저때는 추석일 때나 개인적으로 아빠와 함께 동행했을 때이고, 설날은 정말 심각 그 자체였습니다.할머니는 정말 위생관념과는 거리가 먼 분이신데 다른 볼일을 보시다가 갑자기 손도 씻지 않은 채로 만두를 빚어서 오래된 묵은 떡국떡과 어떻게 조리되었을지 상상하기도 두려운 사골 국을 새해 첫 끼로 먹었죠.
그리고 저희 어머니께서 고부 갈등을 넘어서 아버지와도 마찰이 잦자 친가와의 단절을 선언하셨고 아버지와 크게 다투셨지만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즈음부터는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강박증이 생기셨는지 아버지께서는 매주 주말마다 저를 강압적으로 친가에 데려가셨습니다.
잠깐 아버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결혼전에는 본체만체하던 친가를 결혼 후에 저희 외갓댁을 보고 적잖이 놀라셨는지 그 후로 착한 아들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하시고 계십니다.정말 저희와의 중요한 약속도 할머니의 연락 한 통이면 바로 달려가시고, 할머니의 수술비(하지만 정작 저희 어머니가 수술하셨을때는 치료비를 급하게 내야했는데 돈이 없다고 갓 수술하신 저희 어머니에게 윽박지르셨습니다.), 치료비 등등 할머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혼자 감당하고 있고 (저희 집은 평범한 집입니다.)
결혼 전에 할머니에게 맡긴 아버지의 월급등도 돌려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막상 장남인 큰아버지께선 거의 본체만체 상태로 일관하면서 사업비로 할머니에게 많은 비용을 빌려가셨죠.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발길이 끊긴 중학생무렵부터 저를 데려가셨는데,제가 초반에 맛있는 음식으로 어린맘에 잠시 혹했었으나 언젠가부터나는 누른내나는 불판냄새,그 집의 특유의 분위기 등등 다양한 이유로 가기를 꺼려했는데 ,그럴때 제가 자는 척도 해보고 별의별 짓도 다해보고 가기싫다고 울고불고 해봤음에도 심하면 폭력을 사용하셔서 기여코 친가에 데려가셨습니다.마치 전유품처럼요.
그곳에서 전 어색한 분위기에 저만 홀로 동떨어지고 고립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그리고 아버지께선 그 곳에만 가시면 시간약속을 안지키셨고요.
이를테면 제가 몇시에 갈 것이냐 했을 때 정시에 간적이 없습니다.하도 그러니 큰아빠가 '00아 너 솔직히 집가고 싶지'라는 말에 그렇다라고 답했다가 아빠가 소리지르시면서 잔뜩 윽박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제가 정말 울면서 안맞는다고 여기 안오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는그게 저의 탓이고 제가 맞춰야 맞는 것 아니냐고 하시면서(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에 가까웠습니다.) 버스자리도 따로 앉으시고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몇달을 저와 대화를 하지않으셨습니다.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어린마음에 저는 당연히 따라갔고(안 그러면 저를 없는 사람 비슷하게 취급하셨으니까요.) 정말 이러다가 우울증이라도 올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코로나가 터진 덕에 명절과 주말에 친가에 가지 않게 되었고 정말 그 무엇보다 좋았습니다.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저를 계속 데려가러 하셨고 그 문제로 어머니와도 엄청 자주 싸우셨습니다.그래서 가족끼리 대화를 시도했지만 정작 아버지께선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언급만해도 불같이 화를 내고 일방적으로 억지논리로 끝맺음을 하기 급급하셨고,제가 울든 말든 신경도 안쓰셨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저는 어이없는 얘기를 들었습니다.어머니와 싸우시던 중 어머니에게 00이 말할 때 동조해주지말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셨답니다. 충격적인건 그 다음인데 (친가)어머니 싫어하면 나도 00이 싫어.
참.....이게 아버지가 하실 소리인가요?저는 그 얘기를 듣고 한참 벙쪄있었습니다.제가 아버지의 1순위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자기 딸을 울 엄마 싫어해?그럼 난 내 딸도 싫어 ㅋ 이게 무슨 경우가....
그리고 방문이 꺼려진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인 부분이었던 것은 매번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와 저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주시지 못하셨습니다.매번 포옹이 싫어서 아버지를 보면 딴 곳을 보시면서 허허 웃기만 하셨죠.정말 저는 인형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수십번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석 글쓴님처럼 저도 할머니에게 뭘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큰집 오빠들에겐 새 브랜드 신발과 대학 등록금 통장 매번 배 이상인 세뱃돈이 항상 있었고,저는 할머니에게 가끔 유통기한 넘은 것들이나 복지회관에서 가져오신 공짜 요구르트나 과자등이 전부였습니다. 아..뭐 가끔 생율..?그런 거나 먹이셨죠...ㅎ저는 할머니가 저를 위해 무언가를 사오신 적이 단언컨데 다 한번도 없었습니다.그렇다고 과분한 사랑을 받은건 더더욱 아니고요.큰 사촌오빠가 군대에 가있을 때도 둘째 오빠를 막둥이 저는 ..어? 정도...ㅎㅎ하나뿐인 손녀 딸인데 막내 취급은 커녕 가끔은 여자니 애교도 좀 부릴 줄 알아야한다는 시덥잖은 성차별적인 발언들만 듣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집에 가서도 오빠들이 티비며 온갖것들은 독점해서 저는 눈치보며 쭈뼛쭈뼛 있거나 다른방에서 스마트폰이나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아빠의 만족스러운 것들이 충족되면 그제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죠.
정말 이런 모든 얘기를 꺼내도 추석 글쓴님처럼 사회 부적응자 같다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할머니에게 전화도 계속 요구하셨거든요.
저는 전화가 부담스럽고 할머니집도 부담스럽다니 저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사회 부적응자가 친구가 있고 내편이 있냐고 하니 그것과 별개로 이상한 것이라고 뭐든 싫더라고 '핏줄'이면 당연히 해야된다고...하......그놈의 핏줄.....끊고 싶네요...
제가 진짜 사회 부적응자인가요?그리고 아버지께선 대학생때부턴 데려가시겠다고 다시 엄포를 놓으셨습니다.제가 여러번 싫다고 완강하게 말했지만요.
저는 저에게 호의적이고 잘대해주는 분은 항상 존경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추석 글쓴 분 처럼 저도 외할머니와 정말 잘지내고 그집에선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요.